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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초점①]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김영철 부위원장’
[인물초점①]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김영철 부위원장’
  • 소정현 기자
  • 승인 2018.06.15 15: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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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 막후’ 북미 정상회담의 총괄탑
▲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이자 통일전선부장인 김영철
▲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이자 통일전선부장인 김영철

‘북미, 남북’ 정상회담 조율한 군부의 실권자

‘트럼프, 문재인’ 대통령 회담때 그림자 보좌

● ‘북미, 남북’ 정상회담 총괄 사령탑

4성 장군이자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이자 통일전선부장인 김영철은 남북관계에 있어서도 막중한 책임을 떠안은 인물이다. 지난 4월 남북정상회담 준비·진행과정에서 김정은 위원장을 보필한 점으로 미뤄 북한 내에서 실질적 권력을 쥐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또한 김 부위원장은 평양에서 있었던 김정은 위원장과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두차례 회동 때도 조력자 역할을 했다.

금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단독회담에 이어 확대회담에는 주요 미국과 북한의 참모진들이 배석했다. 미국 측은 4성 장군이자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이자 통일전선부장인 김영철은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존 켈리 비서실장 등 핵심 3명이 배석했다.

북한 측에서도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 리수용 당 중앙위 부위원장 겸 국제부장, 리용호 외무상 등 핵심 외교라인 3명이 총출동한 가운데, 이번 정상회담을 준비한 주역인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김영철 부위원장이 각각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왼쪽과 오른쪽에 마주 앉아 두 정상을 보좌하면서 양국의 입장을 대변한 것으로 보인다.

정상회담에 앞서 김영철 부위원장은 워싱턴DC를 방문해 트럼프 대통령에게 김정은 위원장의 친서를 직접 전달하고 정상회담을 조율했다. 외신들은 김 부위원장을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복심’이자 북미정상회담 성공여부를 가를 ‘중심축’이라고 소개한바 있다.

▲ 이번 정상회담을 준비한 주역인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김영철 부위원장이 각각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왼쪽과 오른쪽에 마주 앉아 두 정상을 보좌하면서 양국의 입장을 대변한 것으로 보인다.
▲ 이번 정상회담을 준비한 주역인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김영철 부위원장이 각각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왼쪽과 오른쪽에 마주 앉아 두 정상을 보좌하면서 양국의 입장을 대변한 것으로 보인다.

● 통일전선부 수장을 맡고 있어

김영철(72)은 누구인가? 김영철은 현재 북한 노동당 중앙위 대남담당 부위원장이며 동시에 대남정책을 총괄하는 조직인 노동당 통일전선부의 수장을 맡고 있다. 김영철은 2009년 김정은 시대의 개막과 더불어 북한이 인민무력성 정찰국을 정찰총국으로 승격시켜 국방위원회로 이관, 확대 개편할 때 초대 총국장으로 임명됐다.

2009년에는 중장에서 상장으로 승진하면서 2016년까지 정찰총국장을 역임한 것으로 알려진 김영철은 이 기간동안 발생한 천안함 사건, 연평도 포격, DMZ 목함 지뢰 도발을 포함한 각종 대남 도발의 배후에 있다는 의심을 받는다. 총정치국은 노동당의 통제를 인민군 내에서 집행하는 기관으로 총정치국장은 인민군 내에서 공식 서열 1위에 해당한다.

김영철은 2010년 3월 26일 천안함 폭침 당시 정찰 총국장을 맡고 있었다. 당시 우리 군은 서해 북방한계선(NLL) 일대를 담당하는 북한군 4군단과 대남 공작을 맡은 정찰총국의 소행이라며, 각각 4군단장과 정찰총국장이던 김격식과 김영철을 주도 인물로 지목했다.

김영철이 이끈 정찰총국은 이외에도 2010년 11월 23일의 연평도 포격 사건, 그리고 2014년 11월 소니픽처스 해킹 사건 등을 기획하고 지휘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크고 작은 대남 도발에 개입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 한국과 미국은 김 부위원장이 2010년과 2016년에 각각 핵, 미사일 프로그램을 추진한 점과 관련해 ‘제재 대상’ 명단에 그의 이름을 올렸다.
▲ 한국과 미국은 김 부위원장이 2010년과 2016년에 각각 핵, 미사일 프로그램을 추진한 점과 관련해 ‘제재 대상’ 명단에 그의 이름을 올렸다.

대남 온건파로 분류됐던 김양건과 달리, 군부 출신의 김영철은 대남 강경파로 평가된다. 북한 권력층을 연구하는 웹사이트 ‘노스 코리아 리더십 워치’는 “김영철은 함께 일하기 힘들고 냉소적인 사람”이라며 “상관에게 조차 그다지 공손하지 않다”고 밝힌다.

북한의 최고 정보조직인 정찰총국장 출신으로 30년 동안 정보 수장으로 일해온 김영철은 2008년 한국 측 육로출입 제한 등 내용이 담긴 북한의 '12·1' 조치를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9년 남파 공작원에게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 암살 지령을 내린 것도 그가 정찰총국장으로 있을 때다.

