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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손가락
[칼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손가락
  • 정성수 칼럼니스트
  • 승인 2018.08.28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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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수 칼럼니스트
정성수 칼럼니스트

자녀들을 먹여 살리고 학비를 만들어내는 금고

눈물을 닦는 손에는 내 손을 포개어 주고 싶다

● 쇼팽보다 더 우아하고 거룩한 어머니의 손

희디흰 손가락이 피아노 건반 위를 날렵하게 오고간다. 어린 내가 보기에도 어머니가 피아노를 치는 모습은 하늘에서 내려 온 천사였다. 고등학교에 들어가서야 안 것이지만 당시에 피아노를 배우던 친구가 우리 집에 놀러 온 일이 있었다.

우연찮게도 어머니가 피아노를 치는 것을 본 친구는 ‘쇼팽은 저리가라네!’라는 말을 듣고 어머니의 피아노 실력을 알게 되었다. 당시만 해도 대입에 몰두하고 잇던 나는 쇼팽을 피아노의 시인이라고 부른다는 것을 몰랐다. 그때부터 어머니가 피아노를 치면 귀를 세우고 열심히 들었다. 유독 희고 긴 손가락으로 피아노를 치는 모습은 가슴을 설레게 했다.

어머니의 피아노는 어머니가 즐기는 악기가 아니었다. 그것은 우리 형제들을 먹여 살리는 먹거리이었고 학비를 만들어내는 금고였다. 우리 집의 요긴한 물건이었다. 아버지와 사별하신 후 서울에서 아무 연고도 없는 전주로 이사를 와 오직 피아노 한 대에 의지하는 생활이 시작되었다. 피아노는 모든 가정사를 책임졌다. 자식들이 대학들 졸업하고 각자 짝을 찾아 가는 일을 다 해낸 것이 어머니의 피아노였다.

그런 어머니가 어느덧 고희의 나이를 넘기셨다. 그 정도면 피아노가 물리실 법도 한데, 어머니는 자식들이 불혹의 나이를 훌쩍 넘긴 지금도 피아노 건반을 놓지 못하신다. 손주 뻘 되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은 어머니의 낙이자 생활 문제를 해결하는 방편이 되었다.

요즘은 처음 시작할 때와는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수강생들이 많다. 물론 피아노 댓수도 늘렸다. 어머니의 건강으로는 감당하기에 벅차 보였다. 내 생각으로는 일을 줄여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어머니는 아랑곳하지 않고 더욱 일에 매달리는 것이었다. 어느 날인가 어머니에게 수강생을 그만 받으면 안 되겠느냐고 말씀드렸지만 어머니는 ‘이제 자리를 잡은 것이다’라며 기회는 두 번 오지 않는다고 단호한 표정을 지었다.

늘 젊은 사람 못지않은 열정으로 아이들의 손을 잡고 손과 손으로 피아노를 가르치시는 모습은 말 그대로 눈높이 교육을 실천하는 것이었다. 그런 모습은 교사라는 직업을 가진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어머니가 여간 존경스러운 게 아니었다.

따지고 보면 나는 불효녀였다. 어린 시절 어머니는 바로 아래 동생을 유독 사랑하셨다. 동생은 예쁠 뿐만 아니라 총명해서 공부도 잘했다. 나는 그것을 편애로 받아들였다. 뚜렷한 이유가 없어도 동생에게 사사건건 시비를 걸고 다투곤 했다. 동생에 대한 화풀이는 자격지심이었다는 것을 그 때는 몰랐다. 그뿐이 아니었다. 기분 나쁜 일이라도 생기면 어머니에게 화살을 돌리고 투정 부리면서 어머니 속을 무던히도 썩였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때의 반항은 사춘기를 넘어가는 과정이었던 것이다.

대부분의 청소년들은 신체적·정신적으로 성숙기에 접어드는 사춘기에 부모들을 힘들게 한다고 한다. 어머니를 힘들게 한 그 시절은 내 몸과 마음이 자라는 성장통을 겪은 것이라고 내 자신을 위로한다. 생각해 보면 어머니께 죄송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다. 요즘은 과거에 대한 회한과 치기어린 지난날이 추억과 오버랩 되어 미소를 머금게 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어머니의 건강이 여전하고, 시기하면서 미워했던 동생과 우애하면서 지내고 있다는 것이다. 가정을 가진 동생에게 뭣 하나라도 양보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혈육은 칼로도 벨 수 없다는 뜻이다.

요즘은 동생과 자주 통화를 한다. 뿐만 아니라 어머니를 걱정하고 어머니 마음을 조금이라고 편하게 해주려는 동생이 고맙다. 나로 인해 상처 받았던 어머니와 동생을 생각하면 미안한 마음이 앞선다. 이제라도 이해하고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지 생각할수록 자랑스럽다. 우리 주변에는 부모 형제자매 사이가 나빠서 남보다도 못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생각하면 어머니와 나 그리고 동생의 관계는 어느 집 보다도 끈끈하다. 다행이라는 생각을 넘어 자랑스럽기 조차하다.

