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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땅 이야기] 한려수도의 관문, 민족과 예술혼의 도시 ‘통영’
[우리땅 이야기] 한려수도의 관문, 민족과 예술혼의 도시 ‘통영’
  • 이재윤 기자
  • 승인 2018.04.25 13: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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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주간=이재윤 기자] 바다에 접했지만 거칠기보다 깊은 ‘혼’이 느껴지는 도시. 80년대까지만 해도 수학여행을 가는 코스는 대개 어디나 비슷했던 것 같다. 기자가 살았던 경북권의 경우는 초등학교 때는 충무(지금의 통영)와 대구 달성공원, 중학교 때는 경주와 포항제철 견학, 그리고 고등학교 때는 천안의 독립기념관과 설악산 정도였던 것 같다.

그때로부터 30여년의 세월이 지났으니 지금의 수학여행과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별 의미는 없겠지만, 요즘 학생들 수학여행 가는 것을 보면 부러울 뿐이다. 물 건너가는 것은 상상도 못했던 그때와 비교하면 요즘은 제주도가 일반화되었고, 외국으로 가는 경우도 흔한 것 같다.

뜬금없이 수학여행 이야기를 하는 것은 ‘우리땅 이야기’를 통영으로 정하면서, 문득 초등학교 때 수학여행을 갔었던 기억이 새로워서다. 해저터널을 걸으며 마냥 신기했고, 여객선을 타고 남해대교를 지날 때는 멀미도 잊은 채 그 규모에 놀랐다. 그리고 가장 존경하는 위인이 누구냐고 물으면 망설임 없이 “이순신 장군이요!”라고 했던 그 시절, 충무공의 위패를 모신 제승당 앞에서는 ‘나도 이순신 장군처럼 훌륭한 장군이 되겠다’는 야무진 다짐을 하기도 했다.

오랜 시간이 흘러 기억은 낡은 사진처럼 바랬지만, 그나마 기억 속에 남은 몇 안 되는 잔상을 안고 통영에 갔다.

통영시전경
통영시 전경

◆ 충무공의 기상으로 21세기 바다를 호령한다!

통영이란 이름은 ‘통제영’의 약칭으로, 그 이름에서 볼 수 있듯이 곳곳에 조선시대 통제영의 흔적과 충무공 이순신 장군과 관련된 유적들이 산재해 있다. 통영에 볼거리, 먹을거리가 많다지만 충무공의 자취를 따라가 보지 않을 수 없다.

대전-통영간 고속도로를 타고 동통영 IC를 나와 5분 정도를 가면 통영시청이 나온다. 그리고 통영시청에서 5분 거리에 통제영지가 있는데, 이곳은 조선시대 삼도(경상, 전라, 충청)수군의 본영이었던 통제영을 복원하고 보존하기 위해 1998년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이곳에는 국보 제305호로 지정된 세병관(洗兵舘)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데, 지어진 시기는 1605년으로 정면 9칸, 측면 5칸의 팔작지붕 형태이다. 1층의 단일 건물로는 경복궁의 경회루, 여수의 진남관과 함께 국내 최대 규모로 꼽히고 있다.

세병관이라는 이름은 당나라 시인 두보의 시구 중 ‘만하세병(挽河洗兵 : 은하수를 끌어와 병기를 씻다)’에서 따온 것으로, 현재 걸려 있는 현판은 136대 통제사였던 서유대의 글씨라고 한다.

세병관에 들어가기 전 진입로 초입에는 ‘벅수’라고 부르는 돌장승이 서 있는데, 통영에서는 해풍으로 인해 돌로 장승을 세웠다고 한다. 벅수를 지나면 세병관의 관문인 망월루가 복원되어 있는데, 그 아래 계단을 쌓은 24개의 돌은 400여 년 전에 쌓았던 것들이라, 계단을 밟고 오르는 발길을 조심스럽게 한다. 망일루 위에 서서 통영 앞바다에 당시 도열했을 병선들을 상상하며 통제사의 기분을 느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망일루를 지나면 세병관의 두 번째 문인 지과문(止戈門)이 나오는데 ‘창을 그친다’는 의미로 무력을 그만 사용하고 싶다는, 평화를 기원하는 의미라고 한다.

