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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김용락 원장 "한국문화를 명실공히 세계문화의 주류로 만드는 일에 최선 다할 것"
[인터뷰] 김용락 원장 "한국문화를 명실공히 세계문화의 주류로 만드는 일에 최선 다할 것"
  • 엄지영 기자
  • 승인 2018.03.21 11: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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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락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원장]
"한류는 K-POP이 가장 큰 관심을 받고 있고, 한식, IT산업, 한류스타, 드라마 등이 뒤를 받쳐주고 있다"
김용락 교수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용락 교수(오른쪽)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일요주간=엄지영 기자] 고교 교사, 시인, 신문사 기자, 방송 진행자, 대학 교수. 다양한 일을 한 끝에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원장으로 재직 중인 김용락 박사. 많은 것을 이뤘는데 아직도 목표가 있냐는 물음에 허허 하며 과찬이라고 웃어 보이는 그를 첨단산업센터에서 만났다.

그는 1958년에 촌에서 태어나 1984년에 문단에 등단해 현재 시인 겸 문학평론가로 활동 중인데 시집 ‘푸른별’, 문학평론집 ‘문학과 정치’ , 산문집 ‘나의 스승 시대의 스승’ 등 15권의 시집과 평론집 등을 낸 문학인이기도 하다. 그가 시인이 되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어쩌면 우연일 정도로 작은 계기였다.

“저는 경북 안동시에서 초, 중학교를 다녔다. 가난하고 책이 없는 시골이었다. 특히 제가 태어난 단촌이라는 곳은 산골이다. 별로 하고 놀 만한 놀이도 없고 해서, 어려서는 누나들의 교과서를 읽었다. 그러다가 차츰 학교 도서관이나 같은 동네 아버지가 교사여서 책이 있는 집의 친구들에게 책을 빌려서 읽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도 이런 재미있는 책을 쓰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중학교 2학년 때 처음 학생신상을 기록하는 카드에 ‘소설가’를 장래 희망으로 써 넣었다. 그러다가 대학 가서 시를 쓰게 되고 시인으로 등단하게 되면서 시인이 되었다”

그러나 모두가 그의 꿈을 지지해주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담임 선생님께서 여러 선생님들이 보는 가운데 제 이름을 부르면서 “애가 장래 희망이 소설가래요. 소설가하면 처자식 냉방에서 굶겨 죽인다. 그거 알기나하고 소설가 한다고 하냐?” 면서 제 귀를 잡았다. 당시만 해도 시골에서는 학교공부 잘 하면 판검사나 육사 가서 장교가 되는 게 꿈이었던 시절이었다“고 말했다.

그렇게 시작된 시인으로서의 삶을 살게 되면서 그는 사소한 것에서부터 기쁨을 느꼈다고 말했다.

”시를 쓰게 되면 아무래도 책을 많이 읽게 되고, 인간이나 사회에 대한 통찰력이 있어야하니까 많은 사람을 만나게 되고 사회현실에 관심을 갖게 되니까, 진실에 그만큼 더 가까이 가게 된다. 좋은 책, 훌륭한 분, 사회가 돌아가는 이치를 알게 됐을 때의 기쁨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큰 기쁨이다. 이때의 기쁨은 돈을 많이 벌거나 출세를 하거나 명예와 권력을 얻는 세속적인 기쁨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큰 기쁨이다“

그의 시는 작년 대구에서 위안부 할머니들의 소녀상 비에 새겨졌다. 이에 대해 그는 ”그분들의 역사적 고통과 슬픔에 동참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많이 기뻤다“며 ”가끔 정치적으로 민주주의를 주장하거나 사회적 모순을 타파하기 위한 집회에 나가서 시를 낭송할 때 저의 시가 조금의 도움이 된다면 기쁜 일이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용락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초대 원장 취임
김용락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초대 원장 취임

그는 최근까지 대구에서 대학교수로 있다가 지난 해 9월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에 처음 사무국장으로 왔다가 현재는 진흥원 원장이 돼서 지내고 있다. 서울 살이 6개월째.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지 물었다.

