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타파-35] 청춘들아! 조급하게 살지 마라.

김쌍주 대기자 / 기사승인 : 2019-03-18 09:3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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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들아!
매사를 적당히 나눌 줄 알면 그것을 즐길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은 그들의 인생보다 행운이 먼저 끝난다. 그들은 행운을 기뻐하기 보다는 그것을 ​망친다. 그리고 그 행운이 멀리 떠난 후에야 아쉬워한다.

그들은 인생의 기쁨을 앞질러 가 벌써 미래를 다 갉아먹는다. 그들은 성급하여 모든 것은 쉽게 끝장을 내 버린다. 사람은 지식을 갈구할 때에도 정도를 지켜 차라리 안 배우는 것이 더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

우리가 사는 날은 기쁨이 있는 날보다 없는 날이 더 많다. 그러니 여흥은 천천히 즐겨도 된다. 왜냐하면 일과를 끝낸 것은 보기 좋으나 여흥이 끝난 것은 좋지 않기 때문이다. 농경사회에서는 계절에 따라 재배하는 품종이 다르니 서두를 일이 많지 않았다.

하나, 산업화 시대기 되면서 조급증이 생겨났다. 전쟁 직후 모그룹 총수였던 K씨의 소년시절의 이야기다. 그가 가두판매 신문팔이에 나설 때면 신문을 받자마자 죽을힘을 다해 뛰어서 판매부수 1위가 되어서 가장 많은 수입을 올렸다는 일화는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의 입에서 회자되고 있다.

청춘들아!
세상사를 전쟁 시의 극한적인 상황에서만 우리인생을 보면 안 된다. 지금은 뛰어야만 살 수 있는 전쟁 상황이 아니다. 설사 전쟁 중에서도 담배 한 대 피는 여유는 필요하다. 돌멩이에 걸려 넘어지는 사람이 많은 사회가 건강할 수 있을까?

지금은 완급이 섞여서 돌아가는 세상사의 우리 인생의 지혜가 필요한 이유다. 공자는 “멈추지 않는 이상 얼마나 천천히 가는 지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한 일화로 조선후기 유명한 시인이면서, 굉장한 독서가였던 백곡(白谷) 김득신(金得臣, 1604~1684)에 대한 이야기이다.

당시 조선의 유명한 학자들은 5살에 사서삼경을 떼었다는 등의 일화가 흔했지만, 김득신은 어린 시절 천연두를 앓아서 10살이 되어서야 글공부를 시작했다. 하지만 그의 아버지 김치는 서두르지 않았다. 홍문관 부제학을 지낸 김치는 임진왜란 때 진주성 싸움을 승리로 이끈 김시민 장군의 아들이었다.

김치는 그런 아들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면서 “득신아! 학문의 성취가 늦어도 성공할 수 있다. 읽고 또 읽으면 대문장가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아버지의 가르침대로 부단히 노력했다. 그 노력은 무려 한 번 읽은 책을 1만 번 이상 반복해서 읽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사기> 백이전(伯夷傳)이라는 책은 비록 매우 얇은 책이었다지만 11만 3천 번을 넘게 읽었다는 전설 같은 일화도 전해지고 있으니 그의 노력이 얼마나 굉장한 것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이러한 각고의 노력 끝에 늦은 나이임에도 58살에 급제해 정선군수, 동지중추부사를 지냈으며, 당대 최고의 문장가로 인정받았다.

청춘들아!
그의 묘비명에는 “배우는 이는 재능이 남보다 못하다고 스스로 한계를 만들지 마라. 나는 어리석었지만, 끝내 이루었다. 부지런해야 한다. 만약 재능이 없거나 넓지 못하면 한 가지에 정진해 한 가지를 이루려고 힘써라. 여러 가지 옮기다가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한 것보다 낫다. 이 모두 스스로 깨달은 것이다.”라고 쓰여 있다고 한다.

타고난 체격과 지능보다 노력하는 마음가짐이 그 어떤 것 보다 가장 중요한 재능일지도 모르기에 부족하다, 그래서 조급하게 살지 마라야 하며,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사람이 아는 것은 모르는 것보다 아주 적으며 사는 시간은 살지 않은 시간에 비교해서 아주 짧다. 과거는 어쩔 수 없지만 현재는 우리가 지혜롭게 살아야 하는 이유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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