지과문을 들어서면 드디어 웅장한 규모의 세병관이 나타나는데, 바다를 호령하던 삼도수군통제영(현재의 해군야전사령부)의 당당한 권위를 느낄 수 있다. 세병관의 주요 기능은 통제영의 객사(현재의 영빈관)로서 국내외의 귀빈들을 영접하고, 매월 초하루와 보름날 임금을 향해 망궐례를 지냈으며, 삼도 수군의 전투력 점검 행사인 군점(현재의 점호 또는 열병)과 수조(해상훈련)를 관장하던 것이다.

세병관 및 일대의 통제영 유적은 일제시대에 의도적으로 파괴되었으나 세병관만은 학교로 이용되면서 그대로 보존되었다. 소설가 박경리 씨도 이곳에서 수학하였다고 하니 일제의 그 만행들이 그리 오래전 일은 결코 아니다.

통제영지에서 나와 조금 내려가면 충무공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사당인 충렬사가 있다. 충렬사 내에는 보물 제440호인 명조팔사품이 전시되어 있는데, 이것은 충무공의 뛰어난 지략과 인품을 보고 명나라 황제 신종이 내린 여덟 가지 물품으로 도독인, 영패, 귀도, 참도, 독전기, 홍소령기, 남소령기, 곡 나팔을 말한다.

충렬사에서 내려와 충무교 방향으로 10분쯤 내려가면 충무공의 기신제를 지내는 착량묘가 있다. 이곳은 충무공이 순국한 이듬해부터 이곳 주민들과 수군들이 뜻을 모아 초가를 짓고 그의 충절과 위훈을 후세에 전하고자 매년 11월 19일 기신제를 모시고 있다. 우리나라의 많은 충무공 사당의 효시인 것이다.

이외에도 당포승첩의 승전고를 올린 당포성지, 잘 알려진 한산도의 제승당 등 통영은 국난을 극복한 선조들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통영달아공원에서 바라본 석양
통영 달아공원에서 바라본 석양

◆ 예술가들의 꿈이 영근 텃밭

통영을 유심히 살펴 본 사람이라면 몇 가지 의태어들을 떠올릴 수 있다. 구불구불, 올망졸망, 둥글둥글…, 우아한 곡선을 그리며 구불구불 이어지는 해안선, 그 해안선을 따라가며 만나게 되는 바다 위에 올망졸망 모여 앉은 섬들, 그리고 오랜 세월 바닷바람에 둥글둥글하게 깎인 능선들, 통영의 이러한 풍광들은 또한 윤이상, 박경리, 김춘수, 유치환, 전혁림, 김상옥 등 많은 통영 출신 예술인들에게 영감의 텃밭이 되었다. 우리 삶을 풍요롭게 했던 통영이 낳은 위대한 예술가들의 자취를 따라가 봤다.

먼저 정량동에 복원된 청마 유치환 선생의 생가와 청마문학관을 찾았다. 망일봉 기슭에 복원된 생가 아래쪽에 개관한 청마문학관은 크게 도입부와 세 개의 주제로 꾸며져 있다. 도입부에서는 청마를 비롯한 통영 출신 유명 예술인들의 예술혼을 접할 수 있도록 꾸몄으며, 주제별로는 청마의 생애, 문학, 발자취로 구성되어 있는데, 인간 유치환에 대한 일반인들의 친밀감을 높이고, 그의 문학에 대한 이해와 치열했던 문학정신을 느낄 수 있도록 조명하고 있다.

청마 유치환 선생과 함께 통영이 낳은 위대한 시인으로 ‘꽃’의 시인 김춘수 선생을 빼놓을 수 없다. 김춘수 선생의 생가는 남망산 공원 입구에 위치한 동산약국 옆, 옛날 선생이 살았던 자리에 표석이 설치되어 있다. 표석으로만 남아 있어 아쉬움이 남지만, 언젠가 선생의 생가도 곧 복원될 수 있을 거라 기대하며 남망산 공원으로 발길을 옮겼다. 남망산 공원은 해발 72m의 야트막한 야산을 공원으로 꾸민 곳인데, 공언으로 오르는 길 옆으로 세계 유명 조각가들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조각 작품들을 감상하며 오르다 보면 웅장한 동영시민문화회관이 있다. 시민문화회관 옆 분수대 앞에는 ‘토지’의 작가 박경리 선생의 ‘김약국의 딸들’ 영화촬영 기념비가 통영시를 굽어다 보며 서 있다.

