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18-04-23 18:35 (월)
[김용락 시인의 명시 읽기-3] 이필호 「들꽃」
[김용락 시인의 명시 읽기-3] 이필호 「들꽃」
  • 김용락 시인 · 문학박사
  • 승인 2018.04.12 14:1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꽃이라 불리려면

눈을 확 당겨야지

그래야 마음이 멎는다고

그런 때가 있었지

 

붙여진 이름 없는 들판에

바닥을 기는 자잘한 들꽃

세세히 눈 맞추니 생의 실핏줄이 보인다

이 작은 꽃잎을 완성하느라

스스로는 안간힘을 다 바치고

꽃으로 불리기도 미안해 작은 몸을

더 축소했으리라

 

이 들판의 주인은 저 작은 꽃들이다

 

가다가 다시 서서 돌아보니

하나 내 세울 것 없는 내 생이

저기 납작 눌린 들꽃으로

잔 몸 흔들고 있다

                        -이필호 「들꽃」 전문

 

이필호 시인(1960~ )의 시집 『눈 속에 어린 눈』(문예미학사, 2017)에 실린 시이다. 이필호 시인은 경북 군위에서 출생해 대구에서 생활하고 있는 시인이다. 4월이 오면서 이 산하 구석구석에 꽃이 피고 있다. 말 그대로 꽃 대궐이기도 하고, 꽃 사태이기도 한 아름다운 풍경이 연일 사람들을 홀리고 있다.

꽃을 싫어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사람들의 기호나 취향에 따라 좋아하는 꽃도 다를 것이다. 그런데 이 시는 꽃 중에서도 이름 없는 들판에서 피고 있는 들꽃에 대해 노래하고 있다. 그것도 “바닥을 기는 자잘한 들꽃” 이다. 그러나 그 작은 들꽃에게도 “세세히 눈 맞추니 생의 실핏줄이 보인다”고 말하는 시인의 마음은 얼마나 따뜻한가? 애정을 가지고 눈을 맞추니 “이 작은 꽃잎을 완성하느라/스스로는 안간힘을 다 바치고/꽃으로 불리기도 미안해 작은 몸을/더 축소했으리라”는 구절에 도달하면 꽃을 보는 시인의 겸손하고 예민한 감성에 대해 독자들은 경탄을 금치 못 할 것이다.

이 시에서 ‘꽃’을 ‘사람’으로 바꿔 읽어보면 어떨까? 사람들 중에는 사회적으로 출세하고 부와 명예를 얻어 주변에서 부러움을 사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반면 하루하루 먹고 살기가 고달픈 인생도 있을 것이다. 지난 80년대는 이런 사람들을 민중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리고 이 세상의 주인은 민중이라고 하는 담론이 성행한 적도 있다. 물론 이 시를 민중시라고 볼 필요는 없다. 그러나 힘없고 가여운 인생에 대한 시인의 연민이 ‘들꽃’으로 형상화 됐다고 믿어도 크게 틀린 것은 아닐 것이다. “이 들판의 주인은 저 작은 꽃들이다”라는 구절이 그런 믿음을 뒷받침 하고 있다.

해설 : 김용락(1959~ )

시인 · 문학박사. 1984년 창비 신작시집으로 등단.

시집 『산수유나무』 외 다수

평론집 『문학과 정치』 외 다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