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OOM IN] 완장에 눈이 먼 사람에게 필요한 건...

최철원 논설위원 / 기사승인 : 2020-01-17 10:0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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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철원 논설위원
[일요주간 = 최철원 논설위원] 겨울 날씨답지 않게 난동(暖冬)이 계속되는 경자년 새해. 내 글방 3총사는 언제나 밝은 햇볕, 따뜻한 녹차, 책장의 책들이다. 삼국지 갈피를 넘기다 후출사표(後出師表) 끝 문장 “신 국궁진력 사이후기(臣鞠躬盡力 死而後己)...也”에서 눈과 마음이 다 잡혔다. 제갈량이 스스로 자신을 낮추는 겸손에, '우리는 왜?'라는 물음이 가슴에 솟구친다.

"신은 다만 엎드려 몸을 돌보지 않고 죽을 때까지 나라를 위해 애 쓸 뿐 이룸과 못 이룸, 이로움과 해로움에 대해 미리 내다 보는데 밝지 못합니다." 臣鞠躬盡力 死而後己 至於成敗利純 非臣之明所能逆竟睹 (左者右見)也 후세 많은 문장가가 천하제일 명문장이라 칭송하는 후출사표를 읽으며 떠오르는 생각이 있다. 지금, 완장에 눈이 멀어 출사표를 발표하는 사람들에게 완장으로의 지름길은 '겸손’이다.

우리나라 지도층 사람들이 지향하는 제일 좋은 곳이 어디일까? 큰 감투를 쓰고 있는 장·차관, 법조계 판·검사, 많이 가졌거나 사회적으로 누린 사람, 내로라하는 사람들이 대체로 지향하는 곳이 국회의원직이다. 특히 이름 석 자가 언론에 오르내리는 사람들이 모두 향하는 쪽은 모두 정치다. 세상 어떤 가치도 정치적 가치보다 열등함을 그들은 실천으로 증명하고 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사회 도처에는 국회를 향하는 몽상가들이 가득하다. 이름 있는 대학의 명강의 교수도, 유명세를 탄 법관들도, 스스로 '슬픔팔이'라며 베스트셀러가 된 시인도 모두 국회의원으로서 신분이 바뀌었다. 속되게 말하면 어떤 고관 직위와 베스트셀러 작가의 직업도 국회의원직보다 훨씬 낮은 계급이란 걸 뚜렷이 보여 준 셈이다. 이것은 곧, 권력이라는 것에 젖어 익숙한, 권한에 취한 사람들이 부와 명예 권력을 다 가지겠다는 욕심 때문이다. 이처럼 국회를 향한 몽상병자들이 늘어난다면 우리 사회의 발전이란 단어는 공염불에 불과하다.

단편 소설 [완장]에서 주인공 남자는 어느 계기에 완장의 위력에 심취하게 된다. 팔뚝에 완장만 두르면 무슨 짓이든지 할 수 있다는 막강한 권력의 맛을 동경하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한 땅 주인에 고용되어 드디어 연못지기가 된다. 팔뚝에 완장을 두르고, 연못에서 함부로 낚시질하는 사람들을 개 패듯 두들겨 패고, 미친 듯 쫓아 버리는 권한 행사자가 된 것이다. 완전히 완장의 맛에 취해 완장병자가 된 셈이다.

우리 사회 특권층에 완장병이 만연하고 있다. 이미 완장 맛을 본 그들은 더 큰 완장을 차기 위해 아수라판으로 향하고 있다. 마치 그들은 불만 보면 미쳐 불 속으로 뛰어드는 불나비처럼 보인다. 한 해를 시작하는 연초부터 청와대와 정부 요직에 종사하며 TV화면에 자주 등장하는 사람들이 줄줄이 사표를 내며 총선에 뛰어들고 있다. 노무현 정권 때도 20~30명 수준이었는데 지금 출마를 위해 선거전에 뛰어드는 사람이 줄잡아 70여 명에 이른다. 일부 언론에서는 그들에게 '청와대 근무는 장식이고 스펙 쌓기에 불과했다.'라고 한다. 소위 잿밥에 눈독을 들이고 있었던 것이다. 오죽하면 청와대가 '출마 대기소'라거나 '총선 캠프'라는 비아냥이 나오고 있다.

청와대 측근들의 출마 열풍 배경에는 여당과 국회에 친위 그룹을 더 많이 진출시켜 후반기 국정의 고삐를 다잡고 레임덕과 퇴임 후 후환에 대비하려는 의도가 뻔히 보인다. 그들의 출사표는 하나 같이 나라와 국민을 위해서라는 ‘국가’와 '국민팔이'를 하고 있다. 권력지향과 쟁취가 자신의 영달을 위한다는 말은 누구에게도 들어본 적이 없다. 그렇게 국가와 국민 위한다는 사람들이 들끓어 넘치는데 왜 우리 국민 입에서 걱정과 한숨이 나오는지 그 까닭을 똑똑한 그들이 알고는 있는지 의심스럽다.

국회의원에 도전하는 자(者)들의 출마변은 들을수록 가관이다. 도대체 겸손이라고 찾아볼 수 없다. "개혁을 완성하겠다." "국민의 입이 되겠다." "시대가 요구하는 혁신의 리더가 되겠다." "야당을 심판하는 의원이 되겠다." 고 거창한 일성(一聲)을 외친다. 말처럼 다 잘 할 수 있다면 현 의원들은 다 못하는 사람들만 있다는 말인가. 그렇게 자기만 혼자서 대한민국과 국민을 위한다고 세상이 바뀔 것 같으면 좋으련만 현실은 그렇게 녹녹하지 않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정치 역사를 되짚어 보면 경험이 없는 신인들은 대부분 실패했다."라고 말했다.

20대 총선 당시 박근혜 정권은 여론조사 기관에서의 조사한 앞서가는 여론을 믿고, 국회의원 공천 과정에서 진박 공천 논란을 감수하면서도 우호적인 세력들에게 공천을 주는 자충수로 결국은 선거에 패배했었다. 그 결과 급격한 레임덕 현상과 보수분열로 탄핵이라는 빼 아픈 결과를 가져왔다. 청와대와 민주당은 꼭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완장에 눈 먼 청와대 참모들이 문정권 홍위병을 자처하며 경쟁하듯 쏟아내는 미사여구가 말장난처럼 들리고, 솔직하지 못함에 실망을 느낀다. 정치 신인들은 왜 되지도 않는 것을 될 것처럼 말해 국민을 현혹하는가. 듣는 국민이 바보인가. 언제까지 그들이 벌리는 소극(笑劇)을 봐야 하나. 밝은 햇볕처럼, 따뜻한 녹차같이 희망과 따스함을 주는, ‘국민만을 보며 열심히 일하고 결과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는 겸손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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