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18-06-21 18:23 (목)
[우리땅 이야기] 자연의 아름다움 속에 文香 짙은 고을, 영양
[우리땅 이야기] 자연의 아름다움 속에 文香 짙은 고을, 영양
  • 이재윤 기자
  • 승인 2018.03.08 17:4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진=이재윤 기자)
(사진=이재윤 기자)

[일요주간=이재윤 기자] 어린 시절 시골에서 자란 기자에게 겨울 아침의 즐거움을 꼽으라면, 그 중에 하나는 대야에 언 얼음을 송곳으로 깨는 것이었다. 그게 무슨 특별한 재미가 있겠냐고 웃는 이들도 있겠지만, 그 시절 내게는 행여 어머니나 형이 먼저 나와 그 얼음을 거름더미에 버리지나 않을까 기꺼이 이부자리를 털고 일어나게 만드는 놀이였다.

겨울의 초입 대야에 살얼음이 얼고, 그 아래로 동그란 공기방울이 구슬처럼 잠겨 있으면 조심스레 송곳으로 작은 구멍을 내고는, 내 눈 속으로 빨려들 듯 작아지는 공기방울을 마치 달디 단 팥빵을 삼키듯 바라봤다. 겨울의 초입이 내게 팥빵 같은 공기방울의 즐거움을 줬다면, 이제 본격적으로 겨울의 추위가 산골을 덮을 때면 대야 속 얼음은 꽁꽁 얼어 훌륭한 썰매 대용품이 된다.

대야의 가장자리를 조심스레 송곳으로 쑤시면 얼음이 통째로 쑥 빠지는데, 얼음 위에 짚을 두껍게 얹고, 그 위에 포대를 덮으면 그대로 훌륭한 얼음 썰매가 된다. 그 얼음 썰매 위에 작은 엉덩이를 깔고 앉아 나무 막대기로 마당을 짚어가며 썰매를 타는 재미는 그 어디에도 비할 데 없는 즐거움이었다.

서두부터 어린 시절 이야기가 너무 길었다고 핀잔하진 말아 달라. ‘우리땅 이야기’ 코너로 다시금 찾아간 경북 영양은 기자의 어린 시절 대부분의 기억을 차지하고 있는 고향이기 때문이다. 독자들에게 소개하기 위해 찾아간 고향에서 그동안 미처 알지 못했던 고향의 새로운 모습들을 발견할 수 있어서 그 어느 때보다 즐거운 취재였다.

◆ ‘사람의 아들’ 이문열 문학의 고향, 두들마을

대구에서 안동, 청송군 진보면 소재지를 지나 영양군의 경계로 들어서면 바로 오른편으로 영양군의 젖줄인 반변천이 흐르고, 마을을 감싸며 흐르는 푸른 강가에 우뚝 선 바위가 눈길을 붙든다. 우뚝 선 바위를 감싸고 완만하게 굽이 흐르는 물줄기가 부딪치는 절벽 위에는 낡은 기와지붕을 인 정자가 그 물줄기를 굽어보며 서 있다. 차창을 열면 금방이라도 그 옛날 정자 위에서 풍류를 즐기던 선비들의 웃음소리가 들릴 듯하다.

이문열 문학관 (사진=이재윤 기자)
이문열 문학관 (사진=이재윤 기자)

절벽 위 정자의 운치를 뒤로 하고 300m 정도 가면 길이 두 갈래로 나뉘는데, 오른편으로 10여 분만 가면 석보면 두들마을이 나온다. 석보면은 우리나라 현대문학의 대표작가인 이문열의 고향이기도 하며, 그의 작품 ‘그해 겨울’, ‘그대 다시는 고향에 가지 못하리’, ‘금시조’, ‘황제를 위하여’, ‘영웅시대’,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등 많은 작품 속 인물들의 삶의 역정이 펼쳐지는 무대이기도 하다. 특히 두들마을은 그의 작품 ‘선택’의 배경 장소로도 유명해 매년 많은 문학도들과 관광객들이 찾는 명소가 되었다.