”대구에서 문화분권과 지방분권 같은 지역운동을 하면서 시인과 교수로 지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지만, 저는 70년대 후반에 대입 재수를 하기 위해 잠시 서울에서 살아본 것 외에는 서울에서 산 적이 없었다. 그래서 서울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특히 서울(중앙)의 문화의 깊이는 어느 정도일까? 하는 호기심도 있었다. 그런데 마침 이곳으로 발령이 나게 되어서 공부하는 마음으로 서울에 와서 생활하고 있다. 뵙고 싶은 분 뵐 수 있고, 큰 서점도 쉽게 갈 수 있고 해서 좋다.“

그가 현재 일하고 있는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은 문체부 산하에 있는 국제문화교류 전담기관으로 한류를 세계에 전파하고 서로 교류하는 일을 중점적으로 하는 기관이다. 그에게 그 곳에서 어떤 일을 하느냐고 더 자세히 물었다.

”하는 일은 매우 다양한데 국제문화교류에 대한 실태를 조사하거나 연구하는 학술적인 부분도 있고. 아시아드라마컨퍼런스, 필 코리아, KCON 등과 같은 대중문화를 교류하기도 하고, 해외통신원, 재한 유학생네트워크 아우르기 등과 같은 교류사업, 저개발국에 도서관을 지어주는 해외 작은 도서관조성 사업 등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가 바라보는 한류의 전망은 어떨까.

”여전히 한류는 K-POP이 가장 큰 관심을 받고 있고, 한식, IT산업, 한류스타, 드라마 등이 뒤를 받쳐주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한류를 소비하겠다는 비중도 늘어나고 있고, 더불어 한류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도 소폭이지만 동반해서 상승하고 있는데 한류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남북분단과 북한의 국제적인 위협관련 언론보도가 가장 큰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이런 사정을 볼 때 최근 평창 동계올림픽의 성공적인 마무리와 남북 특사단 파견 및 남북정상회담, 북미회담 등 남북관계가 화해와 평화무드로 돌아서는 현재의 정치상황은 한류의 확장에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다재다능한 그는 교사, 시인, 기자 등 다양한 일들을 해내며 살아왔다. 이에 ‘많은 것을 이뤘는데 아직도 남은 목표가 있느냐’고 물었다.

”하하(웃음) 많은 것을 이뤘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저를 좋게 봐주시는 거다. 그 점은 감사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많다. 현재 제가 맡고 있는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의 업무, 가령 이전의 한국문화산업교류재단에서 진흥원으로 바뀐지 두 달 남짓한데 앞으로 진흥원의 정체성을 어떻게 가져갈 것인가? 그리고 진흥원의 전망이나 발전 전략을 어떻게 정초해야 국가적 차원에서 한류를 효율적으로 부흥시키고 유지할 수 있을 것인지 큰 그림을 그려야 하고, 세부적으로는 우리 구성원들이 지금도 잘 하고 있지만 더 잘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일부터 첩첩산중이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현재 서울에 와 있으니 더 많은 것을 배우고, 고민하고 해서 임기를 마치고 다시 대구에 내려갔을 때 지역과 지역문화를 어떻게 발전시킬 것인지에 대해서도 고민해야하는 과제가 있다.

더욱 열심히 해서 한국문화를 명실공히 세계문화의 주류로 만드는 일에 최선을 다 하고 그 이후에는 우리 사회에 조금이라도 유익한 사람으로 남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 같다“

- 김용락 약력 -

1959년 경북 의성 출생

계명대 영문과, 고려대 대학원, 계명대 문학박사

1984년 창비신작시집 『마침내 시인이여』로 문단에 등단

대구일보, 경북일보 기자, 논설위원 역임

경북외국어대, 경운대 교수 역임

한국문화분권연구소 이사장

시집 『산수유나무』 『기차소리를 듣고 싶다』 외

문학평론집 『민족문학논쟁사연구』 외

산문집 『영혼을 깨우는 독서』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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