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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천우의 역사소설 - 김시습의 수락잔조(水落殘照)(10)
황천우의 역사소설 - 김시습의 수락잔조(水落殘照)(10)
  • 황천우 작가
  • 승인 2012.09.25 10: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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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중생아! 네 눈깔에는 똥통에서 이러고 있는 내가 정상으로 보이냐”

수락사 접수

수락산에 터를 잡기 시작한 즈음부터 줄곧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는 일이 있었다. 일전에 방문했을 때 중은 보이지 않고 노인들만 있었던 수락사에 관한 일이었다. 이래저래 자리 잡느라 분주해 잠시 잊고 있었던 수락사에 대한 의문이 다시 솟구쳤다.

어느 날 오후 수락사로 길을 잡아갔다. 내친김에 호기심도 풀고 그곳에 기거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알아볼 요량이었다.
가는 길에 이 진사의 집에 들르자 반가이 맞았다.

“바둑 둘 줄 아시오?”
“갑자기 바둑은 왜요?”느닷없는 바둑 이야기에 이 진사가 의아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내 이 진사와 바둑 두고자 들렀소.”
“그러십시다. 들어가시지요.”
“여기서가 아니오. 기왕이면 바람도 쐴 겸 저 산 아래에 있는 수락사에 가서 둡시다.”
“수락사라면 폐허가 된 절 아닙니까?”
“그래서 겸사겸사 가보자는 말입니다.”
“여차하면 접수하시겠다, 이 말이지요?”

이 진사의 눈초리가 예사롭지 않자 시습이 헛기침을 하며 외면했다.

“그건 그렇고, 스님!”
“왜 그러오.”
“어째 요사인 한양 출입이 뜸하십니다.”
“딱히 갈 일이 없구려.”
“한양 양반네들이 심심해하지 않을까요?”
“심심하다니요?”

한동안 한양에 드나들면서 고관대작들만 눈에 띄었다하면 가차 없이 치도곤을 냈던 일을 의미했다.

“여하튼 이 어수선한 세상이 그나마 왜 제대로 굴러가는지 알 듯합니다.”
“그건 또 무슨 소리요?”
“그렇게 호되게 했는데도 이렇게 멀쩡하시지 않습니까.”
“똥이 무서워서 피합니까, 더러워서 피하는 게지.”
“똥도 똥 나름이고요.”

이 진사가 빙그레 웃으며 시습을 위아래로 훑었다.

“일전에 한양에 들어갔다가 스님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지요.”
“그랬구려.”
“이른바 원각사 똥통 사건 말입니다.”
“원각사 똥통이라!”

생각할수록 웃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다.

원각사 낙성식에서 효령대군의 부탁으로 세조에 대한 찬시를 쓴 일이 발단이었다. 시를 본 세조가 감복하여 시습을 인견하겠다고 원각사로 사람을 보내왔다. 인견은 곧 벼슬을 의미했고 조정의 족쇄와 직결되는 일이었다. 다급해진 시습이 급기야 없는 병까지 만들어 인견을 피하고자 했다. 그 전갈을 받은 관리는 궁에 들어가 보고하고, 개의치 않고 접견하겠다는 세조의 명을 받은 관리는 어떻게든 시습을 데려가려 했다. 하여 못가겠다는 시습과 강제로라도 데려가겠다는 관리 사이에 옥신각신 한바탕의 난리가 벌어졌다.

결국 자신의 힘으로는 시습을 데려가기 힘들다고 판단한 관리가 나졸들을 부르러 간 사이 그 낌새를 알아차리고 피신했다는 곳이 바로 원각사 구석에 있는 똥통이었다. 잠시 머뭇거리던 시습이 여러 사람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는 똥통으로 몸을 던졌다.

물론 똥통이 그리 깊지 않다는 사실은 그곳에 며칠 기거하는 동안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나 깊은 것처럼 보이기 위해 몸을 잔뜩 낮추고는 다가오는 사람들을 향해 껄껄 웃었다. 시습의 기괴한 행동을 본 관리의 표정이 사색이 되었다.

“이게 무슨 짓이오!”
“그래, 무슨 짓처럼 보이오? 왜 아파서 못가겠다는 사람을 굳이 데려가겠다고 이리 성화요, 성화길.”

시습이 똥통을 휘휘 젓기도 하고 때론 손가락으로 똥을 튕기기도 하면서 능청을 떨었다. 간간이 여차하면 똥을 던질 기세를 취하며 은근히 협박도 했다. 그럴 때마다 관리와 나졸들이 다가가지도 물러서지도 못하고 쩔쩔매었다.

