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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왕국 가야를 찾아서>2편-고구려 보다 앞서 꽃피운 ‘가야불교’
김수로왕 일곱 왕자가 성불한 ‘가야불교’의 발상지 하동 칠불사
2017년 08월 10일 (목) 김영권 기자 kaya4898@daum.net

[일요주간=김영권 기자]<삼국사기> 고구려본기에는 소수림왕 즉위 2년 임신(372)년에 전진왕 부견이 사신과 순도를 시켜 불상과 경문을 보내왔다. 2년 후인 갑술년에는 아도화상(阿道和尙)이 동진에서 왔다. 이듬해 2월 초문사를 지어 순도가, 이불란사를 지어 아도화상을 머물게 했다. 이것이 고구려 불법의 시초이자, 그동안 우리가 믿어온 한국불교의 시초이다.

그러나 한국불교는 이보다 약 300년 앞선 한반도 남쪽지역에 이미 전해져 있었다. 한반도 남쪽에 있던 금관가야에 불교가 들어온 것이다. 그동안 가야사가 상대적으로 관심에서 멀어지면서 현재에 엄연히 존재하는 가야불교가 실존역사가 아닌 허구의 역사로 치부되어 왔다. 그러나 최근 가야사 복원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지면서 한국불교의 역사도 바뀔 가능성이 높아졌다.

   
▲경남 김해시 신어산에 자리하고 있는 은하사는 허황옥의 오빠인 장유화상이 창건했다는 설화를 간직한 사찰이다. (사진제공=김해시)
   
▲신어사 경내에 있는 물고기 문양의 다리. 물고기 문양은 가야를 상징하는 대표적 문양이다. (사진제공=김해시)

경남 김해시 신어산에 자리하고 있는 은하사는 허황옥의 오빠인 장유화상이 창건했다는 설화를 간직한 사찰이다. 고려시대 <삼국유사>를 편찬한 일연스님은 “통일신라시대부터 김해 지역 사람들은 ‘허황옥이 인도에서 건너왔고, 장유화상이 가락국에 불교를 전파했다’라는 하나의 믿음을 공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남방불교 전래설로, 가야불교의 연원을 알 수 있게 하는 중요한 대목이다.

김해지역에는 허황옥이 인도에서 건너왔다는 유물들이 현존해 있어 가야불교에 대한 보다 큰 확신을 주고 있다. 김수로왕릉의 ‘신어상(쌍어문)’, ‘태양문’과 수로왕비릉의 ‘피사석탑’이 바로 그것이다. 일반적으로 쌍어문은 두 마리의 물고기를 상하 또는 좌우 대칭으로 배치한 문양으로, 종교적인 상징 문양이다. 쌍어는 악으로부터 보호하는 기능을 가지는 문양이다. 인도의 아요디아[阿踰陀國]의 문장이 쌍어문이라고 한다. 고대 인도어인 드라비다어로 물고기를 ‘가락’이라고 한다. 염직품의 문양으로 사용되고 장식재로도 사용된 예가 많다.

   
▲가야 고도(古都) 김해시의 대표적 상징물인 쌍어문양의 두 마리 물고기 중 한 마리는 허황옥의 고향인 아유타국을 나타내고, 또 다른 한 마리는 가야국의 안녕을 기원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사진제공=김해시)
   
▲김수로왕릉중건기적비에 있는 태양문양의 모습. 태양문양은 김수로왕이 태양으로 부터 내려온 태양의 아들임을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는 상징이다. (사진제공=김해시)

가야 고도(古都) 김해시의 대표적 상징물인 쌍어문양의 두 마리 물고기 중 한 마리는 허황옥의 고향인 아유타국을 나타내고, 또 다른 한 마리는 가야국의 안녕을 기원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또 수로왕비릉 내에 있는 파사석탑은 한문음으로 ‘파사석탑’이라고 표기하나 범어(梵語)로는 ‘바사석탑’이라고 하는데, 파(婆)는 범어로 바(bha)이며 그 뜻은 유(有)이고, 사(娑)는 발음이 사(sa)로서 그 의미는 체(諦 : 진실한 도리)이다.

