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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타지 기행소설] 中 천년도시 오진의 쪽빛 이야기
[환타지 기행소설] 中 천년도시 오진의 쪽빛 이야기
  • 이지민 수필가
  • 승인 2018.07.12 16:34
  •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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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민 여행작가
이지민 여행작가

[일요주간 = 이지민 여행작가] 길을 잃었다. 천 년 후의 바람을 즐기는 것은 너를 배려하지 않은 큰 악행이다.

‘오늘은 너를 찾아 줄게. 그리고 우린 자유로워 질 거야. 천년의 기다림은 명예가 될 거야.’ 천 년 전의 그 때도 나는 길 한 모퉁이에 접혀진 몸으로 있었다.

펄럭이고 있었다. 밝혀지지 않은 천년 후처럼 여전히 정확한 색 이름을 정의하지 못하고 그냥 푸름도 청색도 아닌 채였다. 내일 정도면 끊어지리라는 예감을 벌써 수년째하고 있다. 아슬아슬한 빨랫줄이었다. 매달려 바람에 몸을 맡겼다. 바람을 표현하기에 최적화 되어 있는 흔들림이다.

솥에는 구름 같은 한숨이 피어오른다. 가마솥을 달구던 장작도 타다 지쳐 숨을 죽인다. 나를 뜨겁게 삶아내던 그 밤이 반복된다. 깨어나기를 몸부림치지만 깨어나면 할 수 있는 것은 흔들리는 것 뿐 이었다. 바람이 나를 샅샅이 핥아내도 그 혀의 놀림이 간지럽지 않은지도 오래다.

우리들의 운명은 예견되어 있진 않았다. 때론 아이의 눈알 속을 가득 차지하고 있는 엄마의 치마폭이 되었다. 새신랑의 조끼가 되어 각시의 분가루에 재채기가 나기도 했다. 손주를 기다리며 동구 밖 느티나무 아래 목을 빼고 앉은 구부정한 할머니. 그 치맛자락 깊숙이 손수 여민 지갑이 되기도 했다.

‘넌 어디로 간 거니. 들려오는 소식에 넌 왕 서방의 집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벽지처럼 살고 있다던데. 천년동안 변함없이.’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기억을 더듬는 것은 연습되어 있었다. 그녀의 몸의 좌우로 나열된 규칙성은 흔들림의 각을 예견하듯 치밀했다. 부러울 때도 있었음을 지금 고백한다. 그래서 그녀를 조심스레 사랑했다. 우린 하나일 때 가장 아름다웠으니.

▲ 소주와 항주의 중간지점에 위치한 절강성에 위치한 곳으로 상해에서 2시간 거리이며 중국 강남(양자강 남쪽) 6대 운하 도시 중 가장 매력적이고 아름다운 수상도시이다
▲ 소주와 항주의 중간지점에 위치한 절강성에 위치한 곳으로 상해에서 2시간 거리이며 중국 강남(양자강 남쪽) 6대 운하 도시 중 가장 매력적이고 아름다운 수상도시이다

오진(마을 내부가 전부 물로 이뤄져 있음)의 골목은 고전영화 속에 나를 밀어 넣었다. 장터 한가운데에 떨어뜨려 놓은 듯 했다. 골목골목 바람을 인내하는 몸짓들은 흔히 볼 수 있다. 수 천 개의 나의 분신이다. 나는 때론 접히기도 하고 물에 담겨져 질근질근 밟히기도 했다. 손가락의 힘을 터질 듯 도전해 보는 맹렬함도 실험해 보기도 했다.

결국은 주룩주룩 내 몸의 모든 진액을 다 짜내고 그것도 모자라 한 올의 자존심도 다 내 던지게 한다. 그냥 몸에 힘을 빼는 것이 가장 나다운 행동이고 나와 같은 상황인 그들에게도 권하는 견디는 법이다 .

‘고치가 명주가 되어 사람의 몸에 휘감기는 것은 대단히 의미 있는 일이야 .영광스럽고 명예로운 일이지.’

▲ 중국의 베니스 수향마을 아직도 이 다리 밑으로 나룻배가 다니고 짐도 옮기고 교통수단으로도 이용하고 있다.
▲ 중국의 베니스 수향마을 아직도 이 다리 밑으로 나룻배가 다니고 짐도 옮기고 교통수단으로도 이용하고 있다.