한국과 미국은 김 부위원장이 2010년과 2016년에 각각 핵, 미사일 프로그램을 추진한 점과 관련해 ‘제재 대상’ 명단에 그의 이름을 올렸다. 따라서 북미 정상회담에 앞서 성사된 김영철의 미국행은 미국이 일시적 제재 면제 조치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볼 수 있다.

통일부 북한정보포털에 따르면, 1946년생인 김영철은 북한 엘리트 양성기관인 만경대혁명학원과 김일성군사종합대학을 졸업한 군인 출신으로 인민군 대장까지 올랐다.

만경대혁명학원은 북한체제 수호에 기여한 소위 공화국영웅이나 군인, 대남공작원 등 혁명유가족의 자녀들과 당·군·정 간부의 유자녀들에게만 입학이 허용되는 북한의 대표적 특수 교육기관이다. 그는 고급 장교 양성을 위한 ‘김일성종합군사대학’을 졸업하는 등 엘리트 장교의 길을 걸어왔다.

북한 전문 싱크탱크 ‘38노스’에 따르면 그는 ‘김정은의 아버지’ 김정일의 경호원이기도 했다. 때문에 김정은 위원장의 권력 승계 과정에 개입했으며 공식석상에서도 김정은을 측근에서 보좌하는 모습이 목격됐다.

남한 당국이 파악한 그의 공식 군경력은 1962년 인민군 15사단 비무장지대(DMZ) 민경중대 근무에서 시작한다. 김영철은 미국과 적지 않은 인연도 가지고 있다.

1968년 1월 미국 정보함 프에블로호가 북한 동해상에 나포됐을 때 그들을 송환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판문점의 연락장교로 거의 1년 동안 근무했다. 이때 푸에블로호 선원 석방을 위한 북·미 협상을 지켜봤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2014년 미국 국가정보국장 제임스 클래퍼가 평양을 방문했을 때 그와 직접 협상한 경험도 가지고 있다.

김영철은 1989년 2월 제1차 남북 고위당국자회담 예비접촉에서 북측 대표를 맡은 이래 30년 가까이 남북 대화에 관여하여 북한 측의 산증인인 셈이다. 1992년에는 남북고위급회담 군사분과위 북측위원장을 맡았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열린 정상회담 의전·경호 실무자 접촉에서는 ‘호위총국 부장’ 직함으로 수석대표를 맡기도 했다. 호위총국은 북한 최고지도자 경호부대다. 또한 2014년 10월 15일 판문점에서 열린 남북 군사당국자 접촉에서도 북측 수석대표로 나왔다.

▲ 김영철은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 집권 직후인 2012년 2월 북한군 대장으로 진급했다.
▲ 김영철은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 집권 직후인 2012년 2월 북한군 대장으로 진급했다.

김영철은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 집권 직후인 2012년 2월 북한군 대장으로 진급했다. 하지만 그해 11월 중장으로 두 계급 강등된 채 북한매체에 등장해 권력 핵심부에서 밀려났다는 평가가 나왔다. 그러나 3개월만인 2013년 2월 김 제1비서가 공훈국가합창단 공연을 관람할 때 다시 대장 계급장을 달고 나와 건재함을 과시했다.

2015년 12월말 교통사고로 사망한 김양건의 후임으로 2016년 5월에는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에 임명되면서 대남 업무를 총괄하고 있다.

대남정책 총괄 핵심부서인 ‘통일전선부 수장’

‘대남 강경파’ 천안함·연평도 비극 연루 의혹

● 통일전선부! 대남정책의 ‘최고 사령탑’

통일전선부(이하 통전부)의 부장은 다른 부서에 비해 정치적 입지가 가장 크며 대남공작의 핵심부서이다. 우리나라 통일부의 카운터파트너 격인 북한의 통전부의 위상과 위력은 어느 정도일까! 한국의 통일부는 행정부의 한 부서이지만 북한의 통전부는 다소 복합적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노동당 소속인 통전부의 부장(당 대남담당 비서 겸임)은 대남정책과 관련해 입안에서 집행까지 당과 내각(우리 식으로는 행정부)을 총괄하는 최고위 인사다. 한국의 통일부 장관은 행정부처의 장일뿐이고, 실제 권한이나 위상에서는 통전부장과 동격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통전부장은 통일부 장관과 외교안보수석의 업무, 국정원장의 일부 업무까지 총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에 통전부장은 통일부 장관과 같은 급이라고 보다는 부총리 급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2000년 9월 김용순 당시 통전부장이 방문했을 때 상대는 임동원 국정원장이었다. 김양건 통전부장의 2007년 11월 한국 방문은 이재정 통일부 장관과 김만복 국정원장의 공동 초청 형식으로 이뤄졌다.

▲ 김영철은5월 26일 판문점 북측 지역 통일각에서 열린 2차 남북정상회담에서 김 위원장을 수행해 회담에 참석했다.
▲ 김영철은5월 26일 판문점 북측 지역 통일각에서 열린 2차 남북정상회담에서 김 위원장을 수행해 회담에 참석했다.

