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OOM IN] 6.25 교훈이 일깨우는 자유의 소중함

최철원 논설위원 / 기사승인 : 2020-07-02 14:1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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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철원 논설위원

[일요주간 = 최철원 논설위원] 과거 기억 중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 여럿 있다. 6·25전쟁은 한국사에서 가장 처참했던 동족상잔의 잔혹사로 당시 미군 총사령관 워커 장군은 "잘못된 장소에 잘못된 시기에 일어난 잘못된 전쟁"이라고 말했다. 일제 식민지에서 막 벗어나 국가의 기틀과 정비도 제대로 못 갖춘 대한민국. 지구상에서 가장 후진 된 한반도에 자유주의/공산주의의 모순이 폭발한 전쟁으로 우리나라는 단군 건국 이래 가장 거대한 파괴와 절망을 맞았다.

6·25전쟁 70년 주년 그날 기념 방송 화면에 비친 빛바랜 흑백사진에는 폭격으로 무너진 대동강 철교에 개미 떼처럼 들러붙어서 강을 건너오는 동포들, 지붕도 없는 화물기차에 입추의 여지없이 피난민을 가득 태우고 남으로 향하는 기차, 들판에 널려있는 끝도 보지 않는 죽음의 시신들. 폐허로 남은 공업시설, 티브이 화면에서 당시 상황을 재현한 것을 보며 치열했던 전투의 한복판에서, 처참한 학살 현장에서, 무너지고 사라져버린 삶의 터전에서 전쟁의 참혹함이 그대로 느껴진다.

이 화면을 보며 유년 시절이 저절로 떠올랐다. 부르주아 반동 계급에 속해 있었던 부모님은 오직 살아남기 위해 정든 고향 땅을 등지고 무작정 남쪽으로 떠나 대구에 정착하였다. 당시 우리 가족과 피난민들은 미군이 지어준 열악한 집단 수용소에서 살았으며, 사람들은 모든 생활시설에 (수도, 화장실 등) '공동'이란 단어가 붙은 곳에서 생활했다. 나는 이곳에서 유년 시절을 살았으며 어린 시절 겪은 가장 큰 힘듦은 공동시설 이용의 불편함보다 전쟁으로 인한 추위와 배고픔이었다.

기아 선상을 겪어 본 사람만이 배고픔의 처절한 고통을 알 수 있다. 추위가 살을 에는 영하에 날씨에 변변히 입을 옷도 못 챙겨 입은 7곱 살 어린 나이. 나의 일과 시작은 아침에 눈 뜨면 유엔 구호단체에서 배급해 주는 강냉이죽을 얻으러 가 줄 서는 것이었다. 오후에는 동네 형들과 미군부대 앞에 찾아가 미군의 초콜릿을 얻어먹는 일이었다.

대봉동 근처 미군부대가 앞에 가면 철조망에 미군 보초병들이 있었다. 철조망 밖에는 옷은 남루하고 머리에 부스럼이 있는 아이들이 흡사 거지 떼처럼 몇십 명이 모여있었다. 누군가가 어떻게 배웠고 무슨 말인지도, 그 뜻도 잘 모르는 미국말을 했다. "헬로 기브미 쪼꼬렛또"라고 선창을 하면 아이들이 따라 외쳤다. "헬로 기브미 쪼꼬렛또" 미군은 철조망 밖에 모여있는 아이들을 향해, 피난민 자식들을 향해서 초콜릿을 던져 주었다. 몇 개를 왼쪽으로 던지고 몇 개는 오른쪽으로 던졌다. 또 한 움큼 멀리 던졌다. 아이들은 초콜릿 던지는 방향으로 이리 몰리고 저리 몰렸다. 나는 운 좋게 몇 개라도 잡으면 동생과 나눠 먹으려 집으로 내달렸다. 그것이 한국전쟁 70년을 맞아서 내 머리에 떠오르는 상념이다. 그 슬픈, 비통하고 처참한 어린 시절의 기억들. 6·25전쟁이 어린 나에게 남겨준 기억들이다.

북한의 비겁한 기습으로 시작된 전쟁은 강토를 피로 물었으며 남한 국민의 삶을 송두리째 바뀌어놓았다. 기록에 의하면 당시 남북한 전체 인구 3,000만 명 가운데 약 10%에 해당하는 300만 명 이상의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10만 명의 전쟁미망인이 생겼고 5만 명의 전쟁고아가 생겼으며, 뛰어난 인재 수만 명이 납북되어 무참히 죽어간 그 전쟁. 남한 국토의 90%가 적화되었고, 대구와 부산 등 국토의 10분이 1만이 겨우 남아서 대한민국의 깃발을 간신히 나부꼈던 전쟁은 공업 시설의 전부를 잿더미로 만들고 도시 전체를 초토화한 광란의 도가니였다.

70년 시간이 흐른 지금 되돌아보면 전쟁은 우리에게 어떤 역사적 교훈을 남겼나. 현시대를 사는 우리는 이상과 환상 속에서 살아가는 어리석은 관념 논자가 되지 않아야 한다. 비극적 역사의 현실을 직시하는 냉철한 통찰력으로 전쟁의 비극을 주시하자. 여론조사에서 6·25전쟁이 '북한의 책임'이란 20대는 44%에 불과하다. 이처럼 지금 세대는 6·25전쟁의 비극을 그저 남 이야기를 듣듯이 관념적, 피상적으로 알고 있을 뿐이다. 핏줄기를 함께한 민족이기에 너그럽게 용서하자며 남 이야기하듯 하지만 6.25의 비극과 북한의 만행과 전쟁 책임에 관한 분명한 규명은 결코 잊어버려서는 안 된다.

자유를 잃어버린 사람들만이 자유의 소중함을 알고 있다. 비록 빛바랜 세월에 상처가 아물었다 해도 아직도 곳곳에 상흔은 남아있다. 우리는 역사에서 도피할 수는 없기에 역사에서 지혜와 교훈을 배워야 한다. 대한민국의 역사는 자유의 발전사다. 세계사 역사를 들여다보면 어떤 역사였든 인류가 언제나 추구한 것은 자유였다. 인류의 창조적 에너지의 바탕이 자유였기 때문이다.

전쟁이 끝난 겨우 두 세대. 우리나라는 인구가 세 배 늘어난 사이 소득은 300배로 키웠고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으로 발전하여 세계의 부러움을 받는 나라가 되었다. 이처럼 대한민국이 발전하기까지는 자유 민주주의 체제하에 우리도 잘 살아 보자는 근면함으로, 슬기와 노력의 결과다. 그러나 북쪽에서 절대 빈곤으로 신음하면서 시대에 뒤떨어진 공산주의 일당독재 정책으로 김 씨 왕조 체제를 받드는 모습을 보며 우리는 자유의 소중함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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