퉁영의 바닷가를 배경으로 한 집안의 몰락이 지닌 비극성을 사실적으로 조명한 역작 ‘김약국의 딸들’에서 첫머리에 제시되고 있는 통영에 대한 소개와 인물들의 생생한 사투리는 통영에서 나고 자란 작가의 토속적 정감을 잘 나타내고 있다. 박경리 선생 역시 통영 출신으로 그녀의 대표적 소설 ‘토지’의 평사리 최참판댁 이야기는 그녀가 어린 시절 타고난 이야깃꾼이었던 할머니로부터 들은 이야기라고 한다.

남망산에서 내려와 중앙동에 있는 청마거리에서 조금 걷다 보면 박경리 선생의 생가와 시조시인 김상옥 선생의 선개를 함께 볼 수 있다.

유치환, 김춘수, 박경리, 김상옥으로 대표되는 통영의 문학적 전통과 함께 통영을 위대한 예술혼의 도시로 만든 이를 꼽으라면 단연 세계적인 현대음악 작곡가 윤이상 선생을 꼽겠다. 통영에선 그를 기리기 위해 매년 봄과 가을에 통영국제음악제를 개최해 그의 친구 또는 제자들이 그의 곡을 연주한다. 도천동에 있는 선생의 생가 앞 도로는 ‘윤이상 거리’가 되었고, 입구에는 그를 추모하는 흉상이 서 있다. 거리 가운데 있는 페스티벌 하우스에서는 윤이상 선생과 관련된 기념품을 판매하고 있으며, 페스티벌 하우스 내 프린지 홀에서는 수시로 작은 음악회가 열린다.

윤이상 선생과 관련해서 재미있는 사실은, 한국의 전통적 정서를 서양 현대음악에 접목시킨 작품으로 세계적 거장의 반열에 오른 선생이 우리나라 30여 개의 교가를 작곡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교가들은 지금도 불리고 있다.

통영이 고향인 윤이상 선생은 음악교사로 재직하면서 동향인 유치환, 김상옥과 청록파 시인 조지훈 등 당대 최고의 시인들과 함께 교가를 만들었다고 한다. 통영의 통영, 충렬, 두룡, 진남, 용남, 원평초등학교와 욕지중, 통영여중고, 통영고 등 9개 학교와 부산고 등의 교가가 모두 ‘유치환 작사, 윤이상 작곡’이며, 고려대와 경주중고의 교가는 조지훈이 쓴 노랫말에 그가 곡을 붙인 것이라고 한다.

암울했던 군사독재정권 시절에 간첩으로 몰려 죽기 전에 고향 땅 한 번 밟아보지 못 했지만, 그 시절 그는 비록 잊혀졌지만, 그의 노래는 고향땅에서 후배들의 입을 통해 불리어져 오고 있다.

지난 3월 25일 13시 5분, 김해공항을 통해 귀향한 선생의 유해는 생전 그의 바람대로 통영 바다가 내려다보이고 파도소리가 들리는 통영국제음악당 마당, 너럭바위 아래 안치됐다. 사후 23년 만의 귀향이었다. 연꽃을 이르는 ‘처염상정(處染常淨)’ 네 글자가 흘려 새겨진 바위는 “할 일을 모두 끝내고 통영 앞바다에서 물고기나 낚겠다”던 그의 유언처럼 통영 바다로 애절한 마음을 흘려보내고 있다.

통영야외조각공원
통영야외조각공원

◆ 해안선을 따라 만나는 다도해의 절경

충무공의 흔적을 찾아다니다 반가운 기억의 한 장을 찾았다. 해저터널. 우리에겐 해저터널이란 이름으로 기억된 곳이지만 이곳에선 ‘폰데굴’이라고 부른다. 우리나라에선 유일하고, 동양에선 최초라고 하는 폰데굴은 그 겉모습만으로 평가를 해선 안된다.

세계 해전사에 길이 남을 한산대첩에서 전사한 일본수군(약 9천여명)의 시체가 한산도 앞바다로부터 떠내려 와 차곡차곡 쌓였던 곳이 지금의 통영운하인 판데목이다. ‘판데’라는 말은 ‘판 곳’이라는 뜻으로 그것을 통영 사투리식으로 발음해서 ‘폰데’가 되었다.

일제시대에 들어와 일본이 좁은 판데목을 넓히면서 그 위에 다리를 놓는 대신 바다 밑으로 굴을 건설한 것인데, 자신들의 조상들이 무수히 묻힌 곳을 ‘조센징’이 밟고 다니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이유야 어찌되었든 어린 시절 그저 신기하고 놀랍기만 하던 곳에 이런 사연들이 있음을 알고 나니, 해저터널이라 부르지 않고 굳이 ‘폰데굴’이라 부르는 통영사람들의 마음이 와 닿는다.