나의 엄마는 가마솥에서 뜨거움을 못 견뎌 튀어 오르려는 나를 껴안으며 그렇게 나를 달래 주었다. 댓바람에도 눈, 비에도 황태처럼 매달려 견뎠다. 밟히고 쥐어짜는 고통 정도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녀와의 올의 엮임으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명주를 태어나게 할 희망에 부풀어 있었으니까.

나의 사춘기는 쪽이라는 물감을 만나 길들여지고, 뜨거운 가마솥은 즐길 정도가 되었다. 인생이 거의 절정에 도달했음을 감지했다. 난 가슴이 떨려 수 십 번의 경기를 일으키며 색을 만들어 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날. 그녀를 만나기로 한 다리에서 왕 서방의 아들이 그녀를 휘감고 있었다.

그리고 난 정신을 놓쳤다.

난 멀리 동쪽바다를 건너 돌고 돌아 한국으로 왔다. 정신을 차려보니 수 십 층짜리 어지러운 백화점의 뜨거운 조명 아래서 땀 흘리고 있었다. 나를 품어준 사람은 빨간색 머리로 물을 들인 사십을 눈앞에 둔 노처녀였다.

오진에 발을 디디는 건 천 년 만에 돌아온 귀한 시간이긴 하다. 민속촌이 되어 있었다. 동양의 베니스라는 말은 누구의 말인지. 볼거리로 전락한 오진. 도도함은 어디로 가고 호기심을 채워주는 지나가는 여행객의 동전을 훑어 내는 데 더 힘을 쏟고 있었다.

그에 비하면 환영식은 너무나 거했다. 쉬운 것은 귀하지 않다는 교훈을 주고 싶어 하는 철학자의 흉내에 반론은 없다. 차단기였다. 오진은 중국비행장에 첫발을 들여놓을 때 줄 세운 공안의 바지단보다 더 까칠한 검색대를 거쳐야 했다. 그다지 부담스러운 무게도 아니었는데 제복을 촌 발 나게 챙겨 입은 뻐드렁니의 그녀는 발걸음을 정지 시켰다. 나름 차단기라는 합법적인 도구를 사용하는 치기가 귀엽기 까지 했다. 가방 속 짐은 그 짤막하고 투박한 손으로 내 주인의 은밀한 것들을 막아주는 천 조각부터 낱낱이 헤집어 냈다. 입가에 묻어 있는 썩은 미소는 개를 때려잡아 꺼먼 털을 태우며 지켜보는 구경꾼의 모습이었다.

‘꼭 그랬어야 했니?’

▲삼백주작방- 오진여행에서 빠질 수 없는 곳으로 3대 주가 중 하나로' 천년고진에서 백년의 술을 빚는다"는 삼백주 . 흰쌀과 흰 누룩 맑은 물로 빚는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삼백주작방- 오진여행에서 빠질 수 없는 곳으로 3대 주가 중 하나로' 천년고진에서 백년의 술을 빚는다"는 삼백주 . 흰쌀과 흰 누룩 맑은 물로 빚는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결국 찾아낸 것은 수 천 명의 인명을 살상하고도 버젓이 살아남은 대머리 지휘관의 취미생활보다 한결 더 고상한 먹다 남은 술이었다. 그것도 지나가다 상해편의점에서 부랴부랴 산 우리 돈 2700원짜리다. 약주랍시고 오만 떨던 그 술.

‘에라이. 좀스럽긴. 수화물 가방 속에 들어있는 먹다 남은 액체는 입국 검색대도 안 건드리던데 무슨 객기라니?’

너의 장난 정도로 치부하기엔 좀 얼굴이 팔리더라. 차라리 홀딱 벗겨 놓고 뒤지지 그랬니? 좀 더 스릴 있지 않았을까? 요즘 유행하는 sns 국제셀프민원 주인공이라도 되어보지 뭣도 아니었단다. 일행은 한 모금씩 탈탈 털어 입을 헹궈 삼키고, 보란 듯이 둥그렇게 원을 그리며 휴지통으로 단번에 3점 슛을 때렸지.

네가 지키고자 했던 그 흔들림의 규칙이 바람 때문이 아니라 철저히 계산된 햇살과 통풍의 직조로 탄생시킨다는 반증의 계산법이라는 것. 그걸 증명하기 위해 나를 불러들였고 넌 천년을 견뎌왔지. 그래서 이정도 신고식은 정말 유치원 학예회 정도로 눈물콧물 빼는 감동이었다. 죽이지도 살리지도 못하는 유치함의 실천은 전통을 지키려는 안간힘임을 충분히 알기에.