“그래, 이 땡중아! 도대체 어디가 아프다는 거냐?”
“이 중생아! 네 눈깔에는 똥통에서 이러고 있는 내가 정상으로 보이냐?”

행동도 말도 도무지 당해낼 재간이 없다고 판단했는지 관리가 한숨을 길게 쉬고 호흡을 고르고는 나직하면서도 강하게 지시했다.

“이보게들, 억지로라도 끌어내게.”

관리의 지시가 떨어지자 곁에 있던 나졸들이 조심스럽게 똥통으로 다가갔다. 그를 본 시습이 손을 더 바쁘게 움직였다. 나졸들이 거의 발치까지 떨어지는 똥으로 인해 관리에게 시선을 주며 신음을 토해내며 뒤로 물러섰다.

“허허, 참.”
“헛수고 그만 하고 어서 가서 본대로 전하시오.”

관리도 더 이상 어쩌지 못하고 연신 허탈한 한숨만 내쉬었다. 망연자실 허공만 보고 있던 관리가 결심한 듯 헛기침을 했다.

“스님, 그러지 말고 납득할만한 사유를 대어주시오.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곤란하다는 것을 아시지 않습니까.”

관리의 말투나 표정으로 보아 진심인 듯했다.

“중이 미쳤다고, 지금 본 사실을 그대로 전해주시오. 그러면 전하께서도 달리 말씀이 없으실 것이오.”

한참을 지켜보던 관리가 궁으로 돌아간 사실을 확인하고 난 후에야 빙그레 웃으며 똥통에서 나왔다.

“똥통이 깊지 않아 다행이었습니다.”
“그러게 말이오. 다 내 복이지요.”
“그렇게 큰 복을 가지셨으니 고관대작 누구도 스님에게 해코지를 못하는 거 아닙니까.”


시습이 은근히 웃어보이자 이 진사 역시 미소로 답했다.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며 걷다보니 어느새 수락사에 이르렀다. 곧바로 대웅전 옆에 있는 성전으로 걸음을 옮겼다. 조심스레 문을 열자 몇몇 노인들이 바둑을 두고 있었다. 그런데 전에는 보지 못했던 스님 복장을 한 사람이 눈에 띄었다. 시습이 공손히 합장하자 스님 복장을 한 사람이 유난히 거들먹거리며 다가왔다.

“나는 조우라 하는데 누구요?”
“설잠이라 하오.”

조우라는 자가 시습의 말에는 귀도 기울이지 않고 눈을 내리 깔고 시습과 이 진사를 번갈아가며 위아래로 훑었다.

“조우라, 금시초문입니다만. 혹여.”
“내 노사신 대감에게 수학한 사람이오.”

조우가 노사신이라는 말에 유독 힘을 싣고는 얼른 말을 끊었다. 노사신이라는 말에 시습의 귀가 솔깃했다.

“그 좌찬성으로 있는?”
“그렇소. 조정의 실세 중에 실세요.”

실세라는 소리에 하마터면 실소를 터뜨릴 뻔했다. 지난시절 여행 중에 마주쳤던 일이 문득 떠올랐다.

시습이 관동여행을 마치고 호남여행에 대한 기대에 부풀어 은진에 있는 한 객사에 들었다. 요기도 하고 잠시 노고도 풀기 위함이었다. 그때 객사에 들어서는 시습을 유심히 바라보는 사람이 있었다.

“그대는 시습이 아니오?”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놀라 둘러보니 한때 성균관에서 같이 수학했었던 노사신이었다.

“선배가 여긴 어인 일이오?”

노사신이 대답은 하지 않고 시습을 이리저리 살피고 있었다.

“나야 잠시 쉬는 중이라 여행 겸해서 돌고 있네만, 자네는 어인 일인가?”
“소승 역시 소오산수하며 이 산하 저 산하 살피는 중이지요.”

노사신과의 관계는 그리 원만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여행 중에 그것도 생면부지의 땅에서 우연히 만나니 그런대로 반가웠다. 그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자리를 함께했다.

“어디를 그리 돌아다녔나?”

시습이 잠시 그의 행색을 살폈다. 조정에서 잘 나간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터라 조금 의아했다. 게다가 표정 또한 편치 않아 보였다.

“북으로, 동으로 다녔지요. 이제 호남지방을 돌아보기 위해 가는 중입니다.”

