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18-10-16 15:27 (화)
[기고] 시상식의 이방인
[기고] 시상식의 이방인
  • 이지민 수필가
  • 승인 2018.06.12 10:22
  • 댓글 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인연은 첫눈에 알아보는 것이다.
이지민 수필가
이지민 수필가

[일요주간 = 이지민 수필가] 낯섦을 두려워하던 나는 가지 않을 괜한 핑계를 구하려 했었다. 이백 명 넘는 사람 중에 딱 한 명만을 안다. 문학상시상식 겸 세미나 참여다. 그러나 둘만의 여행이라고 생각하려 나를 다독였다. 나의 미래라고 기대하고픈 참 예쁘게 나이 들어가는 문우회선배와의 여행은 거역하기 어려운 유혹이었다. 서해바다를 바라다보는 모항의 한 호텔이 목적지였으므로 더욱 그랬다. 그렇게 출발한 여행이다.

시상식의 무대는 나와는 상관이 없었다. <수필과 비평>이라는 문예지의 시상식이었고 나는 그 문예지로 데뷔하지 않았다. 말하자면 이방인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개의치 않는다. 아니 누가 누군지 모르기가 쉽다. 문예지와 상관없는 사람이 이곳을 참석한 경우는 축하해 주러 온 수상자 지인이나 기존 수필가 회원 혹은 관계자이다. 그렇지 않고는 이곳에 올 이유가 없다. 내겐 낯섦의 불편에도 불구하고 참가를 할 만한 이유가 있다. 합법적으로 외박을 하는 날이다. 좋은 호텔과, 남이 해 주는 음식을 먹고 가슴이 트이는 바다를 베고 누울 수 있는 여유의 하루를 지낼 좋은 기회이다. 선물이 가끔은 필요하다. 그것만으로 적어도 내겐 충분히 올 이유이다. 마음이 같은 방향인 문인 선배가 동행하니 더 할 나위 없는 사치이다.

이방인이 때로는 쾌감을 준다. 서로 모르는 관계가 주는 자유로움은 요가를 일 년 동안 다녀도 아무와도 알고 지내지 않는 내 방식의 자유로움과 같다. 애써 알고 싶지 않은 관계의 피곤함은 양면성을 갖는다. 낯섦과 그 두려움을 견디면 얻어 내는 자유로움이라는 쾌감. 나쁘지 않은 거래다.

현장에 도착해서 한방 쓸 s를 소개받았다. 그녀는 지인의 시상식을 축하하러 왔다고 했다. 나는 처음 보는 사람과의 동침을 싫어한다. 그러나 바다가 한달음에 달려들어 안겨와 정을 냈고, 바람이 예민하게 맑았다. 누워서 하늘과 구분이 어려운 수평선을 볼 수 있는 푸름으로 채워진 바다 전망 방은 행운이었다. 그걸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모든 게 너그러웠다.

방을 쓰게 될 문인 선배의 지인 s는 절제된 미소를 가지고 있었다. 시로 데뷔했다고 했다. 잠깐의 대화에도 잘 닦인 유리 벽 속에 웅크린 그녀가 보였다. 나의 또래의 s는 상처 입은 고슴도치였다. 아련하게 아팠다. 내가 들여다보였다.

한 달을 혼자 대중교통으로 전국을 쏘다녔다고 했다. 어떤 선택을 위한 여행. 결론이 같은 것 같다. 정답이 없는 선택을 책임지는 모습이 가시를 거둬 주고픈 동지 같았다. 우린 한방 친구로 썩 맘에 들어 했다. 오늘 처음 본 사람과 같이 수다 떨고 같이 밥을 먹는 게 참 자연스러웠다. 놀랍다. 시상식이 끝나고 행사가 있었지만 우린 몰래 빠져 나왔다.

밖은 찼다. 버티는 바위에게 구걸하듯 엉기는 파도의 모습을 봤다. 아니 노려보았다. 그녀와 내가 공감하던 자화상이라면 나만의 착각일까. 파도는 늘 부서진다. 바위가 조금씩 깎이기를 바라는 것은 삶의 질을 떨어뜨릴 뿐이었다. 포기가 아니라 인정이라는 단어를 택하기까지 얼마나 오래 부딪쳐야 하는지.

해가 구름 속으로 숨어들고 어둠이 발꿈치에 닿았다. 그때까지도 바위를 부딪는 파도를 떠나지 않았다. 침묵이 그렇게 오랫동안 중년의 세 여자를 지배할 수 있다는 건 세계기록 감이다. 누구도 그만 들어가자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오래. 가족여행이었다면 벌써 누군가의 짜증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파도가 귀를 파고드는 치열함을 즐기기에 참 훈훈한 밤이었다. 추웠던 건 맞다. 그러나 훈훈한 것도 맞다. 달이 밝았고, 해변에는 아빠와 손잡고 아이들이 터뜨리던 폭죽이 알맞게 번쩍였다. 가슴이 후끈거렸다.

