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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대표 A매치보다 유소년축구가 훨씬 재밌어요”
김영균 유소년축구연맹 6대 회장 “앞으로 돈이 없어 축구 못하는 유소년은 없다”
2017년 04월 03일 (월) 노현주 기자 ilyoweekly@daum.net
   
▲ 김영균 한국유소년축구연맹 6대회장

핸드폰 프로필에 ‘축구 할아버지’...‘축구 사랑은 내가 최고’
취임 일성 “앞으로 돈이 없어 축구 못하는 유소년은 없다”


한국유소년축구연맹 김영균(68)회장은 22년간 유소년 축구 발전을 위해서 외길을 달려왔다. 김 회장은 특히 유소년연맹이 초등학교 졸업반 외에는 선수들이 출전 기회를 잡지 못하는 걸 보고 저학년 대회를 따로 만들었다. 또 2000년대 초반부터 스페인 명문 구단과의 활발한 교류로 백승호, 이승우(이상 FC바르셀로나), 안준혁(비야레알) 등 유망주의 해외 진출에 다리도 놓았다.

요즘은 유소년축구연맹 6대 회장직까지 맡아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하다. 본인 핸드폰 프로필에 ‘축구 할아버지’라는 문구를 남길 정도로 축구에 대한 대단한 사랑과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김 회장 종로구 경희궁길에 위치한 축구협회서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내용.

20년 넘게 유소년축구 행정가로 활동

▲뒤늦은 감은 있지만 유소년축구연맹 6대 회장직 취임 하신 걸 축하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저는 회장에 취임하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앞으로 선수들이 돈이 없어 축구를 못하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이 말을 정말 마음속으로 여러번 다짐하고 또 다짐 했어요.사실 제가 돈이 없어서 마음껏 축구하는데 많은 곤란을 겪었습니다.

▲유소년연맹 창립 공신이 22년 뒤 수장이 되었습니다.
1996년 유소년연맹 탄생 때 연맹 이사로 출발을 함께했죠. 연맹 창립 때부터 지난해까지 김휘(73) 전 회장을 보좌하며 축구 꿈나무를 위한 실무를 수행했고 그동안 협회의 전무와 부회장을 거쳐 지난해 말 신임 회장 선거에 단독 입후보 해서 대의원 25인 찬반투표에서 만장일치로 당선 됐습니다.

▲새삼 감회가 남다르시겠습니다.
20년 넘게 유소년축구 행정가로 일했어요. 그 경험을 바탕으로 유소년 선수와 지도자의 환경 개선을 위해 나름 일조 했다고 생각 합니다. 요즘 느끼는 건데 확실히 부회장 때보다 훨씬 어깨가 무거워졌어요.예전에 초등학교 선수 스카웃도 병행했는데 그게 인연이 되어 초등학교 전국대회를 대구로 유치했어요. 당시에 일선 지도자로 느껴보니 선수 등록 규정 등 행정적으로 고쳐야 할 게 많더라구요. 그래서 김휘 전 회장을 모시고 유소년연맹을 발족하면서 나도 뛰어들게 됐습니다.

 “사무실이 아닌 현장 누비는 회장 되겠다”

▲어린이들을 좋아하시는 것 같습니다.
어린 선수들이 공을 차는 모습을 보면 정말 귀여워요. 최근에는 인터넷 등으로 축구 정보를 많이 얻기 때문인지 외국 유명 선수의 기술을 따라 하기도 해요. 때 묻지 않은 승부욕도 보기 좋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국가대표 A매치보다 유소년축구가 훨씬 재밌다고 생각해요.(웃음)

▲힘들었던 유년기를 보내셨다고 들었습니다.
당시 힘 안든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1953년 휴전 후 전쟁이 남긴 잿더미 속에서 유년기를 보냈죠. 대구 현풍초 5학년 때 축구를 시작했는데 공차는 게 좋아서가 아니라 집안사정이 좋지 않아서 학교를 계속 다니려면 운동부에서 주는 장학금을 받아야 했습니다. 특히 축구부에 들어가면 라면을 먹을 수 있었어요. 쌀밥은 상상도 하기 힘든 시절이죠. 지금은 그래도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어떻게 기억되는 회장님이 되고 싶으십니까.
앞서두 잠깐 이야기 했지만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축구를 못 하는 유망주가 대한민국에 단한명도 없게 만들겠습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이야기 하자면 돈이 없어 축구를 포기하려는 선수를 돕는 방안을 논의 중 입니다. 또 박봉에 시달리는 지도자 처우도 개선해야 합니다. 모든 문제점과 어려움을 확인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사무실이 아닌 현장을 누비는 회장이 되겠습니다.