따라서 파사는 유체(有諦)로서, 일체의 지혜가 현증(現證)한다는 뜻이다. 현재 남아 있는 석탑은 4각형의 지대석 상면에 높직한 굄대가 있어 그 위에 여러 개의 부재(현재는 6석임)를 받고 있

이 석탑은 허황옥이 인도에서 가야로 바다를 통해 건너올 때, 신의 노여움을 잠재우기 위해 배에 싣고 왔다고 전해진다.

   
▲수로왕비릉 내에 있는 파사석탑은 한문음으로 ‘파사석탑’이라고 표기하나 범어(梵語)로는 ‘바사석탑’이라고 하는데, 파(婆)는 범어로 바(bha)이며 그 뜻은 유(有)이고, 사(娑)는 발음이 사(sa)로서 그 의미는 체(諦 : 진실한 도리)이다. (사진제공=김해시)

<삼국유사> 권 제3 타상편 제4 금관성파사석탑조(金官城婆娑石塔條)에 다음과 같이 보이고 있다. “금관성 호계사(虎溪寺)의 파사석탑은 옛날 이 읍(邑)이 금관국으로 되어 있을 때, 세조 수로왕의 비(妃) 허황후(許皇后) 황옥(黃玉)이 동한(東漢) 건무(建武) 24년 갑신(甲申)에 서역의 아유타국(阿踰陁國)에서 싣고 온 것이다. 처음에 공주가 어버이의 명을 받들고 동쪽으로 오려고 하다가 파신(波神)의 노여움에 막혀서 할 수 없이 돌아가 부왕(父王)에게 아뢰니 부왕이 ‘이 탑을 싣고 가라’ 하여 무사히 바다를 건너 남쪽 물가에 와서 닿았는데, 비범(緋帆:붉은색의 배)·천기(茜旗:붉은 색의 기)·주옥(珠玉)의 아름다움이 있었으므로 지금도 이곳을 주포(主浦)라 한다. …(중략)… 탑은 사면으로 모가 나고 5층인데, 그 조각이 매우 기이하며 돌에는 조금씩 붉은 반점이 있고 석질이 매우 부드럽고 특이하여 이 지방에서 구할 수 있는 돌이 아니다”

이와 같은 내용에서 파사석탑의 존재를 알 수 있다. 또 조선시대 김해부사로 있던 정현석은 “이 탑은 허황후꼐서 아유타국에서 가져온 것이니 호계사가 아닌 허황후릉에 두어야 한다”며 현재의 자리에 옮겨 놓았다고 한다.

특히 지리산 중심봉인 반야봉(1,732m)의 남쪽 800m 고지에 위치하고 있는 칠불사(주지 도응)는 가야불교 발상지로 알려져 있다. 칠불사는 1세기경 금관가야의 시조 김수로왕의 일곱 왕자가 외숙인 범승(梵僧) 장유보옥(長遊寶玉) 화상(和尙)을 따라와 이곳에서 동시 성불한 것을 기념하여 김수로(金首露) 왕이 국력으로 창건한 사찰로 전해진다.

   
▲지리산 중심봉인 반야봉(1,732m)의 남쪽 800m 고지에 위치하고 있는 칠불사(주지 도응)는 가야불교 발상지로 알려져 있다. (사진제공=하동군)
   
▲칠불사는 1세기경 금관가야의 시조 김수로왕의 일곱 왕자가 외숙인 범승(梵僧) 장유보옥(長遊寶玉) 화상(和尙)을 따라와 이곳에서 동시 성불한 것을 기념하여 김수로(金首露) 왕이 국력으로 창건한 사찰로 전해진다. (사진=김영권 기자)

<삼국유사>가락국기에 의하면 수로왕은 서기 42년에 화생(化生)했으며, 남해바다를 통해 가락국에 온 인도 아유타국(阿踰陁國) 허황옥 공주를 왕비로 맞아 10남 2녀를 두었다. 그 중 장남은 왕위를 계승하였다. 둘째와 셋째 왕자는 어머니의 성을 이어 받아 김해 허씨(許氏)의 시조가 되었으며, 그 나머지 일곱 왕자는 외숙인 장유화상을 따라 출가했다.