나와 동생은 어머니를 많이 닮았다. 그중에서도 내 손과 동생의 손은 영락없는 어머니 손의 판밖이다. 마디가 가늘면서 긴 손가락이나, 얕은 손바닥, 희디흰 손의 피부는 말 그대로 붕어빵이다. 사람들이 가끔 내 손을 보면서 예쁘다고 말할 때마다 어머니의 손이 떠오른다.

● 어떤 멜로디 보다 아름다운 장애우들의 손

나에게는 좀 별난 습성이 있다. 처음 사람을 만날 때 대개는 얼굴을 본다지만 나는 손을 본다. 손은 그 사람의 삶을 담고 있어서 손을 통해 그 사람을 판단한다. 손가락에 황금반지를 끼어 멋을 낸 손에는 별로 감흥이 없다. 손마디가 툭툭 불거져 투박한 손, 뼈가 앙상한 손, 거무튀튀하게 그을린 검은 손, 손톱 한쪽이 달아난 손, 번데기처럼 주름진 손, 짧고 뭉툭한 손에 마음이 간다. 삶의 몇 장면이 가슴을 뜨겁게 하는 손들이다.

그런 손을 보면 손을 내밀어 잡아보고 싶다. 열정을 다해 고군분투하는 손에는 손뼉을 쳐주고 싶고, 이마의 땀을 훔치는 손에는 힘주어 악수를 하고 싶고, 삶의 한가운데서 방황하는 손에는 응원의 하이파이브를 쳐주고 싶다. 그뿐이 아니라 눈물을 닦는 손에는 내 손을 포개어 주고 싶다.

특히 손 중에서 깔끔하게 다듬어진 하얀 손, 손가락이 가늘고 길어 보기에 예쁜 손은 우리 어머니 손 같아서 이상하게도 더 애정이 간다. 마치 피아노 건반을 두들겨 금방이라도 선율이 흘러나올 것 같아 기대가 되기 때문이다. 굴곡진 손들 앞에서는 내 손이 부끄러워진다. 누군가에게 관심을 받고 희망이 되는 손을 가진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내 손이 어디에 내밀어도 부끄럽지 않은 떳떳한 손이기를 염원한다.

몸과 생각이 영원할 것 같았던 어머니의 건강이 전만 못하다. 요즘 들어 부쩍 늘어 가는 주름과 검버섯은 마음을 아프게 한다. 세월의 흐름은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자연의 섭리라고 하지만 마음 같아서는 어머니가 천만년을 사실 수 있다면 쌍수를 들어 좋아하고 싶다. 특히 가족의 생계와 자식들의 교육을 위해 평생을 받친 어머니의 손이 눈에 띄게 야위고 주름져 있는 모습을 차마 눈 뜨고 볼 수가 없다. 곱고 부드럽던 손이 세월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는 것을 본다는 것은 자식의 도리가 아닌 것 같아서 마음 한구석에 슬픔의 그림자가 드리워온다.

세상에는 아름다운 손이 많다. 잠든 손주의 머리를 쓰다듬는 할머니의 주름진 손, 대장간에서 호미와 삽을 만드는 상처투성이가 된 대장장이의 손, 논과 밭을 일구는 농부의 투박한 손, 손을 모아 불우이웃을 위해 김장을 하는 봉사의 손,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가족을 위해 빨래를 하고 밥을 짓는 아내의 손들은 피부 결이나 손 모양으로는 턱도 없겠지만 이런 손이야 말로 아름다움은 물론 존경스런 손이다.

여기에 또 하나 아름다운 손이 있다. 그것은 소리를 내어 감동을 전하는 손이다. 얼마 전 가곡 발표회에 간 일이 있었다. 말미에 30여 명의 장애우들이 무대 위로 오르더니 반주에 맞춰 수화로 노래를 구현하는 것이었다. 시간이 흐르자 누군가 노래를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합창이 되는 순간이었다. 관객들의 노래와 장애우들이 만들어 내는 수화가 합쳐져서 환상적인 분위와 화음이 어우러지는 노래가 되었다.

그 순간 나는 처음으로 손의 움직임을 눈 여겨 보았다. 그것은 단순한 움직임이 아닌 손이 내는 소리가 되어 내 가슴을 적셨다. 손 움직임인 수화는 소리보다 훨씬 아름답고 감미롭고 따듯했다. 그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손을 보았다. 장애우들의 손은 어떤 멜로디 보다 아름다운 소리를 만들어낸다는 것을 알았다.

피아노를 치는 어머니의 손이 자꾸만 눈에 어른 거렸다. 가슴속에서 절절히 묻어나는 간절함으로 기도하는 어머니의 손! 자식들을 위해 평생을 피아노를 치던 그 손, 희고 눈부시게 아름답던 어머니의 흰 손을 생각하면 눈시울이 붉어지고 가슴이 미어진다.(이 글은 어떤 분의 사연을 재구성한 것임을 밝힌다.)

■ 정성수 프로필

•저서 : 시집/공든 탑. 동시집/첫꽃. 장편동화/폐암 걸린 호랑이 외 다수

•수상 : 세종문화상. 소월시문학대상. 아르코문학창작기금수혜 외 다수

•전) 전주대학교사범대학겸임교수. 전국책보내기본부장

•현) 향촌문학회장. 사)미래다문화발전협회회장. 문인과문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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