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의 가르침은 비움과 놓아버림이다"

김선국 박사 / 기사승인 : 2018-04-25 16:5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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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 박사 김선국의 노자(老子) 이야기(1)
물리학 박사 김선국 원장이 들려주는 노자 이야기.
물리학 박사 김선국 원장이 들려주는 노자 이야기.

[일요주간=김선국 박사] 노자의 책은 함축적이어서 동양의 고전 중에서 <논어>나 <맹자> 그리 고 <중용> 같은 책들보다 어렵게 생각한다. 노자의 사상을 둘러싼 많은 논쟁들은 사람마다 자신의 관점이나 생각 으로 도덕경을 보기 때문이다.


노자의 책은 도를 이야기하는 것으로 생 각할 수도 있고, 정치에 대한 지침서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그리고 노자 는 무위자연을 이야기하여 세상에 전혀 도움이 안되는 도피주의자로 여겨질 수도 있다.


내가 보는 노자의 가르침은 비움과 놓아버림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의지로 이를 악물고서 세상에 임하는 것을 대단한 것 으로 여긴다. 세상과 싸우고 세상과 투쟁해서 원하는 것을 얻고 성공하는 것을 대부분의 사람들은 최고의 미덕으로 여긴다.


그러나 노자는 그 반대로 얘기한다. 있는 그대로 놓아버리라고 한다. 이런 수준에 도달한 사람들은 인간이 할 수 있는 마지막 노력까지 해보 고, 마지막 수준에 도달한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더 이상 노력하고 욕망할 그 무엇도 남아있지 않는 수준을 이야기하기 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해가 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마음 속에 있는 온갖 노력을 다한 후 놓아버림의 경지에 이른 노자의 가르침에서 모두가 자신들 삶의 여정을 조금이라도 더 밝히 알았으면 하는 것이 나의 바람이다.


도덕경은 총 81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81이라는 숫자는 우연한 숫자가 아니다. 그 숫자는 천부경의 글자 수 81자와 같다.


노자의 도덕경은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라 그 당시 동북아 시아의 정신과 문화를 반영하고 있다. 천부경을 보자.


一始無始一 (일시무시일)


하나의 시작과 시작 없음은 같으니


析三極 無盡本 (석삼극 무진본)


삼극(천, 지, 인)을 분석해 보면 그 근본은 끝이 없고


天一一 地一一 人一一 (천일일 지일일 인일일)


천의 하나도 하나이고 지의 하나도 하나이며 사람의 하나도 하나이네


一積十鉅 無?化三 (일적십거 무궤화삼)


하나가 쌓여서 십이 되고 다함이 없이 3이 되었으니


天二三 地二三 人二三 (천이삼 지이삼 인이삼)


천의 2는 3이 되고 지의 2도 3이 되고 인의 2도 3이 되어


大三合六 生七八九 (대삼합육 생칠팔구 )


대삼(천삼과 지삼)이 합하여 육이 되고 7, 8, 9를 낳았네.


運三四 成環五七 (운삼사 성환오칠)


3과 4가 운행하여 고리를 만들어 5와 7이 되니


一妙衍 萬往萬來 用變不動本 (일묘연 만왕만래 용변부동본)


하나는 오묘하여서 만물이 오고가니 그 쓰임은 변하나 근본은 변치않네


本心 本太陽 昻明 (본심 본태양 앙명)


본래의 마음은 본래 태양같이 밝고 밝아서


人中天地一 (인중천지일)


사람의 중심은 천지와 하나이니


一終無終一 (일종무종일)


그 하나가 끝은 다함이 없는 것과 같아라.


위와 같이 해석해 보았지만 사실 이 천부경에 대한 해석은 정답이 없고 각자의 수준에 맞는 해석만이 있을 것이다.


이 암호 같은 81자의 글자를 노자는 일생의 화두로 삼고서 공부하였고 나름대로 해독했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정신세계를 81편의 <도덕경>에 풀어놓았다.


암호 같은 이 천부경의 핵심은 사람과 천지는 하나이고, 우리의 본래 마음은 태양과 같이 밝고도 밝으며 우리 영혼과 천지는 시작도 끝도 없 이 영원하다는 것이다.


여기서 하나라는 단어는 여러 가지 의미로 쓰였다.


먼저 숫자 1이라는 의미이다. 다음으로 같다는 의미이다. 마지막은 ‘진리’나 ‘도’라는 뜻이다. 이 여러 가지 뜻들은 모두가 일맥상통한다.


이 모든 존재의 세상은 통털어서 단 하나의 진리를 가지고 있고 그것은 모두 하나이며 또한 단 한개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존재 일체는 있음과 없음의 그것조차도 넘어서서 모두가 동일한 근원에서 왔다가 다시 그곳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 근원으로 돌아가는 작업은 각자의 의지와 지향에 달려 있다.


흔히들 <도덕경>의 1장에서 37장까지를 도경, 38장에서 81장까지를 덕경으로 분류하는데, 이는 사람들의 편의에 의해서 분류한 것일 뿐이다. <도덕경>은 도와 덕이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도에 대해서 이야기한 것 이다. 이 책에서는 1장에서 37장까지의 도경 부분을 다루었다.


도는 우리 존재와 삶의 본질에 대한 이야기이다. 도道가 세상에 적용 되면 덕德이 되고 인(仁)이 되고 의(義)가 되며 마지막에는 예(禮)가 된다.


그러나 노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도의 관점에서 이야기한다. 노자는 세 상을 바꾸거나 교육하려 하지 않았다. 인간의 본성은 쉽게 교화될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노자는 도를 이룬 한 존재로서 도를 가진 사람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법을 말하고 있다.


노자는 주나라가 멸망한 후에 상나라에서 살았으며 주나라에서 도서 관을 맡아보던 관리라고 알려져 당시의 중요한 책들을 전부 읽었을 것으 로 추측되며, 따라서 노자의 <도덕경>은 그 당시 동북아시아 정신문화의 정수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인들은 상당히 현실적이다. 반면에 우리 민족은 이상세계 혹은 궁 극의 세계에 대한 것을 더 많이 연구한 민족이고 그 뿌리가 아직도 면면 히 여러 경로를 통해서 내려오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 민족의 역사는 고대사부터 상당히 왜곡되어 있다. 일본제국주의 에 의한 것도 있지만, 중국이 왜곡해 놓은 것이 많다. 이 책에서는 그 부 분을 논하지 않았지만 단군의 후손인 우리 민족의 정신세계가 투영된 것 이 노자의 책이다.


다시 말하지만 노자의 <도덕경>은 세상을 다스리는 지침으로 삼으라고 쓴 책이 아니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수련을 통해서 신선이 되고, 방중술을 익히고, 연단하는 그런 가르침하고도 전혀 관계 가 없다.


노자는 우리와 다른 차원을 본 존재로서, 그가 본 절대세계를 이 책을 통해서 논하며 인간이 도에 가까운 삶을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자 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노자의 이야기는 끝없는 비움과 내려놓음이라는 주제로 천착되어 인간이란 존재가 무한한 진리의 세계에서 얼마나 낮아져야 하는지를 보여 주고 있다. 그렇게 할 때에 우리들은 두려움이나 근심 걱정 없이 완전한 자유와 평화 가운데서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그는 보여주고 있다.


이제 노자의 도경 여행을 시작해 보자.


<다음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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