난 목까지 올라오는 소리 나는 기체를 그냥 트림정도로 누그러뜨렸지.

‘역시 프로야 . 치밀하게 나를 계산하잖아. 넌 나니까. 딱 천 년째구나.’

오진의 호텔은 영화 속에서 보아왔던 불투명 깔깔이 커튼이 반쯤 가려진 곳이었다. 양귀비의 시녀쯤이 사용 했을 법한 얌전치 못한 침대가 있었다. 반달을 만들며 커튼이 침대를 묘한 각도로 가려 놓았고, 천 년 전 쯤 거세를 하지 않은 내시 하나정도는 숨겨져 있을 법한 은밀한 방이었다.

가이드는 이 방을 한국 사람들은 중국 본토사람들의 수요도 감당 못해 예약이 하늘의 별따기라나 너스레를 떨었다. 적지 않은 대가를 치렀다. 통안객잔(通安客棧)이라는 호텔이었다. 우리 동네 모텔의 주제가 있는 방 중 양귀비방과 닮아 있다. 수도꼭지와 세면대가 청동으로 만들어져 있던 점을 제외하면 거의 같았다.

아래층 거실에 모여 밤늦도록 술을 마셨다. 갖고 간 소주 중 한 상자를 비웠고, 우리가 좋아하던 삼백주 열병을 비웠다. 미친 듯이 떠드는 몹쓸 병에 걸린 듯 서로의 귀에 대고 소리 지르다가 밤을 맞이했다.

오진의 밤은 조금은 용기 있어졌다. 우리가 채 치르지도 못한 밤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영악해졌다. 번쩍거림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1300년의 역사를 그대로 간직한 수향마을 오진의 밤은 화려한 불빛과 반영이 혼의 색을 입혀 늘어뜨린듯 매혹적이고 몽환적이다.
▲1300년의 역사를 그대로 간직한 수향마을 오진의 밤은 화려한 불빛과 반영이 혼의 색을 입혀 늘어뜨린듯 매혹적이고 몽환적이다.

운하를 이어주는 반달모양의 다리마다 오묘한 빛이 났다. 빛은 물속에서 미역처럼 머리카락을 늘어뜨려 흐늘거렸다. 너의 눈동자에 색색으로 넘쳐흐르던 그 빛이다.

우리가 거닐던 그곳을 지나칠 때는 운하를 쌘 모터가 장착된 양수기로 다 퍼내고 드라이기로 말려버리고 싶었다. 이렇게 길어질 줄은 몰랐다. 곧 돌아오겠다던 내 약속이 이렇게 오래 걸릴 줄은. 소주와 빼갈로 기절시킨 내 주인의 동료들은 내일까지는 절대 일어나지 못할 거다. 그때 우리가 마셨던 마녀의 독을 한 방울 넣는 치밀함은 천년동안 연습해온 덕이다. 미끄러지듯 숙소를 나왔다.

이제 이 다리를 세 개 건너고 저기 부채가게를 갈 거다. 그 옆을 지나 대나무살에 한지를 입힌 여인네들의 고운 종이우산상점을 만나도 난 멈추진 않을 테다. 북남풍이 곱게 부는 삼거리가 나타날 때 까지. 오른쪽으로 꺾어 다시 조그만 네거리 중 두시방향으로 각을 지닌 골목을 들어서면 목각인형이 가득한 공예품상점. 그 옆집에 부엉이 눈알이 반쯤 채운 붉은 색 얼기설기 수를 놓은 가방상점. 그 상점을 끼고 골목을 돌아 다시 샛길의 높은 돌담 벽을 지나면 운하가 나온다.

삐거덕 거리는 조그만 나룻배에 웅크린 두 남녀의 엉킨 그림자를 지나도 눈길을 주면 안 돼. 채 치우지 못한 음식그릇을 상보로 덮은 채 싸릿대 발을 쳐놓고 전을 거둔 주점이 나올 거다. 그 옆집은 조개를 손잡이부분에 덕지덕지 박아 놓은 나무젓가락을 파는 곳이지. 그리고 다음엔 좌로 꺾어야 하는 것은 천 번도 넘게 그려본 지도다.

‘잊지 않으려 밤마다 지도를 그렸었다.’

용케도 오진은 그대로다. 아까 검색대 차단기 앞 그녀의 뻐드렁니가 기특해진 느낌이다. 변하지 않으려 노력 한 거니. 변화가 오진을 외면 한 거니.

