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사탐방-④] 하늘을 이고 선 적멸보궁,..비슬산 대견사

이재윤 / 기사승인 : 2019-02-22 13: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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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주간 = 이재윤기자] 대견사로 가기 위해선 비슬산 자연휴양림 입구 주차장에서 30분 간격으로 운행하는 전기차를 이용해야 한다. 대견사로 오르는 길이 워낙 가파른데다 길이 좁아 사고의 위험이 있어 일반 차량은 모두 통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산길 위로 드리운 높은 가지 위에서 우짖는 산새들의 재잘거림, 숲 속에서 불어오는 싱그런 바람과 하늘을 덮은 무성한 잎들 사이로 부서지는 햇살, 산길을 느릿느릿 전기차를 타고 오르는 것도 도심 속 일상을 벗어나 만나는 색다른 경험이다.
 

◆ 두 번의 폐사, 일제의 민족정기 훼손


그렇게 비슬산 자연휴양림을 지나 굽이굽이 산길을 올라 하늘과 맞닿은 해발 1,000m 고지에 자리 잡은 대견사의 모습은 절로 감탄을 쏟아내게 한다. 발아래 춤추듯 일렁이는 구름과 그 사이로 모습을 드러냈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비슬산의 비경들, 그리고 마치 절간을 시위하듯 품고 있는 웅장한 바위들의 위용, 빈 허공으로 힘차게 뻗어나간 석축 위에 고고한 자태를 뽐내며 서 있는 석탑의 실루엣에 절로 손을 모으게 된다, 

 

▲대견사.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신 적멸보궁 비슬산 대견사는 설악산 봉정암, 지리산 법계사와 더불어 1,000m 이상의 고지대에 자리 잡은 사찰 중 한 곳으로, 특히 대견사는 산 정상에 자리 잡고 있어 그 신비로움을 더하고 있다. 


대견사는 삼층석탑, 석축, 우물, 마애불 등만 남아있던 절터에 지난 2011년 동화사에서 50억원의 예산을 들여 대웅전, 선당, 종무소, 산신각 등 4동의 전각을 짓기 시작해 2014년 3월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창건자는 미상이나 신라 흥덕왕 때 창건된 사찰로 알려져 있는데, 일연스님이 1227년 22세의 나이로 승과에 장원급제해 초임주지로 와 22년간 주석한 곳이다. 일연스님은 이곳에서 삼국유사 및 집필을 구상했다고 한다. 


대견사는 창건 후 두 번의 폐사를 겪게 되는데, 첫 번째는 임진왜란 때 침략한 왜군에 의해서였고, 두 번째는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에 의해서였다. 두 번 모두 대견사가 일본의 기를 꺾는다는 이유 때문이었는데, 그런 의미에서 지난 2014년 대견사의 재건은 민족의 소중한 문화유산을 재현하고 더불어 일제에 의해 끊겼던 우리 민족의 정기를 회복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 역사였다.

◆ 어머니산을 지켜온 호국불교의 성지


대견사 대웅전 현판은 ‘대견보궁(大見寶宮)’이라 쓰여 있다. 대견사는 불상 대신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시고 있어 적멸보궁이라 한다. 대견보궁 앞마당에서 문을 열고 바라보면 뒤뜰에 모셔진 부처님 진신사리탑이 바로 보인다. 대견사에 봉안한 진신사리는 2013년 11월 동화사에서 스리랑카 쿠루쿠데 사원에서 모시던 부처님 진신사리 1과를 기증받아 이운한 것으로, 이 진신사리는 서기 103년부터 스리랑카 도와 사원에서 보관해 오다 1881년부터 쿠루쿠데 사원에 모셔진 사리 4과 중 하나다.

 

▲대견사 내부 모습.

대견보궁 옆 선당을 지나 오른편에 천연암굴을 품고 있는 커다란 바위 표면에 생소한 문양이 눈길을 잡아끈다. 경내를 안내해 주시던 법회 스님(대견사 목암불교대학장)이 ‘유가심인도(瑜伽心印圖)’라며 자세한 설명을 해주셨다.

“여기에 보면 하부에 연화대좌를 새기고, 대좌 위쪽에는 아래가 넓은 5개의 동심원을 그려 놓았는데, 그 동심원 밑에 고사리무늬를 대칭되게 새겨 놓았어요. 이는 부처님이 선정에 드는 모습을 다섯 단계로 표현한 것으로 남원 승련사 뒷산과 오대산 상원사 적멸보궁에 세워진 비석 뒷면에서 발견된 밀교 문양인 유가심인도(瑜伽心印圖)와 거의 같은 형태입니다. 유가심인도는 깨달음의 최고 순간을 공(空)으로 나타낸 밀교 문양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세 곳에서만 발견된 희귀한 문양입니다. 아래쪽에 바위가 떨어져나갔는데, 다른 곳에서 발견된 유가심인도의 경우와 비교해 아마 그 자리에 ‘옴마니반메홈’ 진언이 새겨져 있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신비로운 유가심인도를 뒤로 하고 돌아서면 저 멀리 유가산 자락을 굽어보는 석축 위 고고한 삼층석탑이 한눈에 들어온다. 


석탑이 딛고 선 석축은 신라시대에 축조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현재 길이 30m, 높이 6m 정도의 축대가 남아 있다. 여전히 견고한 모습으로 석탑을 받치고 선 축대는 오랜 세월에도 대견사지터를 탄탄히 이고 섰다. 


석탑은 높이 3.67m로 자연암벽 위에 2층 기단을 구축하고 삼층 탑신을 올렸는데, 탑신 너머로 펼쳐지는 푸른 하늘과 비슬산 풍경과 어우러져 신비로움과 고고한 자태를 뽐낸다. 오랜 세월 석축 위에서 고고히 견뎌낸 대견사 삼층석탑은 수많은 외세의 침탈에도 꿋꿋이 민족의 정기를 지켜왔던 호국불교의 상징이다. 


대견사는 소박한 절집의 일상과 비슬산, 그리고 하늘이 만나 빚어내는 절경과 신비로움으로 마음을 어루만진다. 마치 자애로운 어머니의 손길처럼….

“적멸보궁 비슬산 대견사는 석가세존이 진신사리를 모시고 제세시의 상수제자들과 16 나한, 1250 아라한 제자들의 명등불을 밝혀, 이 시대의 부처님 영웅과 대웅들이 정성천왕 산신님 외호 아래 하루 속히 일천장자, 일천성자, 일천부처님 모두가 나투심을 증명하여 보여주실 것입니다.”
- 법희 스님(대견사 목암불교대학장, 목암문화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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