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득과 실을 초월할 때 우리는 영원한 자유인이 된다”

김선국 박사 / 기사승인 : 2018-09-20 15:3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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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 박사 김선국의 노자(老子) 이야기(21)

[일요주간=김선국 박사] 우리는 이 세상을 넘어가기가 쉽지 않다. 세상에 속하여 먹고 자고 숨쉬고 햇볕을 보며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의미를 찾기 때문이다.


우리 생존의 대부분은 타인들의 수고와 도움에 의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 모두에게 빚을 지고 있지만 그 모든 것들에 의해서 속박받아서는 안 되는 자유로운 존재들이 돼야 마땅하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는 보이지 않는 에너지에 의해서 서로 연결돼 있다. 내가 일으키는 한 가지 생각조차도 세상에 그 자취를 남기고 내가 한 작은 행위도 온 우주는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세상에 속박돼 이 세상의 노예로 사는 삶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우리는 무한한 존재들인데 좁은 몸에 갇혀서 이 몸 하나를 위해서 살아가느라 시간과 노력을 모두 허비하고 있다.


이 세상을 넘어가는 것을 모두가 꿈꾸지만 대부분은 세상의 종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 현 실이다. 이 현실에서 자유롭기를 원하지만 눈에 보이는 물질세계의 지배를 받으며 살아가 고 있다.


나아가 스스로 만든 한계와 개념에 갇혀서 자신의 진정한 존재 의미도 모르고 살아간다.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노자의 말을 들어보자.


◆ 잃음과도 같아져라, 同失


세상은 온갖 주장으로 가득하다. 종교는 자신들의 교리가 최고라고 늘 주장하고, 정치는 자신들의 정책이 나라를 진정으로 위하는 최고의 길이라고 이야기한다. 윤리도덕은 어기면 안되며 이것을 위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노자는 그 모든 것은 부질없는 헛소리에 불과하다며 말을 아끼라고 한다.


希言自然 (희언자연)


말을 아끼는 것이 자연스럽다.


故飄風不終朝 (고표풍불종조)


그것은 회오리 바람도 아침나절을 넘기지 못하며


驟雨不終日 (취우불종일)


폭우도 한나절을 넘지 못하기 때문이다.


자연은 말하지 않는다. 말을 아끼는 것이 자연이라고 한다. 성인은 그런 속성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노자는 말해줘도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말을 줄이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한다.


노자는 세상을 위해서 엄청난 인내와 사랑으로 5000자로 압축해서 도와 덕을 풀어냈다.


孰爲此者 (숙위차자)


무엇이 이와 같은가?


天地 (천지)


천지이다.


天地尙不能久 (전지상불능구)


천지도 오래가지 못하는데


而況於人乎 (이황어인호)


하물며 사람이랴?


비가 오고 천둥치는 것도 한 나절이요 인생의 행과 불행도 영원하지 않다. 천지자연도 변화가 무쌍하며 사람의 삶도 변화무쌍하고 영고성쇠하다는 것은 우리가 익히 경험하는 것이다. 모두가 평온하고 행복하기만을 원하지만 삶의 복잡다단함은 우리를 그저 내버려두지 않는다.


부처는 그래서 일체개고(一切皆苦), 모든 것이 고통이라고 했다. 그 고통과 고뇌에서 벗어나는 것이 우리 모두의 참된 소망이지만 이런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故從事於道者 (고종사어도자)


그러므로 도를 추구하는 사람은


道者同於道 (도자동어도)


도(道)라는 것이 도(道)와 같아져야 하고


德者同於德 (덕자동어덕)


덕(德)이라는 것이 덕(德)과 같아져야 하며


失者同於失 (실자동어실)


실(失)이라는 것이 실(失)과 같아져야 한다.


우리가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는 길은 요원하지만 그래도 도와 같아지고 덕과 같아지고 실과 같아져야 한다고 노자는 말한다. 도와 덕은 당연히 좋은 것이지만 실은 나쁜 것이라서 모두가 싫어하는 것이다. 그 싫어하는 것과도 하나가 되는 것, 그것이 노자가 말하는 자연이다.


同於道者道亦樂得之 (동어도자도역락득지)


도와 같아져야 된다는 것은 도 역시 그를 얻는 것을 즐겨하고


同於德者德亦樂得之 (동어덕자덕역락득지)


덕과 같아져야 된다는 것은 덕 역시 그를 얻는 것을 즐겨하고


同於失者失亦樂得之 (동어실자실역락득지)


실과 같아져야 된다는 것은 실 역시 그를 얻는 것을 즐겨하는 것이다.


信不足焉有不信焉 (신불족언유불신언)


믿음이 부족해서 불신함이 있는 것이다.


도와 같아져서 도를 얻는 것을 즐겨하고 덕과 같아져서 덕을 얻는 것을 좋아하고 실과 같아져서 실을 얻는 것을 즐겨하는 경지에 이르면 그저 모든 것이 자연이다. 천지자연과 하나 되는 것이 우리가 진정 무위의 도를 성취하는 것이다.


그래서 잃고 얻음을 초월할 때 우리는 영원한 자유인이 된다.


노자는 실을 얻는 것도 즐겨하라고 말했지만 사람들의 믿음이 부족해서 불신할까봐 한줄을 더 넣었다.


굽은 나무처럼 살아가고 잃음과 상실을 그저 도와 덕의 일부로서 받아들인다면 이 세상의 그 무엇이 우리를 힘들게 할 것인가. 우리가 삶을 살면서 오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가는 그대로 놓아버리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그 안에 거하기를 바라는 것이 도이며 자연이다.


여기서 다른 관점에서 도와 덕과 실을 바라보자. 도는 거룩한 것이고, 덕은 도가 폐하여졌을 때 나오는 것으로 보통의 인간들이 최고로 추구하는 것들이다. 실은 도와 덕이 없어진 상태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 세상은 도덕이 상실된 실의 세계이다. 이 세상은 약육강식의 동물 세계보다 더 잔인하다. 상대를 거꾸러 뜨려야 하는 것이 여기 이 지구에서의 삶이다.


이 지구는 신성(神性)이 아닌, 악(惡)이 다스리는 잃어버려진 곳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여기는 천국같은 기쁨, 사랑, 평화가 없는 곳이다. 여기 이곳은 갈등과 반목이 가득한 곳이다. 매일 매스컴에서 보는 것들은 보고 듣기에 너무나 끔찍하고 섬뜩한 것들로 가득하다. 이런 잃어버린 세계를 떠나서 조용히 혼자서 사는 것을 꿈꾸지만 지금 우리는 그 모든 것과 함께 할 수 밖에 없다.


이 실의 세계, 어둠과 절망의 세계를 거부하지 말고 받아 들이라는 것이 노자의 생각이다. 이 더러움과 사악함의 세상에서 우리는 작은 불빛으로 이 세상을 밝히면 된다.


그것이 성인들이 추구하는 것이다. 진리를 잃어버리고 인의를 잃어버린 이 세상에서 우리는 인간임을 거부하지 않고 인간 존재의 나약함을 받아들여서 그 세계를 초월해 나가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본래의 존재 모습으로 가는 유일한 방법이다. 인간임을 거부하지 않고 이 세상을 외면하지 않고 자신의 나약함을 부인 하지 않고 이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때 세상의 탁함과 더러움에 의해서 더럽혀지지 않는 존재가 될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세상을 넘어서 가야 한다. <다음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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