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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골프 전문화가 김영화 화백 ’골프 속 내면의 세계‘ 힐링과 사색의 여유
[인터뷰] 골프 전문화가 김영화 화백 ’골프 속 내면의 세계‘ 힐링과 사색의 여유
  • 소정현 편집인
  • 승인 2018.12.27 09: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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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 전문화가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김영화 화백(상편)

무령왕 영정제작으로 화단에서 주목받는 중견작가

평창동계올림픽 공식화가 참여 국제적 위상 높여

[일요주간 = 소정현 편집인] 골프 전문화가라는 새로운 지평을 연 김영화 화백의 인터뷰를 독자 제현들과 함께 공유하는 지면을 마련했다. 골프대회 우승자에게 도자기 트로피를 선사하여 이색바람을 일으킨 김영화 화백! 김영화 화백은 백제 시대의 전성기를 활짝 열었던 무령왕 영정을 제작하여 화단에서 주목받고 있는 중견작가이기도 하다. 실용 예술에도 눈을 돌려 대중들과 생활 속의 공감대를 넓히고 있는 김영화 화백의 휴먼적 감동 예술스토리를 상하편으로 소개한다.(편집자 주)

골프 전문화가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김영화 화백
골프 전문화가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김영화 화백

백제시대 대표적 통치자 무령왕 영정을 제작한 것으로 알고 있다. 왕의 영정은 아무나 참여할 수 없으며, 고증도 매우 엄격한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또한 영정 제작에 앞서 무령왕 혈육으로 전해지는 곤지대왕을 형상화 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일련의 과정들을 종합하여 그 의미의 각별함을 종합하여 달라.

◣ 표준 영정은 치밀한 고증과 작가의 표현력이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 것이며, 작가의 창의성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우량 문화유전자인 전신화(傳神畵) 양식을 복원시켜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오랜 시간을 요구된다.

무령왕은 40세에 왕위에 즉위하여 62세에 타계하기까지 다양한 시기의 얼굴을 그릴 수 있지만 이미 반신의 동상이 제작되어 있는 만큼 동상과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58세 전후의 풍부한 경륜과 원숙함이 묻어나는 얼굴을 그리고자 하였다. “삼국사기에는 키가 8척이며 무령왕의 얼굴이 그림처럼 아름답고, 성품이 인자하고 너그러워 많은 백성이 따랐다고 한다”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백제의 복식과 관(冠)에 대해서는 삼국사기와 구당서 등 중국측 기록에 자세한 설명이 있으며, 왕은 오라관에 금제간식을 사용하고, 자주색의 소매가 큰 두루마기를 입고 푸른 비단 바지에 흰 가죽 띠를 두르고 검은 가죽신을 신었다고 서술하고 있다. 이에 세세한 사항은 12차 심의위원들의 심의 고증 과정을 거치면서 수정 보완하고 3여년을 거쳐서 완성되었다.

특히 무령왕의 의관인 복식뿐만 아니라 의자의 높이도 여러 차례 심의를 거쳐 진행하였으며 왕의 용안은 백제인의 특징인 남방계와 북방계가 섞여있는 중간형으로 제작하였다. 이렇듯 무령왕은 충청남도 공주시에서 주관하고 문화관광부에서 지정한 국가 심의위원들의 심의를 바탕으로 진행된 표준영정이다. 이 표준영정이 제99호로 지정되어 국가의 보물이 된 것이다.

백제시대의 대표적 무령왕 영정은 김영화 화백의 산고끝 역작의 대결실이다. 국가공인 표준영정 제99호로 지정.
백제시대의 대표적 무령왕 영정은 김영화 화백의 산고끝 역작의 대결실이다. 국가공인 표준영정 제99호로 지정.

제가 처음 그림 곤지왕은 백제 곤지왕 네트워크에서 의뢰하여 일본 아스카지역에 곤지왕을 모시고 있는 신사에 기증되어 전시되어 있다. 곤지왕은 정재수 작가가 ‘곤지왕’이라는 소설을 두 편 제작하면서 꿈에 나타난 상을 전해 듣고 그렸다. 당시 저는 골프공에 사람들의 얼굴을 수천 개 그리고 있었기 때문에 그 기회가 주어진 것 같다.

그런데 이야기를 바탕으로 그린 곤지왕은 무령왕 동상과 닮아 있어서 일본에 있는 아스카 주민들은 흡족해 하였다. 하지만 이번에 무령왕을 그리고 난 뒤 생각해보니 고증을 거치지 않은 점과 표현기법도 상이한 점을 고려해 보면 아쉬운 점이 없지 않다.

이렇듯 왕의 영정은 아무나 그릴 수 없으며 철저한 고증이 뒷받침이 되어야 하며, 표현 기법도 전통기법에 의한 세밀한 작업을 요하므로 연구를 통한 충분한 시간을 두고 그려야 나중에 후회가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무령왕은 3여년 시간을 두고 그렸기 때문에 그나마 고증과 여러 가지의 아쉬운 부분을 커버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김영화 화백는 예술인 집안 가족으로 알려진다. 부친과 숙부, 조부와 동생 모두 명인 사기장(沙器匠) 출신 아닌가? 가족의 이력에 대해 짧게 말씀하여 달라. 덧붙여, 가족과 혈육들이 본인의 작품 세계에 어떠한 영향을 미쳐왔는지? 약술하여 달라.