손자 같은 선수들 공을 차는 걸 보면 행복

▲‘할배’ 소리를 듣는 것을 좋아하시는 것 같습니다.
늙어서 듣는 소리인데 좋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40대에 유소년연맹에 들어와 ‘할배’ 소리를 들을 때까지 손자 같은 선수들이 공을 차는 걸 보고 있어요. 축구 할아버지라는 별명이 있는데 정말 자랑스럽고 영광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4년 임기 동안 매일매일 유소년축구와 함께 호흡하는 축구 할아버지로 봉사 하겠습니다.

▲오랜 실무 경험이 회장직에 많은 도움이 되시죠.
개인적인 입장에선 오랜 기간 실무를 했으니까 계속 이어가는 게 좋습니다. 하지만 새 회장을 놓고 친했던 축구 원로들이 서로 경쟁하는 모양새가 되는 것 같아서 처음에는 많이 불편하기도 했어요. 그 분들의 ‘의리’를 지키기 위해 내가 나서봤습니다(웃음). 축구계에 오래 몸 담았고 특히 유소년 행정을 20년 가량 했으니까 이 경험으로 어린 선수들 발전에 좋은 초석을 되겠습니다.

▲유소년축구 행정가로 활동하면서 많은 업적이 이뤄 내셨는데...
실무 일을 하면서 좋은 일을 많이 했죠. 기존엔 고학년들 위주의 대회가 이뤄졌는데 연맹에서 처음으로 저학년 (10세, 11세) 들도 주축으로 해 나가는 연령별 대회를 만들어 축구를 좀 더 일찍 시작하게 하는 계기를 만들었고 좀 더 어릴 때부터 좋은 선수를 확보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 했습니다.

백승호·이승우·안준혁 등 유망주 발굴한 게 보람

▲좀 더 구체적인 설명 부탁 드립니다.
8년 전 국회의원 김두환 씨가 군수로 있던 시절 (협회에서) 지방자치대회를 남해에서 최초로 만들었는데 당시 지자치대회를 통해서 많은 경제적 효과를 창출해낸 바 있습니다. 대회가 열리면 해당 지역에서 선수들이 숙식을 해결했고 또 그곳에 학부모 등 수많은 관중들이 한꺼번에 몰려 적지 않은 돈을 소비했기 때문이죠. 결국 남해 대회가 모델 케이스가 돼 현재 경주, 영덕, 울진, 합천 등에서 지자치대회가 활성화 되고 있으며 현재는 이들 대회의 인프라가 잘 구축이 된 상태다. 때문에 해당 지역들은 관광 비수기철 지역경제 활성화에 큰 기여를 하고 있습니다.

▲기억나는 제자들 좀 소개해 주세요.
백승호, 이승우, 안준혁 등 유망주들을 발굴한 게 보람이 아닐까 싶어요. 이들은 협회서 테스트를 통해 스페인 바로셀로나로 직접 보낸 아이들이라 애착이 갈 수밖에 없죠. 초등학교 시절부터 봐온 이들은 보통 선수들과는 남달라 절로 칭찬이 나왔었으며 또 재능 뿐 아니라 의욕도 대단한 아이들 이었습니다.

▲협회가 많은 유망주들의 해외 진출을 돕고 있는데...
유소년 대표팀을 만든 뒤 스페인 구단들과 친선경기를 했습니다. 당시 나는 실무자로서 해외에 선수들을 데리고 많이 나갔었는데 (스페인) 구단들이 몇몇 선수를 며칠 데려가 같이 훈련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현재는 국제축구연맹(FIFA) 유소년 등록 규정에 의해 18세 이하 어린 선수들은 해외로 이적할 수 없게 됐어요. 이문제를 해결 하혀고 연맹은 3년 전부터 경주에 국제 대회를 열기 시작했는데 대회를 통해 유럽 구단을 초청하며 교류하면서 우수한 선수들을 해당 구단에 연수보내 기본기술을 배우게 하고 있습니다.

