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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호 한방칼럼] 옛 선비들의 스스로 치료하는 만성질환 노하우 ①
[김주호 한방칼럼] 옛 선비들의 스스로 치료하는 만성질환 노하우 ①
  • 김주호 원장
  • 승인 2013.04.22 08: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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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퇴계 『활인심방』
이퇴계 『활인심방』

활인심방의 특징


‘활인심방’은 양생사상을 바탕으로 한 의학 저작으로 조선시대에 가장 뛰어난 성리학자 중 한 사람이던 퇴계 이황의 유작이다. 주자학이 학문의 대세였던 당시에 유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효를 실천하는 방편의 하나로 의학을 공부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유학자이면서도 의학에 밝은 사람이 많았을 뿐 아니라 직접 의서를 쓰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퇴계도 의학에 깊은 관심을 가졌는데, 특히 그는 젊은 시절에 이미 고질병을 얻어 일생 동안 고통받았던 사람이다. 퇴계는 질병을 극복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였고, 그 와중에 자연히 의학과 양생을 공부해 자신의 병을 치료함은 물론 가족 일문의 건강에도 도움을 주었다. ‘활인심방’도 퇴계의 이런 노력에서 나온 결과물인 셈이다
.
그러나 ‘활인심방’이 퇴계의 저작은 아니다. ‘활인심방’은 퇴계가 자신의 수양을 목적으로 ‘활인심(活人心)’이라는 저작을 필사한 것일 뿐이다. ‘활인심’은 본래 중국 의서이며, 그 저자는 중국 명나라 때의 주권(朱權, 1378~1448)이라는 사람이다.

명나라를 세운 주원장의 아들로 왕 노릇을 하기도 했던 주권은 만년에 이르러 자호를 구선(?仙)이라 하고 도가사상에 침잠하게 되었다.

‘활인심’은 주권이 도가사상에 경도된 이후 저술한 것으로 도가의 양생사상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렇다면 퇴계는 그 자신이 비록 도가사상에 남다른 관심을 가졌다고는 하지만 주자학을 존숭하던 당시에 어떻게 도가적 색채를 띤 이 저작을 필사해 자신의 수양서로 삼게 되었던 것일까.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위해 ‘활인심’의 내용을 살펴보기로 한다.

심장은 신명(神明)이 머무는 집

주권은 ‘활인심’에서 도가의 양생사상을 의학에 흡수하면서 양생을 중심으로 하는 참신한 의학체계를 간결한 일상 언어에 담아냈다.

‘활인심’은 상·하 2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상권에서는 양생사상과 함께 일상생활에 실천할 수 있는 양생법, 도인법, 보양음식 등을 다루고 있고, 하권에서는 임상처방을 다루고 있다.

그는 ‘활인심’의 서문에 말하기를, “비록 일상적인 말들이지만 가장 도의 묘함에 부합된다. 이제 양쪽의 설을 모아 새로운 하나의 설로 만들어 상하 2권으로 펴내고 이름하여 ‘활인심’이라 하니, 상존하여 사람을 구하는 마음을 이름이며, 생을 온전하게 하여 함께 오래 살고자 하는 것이다”고 밝히고 있다.
 
이처럼 주권은 간결하면서도 치밀한 언어로 도가와 의가의 결합을 이끌어냈으며, 도가의 양생사상은 의학의 도로서 ‘활인심’에 자리하고 있다.

‘활인심’의 양생사상은 심(心)이라는 틀을 바탕으로 전개되고 있다. 주권이 말하는 심의 개념은 흔히 말하는 마음을 뜻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도가의 사상적 맥락에서 이해할 때 그 의미가 더욱 명확해질 수 있다.
‘활인심’의 양생사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심의 개념을 무한과 상대되는 유한한 속성을 지닌 인간 존재 자체를 상징하는 것으로 볼 필요가 있다.

주권은 ‘활인심’의 ‘보양정신(保養精神)’이라는 부분에서 “무릇 ‘유(有)’라는 것은 ‘무(無)’를 바탕으로 생겨난다”는 말을 하고 있다. 즉 이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이 ‘무’로부터 생겨난다고 하는 것이다.

인간이라는 존재도 ‘유’라고 불리는 수많은 존재들 중 하나다. 주권은 도가의 입장에서 유한한 존재인 인간이 이 ‘무’를 어떻게 인식할 것인지에 대한 하나의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다. 즉 심과 신명(神明)의 관계가 바로 그것이다. 주권은 ‘활인심’의 ‘치심’이라는 부분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하고 있다.

