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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땅 이야기] 따스함이 흐르는 골목의 향수, 부산 ‘태극도 마을’
[우리땅 이야기] 따스함이 흐르는 골목의 향수, 부산 ‘태극도 마을’
  • 이재윤 기자
  • 승인 2018.06.26 15: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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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주간=이재윤 기자] 골목엔 늘 이야기들이 넘친다. 어제든 오늘이든, 아니면 먼 옛날이든 그 이야기들은 늘 골목을 돌고 돈다. 툇마루에 나와 앉아 나물을 다듬는 아주머니들과 골목 안 구멍가게 앞에 진을 치고 장기를 두는 어르신들은 골목 사이를 돌고 도는 그 이야기들의 근원지이기도 하다. 그렇게 돌고 돌던 이야기들은 때론 다툼의 원인이 되기도 하지만, 대개는 서로를 보듬어주고 지켜주는 유대감의 뿌리가 된다.

◆ “달동네에 뭐 볼 게 있다고...”

부산시 사하구 감천2동, 속칭 ‘태극도 마을’은 도심 속 골목의 향수를 진하게 느낄 수 있는 곳으로, 마치 레고 블록을 쌓아올린 듯 절벽에 다채로운 빛깔로 다닥다닥 붙은 집들 사이로 가파른 골목이 얼기설기 엮여 있다. 최근에는 그리스 산토리니에 비유되며 아마추어 사진가들이 즐겨 찾는 출사 명소로 제법 유명세를 앓고 있기도 하다.

부산역에서 토성동역까지 지하철로 이동한 후 2번 서구 마을버스를 타고 태극도 마을 들머리인 감정초등학교까지 구불구불 가파른 언덕길을 올라가면 알록달록한 태극도 마을이 한 눈에 들어온다.

옥상에 빨래를 널고 있는 아주머니의 모습이 보이고, 좁고 가파른 골목길을 뛰어다니는 아이들, 마당을 대신하는 골목에 나와 해바라기를 하며 먼 바다를 바라보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마치 그림 속 풍경처럼 느껴진다.

마을 주민들이 ‘할배 산소’라고 부르는 태극도 교주의 무덤에서 솔밭3길 계단으로 내려갔다. 어른 두 사람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걷기도 힘든 좁은 골목길을 내려가니 마을에 유일한 구멍가게가 나타난다. 가파른 골목길을 돌아다니려면 물도 미리 사두어야겠고, 마을 이야기도 좀 들을 겸 가게로 들어갔다. 카메라를 어깨에 멘 기자의 모습을 보고는 이내 익숙하다는 듯 “사진 찍으러 오셨어요?”라고 묻는다.

취재를 왔다고 하니 “달동네에 뭐 볼 게 있다고... 요기 뒤에 공원에 가면 관리하는 아저씨가 있는데 그 아저씨가 이 동네 토박이니까 물어보이소”라며 친절하게 일러준다. 아주머니의 친절에 생수 두 병을 사들고 공원으로 향했다.

◆ “산토리니? 낸들 아나?”

빽빽한 골목 사이에 마치 숲속의 작은 연못처럼 자리 잡고 있는 쌈지공원은 태극도 마을 주민들의 휴식처다. 할아버지들이 장기를 두며 소일을 하기도 하고, 아이들이 엎드려 함께 숙제를 하기도 하는 공간이다. 공원에는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우물도 함께 있어 왠지 정겨움을 느끼게 한다.

공원을 관리하고 있는 이 마을 토박이 조서현씨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 우물에서 물을 끌어다 썼다”며 아쉬움이 묻어나는 듯 우물을 쓰다듬었다. 그에게 집집마다 알록달록하게 칠을 한 이유를 물으니 “그냥 사는 집 예쁘게 꾸미고 싶어서겠지... 낸들 아나?”라며 헛헛 웃는다.

태극도 마을의 유래는 태극도를 믿는 사람들 4천여 명이 모여 집단촌을 형성한 데서 시작된다. 1958년 충북 괴산 등지에서 온 태극교도들이 먼저 자리를 잡았고, 1980년대에는 주민 수가 2만여 명에 이를 정도로 큰 마을을 형성하게 되었다. 지금은 1만 명 정도로 그 수가 줄었고, 태극교도들은 대부분 마을을 떠났다고 한다.

