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사탐방-⑨] 보물을 품은 솔숲 도량...송림사(松林寺)

이재윤 / 기사승인 : 2019-04-25 09:2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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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주간 = 이재윤기자] 송림사에 대해 한 작가는 ‘오층전탑만으로도 가치가 있는 사찰’이라 표현했다. 팔공산의 서쪽 끝자락 너른 평지에 자리 잡은 송림사는 ‘소나무 숲에서 절이 솟아났다’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는 사명(寺名)처럼 절 주위에 소나무가 울창하고 옆 계곡에는 맑은 시냇물이 흐르고 있다.


칠곡이나 다부 IC에서 5번 국도를 타고 동명 쪽으로 가다 동명사거리에서 동명저수지 방면으로 908번 지방도를 따라 10분 정도 가면 송림사를 만난다. 

 

▲출처=대구 팔공산 송림사 홈페이지 캡처.

◆ 소나무숲에서 찾은 보물, 송림사


나지막한 돌담들이 둘러싸고 있는 송림사는 고풍스러운 멋을 풍기는 전각들과 대웅전 앞마당에 우뚝 서 있는 오층전탑, 전탑 상륜부 네 귀퉁이 달린 풍경의 청아한 울림, 오랜 세월을 안고 선 아름드리 정원수들과 깨끗하게 정돈된 잔디마당이 어우러져 마치 집앞 공원에 온 듯 안락함을 느끼게 한다.


신라 눌지왕 당시 아도화상이 설단 기원하여 소가람을 세우고 송림사라 칭했다고 전해진다. 신라 진흥왕 5년(544)에 진나라에서 귀국한 명관(明觀)대사가 중국에서 가져온 부처님 진신사리 4과를 봉안하기 위해 대가람을 세웠고, 이때 호국안민을 위한 기원보탑을 세우고 이곳에 불사리를 봉안했다고 한다. 1959년 송림사 오층전탑을 해체, 복원할 때 나온 사리장엄구에서 불지사리 4과가 발견되기도 하였다.


선종 9년(1092) 대각국사 의천(義天)스님이 중창하고, 고종 31년(1235) 몽골의 침입 때 전탑만 남고 폐허가 된 것을 다시 중창했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선조 30년(1597)의 정유재란 때 왜군이 절에 침입해 다시 소실된 것을 숙종 12년(1686)에 기성(箕城)대사가 대웅전과 명부전을 중창하였는데, 이때 숙종은 대웅전 현판을 직접 써서 절에 내리기도 했다. 철종 9년(1858)에는 영추(永椎)스님이 중창하는 등 크고 작은 중수를 거쳐 오늘에 이른다.


숙종이 글씨를 쓴 커다란 편액이 있는 대웅전은 1686년에 세워졌는데, 1755년과 1830년, 1850년의 중수 사실을 적은 상량문과 중수기를 남기고 있어 조선 후기 불전의 양식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대웅전 안에는 높이 3m의 향나무로 만든 목조삼존불이 봉안되어 있어 대웅전의 위엄을 보여주고 있다. 석가모니불을 본존불로 좌우에 문수보살상과 보현보살상이 협시하고 있는데, 향나무로 만들어진 불상은 국내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며 규모면에서도 조선시대 삼존상 가운데 가장 큰 편에 속한다. 세련미가 돋보이는 수작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삼존상은 효종 8년(1657) 불상 조성기가 발견돼 보물 제1605호로 지정되어 있다.

“명부전에 봉안되어 있는 삼장보살좌상은 국내 유일한 조선 후기 석조 삼장보살상으로 그 가치가 큽니다. 조성 시기는 허공장(지지)보살의 좌협시상에서 나온 발원문을 통해 1665년임을 알 수 있는데, 가운데 천장보살을 중심으로 좌우의 협시보살로 허공장보살과 지장보살을 봉안하고 있습니다. 천장보살상 복장물에서 나온 다양한 시기의 경전류와 다라니, 발원문 등도 조선시대 불교사 및 미술사, 서지사의 중요자료로 가치가 높아 문화재로 지정, 관리되고 있는데, 시왕상, 판관상 등 명부전의 다른 22구 제상 역시 조형성이 돋보이고 미술사적 자료로 가치가 커 문화재로 지정, 관리되고 있습니다.”

송림사 주지 도휘스님은 “대웅전을 비롯해 명부전 삼존보살좌상은 현재 각각 경상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돼 있는데, 보물 승격을 위해 연구보고서를 만들어 제출해 둔 상태”라며 그 역사적, 문화적 가치를 새삼 강조했다.
 

▲출처=대구 팔공산 송림사 홈페이지 캡처.

◆ 현존하는 영광, 송림사 오층전탑


송림사는 오층전탑을 중심으로 대웅전, 명부전, 응진전, 삼천불전 등 전각들이 ‘ㅁ’자 형으로 배치돼 가람을 구성하고 있다. 인근에 부인사가 잃어버린 영광의 흔적이라면 송림사는 오로지 탑 하나로 현존하는 영광의 흔적이다. 고려 현종 때 거란과 여진을 퇴치하기 위해 처음으로 대장경 각판사업을 진행한 것이 부인사에 보관되었던 초조고려대장경인데, 몽고의 2차 침략 때 몽고군이 부인사로 들이닥쳐 불태워 버렸다. 이어 송림사에 들이닥친 몽고군의 만행으로 모든 전각들이 불탔지만, 전탑만은 험한 수난 속에서도 꿋꿋이 이겨내고 오롯이 그 모습을 오늘날까지 지켜온 것이다.


오층전탑은 흙으로 구운 벽돌을 이용해 쌓아 올렸다. 탑을 받치는 기단(基壇)은 벽돌이 아닌 화강암을 이용하여 1단으로 마련하였는데, 기단의 4면에는 각 면의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 모양을 조각하였다. 탑신(塔身)은 모두 벽돌로 쌓아올렸다. 2층 이상의 몸돌은 높이가 거의 줄어들지 않아 전체적으로 높아 보이나, 각 몸돌을 덮고 있는 지붕돌이 넓은 편이어서 안정되고 온화하다.


꼭대기에는 금동으로 만든 머리장식이 남아있는데, 통일신라시대 금동 상륜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귀중한 자료가 된다. 9세기 통일신라시대에 세워진 것으로 추측되며, 보수를 하면서 탑신의 몸돌 내부에서 나무로 만든 불상과 사리장치 등이 발견되었다.


송림사 오층전탑은 탑의 상륜부까지 오롯이 갖추고 있어 미술사적 가치뿐만 아니라 희소가치 또한 높다. 탑의 겉모양뿐만 아니라 이 탑에서 나온 유물 역시 그 가치가 이루 말할 수 없는데, 1959년 해체, 보수를 할 때 쏟아져 나온 사리장엄구와 함께 여러 가지 유물들은 양과 질 모두를 만족시켰다. 그 중에서도 사리장엄구의 화려한 아름다움과 정교함은 어떤 표현으로도 모자랄 지경이어서 국립대구박물관의 입장권 전면에 새겨지기도 했다. 또 미국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 대여되어 한국의 문화와 미술품을 알리는 메신저로서 유물의 가치를 인정받기도 했다.


송림사 주지 도휘스님은 “내년이 전탑을 해체, 복원한 지 60주년 되는 해입니다. 사람으로 치면 환갑이지요. 그래서 현재 국립대구박물관에서 보관 중인 사리장엄구 등 유물들을 내년에 송림사로 모셔 와 전국의 많은 불자들에게 보여주면 좋을 것 같아서, 박물관장을 만나 요청을 드렸다”며 아직 결정된 건 없지만 좋은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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