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OOM IN] 그래, 글이 뜨니 너도 뜨는구나

최철원 논설위원 기자 / 기사승인 : 2020-09-07 10:3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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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철원 논설위원
[일요주간 = 최철원 논설위원] 지난 한 주일 내내 매스컴의 집중적인 각광을 받은 것은 '상소문'과 그에 따른 답변서 형식의 '하교'이다. 갑론을박의 그 글 속을 깊이 들여다보면 자성(自省)을 촉구하는 것으로 쓰여 져 있다. 조은산의 상소문을 림태주가 반박하는 형식의 글을 읽으며 느낀 우리사회는, 사람들이 반성이나 청산이란 말은 언제나 공격용으로만 쓰이고 책임이나 의무란 말도 대개는 '나' 아닌 '남만'을 향해 있다. 반성해야 할 '내 잘못' 청산해야 할 '내 죄' 그리고 '내 책임'과 '내 의무'가 없는 사회, 그게 사실이라면 그 사회는 이미 완성된 사회다. 저마다 옳고 그릇된 것이 없는 사회라면 무슨 문제가 생겨나겠는가. 정말 우리는 저마다 주장은 '아무런 잘못이 없는데' 세상 꼴은, 나라 형편은 점점 막바지로 몰려가는 듯하다.

문재인 정부의 실정을 비판하는 "상소문을 올리니 삼가 굽어 살펴주시옵서"라는 글에는 "나라가 폐하의 것 아니듯, 헌법도 폐하의 것 아니옵니다."라는 강렬한 메시지를 담고, 스스로 진인(塵人먼지 같은 사람)이라고 자청한 조은산(필명)씨가 청와대 국민청원에 '시무 7조'라는 글을 올렸다. 이 내용은 공개된 지 하루 만에 30만이 넘게 공감했다.

조선 시대 상소문 형식으로 쓴 청원은 수준급 문장에 예리한 비유와 풍자를 담았다. 정부의 실정을 날카롭게 꼬집은 그 글은 서민들의 불만과 맞물려 폭발적인 반응을 끌어냈다. 대중은 "하나같이 구구절절 공감하게 된다" "막힌 속을 짚어 주고 내가 할 말을 대신 해줘서 고맙다" "고구마 같은 세상에 답답해진 마음을 뻥 뚫어줬다" "어찌나 신랄한지 모골이 송연해 진다"는 반응을 보였다. 정부의 부동산 정책의 실패로 서민들의 불만, 코로나19와 장마, 태풍 등 각종 재해가 나라를 휩쓸고, 여ᆞ야 갈등으로 리더십이 실종된 상황에서 촌철살인으로 국민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다.

림태주 시인은 '하교'로 시무 7조 상소에 답한다, 라는 정치성 짙은 반박의 글로 상소문을 꾸짖었다. "내 저의 상소문을 읽었다. 충정이 엿보이더라"면서도 "문장은 화려했으나 부실하고 삿되었다. 언뜻 유창하였으나 혹세무민하고, 편파에 갇혀 졸렬하고 억지스럽다"고 혹평했다. 그리고 문장 끝부분에서 "섣부른 부화뇌동은 사악하기 이를 데 없어 모두를 병들게 한다. 내가 나를 경계하듯이 너도 너를 삼가고 경계하며 살기를 바란다"고 충고하며 정치성의 글로 끝을 맺었다. 이에 조은산도 "다시 너의 백성은 어느 쪽이냐?" 자신의 글은 신음하고 주린 백성의 현실을 호소한 사실에 입각한 글로 탈정치성이라며 "너의 글은 아름답지만 그 안에 것은 흉하다고 평하며" 반박문을 올렸고, 림태주가 다시 그 내용을 되받았다.

무림의 고수와 초야의 서생이 주고받은 이합(二合)씩은 각자의 생각과 견해가 부딪치며 파열음을 내는 듯하다 서로를 존중하며 마무리 되었다. 조은산이 먼저 펜과 펜이 부딪쳐 잉크가 낭자한 싸움에 잠시 인과 예를 잊었고 건네는 말을 이어받음에 경어를 쓰지 못함을 사죄하며 용서를 청했고 림 시인도 상소문을 치켜세우며 시대상황을 들어 너그러이 이해해주리라 믿는다고 화해의 손짓을 보내며 논쟁은 끝났다.

