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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올로기 정치’ 무관한 섬나라 양민
‘이데올로기 정치’ 무관한 섬나라 양민
  • 박종규 칼럼니스트
  • 승인 2018.01.09 09: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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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수필] 박종규 ‘붉은 섬’

"상상도 할 수 없는 것 이상의 상상도 할 수 없는 어떤 것"

"아우슈비츠 이후의 아우슈비츠"

"잔혹한 국가 폭력, 완전 파괴, 대량 학살, 이념적 낙인찍기, 연좌제, 트라우마……."

<연세대 박명림 교수의 제주4․3평화포럼 2017. 11. 9 발제 중에서>

▲ 박종규 칼럼니스트​
▲ 박종규 칼럼니스트​

다른 나라 이야기 같은 우리나라 이야기이다. 이 전대미문의 학살 사건을 등잔 밑에 두고 우리는 그동안 눈멀고 귀먹고 입 막혀,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한 채 반세기를 넘겨 살아왔다. 더구나 그 일이 미 군정의 직접 통제에 따라 우리가 뽑은 위정자들에 의해 자행되고 가려 져왔다는 사실에 전율한다.

제노사이드(Genocide)는 국제법상 전쟁 중이라도 엄격하게 금지하는 대량학살을 지칭하는데 그 대표적인 사례로 이 사건을 꼽는다. 어떤 마을은 한날한시에 마을 사람 360여 명이 몰살당했다. 개중에는 영유아나 12살 이하의 어린 생명도 다수 포함되어 있다. 어느 날 마을에 들이닥친 군인들의 무차별 난사에 사람들은 영문도 모른 채 떼죽음을 당한 것이다.

북촌리 그 참혹한 현장에는 당시의 슬픔을 알리는 비가 세워져 있다.어떤 가족은 아예 대가 끊겨버렸다고 한다. 또 수백 명의 양민이 해안가 넓은 터에 끌어가 집단으로 매장 당했다. 그 매장지에는 국제공항이 세워져 관광 한국의 기간을 떠받치고 있으니 아이러니다.

군경 토벌대와 무장대 사이에서 곱사등이가 되어야 했던 섬사람들. 밤에는 산에서 무장대들이 마을에 내려와 토벌대에 협조했다고 살상을 일삼았고, 날이 밝으면 토벌대가 나타나 무장대와 내통했다고 총부리를 들이댔다.

바로 이웃이 적이 되어버렸고, 한 동네에서 오십 년을 함께 살아가는 어른이 자기 부모를 죽인 사람인대 어쩌지 못하고 평생을 숙명처럼 같이 살아야 하는 사람들.「순이 삼촌」은 이를 다룬 첫 소설이었다. 그런 위기 상황에서 목숨을 걸고 섬을 탈출, 일본으로 건너간 사람들도 있었다. 「화산도」의 작가 김석범의 부모도 그랬다.

재일 교포 김석범은 4․3의 진실 찾기에 앞장서서 1988년 ‘화산도’를 일본에서 발간한다. 이 소설이 번역되어 한국에 소개되었는데, 2015년에는 이 책이 12권으로 완역되어 발간되었다. 그의 소설은 제주의 거대한 슬픔을 담은 마그마 덩이였다.

이 사건은 세월이 많이 흐르고 정부 형태가 수없이 바뀐 오늘날까지 이데올로기의 논리에 묶여 쉬쉬해 왔다. 또 친북 세력에 의해 약간의 희생자가 발생한 사건 정도로만 인식되고 있다. 아름다운 섬이 동일본 대지진의 쓰나미 희생자 숫자보다 훨씬 많은, 공식적으로 2만 5천에서 3만 명이 희생된 살육의 현장이었다니 믿기지 않는다.

6․25전쟁 이후 우리는 민주화를 이루는 과정에서 수많은 희생자를 내야 했다. 근래에는 세월호 참사에 온 나라가 악몽을 떨쳐내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수백도, 수천도 아니고 수만 명에 이르는 양민이 퇴로 없는 섬에 갇혀 학살당한 사실을 제대로 아는 국민이 별로 없다.

제주4․3평화공원에 들러서야, 원형의 벽을 가득 채운 희생자들의 엄청난 숫자에 압도당해서야 가공할 그 일에 눈 떴고, 귀 열렸으며 가슴이 미어져 왔다. 이 아름다운 섬은 그때 미군에 의해 ‘붉은 섬(Red Island)’으로 낙인찍혀 있었던 사실도 이제야 알게 되었다.

제주도민들에게 미 군정의 지휘를 받은 진압군의 총부리는 삭힐 수 없는 가슴 속 화석일 터이다. 그 화석을 품은 한라산이 미 해군기지 유치를 달가워했겠느냐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일제 36년 강점기가 끝났을 때, 섬사람들은 당연히 하나 된 조국을 꿈꾸던 순수한 백성들이었다. 조선은 원래 하나의 나라였기에. 북쪽을 포기하고 남한만의 정부가 서는 것을 반대하던 민족주의자들이 있었다. 이 일은 남한 정부 수립을 주선한 미군 측에는 커다란 장애였다. 더구나 무장대에는 남로당원들도 있었다고 하니 말이다.

하지만 정치도, 이데올로기도 모르는 섬나라 수만의 양민이 빨갛게 낙인찍혀 처참하게 살육당해야 했다. 몇 년 뒤 닥칠 6.25의 전초전이었을까? 김대중 정부에 와서야 이 사건에 조명이 켜졌고, 노무현 정부가 정부 차원의 공식 사과를 했으며, 박근혜 정부에서도 제주4․3평화공원 조성에 나섰다.

그러나 이 사건은 늘 언론의 관심권 밖에 놓여서 가십 기사 정도로 노출되고 있었다. 미국의 한반도 전문학자인 시카고 대학 브루스 커밍스(Bruce cumings)도 ‘이 아름다운 섬에 전후 최초로 자결권과 사회 정의를 위해 싸운 원주민들이 있었다. 이들에게 무자비한 학살을 자행하게 한, 미국의 압력은 나쁜 사례였다. 언젠가는 미국 정부가 그에 대한 책임을 질 것’이라 말했다.

글깨나 쓴다는 작가 80여 명이 제주4․3을 바로 알고자 제주에 왔다. 이 사건을 제대로 몰랐던 작가 대부분이 가슴 저미며 이를 새롭게 각인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마을 사람들이 모두 살육된 북촌리의 그 현장에서 한 작가가 이런 말을 했다.

“이러다가 우리 회원들 모두 좌파 되는 거 아니야!”

실상을 제대로 알려줘도 눈멀고, 귀가 열리지 않은 사람이 있는 모양이다. 민족주의자가 종복으로 몰리는 바보 같은 일이 다시는 반복되어서는 아니 된다. 작가가 이데올로그에 갇혀 글을 쓴다면 독자에게 독을 전하는 것이다. 이제는 아픈 역사를 바로 알고, 서로 화해와 용서가 필요한 시점이니 말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상상도 할 수 없는 것 이상의 상상도 할 수 없는’ 이 놀라운 소식에 귀 막고 눈을 감을지, 참 걱정되는 순간이었다.

• 글쓴이 박종규

1995년 첫 장편소설《주앙마잘》,《파란비 1, 2》, 소설집《그날》

2005년《에세이스트》창간호로 등단, 수필집《바다 칸타타》,《꽃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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