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김대규 시가 와 닿는 이유

최철원 논설위원 / 기사승인 : 2018-12-27 18:2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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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철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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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주간 = 최철원 논설위원] 2018년 한 해가 노을 되어지는 12월 끝자락. 모처럼 글방 아랫목에서 커피 곁들여 시집을 읽는다는 것은 마음의 평화로움이다.
짧지만 의미 있는 시 한 편을 읽었다. 안양 향토 시인 김대규의 <어느 청소부의 가훈>이라는 제목의 단 10자로 구성된 '인간쓰레기는 되지 말자.'라는 글이다. 그 내용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삶에 대한 깊은 성찰과 많은 시사를 준다.


'삶을 평가할 때 흔히들 등(等)과 유(流)로 표현한다. 等은 순위를 나타내지만 流는 위치나 질적 가치를 나타낸다. 등에서는 외양적 의미로, 류에서는 내면적 의미가 파악된다. 그리고 등보다 류에서는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는 긍정성이 있다. 모든 사람이 다 일등은 될 수 없지만, 모든 사람이 다 일류는 될 수 있다. 그러나 등수로 인생의 가치를 매길 수는 없다. 그것은 단순한 순위일 뿐 가치는 아니다. 인위적인 순위가 본질적 가치를 결정지을 수는 없다. 그러나 류에서 일류와 삼류는 다르다. 그것은 인간의 삶의 질과 가치의 문제다. 경쟁 그룹 순위에서 일등을 하지 못하는 것과 위치 부류에서 삼류가 된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순위에서는 삼등을 해도 괜찮지만, 질과 가치에서는 삼류, 삼류인생이 되지 말라는 것이다.'


요즘 신문 펼쳐 보기가 무서운 날의 연속이다.
산과 강, 온 자연이 쓰레기 오염으로 몸살을 앓는다. 그것이 어찌 자연뿐이랴. 사람이 사는 사회도 마찬가지다. 내로남불의 정치로 후진국 정치가 일상화된 정치권. 상류층 사람들의 삼류보다 더 못한 수준 이하 행동으로 서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앞뒤가 꽉 막힌 세상에 살고 있다.


사회 곳곳이 왜 쓰레기 냄새로 악취가 만연한가.
교회, 성당, 사찰 등 종교시설이 모자라서 그렇지는 않으리. 정의로운 연설이 없어서 그런 것도 아니다. SNS마다 영혼 없는 좋은 글이 넘친다. 문제는 모범이 되어야 할 지도층의 사회의식 부재이다. 남부럽지 않은 좋은 환경 속에 자라 교육도 일류로 받은 지도층과 상류층의 가진 자들 몸에 향이 없다. 오히려 그들 중 일부는 서민들보다 더 하류 삶을 살며 구린내를 풍긴다.


소위 지도층에 속하는 검찰도 정의와 법률의 이름으로 법을 앞세워, 정의롭지 못한 방법으로 수사를 하여 '적법 절차'가 먼 과거로 퇴행하였다. 스스로 후진국형 삼류 검찰로 인증받으려 한다는 것이 대다수 국민의 느낌이다. 권력 고위층은 꼭 같은 남의 허물은 끝까지 물어뜯어도 막상 제 허물은 고해성사 없이 침묵으로 어물쩍 넘어가는 삼류 정치를 아무 부끄럼 없이 한다. 이 모든 걸 국민들이 두 눈을 뜨고 보고 있다는 걸 알고 있는지, 그것을 모르면 그야말로 무지한 삼류 사람들이다.


국민의 공분을 사는 사건의 중심에는 항상 상류층 사람들이 주인공이다. 그들은 삼류보다 더 못한 사회생활로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예전 대한항공 땅콩 회항 사건부터, 한국미래기술회장의 엽기적 행각, 최근 여당 국회의원 김포공항의 갑질 논란 등이 그 예다. 일부 자질이 부족한 일등 지도층 사람과 상류층 사람들은 스스로가 특별한 사람이라는 정신착란증에 빠져 사회적 문제를 일으킨다. 이 모든 것은 재활용 가치가 없다. 청소부 빗자루에 쓸어 버려야 할 쓰레기들이다.


새로운 한 해를 준비하는 연말연시다. 정리하고 사죄할 일이 많아지는 저무는 시점. 나를 뒤돌아보며 나 역시 나의 삶이 타인의 빗자루에 쓸려가는 삶을 살고 있지 않았는지, 내 몸에 나는 냄새가 향인지 쓰레기 냄새인지 코를 끙끙거려 본다. 아무리 어렵고 힘든 세상이지만 삼류인생은 살지 말자. 문득 떠오르는 김대규 시인의 글이 유난히 가슴에 와 닿는다. 청소부 빗자루에 쓸려갈 '인간쓰레기는 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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