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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부국강병 해양강국’ 일궈낸 ‘통영 재조명’
조선의 ‘부국강병 해양강국’ 일궈낸 ‘통영 재조명’
  • 소정현 기자
  • 승인 2018.11.23 16: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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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삼도수군통제영’ 지은이 장한식(張漢植)

● 통영! 지방 도시 이상의 중량감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남해 포구에 위치한 통영은 지방 도시 이상의 무게를 지녔다. 통영이란 이름의 유래가 된 삼도수군통제영 덕분이다. 수군통제영과 그곳을 다스렸던 통제사들은 조선인의 삶과 조선왕조의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서울의 연구자들은 별로 주목하지 않았지만 조선 후기, 통영에 위치했던 삼도수군통제영이 수행한 시대적 역할과 파급력은 크고도 깊었다. 그랬기에 지금은 한적한 관광도시, 수산도시에 불과한 통영이지만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던 풍성한 사연들이 넘쳐나도록 담겨 있다.

지난 11월 6일 산수야에서 발행한 '바다 지킨 용의 도시 삼도수군통제영'(장한식 지음)은 지금껏 소홀히 다뤄졌던 통제영의 역사적 중량을 복원하고 주변부에 머물렀던 통영과 해양의 중요성을 재조명한다.

남해 바닷가에 삼도수군통제영이 생긴 계기는 조일전쟁(임진왜란)이었다. 대전란을 경험한 이후 조선왕조는 생존본능에서 삼도수군통제영이란 계획도시를 건설했고, 일본의 재침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강력한 군영체제를 오랫동안 유지했다.

베네치아인들이 이룩한 해상경영의 노하우는 르네상스 시대를 거치며 포르투갈과 스페인으로 전수됐고, 15세기 들어 유럽 각국은 앞다퉈 신대륙을 발견하고 식민지를 확대해 나갔다. 이후의 근세사는 해양화를 먼저 이룬 서양(유럽과 미국)이 육지에 갇혀 지낸 동양과 여타 지역을 리드해온 역사였다.

반면 일본은 바다를 대하는 자세가 한국과 중국과는 달랐다. 조선왕조가 섬나라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한 첫째 원인도 바닷길을 막고 국부민강(國富民强)의 길을 스스로 차단한 데서 찾아야 한다. 다만 남해바닷가에 통제영이란 작은 창(窓)이 열려 있었기에 조선의 해양문화는 완전질식을 피할 수 있었다.

물산이 풍부한 해변에 많은 군력이 집중되면서 통제영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으로 큰 비중을 갖게 됐고, 역으로 한양의 중앙정치에까지 실질적 파워를 투사할 수 있었다. 300년 통제영 역사에는 208대에 이르는 삼도수군통제사들의 풍성한 에피소드가 담겨 있기도 하다.

이 책은 ‘바다를 버린 나라’ 조선에서 해양문화의 창(窓)이자 요람으로 기능했던 삼도수군통제영의 역사와 문화를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새롭게 조명하고 굴절됐던 한반도 해양문화의 회복을 시도하며 갯내음 물씬 풍기는 통영의 역사에 독자들을 초대하고 있다.

● 앞선 출간 ‘이순신 수국 프로젝트’

물 위에 뜬 나라’가 있었다. 한반도에 역사가 생겨난 이후 가장 엄혹했던 시절, 버려진 해변과 섬, 바다 위로 쫓겨난 백성들로서 이룩한, 작지만 굳센 공동체였다. 조선국 안의 또 다른 나라, 가칭하여 ‘수국(水國)’이었다. 조일전쟁(임진왜란)이라는 일대 혼란기에 불꽃처럼 생겨났다가 종전과 함께 왕조체제 안으로 녹아들어간 ‘군·산·정(軍·産·政)복합체’가 곧 수국이다.

수국을 세운 사람은 이순신이다. 이순신은 ‘바다를 버린 왕국’ 조선에 해양의 가치를 일깨워 주었다. 그가 세우고 아꼈던 ‘물나라, 수국’은 종전 이후 삼도수군통제영으로 계승되며 우리 해양문화의 명맥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주었고, 훗날 식민지로 조락했던 그의 조국이 해양강국으로 재기하는데 있어 정신적 자부심의 원천이 되었다. 저자는 이순신과 수국에 관련된 내용을 저자의 ‘이순신 수국 프로젝트’ 책에 자세히 소개했다.