“심(심장을 뜻한다)은 신명이 머무는 집이다. 지름이 불과 한 치에 지나지 않는 빈 곳에 신명이 머물고 있다.”
“심이 고요하면 가히 신명에 통할 수 있어 일이 이르지 않아도 먼저 안다. 이는 집을 나서지 않아도 천하를 알고 창 밖을 내다보지 않고도 천도(天道)를 보는 것과 같다”

주권은 바로 이 신명이라 불리는 것에 의해 인간의 생명이 유지되고 있다고 보았다. 이 신명은 심장에 머물면서 인간이라는 소우주 내에서 ‘무’의 차원을 구현하며 존재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유’가 ‘무’에서 생겨나 그 본원인 ‘무’에 의지해 존재를 이어가는 것과 같이, 인간이라는 유한한 존재도 ‘무’의 차원인 이 신명이라는 존재에 의지해 생명을 영위하고 있다는 것이다.

인간은 우주를 본떠 만들어진 것이기에 그 자체로 하나의 작은 우주가 되고, 만물을 움직이는 원리인 도가 인간이라는 생명체의 틀 속에 내재해 하나의 소우주를 지탱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인간은 일상적으로 이런 차원의 세계를 느끼지 못한다.

그런데 주권은 심이 고요하면 신명에 통하여 그 차원에 이를 수 있다고 보았다. 이런 일들은 어떻게 가능한가. 이 문제는 심과 도의 관계를 통해 생각해볼 수 있다. 심은 인간이 행하는 모든 행동의 주체가 되는 것이다. 이런 심의 다양한 움직임으로 인한 존재의 변화에 대해 주권은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사람의 마음이 불을 생각하여 오래되면 몸이 더워지고, 사람의 마음이 얼음을 생각하여 오래되면 몸이 춥게 되고, 두려워하면 머리카락이 서고, 놀라면 땀이 방울방울 맺히고, 겁을 내면 살이 떨리고, 부끄러워하면 얼굴이 붉어지고, 슬퍼하면 눈물이 흐르고, 당황하면 가슴이 뛰고, 기운이 막히면 마비가 되고, 맛이 신 것에 대해 말하면 침을 흘리고, 구린 것을 말하면 침을 뱉고, 기쁜 일을 말하면 웃고, 슬픈 일을 말하면 울고, 웃으면 모습이 예쁘고, 울면 모습이 밉다.

또 만약 낮에 본 것이 있으면 밤이 되어 꿈에 나타나고, 생각한 것이 있으면 밤이 되어 헛소리를 하고, 꿈에 교합하면 정액이 샌다. 만약 놀라거나 화를 내서 병이 생기면 옷을 벗은 채로 미쳐 날뛰며, 귀신을 보거나 부르고, 노래하고 춤추며 웃다가 울다가 한다. 이런 일들은 모두 마음으로 인해 생기는 것이다.”

업을 지으면 병 생긴다
주권은 인간에게 질병이 생기는 원인 역시 심에서 찾았다. 그는 질병의 발생에 대해 말한다.
“병은 심으로 말미암아 생기고 업(業)도 심으로 말미암아 지어지니, 음으로는 귀신이 있고 양으로는 천리(天理)가 있어 갚아 되돌아오는 작용이 나타나지 않는 경우가 없다”

이렇게 주권은 심이 재앙에 뿌리가 된다고 하였다. 심이 도를 지향하지 못하고 ‘유’의 틀에 얽매이는 것은 곧 ‘유’의 뿌리가 되는 ‘무’로부터 멀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로부터 매순간 업이 지어지는 것이다. ‘무’의 그물은 놓치는 것이 없어 유한한 존재인 심의 모든 것을 담아내므로 모든 ‘유’의 업은 시간 속에서 인과의 굴레에 매이게 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주권은 심을 도의 근본으로 삼고 생활함으로써 업을 짓지 말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와 같은 심의 중요성을 주권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심은 신의 주인이 되어 움직임과 고요함이 심을 좇으니, 심은 재앙의 근본이자 도의 근본이다. 고요하면 심군(心君)이 편안하여 모든 맥이 평안하고 잠잠해지며, 동하면 혈기가 혼란해져 온갖 병이 다투어 생긴다. 이런 까닭에 성(性)이 고요하면 정(情)이 편안하고 심이 동하면 신이 피로해지고, 참됨을 지키면 지(志)가 가득 차고 물(物)을 좇으면 의(意)가 움직이니, 의가 움직이면 신이 내달리고, 신이 내달리면 기가 흩어지고, 기가 흩어지면 병이 생기고, 병이 생기면 죽게 된다”

이와 같이 심은 행동의 주체로서 일신의 명을 좌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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