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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땅 이야기] 고산의 풍류와 멋을 담은 섬, 보길도
[우리땅 이야기] 고산의 풍류와 멋을 담은 섬, 보길도
  • 이재윤 기자
  • 승인 2018.09.18 14: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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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주간=이재윤 기자] 보길도 취재를 위해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매달 떠나는 섬 취재지만 이번 달은 유난히 들뜬 기분이었다. 더위가 한 풀 꺾인 9월의 첫 주말, 고속도로 휴게소는 여행객들의 들뜬 소음들로 가는 곳마다 북적이고 있었다.

덩달아 들뜬 기분으로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따라부르며 디제이가 들려주는 청취자들의 재미난 사연에 혼자 키득거리며 보길도로 가는 여정을 즐겼다.

◆ 1억원짜리 갯돌 해변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예송리해수욕장이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상록수림과 고운 자갈로 유명한 예송리해수욕장은 여름철 피서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보길도 1번지로 손색이 없다. 더위가 한 풀 꺾인 9월의 첫 주말에도 예송리 해변에는 그 정취를 즐기기 위해 찾는 이들의 발길로 붐빈다.

자갈밭을 따라 길게 늘어선 상록수림 아래서 바닷바람을 맞고 있노라면 물놀이를 잊을 만큼 시원하다. 그늘 아래 가만히 앉아 눈을 감고 귀를 기울이면 고운 자갈들 사이를 쓸어내리는 파도소리와 밀려왔다 밀려가는 파도에 쓸려 자갈들이 부대끼는 소리가 정겹게 귓가에 앉는다.

예송리해수욕장의 자갈들은 오랜 세월 바닷물에 씻겨 동글동글하게 발바닥을 간지럽힌다. 차가운 바닷물에서 입술이 파래질 때까지 놀다가 햇살에 따뜻하게 달아오른 자갈밭에 누우면 온몸에 부드럽고 따스한 갯돌의 온기가 퍼진다.

관광객들 중에는 예송리해수욕장의 고운 자갈을 추억으로 간직하고자 들고 오는 이들도 있는데, 몰래 훔쳐가다 걸리면 1억원의 벌금을 물게 되니 그냥 사진과 눈으로 담아오는 것에 만족해야 한다.

예송리해수욕장을 나와 찾은 곳은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는 통리해수욕장. 이곳은 고운 백사장과 맑은 물빛으로 또한 보길도를 찾는 관광객들이 선호하는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서는 오토캠핑을 할 수 있는데 휴가철이면 백사장 주변으로 길게 텐트촌이 형성될 정도로 오토캠핑족들이 가장 선호하는 곳이다.

통리해수욕장의 백사장의 모래는 밀가루 알갱이처럼 고우면서 마치 콘크리트 바닥처럼 단단하다. 통리해수욕장의 특별한 즐거움은 하루에 두 번씩 보길도와 연결되는 목섬을 건너며 싱싱한 해초와 석화를 채취하는 것이다.

◆ 고산의 풍류와 기개를 따라

보길도를 특별하게 하는 것은 보길도가 지닌 천혜의 자연환경과 함께 보길도 곳곳에 남아있는 고산 윤선도 선생의 자취들 때문이다. 보길도의 차가운 바닷물과 시원한 상록수림 그늘 아래서 충분히 휴식을 즐겼다면 이제 고산 윤선도 선생의 의기를 느낄 수 있는 선생의 자취를 따라가보자.

고산은 병자호란 당시 삼전도의 굴욕에 분기를 참지 못해 다시는 육지에 오르지 않겠다며 제주도로 향했다. 가는 길에 큰 풍랑을 만나 보길도에 도착하게 됐는데 그 수려한 산세와 멋에 반해 스스로 ‘부용동’이라 칭하고 살 곳으로 정했다.

