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사탐방-⑧] 생명을 품은 천년고찰, 선석사(禪石寺)

이재윤 / 기사승인 : 2019-04-12 14:25:57
  • -
  • +
  • 인쇄

[일요주간 = 이재윤 기자] 대구 성서를 지나 강창교 건너 30번 국도를 따라 성주 가는 길, 가을로 물들어가는 도로변 풍경과 함께 905번 지방도로 접어들면 가을은 더욱 완연한 빛깔로 물들어 있다. 어은삼거리를 지나 어산, 인촌리 방향으로 가다 보면 생명문화공원 표석을 지나 오른쪽에 새롭게 단장한 공원이 있고 그 위로 선석사 가는 길이 나온다.


선석사로 오르는 길 왼편으로 오랜 세월의 무게를 고스란히 이고 선 소나무들과 느티나무들이 시위하듯 줄지어 서 있는데, 그 모습이 천년고찰 선석사의 무게를 더하고 있는 듯하다.

 

▲ 선석사 일주문.(출처=선석사 홈페이지)

◆ 세종대왕 왕자태실 수호 사찰, 선석사


선석사 입구 주차장에 서면 절과 더불어 오랜 고목들이 시야를 가득 메운다. 선석사와 더불어 오랜 세월을 지켜온 멋스러운 고목들은 의연하고 기품있는 모습으로 고요한 절간의 풍경을 무심히 담아내고 있다.


선석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9교구 본사 동화사의 말사로, 성주군에서는 가장 큰 사찰이다. 692년(신라 효소왕 1년) 의상(義湘)이 화엄십찰(華嚴十刹) 중 하나로 창건하였다고 한다. 창건 당시에는 현재 위치보다 서쪽에 위치하고 있었고 절의 이름도 신광사(神光寺)로 하였는데, 1361년(공민왕 10년) 나옹(懶翁)이 신광사 주지로 부임한 뒤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새 절터를 닦다가 커다란 바위가 나와 터 닦을 ‘선(禪)’자를 넣어 절 이름을 ‘선석사’로 하였다고 하는데, 지금도 대웅전 앞마당에는 머리 부분만 땅위로 솟아나와 있는 바위가 지키고 서 있다.


선석사는 임진왜란 때 전소된 뒤 1684년(숙종 10년) 혜묵(惠默), 나헌(懶軒) 등에 의해 중창되었고, 1725년(영조 1년)에 서쪽의 옛터로 옮겼다가 1804년(순조 4년)에 서윤(瑞允)이 신도들의 도움을 얻어 지금의 자리로 다시 이전하고 대웅전, 명부전, 칠성각, 산왕각, 어필각, 정법료 등의 당우를 갖추었는데,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을 비롯해 명부전, 칠성각, 산신각, 요사채, 태실법당 등이 남아 있다. 최근에는 대웅전 뒤 대나무 숲 아래 야외 미륵부처님을 조성했다.


선석사를 처음 찾는 이들의 눈길을 끄는 이색적인 공간이 있다. 대웅전 옆에 자리 잡은 태실법당의 문을 열면 아기를 안고 가슴을 드러낸 자모관세음보살상을 중심으로 작은 놋항아리들이 빼곡히 정렬되어 있다. 아기들의 태를 봉안하고 기도하는 태장전이다.

 

▲ 선석사 대웅전.(출처=선석사 홈페이지)

선석사 선오스님은 “우리 절을 찾는 신도님들이 자제들의 태를 봉안하고 안녕과 복을 기원하는 공간으로 마련했다”며 “선석사는 세종대왕의 왕자 태실이 있는 태봉에서 약 200m 거리에 위치하고 있는데, 조선시대 왕자의 태실을 수호하는 사찰로 지정되어 영조로부터 어필을 하사받기도 한 사찰”이라고, 태실법당을 조성한 경위를 설명했다. 



선석사에는 영조로부터 받은 어필을 보관하는 어필각이 있었으나 화재로 소실돼 지금은 기록으로만 남아 있다고 한다. 그리고 어필각 주위에는 바람이 불면 이상한 소리를 내는 쌍곡죽(雙谷竹)이라는 대나무숲이 있었다고 한다. 이 대나무를 잘라 만든 피리는 그 소리의 맑고 깨끗하기가 다른 피리와 비길 바가 없었으며, 이를 교방적(敎坊笛)이라 하였다고 하는데, 아쉽게도 이 역시 남아 있지 않다고 한다.

◆ 염화시중(拈花示衆), 선석사 괘불탱


선석사에는 보물로 지정된 영산회괘불탱(靈山會掛佛幀, 보물 제1608호)이 있다. 석가모니가 영취산에서 설법하는 모습을 표현한 것으로, 가로 4m 64cm, 세로 6m 75cm의 거대한 괘불탱은 숙종 때인 1702년에 제작된 것으로,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연꽃을 든 문수보살과 보현보살, 가섭존자와 아난존자 등 4명의 나한이 배치된 형식을 취하고 있다.

 

▲ 출처=선석사 홈페이지.
선석사의 괘불탱은 보통의 영산회상도와 달리 오른팔을 어깨까지 들어올려 분홍빛 연꽃을 잡고 있는 석가모니를 중심으로 좌우에 문수, 보현보살을 배치한 삼존불 형식에 가섭과 아난 등 네 제자만을 묘사한 간략한 형식을 보여주고 있는데, 석가모니가 대중들에게 꽃을 들어보이지 오직 가섭만이 그 뜻을 알고 미소를 지었다는 염화시중(拈花示衆)의 미소를 상징하는 것으로, 흔히 염화불(拈花佛)이라고 부른다.


현재까지 알려진 불화 중 염화시중을 표현한 것으로는 가장 이른 것으로, 보물 1445호로 지정되어 있는 예천 용문사의 영산회괘불탱이 이곳 선석사 괘불탱을 본보기로 제작되었다고 하는데, 현재는 괘불탱의 보존과 보호를 위해 아주 특별한 행사 때만 대중에 공개된다고 한다.


선오스님은 여력이 된다면 이층 누각 형태의 전각을 지어 상시적으로 괘불탱을 전시해 선석사를 찾은 이들이 괘불탱을 감상하고 그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기회를 가졌으면 하는 바람을 전했다. 

[저작권자ⓒ 일요주간.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오늘의 이슈

뉴스댓글 >

주요기사

+

PHOTO 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