그들은 장유화상의 가르침을 받으며 가야산에서 3년간 수도하다가 의령 수도산과 사천 와룡산 등을 거쳐 서기 101년에 지리산 반야봉 아래에 운상원(雲上院)을 짓고 정진한지 2년 만에 모두 성불했다.

칠불의 명호는 금왕광불(金王光佛), 금왕당불(金王幢佛), 금왕상불(金王相佛), 금왕행불(金王行佛), 금왕향불(金王香佛), 금왕성불(金王性佛), 금왕공불(金王空佛)이다. 이 칠왕자의 성불로 인하여 칠불사라 하였다.

이 외에 칠불사 경내에 있는 영지(影池)와 칠불사 인근 지역에 남아있는 명칭 등을 통해서도 칠불사가 가야불교의 성지임을 알 수 있다. 칠불사의 영지는 칠왕자의 그림자가 나타났다는 연못이다.

   
▲칠불사 경내에 있는 영지(影池)와 칠불사 인근 지역에 남아있는 명칭 등을 통해서도 칠불사가 가야불교의 성지임을 알 수 있다. 칠불사의 영지는 칠왕자의 그림자가 나타났다는 연못이다. (사진제공=하동군)

수로왕 부부가 출가한 일곱 왕자를 만나기 위해 칠불사 터에 와서 왕자를 보려 하자 장유화상은 “왕자들은 이미 출가하여 수도하는 몸이라 결코 상면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꼭 보고 싶으면 절 밑에 연못을 만들어 물속을 보면 왕자들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장유화상의 말에 따라 김수로왕 부부는 연못을 만들어 놓고 그 연못을 보니 과연 일곱 왕자들의 그림자가 나타났다. 그를 보고 수로왕 부부는 환희심을 느끼고 돌아갔다고 한다. 그로 인하여 이 연못을 영지라 부르게 되었다.

또 칠불사 인근 마을의 명칭인 범왕(凡王)마을과 대비마을도 칠불사가 가야불교의 성지임을 증명하는 것이다. 범왕리라는 명칭은 김수로왕이 칠왕자를 만나기 위하여 임시 궁궐을 짓고 머무른 데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또 화개면 정금리의 대비마을(大妃洞)은 허황후가 아들을 만나기 위하여 머물렀다는 데에서 비롯됐다.

칠불사 주지 도응스님은 “칠불사 창건 및 가야불교에 대한 정확한 자료는 남아 있지 않지만 범왕마을과 대비마을과 같은 지역명은 남아 있다”면서 “이와 같은 지역명이 아무런 의미없이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밝혔다.

도응스님은 “지난 6월 문재인 대통령이 ‘가야사 연구와 복원’을 국정과제에 포함시켜 달라고 주문하고, 지난달 19일 정부가 ‘가야문화권 조사·연구 및 정비’가 포함됐다”면서 “이번 기회에 가야사가 제대로 연구 및 복원되어 한국불교사도 재정비가 되었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칠불사 주지 도응스님. 도응스님은 “칠불사 창건 및 가야불교에 대한 정확한 자료는 남아 있지 않지만 범왕마을과 대비마을과 같은 지역명은 남아 있다”면서 “이와 같은 지역명이 아무런 의미없이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밝혔다.(사진제공=칠불사)

이어 도응스님은 “가야문화권 역사관광 벨트가 전북 군산에서 전남 목포와 장흥을 거쳐 남해안을 아우르는 L자형 벨트”라면서 “이는 전남·북과 경남·북의 영역이다. 영호남의 화합이라는 좋은 뜻을 가지고 있다. 화합과 소통에 방점을 둔 대통령의 뜻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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