폰데굴을 나와 통영이 자랑하는 최고의 해안 드라이브 코스 산양일주도로를 가기 위해 통영대교를 건넜다. 통영시 남쪽의 미륵도 해안을 일주하는 23km의 산양일주도로는 동백나무 가로수가 있어 동백로라고도 하는데, 다도해의 절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최고의 드라이브 코스다. 일주도로 중간에 있는 달아공원의 일몰은 미륵도의 일출과 함께 통영 팔경에 꼽힐 정도로 아름답다.

‘달아’라는 이름은 이곳의 지형이 코끼리 어금니와 닮았다고 해서 붙여졌는데, 공원 입구 도로변에 마련된 주차장에 차를 대고, 5분 정도 완만하게 닦인 공원길을 올라가면 관해정이 나온다. 정자 그늘 아래 앉아 여유롭게 바다를 내려다볼 수 있는 곳이다. 관해정을 비껴 바다 쪽으로 조금 더 나가면 그야말로 땅 끝에 선 기분을 맛볼 수 있다. 이곳에서 다도해의 풍경을 한폭의 그림으로 감상할 수 있는데, 이름을 갖지 못한 작은 바위섬에서부터 재도, 저도, 송도, 학림도, 곤리도, 만지도, 추도 그리고 멀리 욕지열도까지 수십 개의 섬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굳이 섬 이름을 몰라 안타까워 할 필요가 없다. 섬 이름을 안내하는 대형지도가 한쪽에 설치돼 있어 실제 섬과 이름을 짝지어가며 보는 재미도 있다.

통영야외조각공원
통영야외조각공원

◆ 바다가 품은 빛, 통영굴

‘바다의 우유’, ‘먹는 화장품’, 굴의 또다른 이름이다. 굴이 품고 있는 단백질은 우유의 3%보다 3배 정도 많다고 한다. 동의보감에 따르면 굴은 “성질이 고르고 맛은 짜며 독이 없다. 또한 먹으면 향기롭고 보익하며 기부의 살갗을 가늘게 하고 얼굴색을 아름답게 하니 바닷속에서 가장 귀한 물건”이라고 한다.

굴을 맛보기 위해 굴 요리 전문점인 통영의 향토집으로 갔다. 깔끔한 인테리어가 인상적이다. 손님을 맞이하기 위한 방의 이름도 털굴, 태생굴, 바위굴, 참굴, 토굴 등으로 붙여 놓았다. 굴을 날것으로 먹기에는 때를 놓쳤다. 굴의 몸을 열고 남해의 냄새를 맡고 싶었는데, 회를 맛보기엔 조금 늦은 감이다. 이맘때 제철 굴 요리는 굴숙회, 굴밥, 굴찜이다.

굴숙회는 말 그대로 생굴을 뜨거운 물에 익혀 팽이버섯, 잔파, 참기름을 곁들여 요리한 것인데, 여름철 굴 요리의 대표 격이다. 익혔음에도 불구하고 굴의 구수함과 감미로운 맛이 그대로 살아있었다.

굴밥은 밥에 굴, 대추, 수삼 등 십여 가지의 재료를 넣어 가마솥에서 지어낸 것인데, 밥과 굴의 향이 한데 어우러져 독특한 맛이 있었다. 굴밥은 예로부터 임금이 보양식으로 먹을 정도로 영양학적으로도 뛰어난 식품이라고.

굴찜을 보자 술 생각이 절로 인다. 미더덕, 잔 새우, 오징어, 콩나물 등 각종 야채와 굴이 어우러졌다. 조미료를 전혀 쓰지 않은 천연소스를 사용해서 더욱 감칠맛이 났다. 매콤함과 깔끔한 맛이 빚어내는 맛의 한 경지가 빛난다.

향토집을 나오자 통영만의 앞바다가 오후의 빛살에 몸을 틀고 있었다. 석화(石花)라고 불리는 굴, 그 작은 꽃도 저 바다에 살고 있다. 릴케의 말처럼 ‘작은 사물들에 의지하고, 보잘 것 없는 것들에도 사랑을 품고’ 싶었다. 음식에 의탁하지 않고 어찌 한 생을 건널 수 있을까. 우리를 위해 먹히는 음식들에게 신뢰를 얻는 생은 어떤 생일까. 통영만의 포구에 묶인 배들이 바다의 젖줄을 빨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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