노사신이 다시 한 번 시습의 행색을 살폈다. 그 눈초리가 영 껄끄러웠다.

“뭘 그리 보시오?”

마음이 불편해진 시습도 경계의 신호를 보냈다.

“내 이미 시습에 대해서는 많은 이야기를 들었네. 법명을 설잠이라 한 일도.”
“그런데요?”
“불교에 귀의했으면 모든 일 다 접고 그저 산사에서 기도나 하는 게 도리 아닌가?”

시습이 답은 하지 않고 속으로 나무관세음보살을 읊조렸다.

“후배가 세상에 나가려 하지 않는 점은 이해하네만 그렇다고 스님이 되다니!”
“세상과 화합하지 못해 택한 길이요. 스님이 어때서요?”
“그러나 후배의 행동은 그게 아니지 않은가. 세상을 떠났으면 산사에 머물러 있을 일이지 왜 전국 곳곳을 돌아다니는 겐가. 내 눈에는 세상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 그런 것처럼 보이네만.”
“세상에 대한 미련이라고 했는가요?”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이리 행동할 수 있겠나.”
“생각이 바르지 못하시군요. 선배는 불교에 대해 얼마만큼 아시오?”

시습이 잔잔한 목소리로 말을 받았다.

“그건 무슨 소린가?”
“불교는 저 혼자 편하고자 하는 종교가 아니라는 말이요. 자기를 비우고 중생들과 함께하면서 고통과 절망과 기쁨을 나누어 가지는 것이 불교의 참뜻이지요.”

옳고 그름을 떠나 자신이 한 이야기가 결례였다고 판단했는지 노사신이 입을 다물었다. 여독이 쌓여 피곤했던 터라 시습도 그 문제에 대해 더 이상 가타부타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다. 잠시 앉았다가 자신의 거처로 옮겼다.

그 스승에 그 제자다 싶었다.

“노사신! 그 자가 뭐 그리 대단하다고.”

말을 하다 말고 시습이 이 진사에게 눈치를 주었다. 의미를 알아차린 이 진사가 시치미를 떼고는 바둑 두는 사람들에게 다가가 어울렸다.

“감히 대 제상을 욕되게 하다니!”

조우가 핏대를 올려가며 목소리를 높이자 바둑 두던 사람들의 시선이 일시에 둘에게 쏠렸다.

“대 제상 좋아하네.”
“누구기에 말을 함부로 하는 게요?”
“내 아까 말하지 않았는가, 설잠이라고.”
“설잠!”

조우가 연거푸 설잠을 되뇌었다.

“노사신이 무슨 인간 축에 든다고.”
“뭐라!”

시습이 더욱 빈정대자 조우가 말을 잇지 못하고 시선을 무리에게 주었다. 그때 마침 조우를 바라보는 이 진사와 눈이 마주쳤다.

“이보시오, 그 스님이 바로 김시습 선생이오.”
이 진사의 말에 조우는 물론이고 그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눈이 동시에 시습에게 쏠렸다.

“조선의 천재! 김시습!”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내뱉었다.

“겨우 노사신 같은 자에게 배운 걸 자랑하다니. 그 양반이 자네 같은 얼간이를 사람으로나 생각하는 줄 아는가? 어림없는 소리. 설령 그렇다 해도 왜 남을 믿고 막무가내로 까불고 남의 이름으로 사람을 업신여기는가?”
시습이 목소리를 높이다가 순간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너 같은 놈이 여긴 어쩐 일이냐?”
“이곳에 스님이 없다고 해서.”

조우의 목소리가 한껏 기어들어갔다.

“이놈아, 네 눈에는 내가 스님으로 안 보이냐?”
“당연히 스님……”
“지금 당장 대웅전 옆 벽에 쓰여 있는 글을 확인하고 오게.”

시습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허둥지둥 밖으로 나갔던 조우가 다시 쩔쩔매며 시습 앞으로 다가왔다.

“그래, 그 글이 누구 글이더냐?”
“서거정 대감과 스님의……”
“그러면 이 절의 주인은 누구냐?”
“그야 스님……”

조우가 말을 끝맺지 못하고 고개를 푹 숙였다.

“이곳은 내 거주지니 다시는 얼씬거리지 말게.”
시습의 낮지만 완고한 말에 조우가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이 땡중이 귀까지 막혔나. 어서 꺼지라는데도!”