두들마을은 인조 18년(1640) 석계 이시명 선생이 터를 잡은 이후로 후손들이 대를 이어 정착함으로써 재령 이씨 집성촌을 이루었고, 두들마을이라는 이름은 언덕(두들) 위에 위치하고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석보면사무소를 지나 50m 정도 가서 오른쪽 골목으로 접어들면, 오래된 기와집들의 고풍스러운 처마가 하늘에 단아한 곡선을 그리며 맞는 두들마을이 한눈에 보인다. ‘두들문화마을’이라고 새겨진 선돌을 지나 마을로 들어서면 석계고택, 석천서당, 유우정 등 오래된 고택들이 세월의 무게를 고스란히 그 머리에 인 채 손님을 맞는다.

장씨부인을 기리는 유적비 (사진=이재윤 기자)
장씨부인을 기리는 유적비 (사진=이재윤 기자)

마을 안길을 따라 고택들을 지나면 한가운데 새로 지은 광산문학연구소가 있다. 광산문학연구소는 이문열이 문학도들에게 문학창작과 연구, 토론 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기 위해 2001년 5월 문을 열었다. 연구공간으로 사용할 강당, 안채, 그리고 후학들이 오면 묵을 수 있는 사랑채 등으로 이뤄져 있는데, 연구소 옆에 연못이 내려다보이는 정자가 운치를 더해주고 있다. 현재 연구소엔 글 쓰는 사람은 없고 박순연(69) 할머니만이 집을 지키고 있어 사람 그림자가 그리워 보였다.

광산문학연구소 옆에는 ‘정부인 안동 장씨 예절관’이 있는데, 정부인 안동 장씨는 이문열의 소설 ‘선택’의 주인공으로, 두들마을에 처음 정착한 석계 이시명 선생의 부인이었다. 조선 중기 시문과 서화에 능할 뿐만 아니라 자녀 교육에 귀감을 보임으로써 신사임당과 같이 위대한 어머니상으로 추앙 받고 있는 정부인 장씨는 지난 1999년에는 11월의 문화인물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문열의 소설 ‘선택 ’에서는 페미니즘을 깎아내리는 인물로 그려져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전쟁과 혼란의 격변기에서 여성이면서도 스스로 어른으로 대접받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가르쳐준 대표적인 여성상으로 추앙받고 있다. 두들마을 앞에는 그녀를 기리는 유적비가 세워져 있다.

◆ 빛을 찾아가는 길, 주실마을

영양읍에서 승용차로 10여 분 거리에 있는 일월면 주실마을은 우리 나라를 대표하는 순수시인 조지훈 선생의 생가가 있는 곳이다. 마을 들머리에 있는 ‘주곡마을 휴식처’는 수백 년 된 느티나무들이 우거진 숲으로 조지훈 선생의 시 ‘빛을 찾아가는 길’이 새겨진 시비가 있다.

조지훈 비석 (사진=이재윤 기자)
조지훈 비석 (사진=이재윤 기자)

“사슴이랑 이리 함께 산길을 가며 /바위틈에 어리우는 물을 마시면 /살아있는 즐거움의 저 언덕에서 /아련히 풀피리도 들려오누나 /(중략)

빛을 찾아가는 길의 나의 노래는 /슬픈 구름 걷어가는 바람이 되라.”

조지훈 선생의 생가가 있는 주실마을은 재령 이씨 집성촌인 두들마을처럼 한양 조씨 집성촌으로 전통문화가 잘 보존되어 있다. 마을 한가운데에 조지훈 선생의 생가인 호은종택이 있는데, 솟을대문과 맞배지붕을 갖춘 ‘ㅁ’자형 전통 한옥으로 전형적인 영남 북부지방 양반가의 집 형태를 띠고 있다. 선생이 태어난 호은종택은 조선 중기인 인조 때에 지은 것으로 한국전쟁 때 일부 소실되었던 것을 1963년에 복원했다. 언뜻 보기에도 고고한 선비정신이 살아 숨쉬는 듯한 종택은 경상북도 지방기념물 제78호로 지정되어 있다. 생가에는 선생이 태어난 태실이 그대로 남아있고, 생가와 조금 떨어진 곳에는 선생이 어린 시절 수학한 월록서당도 그대로 남아있다.

조지훈 마을 (사진=이재윤 기자)
조지훈 마을 (사진=이재윤 기자)

마을 들머리에서부터 마을 안 곳곳을 한가로이 거닐며 ‘승무’, ‘풀잎’, ‘단장’, ‘역사 앞에서’, ‘봉황수’ 등 수백 편의 주옥같은 시들을 남긴 선생의 시심을 떠올려보았다. 바람은 벌써 차갑게 옷깃을 파고드는데, 가슴속에는 따뜻한 시인의 마음으로 온기가 전해져 왔다.

