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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홀로서기’ 대한민국을 서정으로 물들이다
[인터뷰] ‘홀로서기’ 대한민국을 서정으로 물들이다
  • 이재윤 기자
  • 승인 2018.03.28 11: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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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1987’의 한 장면 (사진=newsis)
영화 ‘1987’의 한 장면 (사진=newsis)

[일요주간=이재윤 기자] 작년 연말 개봉해 700만 관객을 훌쩍 넘기며 화제를 모았던 영화 ‘1987’, 이 영화는 1987년 1월 서슬 퍼렇던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경찰 조사를 받던 스물두 살 대학생 박종철이 경찰의 고문에 의해 사망하고, 이를 은폐하려는 공권력에 맞서 진실을 밝히려는 이들의 신념이 어떻게 그 해 6월 뜨거웠던 광장의 거대한 함성으로 이어졌는지를 그리고 있다.

◆ 1987, 서정으로 물들이다!

6월 항쟁은 한국현대사에서 절차적 민주주의가 뿌리내릴 수 있는 계기가 되어 대통령 직선제 개헌 등 우리 사회 전반에 커다란 변화의 바람을 몰고 왔다.

문단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1980년대는 노동현장을 노래한 노동시나 광주와 분단 현실을 노래한 민중시 등 현실참여 민중문학이 범람했다. 운동성의 과잉은 예술성의 결핍으로 이어졌고, 故 문병란 시인은 “시인들이 너나 없이 한 삽, 두 삽 퍼가는 바람에 무등산이 사라졌다”며 질타하기도 했다.

이러한 문단 내 문제의식 속에서 1987년 3월 한 권의 시집이 출간되었고, 그 해 6월 광장을 가득 메웠던 거대한 민주화운동의 함성처럼 한 권의 시집은 문단을 넘어 대한민국을 시인의 ‘서정’으로 물들였다.

“기다림은/ 만남을 목적으로 하지 않아도/ 좋다./ 가슴이 아프면/ 아픈 채로,/ 바람이 불면/ 고개를 높이 쳐들면서,/ 날리는/ 아득한 미소. // 어디엔가 있을/ 나의 한 쪽을 위해/ 헤매이던 숱한 방황의 날들./ 태어나면서 이미/ 누군가가 정해졌었다면, 이제는 그를 만나고 싶다.”

1987년 3월 출간된 서정윤 시인의 첫 시집 ‘홀로서기’
1987년 3월 출간된 서정윤 시인의 첫 시집 ‘홀로서기’

1987년 3월 출간된 서정윤 시인의 첫 시집 ‘홀로서기’에 수록된 동명의 시 ‘홀로서기’는 1981년 시인이 영남대학교 재학 시절 교지 ‘영대문화’에 발표했던 시로, 시집 출간 전부터 이미 대구를 중심으로 카피와 필사본으로 광범위하게 유포되었다.

시집이 출간되었을 때는 이미 강력한 ‘홀로서기 팬덤’이 형성되어 있었고, 시집은 출간되자마자 단숨에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1년도 되지 않아 밀리언셀러에 등극하게 되었다.

한 출판 관계자는 “시의 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출판 역사상 시집이 1, 2위에 오른 것은 1987년이 처음”이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실제로 1987년 베스트셀러 순위를 보면 1위 서정윤의 ‘홀로서기’, 2위 도종환의 ‘접시꽃 당신’, 그리고 20위권 내에도 ‘오늘은 내가 반달로 떠도’, ‘산골소녀 옥진이 시집’, ‘사랑굿’ 등의 시집이 올라있다.

서정윤 시인의 ‘홀로서기’를 정점으로 1990년대로 넘어오며 80년대 만연했던 이념성은 수그러들고 문학의 대중성이 만개하게 됐다. 구체화 된 일상 언어로 자유로운 감성과 아픔을 노래한 서정성이 주류를 형성하게 되었다.

◆ 시를 외우는 것, 입으로 덕을 쌓는 일

대한민국을 서정으로 물들였던 시인 서정윤은 최근 대구에서 작은 시창작 수업을 시작했다. 서정윤 시인의 대표작인 홀로서기에 착안해 모임 이름은 ‘홀로서기 창작시 모임’으로 정했다. 각자의 직장과 가정, 일상을 살아가는 이들이 저마다 가슴 속에 품어왔던 ‘시’에 대한 갈증을 풀어내는 자리다.

시인 서정윤은 최근 대구에서 작은 시창작 수업을 시작했다.
시인 서정윤은 최근 대구에서 작은 시창작 수업을 시작했다.

팍팍한 삶을 일구느라 오랜 세월 가슴 한 구석에 꾹 눌러뒀던 문학소년, 소녀의 꿈을 조심스레 꺼내어 놓는 자리기도 하다.

매주 수요일 오후 4시, 서정윤 시인은 수업할 내용을 직접 정리한 유인물을 나눠주면서 수업을 시작한다. 시대별 시의 흐름, 심상, 시의 기승전결 등 이론 수업도 매주 차곡차곡 진행하지만, 밴드와 단체 카톡 대화창을 통해 각자 습작한 시를 공유하며 직접 지도를 받기도 한다.

서정윤 시인은 “시인은 감정을 토로하는 사람이 아니다”며 “시인은 언어로 감동을 주는 예술가로서, 시는 한 폭의 그림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모임의 회장을 맡고 있는 권보혁 대표는 대구에서 사업을 하고 있다. 시가 좋아 시를 쓰다 보니 벌써 쌓인 시만 100여 편, 그만큼 수업에도 열정적이다. 매주 수업 내용을 꼼꼼히 받아 적어 수업에 참석하지 못하는 회원들을 위해 밴드에 정리해 올리는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는다.

권보혁 회장은 “서정윤 선생님께 매주 이렇게 마주 앉아서 수업을 받을 수 있다는 게 우리에게는 큰 행운이라 생각한다”며 서정윤 시인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권보혁 회장을 비롯해 창작시 모임에 함께 하는 회원들은 ‘홀로서기 창작시 모임’을 통해 시를 사랑하고, 시인을 꿈꾸는 이들이 한 줄, 한 줄 써내려간 창작시를 서로 공유하고, 오직 순수한 시심으로 서로 격려하고 응원하며, 맘껏 시어로 활짝 피우는 시간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서정윤 시인
서정윤 시인

회원들과 함께 서정윤 시인의 수업을 들으며 문득 ‘어쩌면 시는 에둘러 마음을 내비치는, 서툰 첫사랑의 수줍은 고백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광장에서 울려 퍼졌던 격정적인 외침이 아닌, 아름다운 시어로 전하는 은근한 마음, 그 안에 일렁이는 서정이 나의 일상을 다독이는 위로가 되고 그 위로가 이 세상을 물들였던 1987년의 기적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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