2012년 작고하신 아버지 도봉 김윤태(무형문화재 사기장 13호)씨
2012년 작고하신 아버지 도봉 김윤태(무형문화재 사기장 13호)씨

◣ 저의 집안은 4대가 내려오는 도예가의 맥을 이어가고 있다. 2012년 작고하신 아버지 도봉 김윤태(무형문화재 사기장 13호)씨는 ‘가마 제작기술 국내 최고’ 사기장으로 조선 후기의 전통적 생산양식에 따른 모든 자기 제작 과정을 전수한 분으로 자기 분야 사발류 기술을 보유한 장인이셨다.

아버님은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의 국보가 된 이도다완 등 현재 문헌으로 남아 있는 다완 30여 종을 완벽하게 재현했다는 평가를 받는 독보적 재원이셨다. 부산 기장에 상주요를 설립, 평생을 전통 장작가마에서 도자기를 빚어낸 아버님도 조실부모하여 10대부터 도자기에 그림을 그리기를 시작으로 생계를 유지하며 조선 후기 자기를 복원하는 데 혼신의 노력을 하신 분이다.

윗대 선조들은 생활자기를 빚는데 주력을 해 왔다면, 아버님은 오직 전통자기를 복원하는데 초점을 맞춘 것이 결국 일가를 이룬 것이라 생각된다. 친동생(김영길 무형문화재 사기장 13호)도 일본 아리다 요업대학을 졸업하여 현재 동부산대학에서 후학들을 지도하면서 전통도예에 대한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골프사계. 사계절의 아름다운 골프장은 화폭에서 춤을 추고 있다.
골프사계. 사계절의 아름다운 골프장은 화폭에서 춤을 추고 있다.

사실 저도 어린 시절 아버님 도예공방에서 흙을 만지면서 자라나 도예인이 되고자 했지만 아버님이 일언지하 도공의 딸이지만 그림에만 전념해야 한다고 해서 도자기 제작은 포기하였다. 그 미련 때문에 지금도 모든 작품에 토분을 섞어서 쓸 만큼 도자 흙에 대한 애착심을 가지고 있다. 지금까지 그림 작품의 물감도 천연재료를 고집하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골프 전문화가 대변신 동서양 화풍 자유로운 접목

우승선수 전통적 우아함이 깃들인도자기 트로피

김영화 화백은 평창동계올림픽 범국민운동본부 문화위원장 및 공식화가로 참여한 것으로 알고 있다. 벌써 1년이 다가온다. 당시의 흥분과 설렘을 소급하면서 감흥과 보람을 총괄적으로 소회하면서 만끽하여 달라.

◣ 2018평창동계올림픽은 전 세계의 사람들을 스포츠로서 하나로 융합한다. 2018동계올림픽이 시작되기 몇 개월 전 내가 살아 있는 동안에 동계올림픽을 한국에서는 다시는 보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에 평창동계올림픽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였고 기도 중에 많은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해 받았다.

늦게 시작한 만큼 짧은 기간에 다수의 그림을 그려야 했기 때문에 밤잠을 설쳐가며 색을 칠하기도 할 만큼 몰입해서 ‘원융회통’의 둥근 통일이 담긴 우주적인 올림픽 그림을 그려냈다.

분채를 여러 차례 칠해서 색을 발색시킨 것이라 팔이 떨어질 만큼 통증을 호소하기도 했다. 평창동계올림픽의 각 종목을 넣어서, 서양적 화려한 색채 속의 동양적 선이 가미된 하나 된 열정은 삼태극을 의미하며 하나로 화합된 작품으로 에너지가 넘치는 그림이라고 높은 평가를 받았다.

2008년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김영주골프 여자오픈에서 정상에 오른 유소연 선수의 도자기 트로피는 김영화 화백이 손수 제작한 것이다.
2008년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김영주골프 여자오픈에서 정상에 오른 유소연 선수의 도자기 트로피는 김영화 화백이 손수 제작한 것이다.

평창동계올림픽이 개막되던 날은 직접 평창에 가서 ‘원융회통‘ 작품 퍼포먼스를 펼쳐 내국인과 외국인들도 감동하게 했다. 2018평창동계올림픽의 성공개최를 기원하는 현장 퍼포먼스를 진행하던 그때의 뜨거운 열정은 잊을 수 없다.

