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OOM IN] 신축년에는 새 희망을

최철원 논설위원 / 기사승인 : 2021-01-17 11: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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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철원 논설위원
[일요주간 = 최철원 논설위원] 신축년 새해의 햇살이 눈부시다. 우리 모두에겐 새해라는 희망의 시간이 다가왔지만 희망스럽지 않다. 지난해 매듭짓지 못한 역병으로 세상은 헐 벗었고, 헐 벗은 풍경을 바라보는 차가운 느낌은 몸도 마음도 시려 메말라 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코로나 3차 공습으로 힘든 시기를 지내는 우리에게 사상 최대 강추위까지 겹치니 세상이 황량하기만 하다. 그런데 더 황량한 것은 우리 마음인 것 같다. 세상살이 고달프고 힘든 상황에 맞닥뜨려도 '내일은 희망'이라는 희망 속에 살고있는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정치지도자는 보이지 않고 정치꾼만 설치니 지켜보는 국민은 마음이 찹찹하다.

코로나가 세상 질서를 바꿔, 시간이 박제된 단절시대다. 마음은 저만치 앞서가야 하는데, 지금 시대는 달리는 자동차가 아닌 고장 나 멈춰선 자동차에 승차해 있다. 단절시간을 독서로 소일하며 책을 읽을 때, 저절로 그 속에 빠져들고 자세가 경건해지는 책이 있다. 예전에도 몇 번이나 읽었던 헤밍웨이 소설 '노인과 바다'는 멕시코만(灣) 앞바다에서 홀로 고기잡이하는 늙은 어부를 주인공으로 소년과 청새치가 등장하는 내용이 극히 단조로운 소설이지만, 최근 윤석렬 검찰총장이 소셜미디어 프로필에서 노인의 독백 문장(be clam and strong)을 인용해 화제가 되었기에 내용의 뜻을 새기고자 다시 노인과 바다 책을 곰싹였다.

그 책엔 로맨스라고는 조금도 없는 무미건조한 내용으로 구성이 된 산디에고 노인의 일상이 쓰여졌지만, 그 속에는 인간의 위대한 승리 드라마가 있다. 노인은 작고 낡은 목재로 된 똑딱선으로 망망대해의 험난한 파도와 집채보다 더 큰 상어를 상대로 목숨을 건 사투를 끝에 다치고 상처 입고, 살점이 다 뜯긴 청새치 뼈만 가지고 돌아온다. 그를 우리는 패배자로 볼 수 있겠는가. 노인은 어떤 어려운 환경에 맞닥뜨려도 끝까지 희망 끈을 놓지 않았고 "희망을 버린다는 건 어리석은 일이야"라는 독백으로 자신에게 용기를 말하며 스스로 희망을 잃지 않으려는 집념이 숙연했다.

노인은 바다를 정복의 대상으로 여기지 않았기에 먹이를 찾아 헤메이는 바닷새를 비롯한 모든 생명에게 연민의 시선을 던지기도 했다. 던진 미끼에 거대한 청새치가 물었을 때, 노인은 서두르지 않았다. 그는 청새치를 낚는 과정에서 청새치 입장을 생각해 물고기를 어루고 달래다가, 문득 생존 경쟁 속에서 서로 어쩔 수 없는 처지를 느낀다. 청새치를 포획의 대상이기보다 망망대해에서 서로 만난 동반자이자, 삶의 의지를 일깨우는 운명의 매개체로 생각을 바꿨다. 청새치와 싸움에서 힘이 들 때마다 자신을 향해 "진정하고 힘을 내게, 이 늙은이야(Be calm and strong, old man)"라고 외칠 뿐이다.

소설 속 노인은 자연과 투쟁한다기보다 스스로와 싸우고 있다는 것을, 노쇠하는 것은 서글픈 일이라 인간은 늙어갈수록 더욱 스스로의 존재를 증명해 보이고 싶어 했다. 얼핏 한 노년의 외로운 싸움으로 보이지만, 결국 한계에 맞서는 한 인간의 의지 찬 삶의 스토리다. 거친 폭풍우에 휘둘리면서도 끝내 좌절하지 않는 노인의 형상화는 장엄하고 숭고한 인간 삶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 주었다. 노인은 죽음을 눈앞에 느낀 순간까지도 "인간은 파멸당할 수는 있을지라도 패배할 수는 없어"라는 명구(銘句)를 내뱉으며 힘든 시간을 견뎌냈다.

그 책은 결국 한계에 맞서는 인간의 스토리다. 물고기를 잡는 것보다 한계를 뛰어넘고자 하는 과정이 의미 있는 글이다. 작가 헤밍워이는 개인이 노년에 이르러 삶의 고통을 견디고 이를 승화하여 승리하는 과정을 그려냈다. 이 내용이 남다르게 읽힌 것은 현 정권의 불법 탄압에서 맞서 견디는 윤석렬 검찰총장의 굴하지 않는 모습 때문이다. 그는 검찰의 사명과 신념, 용기, 올바름을 위한 일념으로 어려움 속에도 희망을 잃거나 포기하지 않았다. 나는 그가 난국을 타개해 나가는 의연함에 공감했고 심지어 일체감을 느꼈다.

지난 1년 시간은 악몽의 시간이었다. 국민은 마스크 속에서 전전긍긍하는 사이 정치판은 날마다 윤석렬 검찰총장과 정권의 힘겨루기로 넌덜머리를 앓았다. 부동산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천정부지로 뛰었다. 여당은 180석으로 몸을 불린 후 국민위한 정치보다 자신들을 위한 내 편 정치를 하였고 이에 편승한 패거리들은 벌 때처럼 앵앵거렸으며, 그들이 정의라 외치는 건 누구를 위한 것인지 알 수가 없다. 국회는 황당한 법을 너무 많이 만들어 말을 잘못하는 순간 전과자가 되기 십상이다. 이래서 국민의 삶은 희망을 잃고 있다.

새해라는 시간은 신의 거룩한 선물이다. 이 선물을 얼마나 거룩하게 여기고 사용하는가는 우리 각자의 몫이다. 코로나 위기에 정치권의 내로남불까지 국민들 마음을 힘들게 하여도 우리는 언제까지나 주저앉아 있을 수는 없다. 우리에게는 내일이라는 희망이 있기에 오늘을 살아간다. 우리가 희망없이 산다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일이며 심지어 그것은 죄이다. 세간의 뉴스는 온통 우울한 소식의 연속이지만 그래도 새해를 맞았으니 강인한 노인의 말을 빌려 희망을 희망하고 싶은 게 나의 희망이다.

자! 다시 희망이다. 다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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