조서현씨에게 고마움의 표시로 생수 한 병을 건네고 돌아서는데, “쉬엄쉬엄 가소”라며 물병을 돌려주며 인사를 건넨다. 그 인사의 의미를 골목에 들어서면서부터 절감했다. 폭이 1m도 안 되는 좁은 골목길은 방향을 알 수 없을 만큼 얼기설기 얽혀 있었고, 바람 한 점 들어올 것 같지 않은 다닥다닥 붙은 집들 사이로 가파르게 이어지고 있는 골목길에서 생수 두 병은 갈증을 해소하는 데 턱없이 부족함을.

◆ 따스함이 흐르는 골목

태극1길, 2길, 3길... 어디로 발길을 놓아야 할지 가늠할 수 없어 일단 좌회전, 우회전을 거듭하며 무작정 걸었다. 가게 아주머니의 ‘뭐 볼 게 있다고...’ 하던 말이 머리를 칠 때쯤, 벽에 붙은 예쁜 타일이 눈에 들어왔다.

‘엄마♡아빠! 항상 감사하는 마음 갖겠습니다. 오래오래 사세요.’

‘우리누리 최고! 5학년 친구들아 사이좋게 지내자~’

이 동네 공부방 아이들이 선생님들과 함께 정성스레 예쁘게 만들어 붙인 타일인데, 하얀 벽면에 붙어 있는 모습도 예뻤지만, 그 내용들이 더 예쁘다.

그 예쁜 마음들을 가슴에 담고 골목을 지나자 갑자기 눈앞이 탁 트인 비탈길이 나타난다. 멀리 부산 앞바다가 한 눈에 들어오는 전망이 웬만한 고급 호텔 라운지도 부럽지 않다. 마당이 따로 없어 좁은 비탈길에 수도를 놓았고, 거기에 빨래를 널고, 설거지를 하지만, 세상 누구 부럽지 않은 라운지를 가졌다.

한동안 그 전망을 감상하며 이마에 흐르는 땀을 식히고 나니 그제야 눈에 들어오는 게 있다. 따뜻한 볕이 드는 비탈길에 가지런히 놓여 있는 고무대야에 파, 고추, 시금치 등 각종 야채들이 심겨져 있었다. 그러고 보니 골목마다 볕이 잘 드는 곳에는 이런 풍경이 있었던 것 같다. 골목에 의자를 내놓고 앉아 멀리 바다를 바라보는 할머니에게 물어보니, “심을 땅이 없으니 그렇지”라며 보면 모르냐는 듯 뚱한 답이 돌아왔다.

머쓱해 하며 자리를 뜨지도 못하고 머뭇거리는데, 그 모습이 안 돼 보였는지 “뭐 하러 왔냐?”며 말을 걸어주신다. 그래서 이런저런 이유로 왔다고 하니 역시 “뭐 볼 거 있다고...” 하는 말이 돌아온다. 멀리 바다도 보이고 탁 트인 전망도 좋지 않냐고 하자 “나는 저 아래 잘 내려가지도 못해. 한 번 내려가면 올라오기도 힘들고...”라며 힘없이 웃는다. 그렇게 한 동안 말없이 자리를 뜨지도 못하고 먼 바다를 바라봤다.

한참 만에 인사를 하고 가려는 기자를 불러 세운다. “물도 다 떨어졌네. 있어 봐라.”며 안으로 들어가시더니 보리차가 담긴 물병을 내주신다. 어린 시절 이마에 송글송글 맺힌 땀을 닦아주시던 할머니의 손길처럼 따뜻함이 느껴졌다. 돌아서는 가슴에 또 하나 따뜻함을 담았다.

할머니가 주신 보리차의 시원함을 손으로 느끼며 다시 숲 같은 골목으로 발길을 들여 놓았다. 그렇게 얼마나 또 헤맸을까? 가파른 골목길을 오르나라 고개를 들 힘도 없어 아래만 보고 걷는데, 바닥에 누군가 그려놓은 씽긋 웃는 미소가 눈에 쏙 들어온다. 마치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했다는 듯 웃어주는 미소가, 누군가 내 모습을 지켜본 듯 뒤를 돌아보게 만들었다. 방금 지나온 가파른 골목 사이로 저 멀리 바다가 다시 눈에 들어오고, 다닥다닥 붙은 집들은 마치 긴 터널처럼 바다로 향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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