여기서 다시 운하를 건너야 된다. 막다른 길이 닥치는 걸 용서하지 않으려면. 그리고 보리수나무가 있었는데. 와우. 우리 한국의 <카페베네> 커피집이 나무의자를 빼곡히 채워 숱한 여행객들의 엉덩이를 쉬게 하고 있구나. <롯데마트>는 못 버티고 쫓겨났는데 용케 버티는 구나.

아직 너를 만나려면 몇 개의 상점들을 지나야 하는지 중간 중간 문을 닫기 시작하는 불빛들을 대신해 공안들이 자리를 채워가고 있다. 불쑥불쑥 고개를 들이미는 제복들은 분위기를 깬다. 그때 우리를 갈라놓던 그 왕 서방의 얼굴이다. 목판화를 찍어 낸 듯 해 뒤통수를 갈겨주고 싶은 데 오른손을 왼손이 잡아 내리느라 힘들다.

‘공안은 죄가 없어. 그때 왕 서방을 닮은 것은 늦은 밤 졸려 하는 불을 고문하듯 켜 놓은 탓이야.’

▲홍원태염색방 -천연식물염색방으로 염색부터 건조까지 수작업으로 진행하는 염색방이다.
▲홍원태염색방 -천연식물염색방으로 염색부터 건조까지 수작업으로 진행하는 염색방이다.

명주실을 만들던 왕 서방은 부지런했다. ‘왕챙이’로 ‘실잣기’를 하는 발은 멈추질 않았다.

‘부지런은 죄야. 아직도 하고 있다는 것은 더 큰 죄야.’

공정은 변한 게 하나도 없었다. 실 하나에 들이는 공은 1.5km를 만들어 내기 위해 밟아대야 했다. 왕 서방의 오른발이 멈추지 않는 건 그가 미움 받는 또 다른 큰 이유다. 누에고치실에서 피브로인과 감싸 안은 세리신을 떼어 놓아야 하는 짓들은 오늘도 계속 되고 있었다.

‘2.5g의 고치를 넣고 15시간을 끓여 냈지.’

뜨거운 가마에서 치를 떨며 인내했다. 펄펄 끓는 가마. 지독했다. 하나도 변한 게 없다는 것은 명예일까. 고통일까. 적어도 우리들에게 역사는 잔인해. 죄야.

천년을 인내하는 편이 더 쉬웠다. 그 뜨거움보다. 아니 고마움이다. 그대로인 것은. 찾아가는 길이 변하지 않았으니.

‘이제 네가 보이기 시작하는 구나. 저기 펄럭이는 너.’

이런 푸름이었다. 저기 흐느적거리는 건. 청색이었다. 분명 흔들림의 각은 너였는데. 몸놀림이 매혹적인 것이 분명 너였는데. 뛰어갔지만, 아니었다. 갑자기 모든 게 엉클어졌다. 난 공중분해 되어 공기 중에 흡수 되어 사라져 갔다.

쪽빛이라고 불러 달라고 했다. 신비로운 이름이다. 근원을 모르는 이름이다. 두 번째 골목을 더 지나서였나. 아니 다섯 번째 골목에서 좌측으로 돌아야 했던가.

‘미안해 나 길을 잃었어.’

너를 찾으려 수 천 번의 연습과 지도를 그려왔고 잊지 않으려 밤마다 기도했는데. 그놈의 빼갈이 뼈를 녹인다고 빼갈이라 했나. 아마. 독했다. 한국의 소주랑 섞으니 더 독했다. 섞어 마시는 것은 나를 나에게서 분리시켜 도둑질 해.

‘너를 찾는 것은 다시 천년후로 미뤄야겠어. 푸름도 아니고 청색도 아닌 쪽빛. 아직도 정의되지 못한 색. 나풀거리던 너.’

길을 잃었다. 천년의 도시 오진에서 나는 길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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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아 2018-07-19 13:47:00
저도 꼭 저 오진이란 곳에 여행가보구 싶어요~~
좋습니다~~^^

김은희 2018-07-19 03:12:42
내 복잡한 마음과통하는글인것같아요.잘읽어습니다.저도 갈길을 잡아야 하겠어요.

pkeyoung 2018-07-18 15:27:51
질읽었습니다~~^^

이의인 2018-07-18 12:33:21
지민씨글 감명깊게 읽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