바다 지킨 용의 도시 삼도수군통제영'은 저자가 2009년에 발간한 '이순신 수국(水國) 프로젝트'의 후속편인 셈이다. '이순신 수국 프로젝트'는 1592년 조일전쟁이 발발하고 이듬해 충무공이 삼도수군통제사가 된 이후 ‘한산도(정유재란 시기에는 고금도) 통제영’을 중심으로 서남해 일대의 많은 섬과 해변에 나라에 비견할 만한 수국(水國)체제를 구축해 일본군과 대결했다는 ‘분석적 사실(史實)’을 기록한 책이다.

● 통영의 근세사! 일기 쉽게 다룬 대중도서

통제영 300년사에 대한 기록이 미흡했다는 아쉬움에서 저자가 9년의 세월이 지나 다시 꾸민 책이 '바다 지킨 용(龍)의 도시 삼도수군통제영'이다. 이 책은 전문 연구서가 아니고 통영의 근세사를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볼 수 있게 꾸민 대중도서이다.

저자는 수백 년 전 조선왕조가 남해 바닷가 외진 포구에 강력한 군진을 설치한 시대적 배경을 이해하고, 그렇게 생겨난 군영체제가 역으로 조선인의 삶과 조선왕조의 역사에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을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썼다.

용을 닮은 땅 두룡포(頭龍浦)…‘우두머리 용의 포구’에 바다를 지키는 용들이 넘쳐났으니 통영은 ‘용의 도시’가 분명하였다. 중앙권력이 제대로 미치지 못하는 해변에서 왕처럼 군림하였던 ‘두룡포의 주인’ 삼도수군통제사(三道水軍統制使)는 해왕(海王), 또는 용왕(龍王)에 비견될 정도로 위세가 당당하였고 서울의 궁궐을 제외하고는 조선팔도 어떤 도시보다 웅장한 100여 동의 관아건물군을 자랑했던 삼도수군통제영은 용궁(龍宮)에 비유할 만하였다.(본문 중에서)

삼도수군통제영(三道水軍統制營)은 ‘삼도수군통제사의 군영(軍營)’을 뜻하는 만큼 통제영의 역사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통제사(統制使)란 직책이 설치된 경위부터 살펴야 한다. 경상전라충청, 삼도(三道)의 수군을 통할하는 관직인 통제사가 첫 등장하기는 조일전쟁(임진왜란) 와중인 1593년 음력 8월의 일이다. 1592년부터 7년간 지속된 조일전쟁의 시말(始末)은 수없이 다뤄져 식상할 정도지만 통제영이 출현하게 된 시대배경이란 점에서, 수군의 활약상을 중심으로 새롭게 조망해 볼 필요성이 있다.(본문 중에서)

유성룡은 징비록(懲毖錄)에서 “적들은 수륙 양면으로 군사를 합쳐 서쪽을 치려했으나 이 싸움으로 그들의 위세가 크게 꺾였다. 소서행장(小西行長)이 평양을 얻었으나 형세가 외로워 더 진격하지 못했다. 우리나라가 보존된 것은 오로지 이(한산대첩) 때문이었다.”라고 적었다.(본문 중에서)

두룡포 동쪽 견내량 수로의 중요성은 조일전쟁 때 입증됐다. 이순신이 견내량을 틀어쥐고 있는 동안 일본 해군은 거제도 서쪽을 넘보지 못했으니 이곳이야말로 해상의 문경새재였던 것이다. 두룡포 서쪽에 위치한 착량(鑿梁)은 통영 시내와 미륵도 사이를 가로지르는 통영운하의 옛말이다. 조일전쟁 이전까지 이곳은 밀물에는 바닷물이 통하고 썰물이 되면 육지로 이어지는 가느다란 여울목이었다.(103페이지)

삼도수군통제영은 통영시의 본질이요 통영관광의 핵심이다. 삼도수군통제영을 알지 못하고 통영시를 관광한다는 것은 수박의 속을 버려두고 겉만 핥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바다 지킨 용의 도시 삼도수군통제영’은 독자가 통영을 제대로 여행하고 즐기게 하는 길잡이 책이다.

■ 지은이 장한식(張漢植)은

통영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신문학과(현 언론정보학과), 동(同)대학원을 졸업하고 1991년 KBS 기자로 입사해 사회부와 정치부 등 여러 부서를 거쳤고 베이징특파원을 지냈다. 이어 뉴스제작부장과 경제부장, 사회부장, 해설위원, 편집주간, 전략기획국장 등을 역임했다.

임진왜란의 격전지 견내량과 한산도 앞바다가 바라다 보이는 통영시 용남면의 해변마을에서 태어난 저자는 2009년 ‘이순신 수국(水國) 프로젝트’'를 저술하는 등 대한민국 해양사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그 후속편으로 지금껏 주변부에 머물렀던 통영과 해양의 중요성을 환기하는 차원에서 '바다 지킨 용의 도시 삼도수군통제영'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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