호은종택에서 아래쪽으로 조금 내려오면 ‘지훈문학관’이 있는데, 지난 봄 개관한 이곳은 조지훈 선생의 성장기, 청록파 시절의 활동, 그리고 육필 원고와 가계연보 등이 전시되어 있다. 선생이 남긴 우리 시문학사의 커다란 족적에 비하면 다소 왜소해 보이는 문학관이었지만, 그나마 열악한 지자체의 재정으로 이렇게 문학관을 세운다는 것에 위안을 삼으며 돌아섰다.

◆ 측백수림에 지는 저녁놀, 감천마을

주실마을에서 나와 영양읍을 지나서 남쪽으로 10여분 쯤 내려가면 31번 국도 왼편으로 작은 공원이 나오는데, 그곳에 시인 오일도 선생의 시비가 있다. 그의 대표시인 ‘저녁놀’이 새겨진 시비는 시인의 생가를 찾는 이들에게 잠시 숨 고를 여유를 주듯 한적한 곳에 조용히 서 있다. 시비가 서 있는 공원 너머로 흐르는 반변천의 물줄기는 차가운 겨울바람에 잔잔한 물살을 일으키며 부서지는 햇살을 담아 유난히 반짝인다.

시비에서 국도를 따라 100m 정도를 내려가면 왼편으로 깎아지른 절벽이 나오고, 그곳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측백수림이 아슬하게 형성되어 있어 보는 이들을 놀라게 한다. 어떻게 저렇게 깎아지른 바위 절벽에 나무가 군락을 이루며 살 수 있는지 놀라울 따름이다. 거기에 시인 오일도 선생이 노래한 ‘저녁놀’이 비추면 절로 탄성이 나온다.

오일도 생가 (사진=이재윤 기자)
오일도 생가 (사진=이재윤 기자)

측백수림을 마주하고 있는 오일도 선생의 고향, 감천마을은 낙안 오씨들의 집성촌으로 선생의 생가가 있는 곳이다. 측백수림을 뒤로하고 마을로 들어서면 오른편에 작은 못이 나오는데, 마을 주민들이 선생의 생가를 찾는 이들을 위해 소담한 공원으로 꾸며 놓았다.

연못을 지나 꼬불꼬불한 마을길을 따라 들어가면 높은 솟을대문을 앞에 두고 오일도 선생의 생가가 나온다. 감천마을 중앙에 터를 잡고 있는 선생의 생가는 44칸짜리 전통 한옥으로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48호로 지정되어 있다.

사재를 털어 순수 시 전문지 ‘시원’을 창간하기도 했던 오일도 선생은 주로 애상적이면서 동양적인 서정성을 지니고, 기교보다는 소박한 시풍으로 시대의 우수를 노래한 항일시인으로, ‘지하실의 달’, ‘눈이여! 어서 내려다오’, ‘그믐밤’, ‘저녁놀’ 등의 유명한 시들을 남겼다.

오일도 시비 (사진=이재윤 기자)
오일도 시비 (사진=이재윤 기자)

“작은 방 안에 /장미를 피우려다 장미는 못 피우고 /저녁놀 타고 나는 간다 /모가지 앞은 잊어버려라 /하늘 저편으로 둥둥 떠가는 저녁놀 /이 우주에 저 보담 더 아름다운 것이 /또 무엇이랴 /저녁놀타고 나는 간다 /붉은 꽃밭 속으로 /붉은 꿈나라로”

◆ 한국인의 매운 맛, 영양고추

영양군의 특산물을 꼽으라면 단연 ‘고추’다. 혀끝이 얼얼할 정도로 매우면서도 뒷맛은 단 것이 특징인 영양 고추는 한국의 맛을 대표하는 영양의 특산물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영양군 입암면 선바위 관광단지에 있는 영양 고추 홍보전시관은 고추의 유래에서부터, 재배, 수확, 가공 등 영양 고추의 모든 것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고추박물관 (사진=이재윤 기자)
고추박물관 (사진=이재윤 기자)

전시관 1층에는 영양 고추를 이용한 다양한 가공음식들과 영양 고추 캐릭터 상품들을 판매하는 상설판매장이 있는데, 이곳에서는 영양 고추뿐만 아니라 영양에서 생산되는 다양한 농산물들을 저렴한 가격에 믿고 살 수 있어서 영양을 찾는 관광객들이 가장 즐겨 찾는 장소이기도 하다.