북한은 공개적인 대남협상·교류 창구를 조선노동당 통일전선부(통전부)로 일원화시켜 대남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북한의 통전부는 수식어 없이 말한다면, 북한 조선노동당 산하의 대남공작 및 정보기관 격이다. 1977년 김일성의 직접교시에 따라 조선노동당 산하에 문화부가 창설되어 대남공작업무를 시작했다. 1983년에 문화부에서 지금의 통일전선부로 명칭을 변경한다.

북한에서 대남사업 부서를 속칭 ‘3호 청사’라 부르는데, 주축은 통전부, 대외연락부, 작전부 등이다. 작전부는 산하에 공작원 교육기관인 ‘김정일 정치군사대학’(舊 금성정치군사대학)’을 두고 있다. 대외연락부는 직접 남한에 공작원을 침투 역할을 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중 통일전선부는 비밀리에 대남공작업무를 하면서도 우리의 통일부와 같은 남북대화, 교류나 한국내 기업들의 대북사업도 공식 관리한다.

통전부 내에는 남북회담과, 해외담당과 및 조국통일연구원 등이 있다. 해외담당과는 해외 반한(反韓)교포단체 육성 및 친한단체 와해공작을 수행한다. 또, 조국통일연구원은 대남 심리전 및 대남관계 자료 분석을 담당한다.

통전부는 남북협상에서도 협상절차, 발언수위, 제스처 하나까지 모든 것을 사전에 철두철미 프로급으로 무장되어 있다. 또한 민간차원의 남북 대화나 교류에서도 통전부 요원들을 편성해 대남사업의 일환으로 활용하고 있다.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조국전선), 조선 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아태평화위)도 같은 단체도 관리, 운영한다. 중국에 서버를 둔 대남비방 사이트 ‘우리민족끼리’도 통전부 소속이다.

통전부에서 제2부부장은 반드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 국장이 겸직한다. 통전부 산하에는 각 연락소들이 많은데 그 중 가장 규모가 크고 당 통전부의 모든 기능들을 조평통이 흡수했기 때문이다. 이런 종합적 이유로 통전부 직원들은 조국평화통일서기국을 ‘어머니연락소’라고 부른다.

통전부의 외곽단체로는 1970년대부터 남한 내 반미민족해방 운동의 전위조직을 자임하고 있는 ‘반제민족민주전선’(舊 한국민족민주전선)이 대표적이다. 이밖에 ‘남·북·해외 민간통일운동’이라는 형식으로 1992년부터 활동해온 범민족통일운동연합(범민련) 북측본부와 범민족통일청년학생연합(범청학련) 북측본부가 있다. 대한민국의 특정 사회단체 관계자나 종교인의 방북에도 전담 주축 부서이다.

범민족대회, 해외동포원호위원회,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통협), 민족경제협력연합회(민경련), 북측 민족화해협의회(민화협) 등도 통전부의 지시로 움직이는 단체다.

통전부엔 베테랑 대남전략가들이 적잖이 포진하고 있다. 그동안 김용순(2004년 9월 사망) 노동당 비서 겸 통일전선부장 등 통전부 주요 인사들 모두는 김정일의 최측근이었다.

2004년까지 통전부 부장직은 공석이었다. 이전에는 임동옥 제1부부장 직제로, 2005년부터 부장직제로 운영됐다. 당 조직부, 선전부, 국가보위부와 마찬가지로 중요 부서로 분류하고 부장직을 김정일이 대행하면서 제1부부장 직제로 직할 운영한 것이다.

● 김영철은 대단한 야심가이다.

김영철은 2016년 5월 6일 7차 당 대회에서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 통일전선부장 등 기존 직책을 유지하면서 노동당 정무국 대남담당 부위원장, 정치국 위원자리까지 확보한 가운데 권력의 정상으로 단숨에 뛰어 오른 출세의 달인, 입신양명의 귀재이다.

김영철 부위원장의 역할과 위상은 올해 초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남북 대화 분위기가 고조되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지난 2월 평창동계올림픽 폐막을 앞두고 방남해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서훈 국가정보원장 등을 면담했다. 지난 5월 26일 판문점 북측 지역 통일각에서 열린 2차 남북정상회담에서도 김 위원장을 수행해 회담에 참석했다.

▲ 김영철 부위원장의 역할과 위상은 올해 초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남북 대화 분위기가 고조되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 김영철 부위원장의 역할과 위상은 올해 초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남북 대화 분위기가 고조되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요즘 평양에서는 “평양의 2인자는 김영철 대장이다. 안 풀리는 일이 있으면 그를 찾아가라” 이런 소문이 자자하다. 김영철의 처세술과 야심, 그리고 권력 배경을 놓고 볼 때 북한 최초의 2인자가 될 수 있고, 결국에는 1인자의 권력에 도전할 수 있다는 것이 현재 그의 벼락출세를 바라보는 객관적 시각이다.

황병서야말로 내시 형 보좌관이라면, 김영철은 그 반대의 야심만만한 이방원형 무사가 되기에 부족함이 전혀 없는 야심가 중의 야심가로 칭해도 무리가 없다는 평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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