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사탐방-⑮] 800년 은행나무를 품은 천년고찰...화악산華岳山 적천사磧川寺

이재윤 / 기사승인 : 2019-07-08 09:2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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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악산 적천사 은행나무
천년을 지켜오는데,
보조스님 행적
만인에게 베풂이여,
영험한 도량 적천사
기도성지 길이 법륜상전 하여지이다.
                   - 적천사 정광 주지스님

◆ 800년 은행나무 아래, 웃는 사천왕상


청도 화악산 비좁고 가파른 산길을 오르다 보면 울창한 솔숲이 시원한 그늘을 드리우며 맞이하고, 솔숲이 끝날 즈음 수령 800년을 넘은 은행나무 너머 고즈넉이 자리잡은 적천사가 있다.

 

▲ 적천사 대웅전과 당간.ⓒ문화콘텐츠닷컴
적천사는 664년(문무왕 4년) 원효대사가 수도하기 위해 이곳에 토굴을 세운 데서 시작된 사찰이다. 828년(흥덕왕 3년) 흥덕왕의 셋째 아들 심지왕사(心地王師)가 진표대사로부터 법을 받고, 백련암, 옥련암, 목탁암, 운주암을 창건하는 등 사찰을 크게 중창했다.


그리고 1175년(고려 명종 5년) 보조국사 지눌스님이 절의 동북쪽에 영산전을 세워 오백나한을 모셨을 때에는 5백명의 대중들이 상주하며 수행하는 등 수많은 고승대덕을 배출한 수행처다.

 
무성한 잎을 팔랑이며 적천사의 입구를 800년 넘게 지키고 선 은행나무는 오랜 수령만큼이나 웅장한 자태로 압도하고 있다. 가을이면 샛노랗게 물들인 자태를 뽐내며 적천사 하면 은행나무를 함께 떠올릴 정도로 적천사 신도들뿐만 아니라 전문사진작가들과 일반인들에게도 유명세를 앓고 있다.


높이 25~28m, 둘레 11m의 고목으로 자란 적천사 은행나무는 천연기념물 제402호로 지정되었는데, 보조국사가 지팡이를 꽂은 것이 자라 지금에 이른다고 전해지고 있어 세월의 무게만큼이나 신비로움을 더하고 있다.

 

▲ 적천사 적묵당.ⓒ문화콘텐츠닷컴
은행나무를 지나 적천사로 오르는 길, 적천사에는 일주문이나 불이문이 없다. 대신 거대한 사천왕상이 지키고 선 천왕문(天王門)을 지나야 한다. 조선 숙종대에 조성된 적천사 목조 사천왕상은 높이가 3.4~3.8m에 이를 정도로 웅장한 외관을 자랑하는데, 1981년 천왕문과 사천왕상을 보수하다 사천왕 목상 안에서 경전 80여 판과 의류(장삼, 두루마기) 23점, 다량의 다라니가 발견되면서 사천왕상의 조성 연대가 밝혀졌다.


적천사 사천왕상이 재미있는 것은 사천왕들의 표정이 모두 웃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웃고 있는 사천왕상은 각자 발아래에 악귀들을 짓밟고 있는데, 비열한 듯, 고통스러운 듯 일그러진 악귀들의 표정도 재미있다.

◆ 영혼을 달래는 그림, 적천사 괘불탱

 

▲ 적천사 지국천왕상.ⓒ문화콘텐츠닷컴
사천왕문을 지나 돌계단을 오르면 경내로 통하는 무차루(無遮樓)에 닿는다. 예전에 찾았을 때 보이지 않던 문들이 무차루를 둘러싸고 있는데, 정광 주지스님에게 여쭈니 “보물 제1432호인 적천사 괘불탱과 석조여래상을 모시면서 비바람을 막기 위해 문을 달았다”는 답이 돌아왔다. 
스님을 따라 무차루로 들어서니 대웅전 마당을 등지고 앉은 석조여래좌상이 모셔져 있고, 누각 한쪽에 길게 놓인 궤짝이 눈에 들어왔다. 적천사 괘불탱을 보관하고 있는 궤짝이다.


적천사 괘불은 머리에 보관(寶冠)을 쓰고 연꽃가지를 들고 서 있는 보살 형태의 독존도 형식의 그림으로, 다른 인물이나 배경을 전혀 표현하지 않는 단순한 구성을 보이고 있다. 보관은 중앙에 5구의 화불(化佛)을 안치하고 그 앞쪽 좌우에 걸쳐 금박 처리한 봉황 장식을 두었으며, 신체는 머리에 큼직한 관을 쓰고 어깨를 넓게 표현하여 다소 둔중해 보이지만, 타원형을 이루는 얼굴은 눈, 코, 입을 단정하게 그려 넣어 우아함이 느껴진다.


높이 12.47m, 너비 5.3m의 괘불은 삼베를 바탕으로 한지를 여러 겹 붙이는 배접을 했고, 배접을 할 때 해충의 피해 및 부식을 막기 위해 녹두풀에 유황과 백반을 섞어 사용했다고 한다.


그림 하단에 남아 있는 기록으로 괘불이 강희 34년(1695년)에 조성되었고, 화원으로 상린(尙鱗) · 해웅(海雄) · 지영(智英) · 성종(聖宗) · 상명(尙明) 등이 참여하였음을 알 수 있다.


대웅전 앞에는 이 괘불을 걸기 위한 괘불탱지주가 놓여 있는데, 지주 옆면에 ‘강희 40년(1701)에 거사 경순(敬順) 등이 참여하여 만들었다’는 명문이 남아 있다.


적천사 대웅전은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321호로 지정되어 있는데, 정면 3칸, 측면 3칸에 단아한 곡선의 맞배지붕과 화려한 다포양식의 처마를 갖추고 있다. 2015년 해체, 보수 작업을 하던 중 발견한 상량문에 남은 기록에 따르면 모두 세 번의 보수를 했는데, 1694년(조선 숙종 20년) 태허선사가 중수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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