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OOM IN] 난중일기를 읽으며 이 세태를 바라본다

최철원 논설위원 / 기사승인 : 2020-08-05 12:4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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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철원 논설위원
[일요주간 = 최철원 논설위원] 난중일기는 이순신 장군의 육필일기로 짧고 건조한 문장으로 이어져 있다. 그곳에는 뭔가 드라마틱하고 완벽한 영웅의 삶에 관한 내용은 없다. 책에서 느낀 것은 일반 글 내용에서 많이 쓰이는 희망이나 행복이나 미래가 전혀 없었다. 거기에 무슨 인생의 심오한 철리가 들어 있거나, 우리가 외어야 할 아름다운 문구가 있거나, 놀라운 수사학(修辭學) 이나, 인식론이나 철학이 담겨 있지 않았다. 그 책은 부사가 하나도 안 나오고 밋밋하고 재미가 없는, 단지 하루하루 전쟁을 수행하는 한 지휘관이 병영에서 일어난 일을 기록한 진중일기에 불과한 책이다.

당시 이순신 장군이 감당한 것은 그야말로 절망만 가득 찬 캄캄한 현실이었다. 왜군의 침략으로 전쟁이 났는데 임금은 의주로 도망갔고 조총으로 무장한 적군은 장군의 아군보다 수백 배 강했다. 부하들은 싸움이 벌어지면 겁부터 먼저 내며 뒤에서 도망가고, 이 어려운 상황에도 임금과 조정은 온갖 트집을 잡아서 이순신을 죽이려 벼르고 있었다. 그 절망시대에서 헛된 희망을 설치하고 그 헛된 희망을 꿈이라고 말하지 않고 그 절망의 시대를 절망 자체로 받아들이면서 돌파해 앞으로 나아가는 한 인간의 모습이 거기 그려져 있다.

책을 읽으며 가장 크게 놀란 것은 이순신의 인품과 리더십이나 그 덕성이 아니라, 전쟁에 임하는 장수로서 사실에 입각해 수행하는 '리얼리스트' 정신이다. 그는 오직 전쟁터에서 벌어지는 '사실'에만 몰두했다. 당시 조선 임금을 둘러싼 정치권력들은 당파성으로 갈라져 있었다. 사색당쟁으로 동인, 서인으로, 당파성에 매달려 있었다. 당파성에 빠져있는 자들의 눈에는 현실의 올바른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자기 당파성이 지향하는 바의 노선 또는 이익, 그것을 정의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순신에게는 어떠한 당파성도 없었다. 그는 오직 사실에만 입각해 왜군과 싸워 연전연승한 것이다.

사실에 입각한다는 것은 인간이 자기에게 주어진 현실을 과학적으로 인식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그의 연전연승은 과학(거북선 발명)과 사실의 승리인 것이며, 과학과 사실의 힘이 아니면 그 싸움을 이겨낼 도리가 없는 것이다. 물론 리더쉽과 덕성이 그 사실을, 과학을 조직하고 작동시킬 수 있는 힘이 됐다. 그러나 탈정치성은 당파성에 익숙한 자들 눈에는 가시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조정은 이순신을 죽이려고 하는 것이다. 저자가 왜군과 싸움에서 연전연승을 하는데, 바다에서 연전연승을 하는 저자가 도대체 누구의 편인지를 알 수가 없으니까. 아무런 당파성이 없는 인간이니까. 너무나 무서운 존재이기에 살려둘 수가 없는 존재였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7월 윤석렬 검찰총장에게 임명장을 주는 자리에서 "비리가 있는 곳에는 여·야 가릴 것 없이 수사하라"고 말했다. 윤 총장도 "나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 정도를 걷고, 주변을 살피지 않고, 죄가 있는 곳에는 좌고우면하지 않으며 법과 원칙에 따라 수사하겠다."라고 답했다. 이것은 '사실에 입각한 리얼리스트' 정신이다. 그래서 윤 총장이 '문제가 있는 살아있는 권력'을 향해 칼끝을 겨눴지만, 그 칼이 부당하고 검찰 권력의 남용이라는 여당 측의 반발을 사면서 여권과의 대립과 갈등은 시작되었다.

검찰총장을 둘러싸고 일고 있는 검찰조직의 활극을 보면 한 편의 무협영화를 보는 듯하다. 검사동일체의 원칙은 대한민국 검찰 역사에서는 정립된 원리였다. 그러나 그 조직 문화라는 정서는 냉엄한 현실 앞에서는 아무런 가치가 못된다. 검언·유착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대검과 중앙지검이 서로의 잘못만을 밝히려 든다면 그 조직은 이미 문제가 있는 조직이다. 국민은 관심도 없는 문제인데 왜 같은 조직끼리 서로 죽기 살기로 몸싸움도 마다하지 않고 고소, 고발까지 하며 갈 때까지 가야 하는가. 어느 쪽이 옳고 그름을 따지기에 앞서서 인간이 인간한테 보여주는 이 말할 수 없는 냉철함, 거기에 국민은 절망한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채널A 기자와의 검언·유착 수사는 이 사태의 책임이 윤석렬 총장에게 있다는 여권의 생각이 깔려 있다. 그런 연유로 이 사태의 책임 소재를 묻는 공세와 방어로 적대 관련 두 세력이 연일 볼썽사나움을 연출을 하고 있다. 책임의 소재 규명으로 육탄전을 벌인 까닭은 그 책임 어느 쪽으로 귀착되느냐에 따라 얻거나 잃을 수 있는 정치적 이해득실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난투극 사태에 대해서는 누구도 잘못이라고, '우리 책임'이라고 말하는 것을 들어 본 적이 없다.

서울 부동산이 연일 신(新)고가를 갱신하며 무주택 서민의 내 집 마련이 멀어지고 집권여당과 공직사회의 짝짜꿍은 이미 제도화되어 있고, 검찰의 검사동일체 원칙은 먼 나라 얘기며 끼리끼리 정서로 굳어졌다. 심지어 법무부와 중앙지검은 상부상조가 미풍양속으로 자리 잡은 듯하다. 공복들이 직무상의 권한과 재량권을 총칼로 삼아 천지풍파를 일으키니 바라보는 국민은 "나라가 네 것이냐"라는 목소리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아, 왜 이러나 제발 이러지는 말자.

이순신 장군은 최악의 조건에서 최고의 전략과 전술을 통해 23전 23승을 기록했다. 거대 여당 배경으로 금융과 조세정책을 틀어쥐고도 23전 23패의 부동산 정책을 보며 이 난세에는 왜 영웅이 나타나지 않는가. 현 정권이 말하는 검찰개혁이 윤석렬 개인에게 초점을 맞춘 것이라면 과연 그것이 진정한 검찰개혁인가. 두려운 마음으로 말하건대, 검찰개혁이라는 미명 아래 민주주의를 가두는 결과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개혁이라는 형식 아래서 벌어지는 또 다른 예속과 억압이 아니기를 바란다. 우려할 만한 조짐은 이미 여러 곳에서 보이기 시작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오직 리얼리스트 정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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