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의 어머니 도(道)가 우리를 먹이는 근원"

김선국 박사 / 기사승인 : 2018-04-27 11:3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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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 박사 김선국의 노자(老子) 이야기(2)

[일요주간=김선국 박사] 도란 과연 무엇인가? 노자가 체험한 도의 실체를 아주 집약적으로 말함으로써 도덕경이 시작된다.


◆ 진리, 道


道可道 非常道 (도가도 비상도)


도는 도라고 해도 좋지만 늘 도라고 할 것만은 아니다.


名可名 非常名 (명가명 비상명)


이름은 그 이름으로 불러도 좋지만 꼭 그 이름으로 부를 것만은 아니다.


도는 도라고 불러도 좋지만 로고스라 해도 좋고 법이라 해도 좋으며 진리라 해도 좋다. 궁극의 원리라 해도 좋고 무한한 실상이라고 불러도 좋다. 그 무엇이라 부르든 그것은 바로 그것이다. 다만 그 대상을 부를 때는 각각의 역할이나 관계가 있지만 그것이 나의 본질은 아니다. 나는 나인 것이다. 도를 도라고 부르지만 그 무엇이라 부르면 어떠랴!


온 세상이 도에 의해서 움직이지만 제대로 아는 사람은 없다. 노자가 나서서 도를 설파하지만 누가 그 도를 제대로 알겠는가. 여기서 진정으로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무엇일까?


도가도 비상도의 가장 첫 글자의 도는 ‘그대들이 믿는 도’라고 해석하 면 좋을 듯 하다. 그대들이 믿는 그 진리라는 것이 진리일지는 모르겠지 만 그것이 상도(常道), 즉 진정한 도는 아니라고 노자는 이야기하고 있다.


실제로 우리들이 알고 있는 그 어떤 것도 그저 지식의 쪼가리이고 ‘나’ 라는 개체가 어느 때, 어떤 환경에서 누군가에 의해서 혹은 무엇으로부 터 얻은 것일 뿐이다. 그것이 설사 종교의 가르침이라고 해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 라 얼마나 많이 왜곡되는지를 수많은 사이비 종교와 헛된 지식의 범람을 보면 알 수 있다.


여기서 노자는 그런 왜곡된 진리가 아닌 진정한 진리를 말하고 싶지만 전하기가 쉽지 않다. 그저 이 짧은 문장 속에 숨겨진 진정한 의도를 알아 차리기를 바랄 뿐이다.


無名天地之始 (무명천지지시)


(도는) 이름도 없던 천지의 비롯됨이고


有名萬物之母 (유명만물지모)


이름이 있는 만물의 어미라.


이육사의 시 ‘광야’ 앞부분을 보자.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디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도


차마 여기를 범하던 못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이 땅이 생기기 전, 천지가 생기기 전에도 도道는 있었고 천지의 시작은 바로 도(道)로부터 비롯됐다. 무명천지(無名天地)는 이름 없는 하늘을 말하는 것이며 유명만물(有名萬物)은 이름 있는 모든 삼라만상을 말하는 것으로 이것도 또한 도(道)라는 어미(母), 즉 근원으로부터 생겨났다.


천지의 시작 전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그것은 비현현(非現顯)이라고 부른다. 이 비현현의 때에는 아무 것도 나타나지 않았다. 있지만 없는 것, 있어도 있다 할 수 없는 상태의 그 무극(無極)의 때는 도라는 원리조차 적용되지 않는 공(空)의 상태인 것이다.


그 공에서 어떤 의지가 있어서 세상이 생겨났고 만물의 근원이 됐다. 그 근원에서 법칙이 생기고 기운도 유행하고 모든 것이 생동하면서 생명이 태어나고 온 우주가 운행되기 시작했다.


그 근원을 다른 장에서는 사모(食母), 즉 먹이는 어머니라고 불렀다. 만물을 먹이고 기르고 자라게 하는 만물의 어머니, 이 도가 우리를 먹이는 근원인 것이다.


故常無欲以觀其妙 (고상무욕이관기묘)


그래서 늘 하고자 함이 없으면 그 묘를 볼 것이며


常有欲以觀其? (상유욕이관기요)


하고자 함이 있으면 그 요를 보겠지만


此兩者同 出而異名 (차양자동출이이명)


묘나 요는 같은 것이니 나와서 이름만 다르다


同謂之玄 玄之又玄 (동위지현현지우현)


둘다 심오하니 심오하고 또 심오하여서


衆妙之門 (중묘지문)


도는 모든 심오함이 나오는 문이라.


여기서 묘(妙)와 요(?)의 뜻을 생각해보자. 묘는 미묘하고 오묘함을 뜻 하는 단어임이 명확하다. 묘는 어떤 뜻일까?


무욕과 유욕으로 댓구를 이 루었으니 반대되는 뜻으로 쓰였을 것이다. 그런데 뒤의 문장에서는 이 두 가지가 같은 것이고 이름만 다르다고 말한다.


따라서 요는 묘와 반대되면서도 같은 의미를 지닌 것이다. 묘가 미묘하 다는 의미라면 요는 심원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미묘하고도 심원(深遠)한 것이 도라고 노자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


또 현(玄)이라는 글자는 흔히들 검다는 의미도 있지만 심오(深奧)하다는 의 미도 있다. 여기서는 심오하다는 의미에 가까울 것이다.


도는 무엇이라 이름하든 온갖 심오함의 문이기에 무릇 도를 보고자 하는 자는 그 심오함을 보아야 하지만 그것을 설명할 길이 없다.


노자도 설명할 길이 없는 것을 묘니 요니 하면서 설명하지만 그 실상 을 보여줄 수 없으니 그 이름 밖에 말할 것이 없다.


아무도 그 도를 말로서는 설명할 수 없지만 그래도 깨달은 현인들이 있어서 그 세계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요약


道可道 非常道 (도가도 비상도)


名可名 非常名 (명가명 비상명)


無名天地之始 (무명천지지시)


有名萬物之母 (유명만물지모)


故常無欲以觀其妙 (고상무욕이관기묘)


常有欲以觀其? (상유욕이관기요)


此兩者同 出而異名 (차양자동 출이이명)


同謂之玄 玄之又玄 (동위지현 현지우현)


衆妙之門 (중묘지문)


도는 도라고 해도 좋지만 늘 도라고 할 것만은 아니다.


이름은 그 이름으로 불러도 좋지만 꼭 그 이름으로 부를 것만은 아니다.


(도는) 이름도 없던 천지의 비롯됨이고 이름이 있는 만물의 어미(母)라.


그래서 늘 하고자 함이 없으면 그 묘(妙)를 볼 것이며


하고자 함이 있으면 그 요(?)를 보겠지만


묘나 요는 같은 것이니 나와서 이름만 다르다


둘다 심오하니 심오하고 또 심오하여서


도는 모든 심오함이 나오는 문이라.


<다음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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