종종걸음으로 엄마의 뒤를 따르던 나의 조그만 심장도 오늘의 폭죽처럼 후끈거렸었다. 눈발이 안개처럼 앞을 가리던 설 다음날이었다. 엄마의 허벅지만큼도 닿지 않게 작았던 나는 안간힘을 쓰며 치맛자락을 놓지 않았다. 뿌리치지 못하고 막내인 나만 한복을 만들어 입혀 외가를 데려갔었다. 그날도 칼처럼 찬바람이 귀를 가르는 듯했지만 엄마의 손은 뜨거웠다. 다신 집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처럼 보따리가 컸다. 손을 놓칠세라 펄럭이는 치맛자락을 내 치마에 같이 묶고 따랐다.

그때 아버지에게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면 엄마는 육십을 넘기고 지금도 건강하게 살고 계시지 않았을까? 암이 온몸에 퍼져 3개월도 못 살고 황급히 세상을 버리는 지독한 고통을 피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난 엄마처럼 살지 않을 거라는 말들은 딸들의 상투적인 잔소리 중 대표적이다. 사춘기에는 모질게 엄마에게 말했었다. 돌아오지 말라고 그냥 우리를 버리고 떠나라고.

내 손을 잡고 총총 시골 외가를 가던 서른의 엄마의 나이를 이십 년 전에 나는 지나 보냈다. 삶이 버거울 때, 당장 짐을 싸 떠나고 싶을 때 나도 엄마처럼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에 몸서리를 쳤다. 엄마와 닮은 모습을 털어내려 안간힘을 써왔다. 나 역시 자식을 기르면서 엄마를 이젠 이해 할 것도 같다. 그러나 똑같지는 않다. 난 다행히 영악하게 잘 살고 있다. 그중 하나가 오늘 같은 치유의 하루를 내게 선물하는 행위이다.

우리의 다리가 인내심을 바닥내고 신호를 보냈다. 파도를 떨쳐내고 올 수가 없었다. 방으로 파도를 데려가는 방법을 택했다. 달빛의 곡선을 닮은 해안선은 수줍었다. 사그락 거리며 창가를 두드리는 별도 초대했다. 문을 열어 파도에게 가장 푹신한 침대를 비워줬다. 별이 파도를 잠재울 수 있다고 믿었다. 한 이불 속에 틈을 내서 누웠다. 소곤거리는 별과 우리의 수다가 이불을 데워 주었다.

파도는 오랜만에 부딪힘을 내려놓고 잠들었다. 천년을 별러온 듯 깊었다. 세 여자는 옆을 지키느라 푸른 새벽이 닥쳐오도록 잠들지 못 했다.

문학을 공감한다는 이유로 처음 보는 사람도 낯설지 않았다. 파도를 오래오래 같이 보는 걸 지겨워하지 않는 다는 이유로 우린 십 년 만난 지인처럼 바싹 다가섰다. 진정한 인연은 이방인 속에 있었다. 다음을 약속했고, 약속은 지켜져 농어촌 글쓰기 재능기부 무료 봉사를 함께 설계했다.

꽃이 피고 햇살이 뜨거워졌다. 인연은 친절하게 우리를 엮어 주었다. 다시 만날 날을 손꼽던 것이 내일로 다가왔다. 농어촌공사와 농림축산식품부 등의 후원으로 그녀는 촌로들의 글쓰기를 모은 ‘촌티 나게 살았소’ 라는 책 제1권을 만드는데 동참했었다. 내게 함께 하자는 연락이 왔다. 나는 후발주자 새내기 수필가로 참여하게 되었다. 두 번째 재능기부가 이루어 질 곳은 논산시 양촌면에 있는 머위와 양파를 주로 농사짓는 조용한 마을이다. 실개천이 흐르고 꽃을 좋아하는 아낙들이 많다고 했다. 그녀와 함께 ‘촌티 나게 살았소’ 제2권을 만들 꿈을 공유하게 되었다. 오늘도 지난 파도를 데려와 재우던 밤처럼 잠들지 못 할 것이 틀림없다. 인연에 대해 한 줄의 글을 고심하면서.

‘인연은 첫눈에 알아보는 것이다.’


오늘의 탐사/기획 뉴스
섹션별 인기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2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조아 2018-06-15 14:22:24
글을 읽다보니 어릴적 제가 백혈병에 걸렸다고 어머님이 이병원 저병원에 노크하던 기억이
새록새록 나네요~지금은 건강하게 두 아이들의 아빠지만 그때 어머님의 심정이 어떠했을까
공감가는글이었습니다~ 좋은글 기고해주신 이지민 수필가님께 감사드리구 앞으로도
행복한 수필여행 기대할께요~^^

금서 2018-06-15 11:42:41
이지민 수필가님 글이 가슴에 짠하게 와 닿고, 내가 마치 그 자리에 있는 것처럼 생생하네요.
좋은글 읽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많이 읽게 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