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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옥 칼럼] ‘사색의 계절 만추(晩秋)’
[최영옥 칼럼] ‘사색의 계절 만추(晩秋)’
  • 최영옥 칼럼니스트
  • 승인 2018.11.23 16: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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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늦지는 않았을까
▲ 최영옥 시인
▲ 최영옥 시인

참으로 ‘외로움이 엄습하는’ 사색의 계절에

‘알수 없는 슬픔’ 하나씩 숨기고 사는 만추

자신에 실망하는 계절 그러나 낙심친 말자

● 나를 부른 것은 봄날, 그를 찾은 것은 겨울날

요즘 주위를 둘러보면 노랑과 빨강 그리고 주황 등의 총 천연색으로 옷을 갈아입은 나뭇잎들이 아름답기 그지없다. 어느 아파트 단지 할 것 없이 가을이 무르익어 아름답지 않은 곳이 없다. 무덥던 지난 여름을 생각하면 무색하기만 하다. 베란다에 홀로 서서 상념에 잠긴다. 도로가에 줄지어 서 있는 노란 은행나무를 내려다보며 차를 마시는 중, 나희덕 시인의 ‘너무 늦게 그에게 놀러간다’는 시가 문득 생각난다.


우리 집에 놀러와 목련 그늘이 좋아 / 꽃 지기 전에 놀러 와 / 봄날 나지막한 소리로 전화하던 그에게 / 나는 끝내 놀러가지 못했다.

해 저문 겨울날/너무 늦게 그에게 놀러간다.

나 왔어/문을 열고 들어서면 / 그는 못 들은 척 나오지 않고/ 이봐 어서 나와 /목련이 피려면 아직 멀었잖아 / 짐짓 큰소리까지 치면서 문을 두드리면 / 조등(弔燈) 하나..하략<나희덕 시 ‘너무 늦게 그에게 놀러간다’에서 옮김>


문학평론가 신형철의 말을 옮겨 본다. 「그가 나를 부른 것은 봄날이었으나 내가 그를 찾은 것은 겨울날이었다. 그 시간 사이에 그의 죽음이 있다. 아직 봄이 오려면 멀었으니 목련이 피어서는 아니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는 어쩌자고 때 이른 목련을 요절처럼 피워놓고 이리 묵묵부답인가.」

아무렇지도 않은 척 “이봐 어서 나와 목련이 피려면 아직 멀었잖아.” 그렇게 말을 하는 순간 평범한 한 시인의 내부에서 고막이 찢어 질듯 한 천둥소리가 울려 나오지 않았을까? 그리고 그 슬프고 아픈 천둥소리를 감내하느라 눈물까지 글썽이지 않았을까.

속은 깊은 풍랑을 숨기고 있으면서 겉으로는 그저 찰랑찰랑 넘칠 듯 평온한 물 잔의 물처럼 우리 모두 그런 알 수 없는 슬픔 하나씩 숨기고 사는 이 가을... 가을은 참으로 서러운 계절이긴 한 것 같다.

이유 없는 슬픔이나 외로움이 엄습하고 긴 세월 내내 잊고 있었던 그리운 사람이 떠오르고 말이다. 아득히 멀어져 간 학창시절의 벗들이 아른거리는가 하면, 아름다운 청춘시절 잠시 차 한 잔 나누었던 스쳐지나간 인연들이 그리워지기도 한다.

가을은 그러한 계절이다. 그리고 눈물들의 기폭제가 되어버릴 풍랑들을 숨기고 사는 우리들의 내면은 어쩌면 슬픔으로 가득 찬 눈물샘인지도 모르겠다.

▲ 주위를 둘러보면 노랑과 빨강 그리고 주황 등의 총 천연색으로 옷을 갈아입은 나뭇잎들이 아름답기 그지없다.
▲ 주위를 둘러보면 노랑과 빨강 그리고 주황 등의 총 천연색으로 옷을 갈아입은 나뭇잎들이 아름답기 그지없다.

● 너무 늦지 않게 사랑하는 사람에게 안부를!

사랑하는 사람에게 안부를 전하자. 너무 늦지 않게 말이다. 소원했던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 따뜻한 안부를 물어봐 주자. 언제 밥 한 번 먹자는 실없는 약속 말고, 확실한 약속을 잡아 눈빛 마주보며 가슴 나누며 밥과 차를 나누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언제 한 번 봐요 하는 형식적인 인사치레 말고 좀 더 견고한 약속을 오늘 바로 전화로 잡아 봐야겠다. 사소한 것 같지만 이 얼마나 소중하고 고마운 일인가. 그리 많은 시간이 우리에게 남은 것은 아니지 않은가.

▲  이 가을을 버려두지 말고 너무 늦지 않게 가을 속으로 들어 와 달라고 하는 손짓이다.
▲ 이 가을을 버려두지 말고 너무 늦지 않게 가을 속으로 들어 와 달라고 하는 손짓이다.

오래 머물러 아름답고 훈훈하기보다 떠남이 더 익숙한 가을이다. 그리하여 더 서럽고 애잔하고 안타까운 계절이다. 연보랏빛 들국화도 저리 바래어 가고 아름다운 단풍도 얼마 지나지 않아 시나브로 떨어져 내릴 것이다.

앙상한 겨울나무의 스산한 모습이 찾아오기 전에 이 가을 잘 누리면 좋겠다. 연초에 계획하고 다짐하고 꿈꾸었던 희망들이 두어 달 남겨놓은 현시점에서 뒤돌아 볼 때, 허무한 마음에 또 한 번 자신에게 실망하는 계절이 가을이다.

그렇지만 낙심하진 말자. 아직 두어 달 남았으니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자세를 갖는 것이 더 현명한 일이겠다.

놀이터의 물든 잎들이 오늘따라 더욱 현란한 모습으로 손짓을 한다. 이 가을을 버려두지 말고 너무 늦지 않게 가을 속으로 들어 와 달라고 하는 손짓이다.

필자의 졸시 통과의례를 조용히 낭송해 본다.

통과의례

아프지 않고 지나갈 수 있을까

그대 앞에서 하고픈 말 다 못한 서러움

그저 서성이다 돌아오는 발걸음처럼

색깔을 버리고 향기를 버리고

모습을 버린 11월

쫒기듯 허둥거리며

나를 밀어내는 당신은 누구신가

바람과 공모하여 노을조차 흐려지는

당신은 정녕 누구신가

온 몸으로 사랑했던 그 날

다시 뜨겁게 사랑할 그 날

봄을 기다리기 위한

통과의례일 뿐이야

■ 프로필

경북 경주 출생.

한국예총 “예술세계”로 등단.

시집 ‘바람의 이름’ 외 2권.

공저에세이 ‘3인의 칸타빌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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