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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정대부 병서(幷棲) 시비(詩碑) 제막식
통정대부 병서(幷棲) 시비(詩碑) 제막식
  • 조무정 기자
  • 승인 2018.11.13 15: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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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 남씨 밀직공 수의공파 23세 병서 남석하 공(公;1809~1897)의 시비 제막식 모습.

[일요주간=조무정 기자] 지난 11일 경북 군위군 소보면 복성리 271번지에서는 김영만 군위군수가 참석하고 문중 화수회 회원과 외지 내빈을 포함하여 300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영양 남씨 밀직공 수의공파 23세 병서 남석하 공(公;1809~1897))의 시비 제막식이 있었다.

병서 공의 「병서문집」 「고모담(孤慕潭) 12영(詠)」 열 두 편의 7언 한시 중 세 번째 시, ‘조양목적(朝陽牧笛)을, 그 자리에서 출토된 자연석에다 시비의 글로 새겼다.

시비 자체 크기가 가로(폭) 7자, 세로(높이) 9자, 4.5톤 무게로, 단일 시비 규모로는 국내 최대의 규모이며, 풍광이 아름다운 위천의 ‘고모담’을 바로 앞애 두고 위치해 있어 향후 군위군의 명소로 발돋움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通政大夫(통정대부) 幷棲 南 錫 厦 (병서 남 석 하 : 1809~1897)

公(공)은, 신라 경덕왕 때 賜姓(사성) 남씨 시조 英毅公(영의공) 諱(휘) 敏(민), 고려 명종 대 密直公(밀직공) 휘 君甫(군보)를 1세로, 안동으로 이거하신 장남 문하시중 公若(공약)을 2세로, 7세 敏生(민생)의 3남 義良(의량) 수의공을 8세로, 14세 직계조 진사 魯厓公(노애공) 太白(태백)을 이어내려, 일직면 망호리(안망실)에서 복성리로 이주하신 입향조 21세 밀직공 수의공파 道一(도일)의 손자이다.  

4권 2책으로 된 「幷捿文集(병서문집)」에는 중국 당송 8대가인 柳宗元(유종원)의 선승천명(選勝擅名)의 「鈷鉧潭(고무담)」과 연관하고, 齠齡(초령)의 나이 이후 父(부) 漢秀(한수) 공과 거닐고 노닐었던 강변 이곳 옛 기억을 되살리며 훗날 孤露(고로)의 절절한 그리움과 孺慕(유모)의 뜻을 담아 강의 沼(소)를 「孤慕潭(고모담)」으로 명명했다고 하였으며, 「孤慕潭(고모담)」 ‘세 큰 글자’는 ‘雲汀’(운정 李鶴年이학년-비안 현감)이 썼다고 「孤慕潭 有感(고모담 유감)」 5언 시에 나와 있다.

또한 「孤慕潭十二詠(고모담 12영」 7언 한시 12수에는 150여 년 전 고모담과 주위 절경의 4계 풍광이 화폭에 그린 듯 선명하게 읊어져 있고, 병서문집에는 1970년대 인기 라디오 드라마 ‘전설 따라 삼천리’에 방송되었던 ‘복성리와 구샘’에 얽힌 사연의 소재가 된 「福泉賦(복천부)」가 있으며, 「楫里(집리)」에서 「福星里(복성리)」로의 개명을 위해 임백윤(任百潤) 군위 현감에게 올린 ‘請文(청문)’과 승인 ‘答題(답제)’가 있다.

밀직공 후예로는 조선 세조 대 천하 명장 南怡(남이) 장군, 숙종 대 영의정 藥泉 南九萬(약천 남구만)과 명종 대 退溪 李滉(퇴계 이황) 선생 문하의 안회(顔回)로 불리며 훗날 스승의 護喪(호상:장례위원장)을 맡았던 안동의 13세 부사공파 賁趾 南致利(비지 남치리), 숙종 대 16세 수의공파 대사간 孤巖 南天漢(고암 남천한) 외 많은 분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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