나는 혼자 숨어서 엎드린 사람이고 많은 사람들 앞에 나서고 싶은 사람은 아니기에 이 싸움에 끼어들어 글을 싶은 마음은 없다. 그러나 이 지경에 이르기까지의 집권 여당과 정부에 관해 국민의 한 사람으로 묻고 싶은 게 있다. 국가나 제도(헌법)라는 것은 지금 우리한테 없는 것이고, 만약에 그것이 있다면 그 힘으로 이 세계를 두들겨 부수는 짓만 하는 그런 세상이로구나 하는 느낌을 받으면서 살고 있다는 게 내 생각인데, 문재인 정부는 국민이 답답해 할 때 동치미 같은 시원함은 고사하고, 장막 뒤에 몸을 숨기는 불편함을 언제까지 계속할 것인가를, 이렇게 세상이 들끓는데도 계속 내 편만을 위한 정치를 할 것인가를 묻고 싶다.

조은산은 해박한 지식과 수려한 문장으로 세상이 왜 이 지경이며, 정권은 왜 이래야만 하는가라는 난감한 질문을 하며 세상이 그럴 수밖에 없다 하드라도 이래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 글은 세상을 향한 절규였다. 림태주는 마치 자신이 정권의 대변인인양 무슨 말을 하려고 하교라는 제목의 답 글을 시작했는지 그 속을 알 수는 없으나, 형식 자체가 해학과 풍자가 담긴 글을, 시인의 이름에 걸맞지 않게 번지르한 글로 자신의 글 솜씨를 자랑이나 하려는 듯, 스스로의 존재를 상소문에 편승하여 나타내려는 듯, 대안 없는 반박의 글로 상소문 내용을 논쟁의 장으로 확장하려 말장난을 했기에, 그 글 내용은 무의미 하고 공허하기 짝이 없다. 한마디로 국민들의 기대에 삽질하며 정권을 향한 아부성 글로 쓰여졌다.

만약 글을 쓰는 사람으로 사명이 있다면, 그것은 인간의 아름다움과 고귀함을 언어로써 증명해야 한다. 그 이외의 사명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의 아름다움은 그것만 따로 존재하는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이 더러운 세상의 법치라는 옷을 입은 악과 야만성 속에서 더불어 함께 존재할 수 밖에 없기에 인간의 아름다움에 대해서 말할 때 온갖 잘못을 함께 말할 수밖에 없다. 생각컨대 내가 약자로서 살기 위해 나보다 센 놈한테 내 살점을 먹이로 내주어야만 한다면 또 그걸 뜯어먹는 것이 정당화될 수 있다면 그런 세상은 사람 사는 곳이 아닌 동물들이 사는 정글 속이기에, 조은산씨는 "소인이 피를 토하고 뇌수를 뿌리는 심정으로 썼다"고 했다.

두 글을 보며 어느 한쪽 편의 시각으로 돋보기를 들여대고 싶픔은 없다. 그 글 내용이 어느 쪽이 우월하고 어느 쪽이 저열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지식인들이 서로 논리로 치고받는 그 자체의 비난성 글, 그것이 문제일 뿐이다. 현 시국을 보는 시각이 어느 쪽이 옳고 그름을 따지기에 앞서서 한 지식인이 세태를 바라보는 풍자성 글에 또 다른 지식인이 보여주는, 글로는 표현해서는 안 되는 오만함, 그 글 더 깊은 안쪽에는 내 편 인식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는 게, 이것이 내가 하교 글을 들여다보는 시선이다. '잘하라는 충언'을, '까불지 말고 가만있어'라는 글로 답한 것이, 얼핏 보면 합리성 같이 보이고 있지만, 혼돈을 일으킬 것 같은 허구한 언어로 채워졌다. 거기에 나는 절망해 버렸다.

인간의 의식이란 모두 자기중심적인 협애한 공간을 벗어나지 못한다. 이 협애한 공간에서 빚어지는 언어와 개념은 헛되게 느껴진다. 한바탕 논쟁이 벌어질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과는 달리 대단한 폭발도, 어떤 시원한 해결도 없이 싱겁게 끝났다, 서로를 비난하는 논쟁은 본시 끝도 없다. 그러니 이 글에는 결론이 없어도 좋은 것이다. 이런 것을 두고 나는 '풍류'라 말하고 싶고 새로운 문화의 출발점이 되었다고 말하고 싶다.

왜 이 시대는 이렇게 어지러운가, 서민으로 살아내기가 힘들어 무너지는 소리가 이곳저곳에서 들린다. 우리는
상소문을 읽으며 식은땀이 흐르지 않는 정치인들에게는 더 이상 대한민국을 맡겨서 안 된다는, 고통스런 질문을 세상이 우리에게 던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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