題水落山聖殿庵
수락산 성전암에 제하다

산중의 나무 베는 소리 요란스레 울려도
곳곳의 이름 없는 새 갠 하늘에서 노니네
바둑 파하고 산골늙은이 돌아간 뒤에
푸른 그늘 아래 책상 옮기고 황정경 읽네

山中伐木響丁丁(산중벌목향정정)
處處幽禽弄晩晴(처처유금농만정)
碁罷溪翁歸去後(기파계옹귀거후)
綠陰移案讀黃庭(녹음이안독황정)

비밀 행각

한동안 뵙지 못해 걱정만 앞세우고 있던 어느 날 선행을 통해 설준 스님이 서신을 보내왔다. 한번 다녀가라는 간단한 내용이었다. 궁금하던 차에 받은 소식이라 만사 제쳐두고 정인사를 찾았다.

“스승님, 면목 없습니다.”
“자네가 면목 없을 일이 무에 있나.”

사간원과 함께 대제학으로 자리를 옮긴 서거정이 앞장서서 설준의 탄핵을 주청한 일에 대한 이야기였다.
먼저 포문을 연 곳은 사간원이었다. 이미 죽은 정업원주지 해민을 추천한 일로 탄핵안을 올렸고 그를 이어 대제학인 서거정이 설준의 탄핵을 물고 늘어지고 있었다.

“그런 일 하나 막지 못한 소승이……”

시습이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서거정이라는데 대한 배신감과 함께 그를 막지 못했다는 자괴감이 솟구쳤다.

“이미 예견했던 일 아니던가.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니 너무 상심하지 말게.”
“스승님이 걱정이옵니다.”
“일전에 말했듯이 당분간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네.”
“물론 스승님의 말씀 잘 알고 있습니다만 시간문제 아니온지요.”
“물론 시간문제지.”
“하오면.”
“어쩌겠나. 우리는 그저 두 대비마마께서 오래 사시도록 기원하는 수밖에.”

설준이 미소를 보이며 오히려 시습을 위로했다.

“소승을 찾으신 사유는 무엇이옵니까?”
“그래, 그 이야기를 하세. 자네에게 부탁할 일이 있어 급히 보자고 했네.”
“부탁이라니요, 당치않으십니다. 그저 하라만 하십시오.”

설준의 얼굴에 잠시 어두운 빛이 스쳤다.

“자네 혹 정업원에 대해 알고 있는가?”
“물론입니다.”
“정업원 주지로 있는 윤 씨를 만나보게.”
시습이 말없이 다음 말을 기다렸다.
“일전에 그곳 주지인 윤 씨로부터 기별이 왔다네.”
“무슨 일이옵니까?”
“자세한 이야기는 하지 않고 그저 은밀하게 만나서 의논할 일이 있다더군.”

여승이 설준 스님을 은밀하게 만나자는 부분에 이르자 시습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순간 일전에 있었던 정씨 부인과의 일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시습의 생각을 읽었는지 설준이 헛기침을 해댔다.

“자네 혹시.”

설준이 말을 하다말고 빙그레 웃자 시습 역시 웃음으로 넘겼다.

“함부로 상상하지 말고 한번 가보게, 간청을 하니.”“스승님을 원하시는데 소승이 가도 되겠습니까?”

은근히 장난기가 솟구쳤다.

“허허, 이 사람이. 스승을 놀리는 겐가?”
“아닙니다, 스승님. 정업원 주지가 스승님을 찾는 데는 반드시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 같기에 그러하옵니다.”
“예끼, 이 사람아. 아무튼 미리 상상하지 말고, 무엇보다 누구에게도 알리지 말고 반드시 짬을 내어 찾아보게.

그쪽에서 굳이 자네를 지목했으니 말일세.”

“소승을요?”
“그렇다네.”

시습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곳에 갇혀 지내는 사람들이 어찌 저를 알겠습니까?”
“지금 내게 물어보는 겐가?”

지난시절의 광기 어린 행동들을 떠올리며 시습이 연신 히죽거렸다. 경험으로 볼 때 그 정도의 행동이면 삽시간에 한양 바닥은 물론 조선천지를 떠들썩하게 만들고도 남았으리라 짐작되었다.

“하기야.”

마음 한편에서는 쓴웃음이 나왔다.

“자네의 그런 모습에서 오히려 진면목을 보았을 게야.”
“바로 찾아볼까요?”
“그러면 좋겠지, 기다릴 터이니. 어차피 가는 길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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