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OOM IN] 이제는 강(江)을 건너야 한다

최철원 논설위원 / 기사승인 : 2020-05-25 10:0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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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철원 논설위원
[일요주간 = 최철원 논설위원] 먼 옛날 인류 문명 발상지에는 강이 있었고 인간은 강 주변에서부터 삶이 시작되었다. 강은 만물 생(生)에 필수 불가결한 것으로 태고(太古)부터 만리(萬里)를 굽이치며 흘러왔고 다시 굽이쳐 앞으로 흘러간다. 강물은 고요히 흐르기도 하지만 홍수로 급격히 흐르며 온갖 찌꺼기와 모든 것을 쓸어안고 흐르고, 시간 속에서 빛과 색이 생멸을 거듭하며 들에서 낮게 깔려 다가온다. 수면은 주변 농경지를 적시고 굽이치는 수변에는 물풀이 우거져 많은 수생생물의 보금자리를 만들고 새들도 퍼덕거린다. 이처럼 강이 모든 생물 젖줄로 삶에서 떼어 놀 수 없는 것이다.

인류의 역사에는 많은 전설의 강이 존재했다. 그리스 신화에 레테의 강이 있으며 일명 망각의 강이라 부른다. 레테의 강은 인간이 죽어 하늘나라로 들어갈 때 지상에서의 모든 기억을 지워버리도록 레테의 강물을 마시도록 한다고 한다. 이승과 저승을 이어주는 모든 고리에서 벗어나 그 세계에 안착하기에 더없이 필요한 망각의 강물. 4.15 총선 때 한국 국민들이 그 강물을 마셨다. 레테의 강물로 빙의한 코로나 쓰나미는 국민을 과거에 대한 기억을 지웠다.

우리 사회에는 '역사의 강'이라 불리는 강(江)있다.

정치적 수사가 붙는 강이란 은유다.
지난시대 미완성이라는 사건의 매듭을 거대 강으로 인식한 사람들이 만들어낸 표현일 뿐, 그런 강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 강은 역사적 사건의 피해자, 억울하고 기막힌 사람들이 상상 속의 강을 그어놓고 명예 회복을 위해, 정치적으로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이 나뉘어 서로를 비판하며 자기들만의 주장을 내세우며 화합하지 못할 때 생기는 골을 역사의 강이라 비유한다. 이런 은유가 존재 한다는 건 그 강이 정치적으로 쓸모가 있기 때문이다. 출렁이는 강에 조각배를 띄워 되새김해야 할 사건들을 싣고 시동만 켜 놓은 채 건너지는 않으며 정치적 이익을 얻으려는 세력이 부지기수다.

대한민국에는 역사의 강 (미래로 나아가지 못하게 발목을 잡는 장애障碍)이 여럿 있다.
현 집권 세력의 단골 메뉴인 '친일의 강'과 다시 불을 지피는 '동학의 강', '제주 양민 학살의 강', 건국 시점을 둘러싼 '건국의 강', 해결의 숙제가 남아 있는 듯 잔 불씨가 살아있는 '광주 민주화의 강'이 또 그렇다. 새누리당 집권시절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하며 갈라선 '탄핵의 강'도 있다. 이처럼 많은 강이 존재한다는 것은 아직 청산해야 할 역사적 사실이 있다. 문제는 정치권에서 흐르는 강물에 둑을 쌓고, 이 강들을 정치적 이용 도구로 쓰기 때문이다.

지난 7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가 대구에서 단독 기자회견을 했다. 수요집회의 한계와 후원금 사용에 관한 사용처, 투명한 회계와 사회 운동권 세력에게 이용당했다는 호소와 윤미향 국회의원 당선자에게 애증에 관계되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다. 통합당은 이에 대해 즉각 모금액 사용처와 회계의 투명성 등 진실규명을 요구했다. 민주당은 윤미향 당선자와 정의기억연대를 엄호하며 그동안 다 말랐던 친일의 강줄기에 다시 물을 쏟아붓고 있다.

갈수록 많은 의혹이 불거지는 윤미향 당선자 행태에 야당이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정치 쟁점화에 불을 댕기자 여당 고위당직자가 윤미향을 비판하는 것은 '토착 왜구'의 '친일 세력'이라는 단어를 곁들이며 그들만의 전매특허인 친일의 강을 파고 있다. 민주당이 반대 목소리를 친일로 묶어 재갈부터 물리는 것에, 야당 대변인은 그럼 "위안부 이용수 할머니가 윤미향과 정의 기억연대를 비판한 것도 친일파냐"며 되물었다. 제발 이러지 좀 말자. 왜 잘못된 것을 밝히는 것에 친일의 강으로 물길을 트느냐.

이미 한 차례 일본에 이용당해 만신창이 된 위안부 할머니를 두 번 이용하는 일을 서슴없이 행한 단체에 그동안 행적 사실을 밝히는데 여·야가 따로 있다는 정치 현실에 국민은 암담하다. 이 기가막힌 사실을 책임 질 사람은 책임은 지지 않고 사과하는 말이 무책임하기 짝이 없고 하나마나한 소리로 들린다. 민주당도 소속당 국회의원 당선자가 잘못했으면 사과가 우선이지 왜 '친일 강'부터 파고 물꼬를 틔우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제발 이제는 물 마른 강바닥에 물 붓는 소모정치는 그만하고, 서민 한숨 더는 일에 집중하는 게 국정을 책임진 여당이 해야 할 자세다.

우리 역사의 강물은 비록 그것이 우물물처럼 고인 세월이든 강물처럼 흐르는 세월이든 이미 지나간 세월은 어김없이 우리들의 가슴속 깊숙이 들어와 결코 떠날 수 없는 일부로 자리 잡고 있다. 많은 상처가 시작에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근본에서는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는 사실은 과거 청산이 그만큼 어렵다는 것을 방증한다. 그러기에 우리 역사의 아픈 상처를 생환하여 다시 사회적, 정치적 논쟁으로 점화되면 그 사회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우리 모두 이제는 크고 작은 사건을 역사의 강에 떠 내려 보내자.
옳고 그름의 판단을 확실 해 모든 장애를 용서와 화합으로 훌쩍 뛰어넘고 앞으로 나아갈 때 이 사회는 한 시대의 무지몽매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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