평창동계올림픽 범국민운동본부의 문화위원장과 공식화가로서 2018평창동계올림픽 그림을 그려서 그 역할을 톡톡히 해 냈다. 아직도 몇 점 남은 올림픽 그림은 오래 두고두고 요긴하게 한국을 알리고 2018평창동계올림픽을 국내외 알리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김 화백의 화풍은 유쾌하며 발랄하다. 동양화 특유의 부드러운 선에다 오방색(황·청·백·적·흑)을 가미하여 서양화적 화려한 색채에다 구체적이고 사실적으로 묘사하지 않고, 골프를 통한 현대인의 내적 심리적 추상적 표현을 잘 녹여내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

◣ 예술가의 삶은 평범하지 않다고들 하는데 저 또한 유쾌한 일들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어린 시절 일찍이 도자기에 그림을 그릴 정도로 산수화나 사군자등 동양화 전반에 관한 평범한 그림은 저를 유쾌하게 만들지 못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골프를 만나서 필드에서 느꼈던 감흥과 아름다운 자연의 여운을 화폭에 녹였는데 그것이야 말로 생명력이 있는 작업이었고 나를 치유해주는 원동력이 되었다. 당연 사계절의 아름다운 골프장은 화폭에서 춤을 추었고 사람들의 역동적인 모습은 선으로서 면으로서 화면을 장식하게 된 것이다.

전통적 재료를 통한 모더니즘적 시각언어를 구사하고 있는 작업들로서 구상과 추상적 경계에서 경험할 수 있는 시각적 환영을 전통적 재료를 통해서 재해석 하고 있다.

시공의 빛. 김영화 화백은 구상과 추상적 경계에서 경험할 수 있는 시각적 환영을 재해석 하고 있다.
시공의 빛. 김영화 화백은 구상과 추상적 경계에서 경험할 수 있는 시각적 환영을 재해석 하고 있다.

저의 작업들은 관계를 형성하고 이어가는 과정 속에서 탄생한 이미지들이라고 말 할 수 있으며 내가 선택한 전통적 물성(분채)은 나의 모체이며 스스로를 완성하는 원동력이라고 말할 수 있다.

구체적인 형상보다 골프 속에 숨어 있는 내면의 세계를 표현하기에는 한국화가 아주 적합하다고 할 수 있다. 선 하나로도 18홀의 느낌을 표현 할 수 있어서 좋다. 이것이 한국화의 매력이며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거기다 여백이 주는 감흥은 사색을 할 수 있는 여유를 안겨주어 더 매력적이라고 할 수 있다

김영화 화백은 골프 우승 선수들에게 전통적 우아함과 격조가 깃들인 도자기 트로피를 제작함으로써 골프계에 널리 알려졌다. 이런 도전적 착상과 발상의 계기가 분명 있었던 것 같은데?

◣ 골프 우승트로피는 한결같다. 골프의 꽃인 우승트로피는 최고의 묘미인데 몇 십 년 전 같은 형식에 틀에 박힌 형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아버님이 만든 도자기에 그림을 그리면서 이것을 트로피로 만들면 좋을 것이라 생각되어 도자기에 골프그림을 그려 놓고 보니 세상에 하나뿐이 작품이 되었다. 그래서 그 것으로 처음 KLPGA 트로피로 만들었는데 선수들이 너무나 좋아하였다.

사랑찾아 꿈찾아. 김영화 화백은 남다른 고통의 시간이 예술로 승화될 때 더 가치롭다고 본다.
사랑찾아 꿈찾아. 김영화 화백은 남다른 고통의 시간이 예술로 승화될 때 더 가치롭다고 본다.

상금보다 더 좋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 이후부터 여러 대회에 오랫동안 도자기 트로피를 그려오고 있다. 이제는 일반인들도 주문해서 세상에 하나뿐인 도자기 작품트로피를 만들고 있으며. 어린 시절 아버님이 도자기에 먼저 그림을 배우게 하였던 남다른 교육법이 결국 최고의 가치를 가져다 준 것에 감사드린다.

김 화백은 골프를 통해 치유 받은 경험을 화폭에 담아왔다. 이제는 골프 전문화가로 명망이 높다. 김 화백은 힐링이라는 단어가 대중적으로 확산되기 훨씬 이전부터, 스스로 겪은 치유과정을 화폭에 담아 대중에게 알려왔다. 화풍은 더욱 밝고 외향적인 면모를 더했다. 이를 총괄하여 달라.

◣ 삶은 고통의 산물로 누구에게나 방황의 시간이 있다. 특히 예술가에게는 남다른 고통의 시간이 예술로 승화될 때 더 가치가 있다고 본다. 어린 시절부터 계속 이어지는 삶의 고통 속에 저는 명상을 통해서 자신이 누구인지, 어디서 왔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닫게 됐고, 골프를 통하여 자신의 마음을 컨트롤 할 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자연 환경이 함께한 골프는 나에게 힐링의 대상이었다. 골프를 치고 돌아와 작업하는 날은 색감이 더 밝고 생동감 있게 그릴 수 있었다.

국위선양. 2018평창동계올림픽 공식 화가로 참여하다.
국위선양. 2018평창동계올림픽 공식 화가로 참여하다.

저의 밝은 영혼은 색채로 구현되었고 이것은 또 다시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되고 있다. 작은 그림 한 점으로 사람들을 즐겁고 행복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골프화가 라는 브랜드도 만들고 조선시대 김홍도 후손으로서 풍속화를 이어가면서 미학적으로도 근거를 남길 수 있어 뿌듯하다.(2부 하편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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