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OOM IN] 문제는 제도가 아니라 사람이다

최철원 논설위원 / 기사승인 : 2020-04-06 11:0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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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철원 논설위원
[일요주간 = 최철원 논설위원]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정치에 관심이 많은 사람도 드물다. 두 사람 이상만 모이면 정치 이야기다. 선거를 코앞에 둔 지금, 얘기의 주제가 국회의원 후보 인품에 관한 것보다 '제도와 시스템'에 관한 얘기를 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다. 정치 문제를 실컷 성토하고는, 모든 게 제도와 시스템 문제라는 결론을 내는 경우가 다반사다. 정말, 정치가 제도나 시스템이 나빠 우리 정치가 이 모양일까.

한국 사회처럼 제도와 시스템이 자주 바뀌는 정치는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새로운 제도가 정착할 즈음이면 어느새 바뀌었는지 예전 제도나 시스템을 찾기 어렵게 달라져 있는 것이 지금의 정치 형태다. 정부가 바뀔 때마다 부처 이름을 바꿔대는 통에 적응이 어려워 국민을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게 우리 정치다.

잦은 제도변화와 시스템 교체는 민주화 이후 한국 정치의 최대 특징이고 어떤 면에서는 병폐다. 정권이 바뀌면 제도나 시스템이 달라지고, 그것을 다룰 신규 인력과 예산이 생긴다. 그렇기에 변화가 누군가에게는 권력 자산을 늘릴 계기가 되고, 누군가에게는 성취하고 싶은 자리가 생기고, 누군가에게는 연구 용역의 기회가 되고, 누군가에게는 돈을 벌 사업 아이템이 된다. 정치권 주변이 온통 제도 고안자들과 시스템 기획자들로 넘쳐나게 된 것은 이 때문이다.

정치 제도에 관심을 두고 기대하는 곳에는 너와 나 가릴 게 없다. 학계와 언론, 시민운동단체도 예외가 아니다. 심지어 정치와 무관해야 할 종교단체까지 참여하고 간섭하려 든다. 일부 대학과 시민사회가 과도하게 정치화되거나 위선적인 정치관을 갖게 된 것은 이와 무관하지 않다. 모두가 정치를 욕하고 비난하지만, 그것의 다른 짝인 새로운 제도와 시스템을 매개로 공식. 비공식적 차원 가릴 것 없이 정치에 경쟁적으로 다가가고, 심지어 일부는 그곳에 기생하려 하고 있다.

모든 것이 제도의 문제로 환원되는 정치는 좋을 수가 없다. 정치철학의 대가들이 말하듯, "정치는 매우 실천적인 분야이고 제도나 체계의 문제로 다룰 수 없는 비공식적 영역이 훨씬 더 큰 세계다. 정치가 공식적인 제도나 체계의 문제로 충분히 다뤄질 수 있었다면, 인간의 역사에서 그 많은 싸움과 비극은 없었을지 모른다."는 말처럼 어디에든 적용 가능한 이상적 제도는 존재하지 않으며, 장단점을 서로 나눠 갖고 보완해 채워 주는 것이 바른 제도다.

제도와 시스템이 서로 어우러져 진화하지 못한 것은 전적으로 정치와 권력욕에 눈이 어두운 사람들 때문이다. 우리 근대사에는 과거 군사 정부 시절 '한국식 민주주의'라는 명분으로 대통령 영구집권을 위한 유신 헌법 제도와 5공 시절 대통령선거인단이라는 제도로 대통령 선출을 간접 선거 방식으로 선출하는 제도와 시스템이 있었다. 이것은 모두 국민의 주권을 집권 세력이 강탈한 것으로 제도와 시스템이 국민을 위한 것이 아니라 집권자와 그 세력들을 위한 것으로 제정, 운영되었기에 더 발전하지 못하고 일회성으로 끝이 났다.

21대 총선에서 시행하고 있는 연동형 비례대표제 선거법은 여당과 군소 정당이 의석 나눠 먹기로 만든 기만적인 선거제도이다. '사표 방지 어쩌고, 다당제 정착 어쩌고'라는 온갖 구실로 선거제도를 좋은 옷으로 빙의(憑依)했지만 일회성에 그칠 가능성이 농후하다. 왜 그렇게 좋은 제도가 이처럼 불신을 받을까. 인간의 탐욕이 선거제도와 시스템을 누더기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기가 막히는 신묘한(!) 제도로 뻔뻔스러움의 극치다.

4.15 총선에만 한시적으로 적용하는 선거 제도를 가지고 나랏일을 볼 정치꾼을 뽑는다며 선거가 시작되었다. 너도, 나도 뺏지, 욕심에 비례 투표용지는 35칸으로 된 48.1㎝의 두루마리가 되었다. 자동 개표도 못 하고 수작업으로 개표해야 한단다. 블랙코미디도 이런 블랙코미디가 없다. 그 잘난 사람들이 만든 좋은(?) 제도가 국민을 우롱하고 있다. 정치인의 잔꾀와 꼼수, 야바위 결정판에 국민들만 놀아난다.

선거가 끝나면 사라질 선거제도와 급조된 정당들을 보면 헛것의 헛됨이 분명히 보인다. 헛것은 보이고 실제는 보이지 않는다. 지금 내 눈에 보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한 번 물어보자. '안 되는 줄 알면서 누구를 위해, 왜 그랬는지'를 '도대체 이런 제도로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를. 나는 이 아둔한 물음으로 우리 당대속에 하루하루 아둔해지고 있다. 그 아둔함 속에서 배반당한 삶은 답을 못하는 사람들을 향해 묻고 또 묻는다.

제도를 자기들만 위해 떡 주무르듯 주물러 자기 입맛에 맞춰 먹으려는 사람들에게 나는 이 말을 꼭 건네주고 싶다. '홀로 독식 사회'를 주의하라고, 그것은 막장 사회고, 파쇼의 전초 사회라고. 아, 문제는 제도나 시스템이 아닌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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