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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남효의 고전칼럼] 염치(廉恥)와 정치(政治)
[배남효의 고전칼럼] 염치(廉恥)와 정치(政治)
  • 배남효 고전연구가
  • 승인 2018.06.26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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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남효 고전연구가
배남효 고전연구가

[일요주간 = 배남효 고전연구가] 사람이 살다보면 이런 사람 저런 사람을 많이 겪게 된다. 또 직접은 아니지만 이런저런 소문이나 보도를 통해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접하기도 한다. 그러면 사람에 대한 느낌이 전해져 오고, 이런 사람은 괜찮은 것 같고, 저런 사람은 아닌 것 같다는 판단을 하게 된다. 이러한 판단을 하는데 보통 많이 쓰이는 기준이 염치라는 말일 것이다.

염치가 있는 사람은 괜찮아 보이고, 염치가 없는 사람은 아닌 것 같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염치란 말의 뜻을 설명하라면 말로 잘 표현이 되지 않지만, 그 말이 무슨 뜻인지는 누구나 쉽게 알고 있다. 그만큼 생활에서 익숙하게 친한 말이고, 특히 사람을 분별할 때 많이 사용하고 있다. 사전을 찾아보면 염(廉)은 청렴하다, 검소하다, 곧다 등의 풀이가 나오고, 치(恥)는 부끄러움, 치욕, 수치 등의 풀이가 나온다.

염치라는 뜻은 체면을 차릴 줄 알며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이라고 길게 풀이되어 있다. 사람들도 대체로 이런 뜻으로 사용을 해왔겠지만, 사전의 뜻풀이에 나오는 체면과 부끄러움이 중요하게 다가오는 말이다. 체면은 사람의 도리와 품위를 지키는 것이고, 부끄러움은 더 설명하지 않아도 아는 말이다. 결국 염치는 사람의 도리와 품위를 지켜 부끄럽지 않으려는 마음을 가리키는 것이다.

염치라는 말을 평소에 쉽게 써왔지만, 이렇게 뜻풀이를 하다보니 간단한 말이 아니라는 느낌이 새삼 들게 된다. 염치라는 말을 장황하게 늘어놓은 것은 최근에 일어나고 있는 정치권의 일들을 보면서 염치라는 단어가 계속 떠올랐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 지방선거가 있었는데 그 이후 나타난 결과를 놓고, 염치없는 짓들로 서로 다투고 있는 모습이 너무 심하기 때문이다. 참패한 야당 정치인들이 보이는 모습들은 매우 염치가 없어, 보통 사람들이 가진 상식적인 염치의 수준보다 훨씬 못미쳐 보인다.

특히 자유한국당이 선거 참패를 둘러싸고 보여주고 있는 내분 상황은, 정말 염치가 없는 정치인들의 전시장이라는 생각조차 들게 만든다. 그 동안에 민심과 괴리된 정치노선과 언행 때문에 몰락할 정도로 선거에서 참패했으면, 모두가 책임있는 죄인이어서 얼굴들고 나서기도 어려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상대를 탓하고 책임을 전가하면서, 자신은 상관없다는 식으로 염치없는 처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사마천의 사기 항우본기(項羽本紀)를 읽다보면 이미 유명하게 알려진 이야기이지만, 항우가 염치를 알아 재기(再起)를 포기하고 패장(敗將)으로 깨끗이 죽음을 택하는 장면이 나온다. 항우는 유방과의 최후 결전을 벌인 해하(垓下)의 전투에서 패전하고 달아나다 오강(烏江)에 이르게 되어, 나룻배를 타고 강동으로 건너가 재기를 하라고 권유를 받는다.

그러자 항우는 자신이 강동의 젊은이 8,000명을 거느리고 거병을 했는데, 이제 그 젊은이들을 다 잃고 무슨 면목으로 다시 강동으로 돌아가 왕노릇을 하겠는가, 양심이 부끄러워 할 수가 없다(원문: 天之亡我, 我何渡爲! 且籍與江東子弟八千人渡江而西, 今無一人還, 縱江東父兄憐而王我, 我何面目見之? 縱彼不言, 籍獨不愧於心)고 하면서 스스로 포기하고 죽음을 받아들였던 것이다.

이 이야기가 패장 항우를 미화하려는 꾸밈이 있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사기에 그대로 나오는 문장이니 그다지 꾸민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이 이야기에서 중요한 것은 항우의 말에 나오는 면목(面目), 괴심(愧心)과 같은 말인데, 바로 사람의 염치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항우는 부끄러움을 알기 때문에 염치가 없는 짓을 할 수가 없다면서 죽음을 택한 것이다.

물론 항우가 강동으로 건너가 재기를 도모하는 일 자체도 어려운 일이겠지만, 항우는 염치가 없어 그런 일 자체를 아예 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약삭빠른 현실적인 정치가가 볼 때 항우의 이러한 선택이 어리석게 보일지 모르겠으나, 사기에서는 역사적인 기록으로 남길 만큼 의미있는 일로 평가한 것이다. 비록 항우는 패장이 되어 역사의 패자가 되었지만, 사마천같은 대역사가는 항우를 승자인 유방과 대등한 반열로 올려 황제의 기록인 본기에 기술하였던 것이다.

사마천이 항우본기에 기술한 이 일화는 아마도 역사를 내려오면서, 수많은 인간들에게 염치가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만드는 불멸의 기록이 되었을 것이다. 우리 나라의 정치가들도 항우의 일화처럼 염치를 아는 깨끗한 모습을 보여주면 좋겠다. 국민의 앞에 섰던 정치가라면 선거의 참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염치가 없으니 깨끗하게 물러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래야만 자신의 명예도 더럽히지 않고, 자신이 속했던 정치세력이 되살아나는데도 이바지할 수 있을 것이다.

정치든 인생이든 영원한 것은 없고 성쇠(盛衰)의 길을 밟을 수밖에 없는데, 특히 쇠할 때 염치를 차려 추한 모습을 보이지 말아야 한다. 세상 사람들은 다 알고 있는데 자신만 모르든지, 그 정치집단만 모르고 우긴다면 얼마나 우습고 염치가 없는 일이겠는가.

어느 정당을 막론하고 선거에 패배한 사람들, 패배하게 만든 사람들은 염치를 알고, 스스로 책임의 경중을 가려 자숙을 하든지 물러나든지 해야 한다. 정치에 집착하여 염치를 잃을 것이 아니라, 염치를 택하여 정치를 버리는 것이 사람의 도리이고 더 영예로운 일이다.

이제는 국민 앞에서 정치적인 리더가 되려는 사람은 항상 염치를 생각하여, 더 이상 염치없는 짓을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자나 깨나 염치를 가슴에 품고 염치를 지키며 처신하는 것을 정치가의 제일의 미덕(美德)으로 삼았으면 좋겠다. 유권자들도 정치인을 선택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을 염치에 두고, 평소에 염치있게 처신하는 후보에게 투표하는 관행을 정착시켰으면 좋겠다.

그래야만 정치인들도 정신을 차리고 유권자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염치를 중시하여, 염치있는 정치인이 되려고 노력할 것이다. 사실 정치적인 능력이 중요하지만 아직 우리 정치권은 그 이전에 기본인 염치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수준이라서 염치를 우선시할 수밖에 없다. 염치가 있으면 눈과 귀가 저절로 열려 민심에 따른 정치를 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저절로 정지적인 능력도 생겨날 것이다.

염치가 정치의 가장 기본임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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