2층으로 올라가면 영양 고추의 특성과 재배, 수확과정에서의 특화된 방법들을 볼 수 있는 전시실이 있다. 전시실에는 영양 고추의 파종에서부터 수확까지의 과정을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도록 미니어처로 제작된 모형에서부터, 고추의 효능 등에 대한 여러 가지 정보들을 상세하게 설명해 주고 있다. 특히 다른 지역의 고추와 달리 마시는 차로도 사용이 가능하다는 전시관 담당자의 설명에는 영양이 고향인 기자 역시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첫 맛은 약간 매운 듯하지만 뒷맛이 달고 개운한 영양 고추차 맛을 직접 보지 못한 독자들에게는 믿기 어려운 이야기일 것이다. 기회가 된다면 꼭 맛보기를 권한다.

◆ 자연과 인간이 만나 완성된 생명예술, 분재

영양 고추 홍보전시관 맞은편에 있는 영양분재수석야생화전시관은 들어서는 순간 입이 딱 벌어지게 만든다. 입구에서부터 전시된 분재들은 그 자그마한 키에 수십, 수백 년의 세월을 담은 것만으로도 입을 다물 수 없게 하는데, 그 각각의 모양들을 보다 보면 마치 커다란 숲을 품안에 안은 듯 경이롭기까지 하다.

분재 (사진=이재윤 기자)
분재 (사진=이재윤 기자)

“제 멋대로 뒤틀리고, 꺾이고, 뿌리를 드러낸 것 같지만 그 모든 것이 하나하나 사람의 섬세한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고, 오랜 세월의 기다림으로 완성된 하나의 자연”이라는 분재전시관 김원종 관장은 “분재는 자연을 모방하거나 축소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을 소재로 삼아 기르는 사람의 미적 감각과 개성을 발휘하여 본래의 자연보다 더 아름다운 자연을 만드는 일”이라고 강조한다.

분재는 자연 상태에서의 나무와 풀을 화분에 담아 사랑과 정성, 물과 거름을 알맞게 주어 가장 인상적이고, 이상적인 모습으로 연출하는 종합예술이다.

하나의 분재를 위해 인간은 오랜 세월을 온전히 바쳐야 하기 때문에 시간예술이라고도 한다. 전시관 내부의 분재들을 둘러보며 수령이 300년, 400년이라고 쓰여 있는 것을 보면서 왜 시간예술이라고 하는지 알 수 있었다.

훌륭한 분재가 되는 소재는 근본적으로 척박한 자연의 환경에서 자란 나무들이다. 토양이 척박해 제대로 자라지 못한 나무들은 그 나름대로의 생존 방식으로 세월을 이겨왔고, 그 세월의 흔적들은 고스란히 사목(死木)에 남는다. 위로 뻗지 못하고 옆으로, 때론 아래로 뒤틀리고 꺾인 가지들은 그 질긴 생명력으로 인해 더욱 아름답고, 보는 이로 하여금 숙연해지게 한다.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분재의 아름다움에 취해 전시관을 이리저리 거닐다 번뜩 눈에 띄는 게 하나 있었다. 모과나무 분재에 덩그러니 달린 모과가 눈길을 확 끌어 당긴다. 김원종 관장에게 물으니 “분재도 생명이 있으니 열매를 맺고 꽃을 피우는 건 당연하다”며 웃는다. 이번엔 농 삼아 따도 괜찮냐고 물으니 “떨어질 때까지 기다릴 자신이 있으면 가질 수 있을 것”이라며 되받는다.

분재전시관 한쪽에 마련된 폭포석 전시실도 영양에서만 볼 수 있는 특별한 볼거리다. 폭포석은 영양군에서 전국의 98%이상이 나는 수석인데, 분재와 마찬가지로 거대한 폭포를 축소해 놓은 듯한 시원함이 눈길을 뗄 수 없게 한다. 다른 지역에선 볼 수 없는 특별한 볼거리이기도 하지만 자연이 스스로 빚어낸 아름다움 앞에서 사람들의 발길은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