유소년 지도자들 퇴직 연금 확립이 꼭 필요

▲유소년 축구에 가장 시급한 문제는 무엇이라고 생각 하시나요.
졸업과 입학을 앞둔 6학년생들을 위해 겨울철에 다른 이벤트를 만들 필요가 있습니다. 고민해야할 부분 입니다. 초등학교에서는 고학년이었던 6학년생들은 중학교에 진학하더라도 저학년이라 대회나 경기에 출전할 기회가 줄어들기 마련이다. 기본기를 갖추고 전술이해도를 높여나가며 선수로서 성장하는 시기라 관리에 더욱 신경을 써야할 필요가 있어요. 학교 소속의 학생이면서 대한축구협회 등록선수여야 대회 출전이 가능합니다. 협회와 학교시스템이 서로 달라서 생기는 문제인데 제도적인 보완책이 마련되면 좋겠습니다.

▲4년간 이뤄내고 싶은 현안이 있다면...
부회장할 때보다 무한한 책임을 갖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일선에 있는 유소년 지도자들과 재능 있는 선수들이 많이 힘들어 합니다. 우리 축구는 학원이 뿌리인데 세계 추세가 클럽 위주로 가다보니 진통이 일어나고 있죠.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좋은 소질에도 불구하고 돈이 없어 축구를 못하는 선수들을 돕는 것 입니다. 여기에 지도자 처우 개선, 지도자 해외 견학 등도 중점적으로 실천하고 싶다. 유소년 지도자들 퇴직 연금 확립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그걸 추진해보고 싶습니다.

▲마지막 정리 말씀 부탁 드립니다.
전임 회장이 워낙 잘 했고, 연맹의 수장으로 주요 정책을 결정·판단해야 하고 책임을 져야 하는 만큼 어깨가 훨씬 무거워졌습니다. 중등학교에서는 유소년 때 발굴할 선수를 갖다 쓰면 됩니다. 그만큼 꿈나무를 발굴하는 유소년 축구가 중요하다는 이야기 입니다 21년 전 170여개이던 유소년은 현재 400여개가 넘어섰습니다. 이들을 잘 관리해서 꼭 국가대표를 만들기 보다 한국축구에 도움이 될 수 인재로 키우도록 하겠습니다.

   
▲ 한국유소년축구연맹 김영균회장

한국유소년축구연맹 제6대 김영균 회장은 누구 ?


대학 입학 후 곧장 축구인생 2막 준비

김 회장은 1949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이듬해 한국전쟁이 발발했다. 1953년 휴전 후 전쟁이 남긴 잿더미 속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대구 현풍초 5학년 때 축구를 시작했다. 공차는 게 좋아서가 아니었다. 집안사정이 좋지 않았다. 학교를 계속 다니려면 운동부에서 주는 장학금을 받아야 했다.

또 축구부에 들어가면 라면을 먹을 수 있었다. 쌀밥은 상상도 하기 힘든 시절. 배고픈 소년은 거금 500원 상당의 축구화까지 받고 공을 차기 시작했다. 현풍중-성광고를 거쳐 축구로 대학까지 갔다. 인천전문대를 나온 뒤 서남대에서 졸업했다.

고교 시절부터 지도자의 꿈을 키운 그는 대학 입학 후 곧장 축구인생 2막을 준비를 했다. 그리고 1973년, 만 24세 나이로 보성기술중학교 감독이 된다. 이어 1976년 대륜중 초대 사령탑으로 지휘봉을 잡았다. 중학교 감독을 하면서 선수 스카우트를 위해 초등축구를 자주 접하게 됐다. 그 인연으로 고향 대구에서 초등축구 전국대회를 유치되는 데 힘을 보태기도 했다. 유소년축구와의 운명적 만남이었다.

1996년 유소년연맹 탄생 때 연맹 이사로 출발을 함께했다. 연맹 창립 때부터 지난해까지 김휘(73) 전 회장을 보좌하며 축구 꿈나무를 위한 실무를 수행했다. 전무와 부회장을 거친 그가 지난해 말 신임 회장 선거에 단독 입후보 했다. 대의원 25인 찬반투표에서 만장일치로 당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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