보길도에는 곳곳에 선생과 관련된 흔적들이 산재해 있다. 그 중에서도 세연정은 고산의 멋과 풍류를 잘 보여주는 대표적 유적이다. 조선시대 선비들의 풍류와 기개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세연정은 울창한 숲과 그 아래로 고스란히 하늘과 숲을 담고 있는 연못, 그리고 연못 곳곳에 운치를 더하는 바위들로 멋스러움을 더하고 있다.

선생은 세연정 곳곳에 일일이 이름을 붙여 그 멋스러움을 노래했는데 울창한 숲속에 고즈넉이 자리잡은 세연정 마루에 앉아 잔잔한 호수와 수면에 드리운 숲과 바위, 그리고 하늘빛을 바라보노라면 세상의 번잡함이 씻은 듯 잊혀진다.

세연정을 나와 푸른 들녘을 가로지르는 국도를 따라가다 보면 저 멀리 산중턱에 조그만 암자가 나타난다. 산중턱에 자리 잡아 부용동을 내려다보는 ‘동천석실’은 고산이 가장 사랑했던 곳이기도 한데, 그 의미는 ‘서책을 즐기며 신선처럼 소요하는 은자의 처소’라고 한다. 고산은 이곳에 올라 부용동의 절경을 감상하고 스스로 풍류를 노래했다고 한다.

보길도에는 세연정과 동천석실 외에도 곡수당터, 무민당터, 낙서재터 등 고산의 유적지가 산재해 있고, 선생이 스스로 이름 붙여 사랑한 승룡대, 옥소대, 하한대 등의 바위와 봉우리들이 즐비한데, 선생이 얼마나 보길도의 아름다움에 심취했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 다도해를 한눈에 품다

보길도를 대표하는 볼거리들은 해수욕장과 고산의 유적지 외에도 보죽산, 보옥리 공룡알 해변, 그리고 망끝전망대 등이 있다. 보죽산은 그 특이한 모양 때문에 ‘뾰족산’이라 불리기도 하는데, 마치 푸른 바다를 가르고 금방이라도 나아갈 긋 날렵한 모습이 인상적이다.

보죽산은 보길도에서 다도해의 아름다운 일몰을 감상하기 가장 좋은 장소로 인기가 높다. 굳이 산에 오르지 않아도 전망대가 마련되어 있어, 다도해의 점점이 박힌 섬들을 한눈에 담기에는 보죽산을 따라올 곳이 없다. 이름 그대로 가파른 산세로 오르기는 만만치 않지만, 날씨가 맑은 날 정상에 오르면 제주도까지 한눈에 들어온다고 한다.

보죽산 가는 길에 있는 망끝전망대는 도도해의 일몰을 보기 위해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몰리는 곳이다. 보죽산에 오르는 수고로움을 피하고자 하는 이들이 많이 찾는데, 여기저기 어지러운 낙서들로 눈살을 찌푸리게 해 안타깝다.

보죽산 아래에 있는 공룡알 해변은 마치 누군가 인위적으로 깎아서 옮겨 놓은 듯 바위들이 공룡알을 꼭 닮아 신비로움을 더해준다. 오랜 세월 파도에 씻기고 바람에 깎여 만들어진 공룡알 해변의 바위들을 보고 있노라면 새삼 자연의 위대함을 느끼게 된다.

◆ 땅끝에서 보길도를 추억하다

보길도에서의 짧은 추억을 뒤로 하고 다시 땅 끝에 섰다. 땅끝마을 표지석 앞에서 멀리 바다를 바라보니 떠나온 보길도가 바다 너머로 어른거리는 듯 했다. 아쉬움에 한동안 바다를 바라보며 발길을 떼지 못했다.

민박집을 나서는 기자에게 “내일 전복따기 체험행사가 있는데 그것도 보고 가면 좋을텐데...”라며 말끝을 흐리던 보길도 청년회장의 검게 그을린 미소, 마당에 앉아 금방 따온 홍합을 씻으며 “오늘 저녁에 시원한 홍합국물에 소주 한 잔 대접하겠다”던 민박집 아저씨의 호탕한 웃음이 바다 너머 땅 끝에 선 기자의 발길을 놓아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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