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OOM IN] 소금이 짠맛을 잃으면

최철원 논설위원 / 기사승인 : 2020-06-05 15:4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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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철원 논설위원
[일요주간 = 최철원 논설위원] 마태복음 5장은 의(義)로운 삶에 관한 말씀으로 13절에서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오. 후에는 아주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했다. 예수께서 소금의 물질적 기능을 빗대어 제자들이 살아야 할 삶의 방식이 아니라, 제자로서의 정체성 상실을 두고 한 말씀이다. 비록 형태가 달라질지라도 소금이 짠맛을 결코 잃을 수 없듯이, 삶의 방식이 어떻게 변할지라도 결코 변할 수 없는, 아니 변해서는 안 되는 '제자다움'을 잃어버릴 수 있는 제자들에 대한 경고의 말씀을 했다.

소금이 짠맛을 잃으면 어디에 쓸 것인가?

소금이 상했다는 말을 들어 본 적은 없다. 그런데 지금 시민운동의 소금이 상했다. 언제부턴가 시민운동이 본래 존재 목적보다 입신양명의 지름길로 되어 있었다. 그래서인지 요즘 세상을 둘러보면 시민운동을 한다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원래는 모두가 소금이었으되 그 짠맛을 잃어버린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소금, 아니, 쓸데없는 정도가 아니라 독소만 남아 사람과 세상의 건강을 해치는 나쁜 소금으로 변질했다.

인권운동의 본질은, 자신의 권리를 침해받아 몸과 마음의 상처를 입은 사람을 보듬는 인권회복, 치유 운동이다. 몸의 상처는 흉터가 남아도 치유가 되지만 마음의 상처는 평생을 간다. 마음에서 흘리는 피는 다른 무엇도 아닌 사람의 마음으로 치유해야 한다. 그래서 피해자들에게는 지옥 같았던 고통을 털어내 버려 자신들을 보듬고 안아 줄 사람을 찾아 의지하려 한다. 그런데 그 운동이 사회와 언론의 관심을 받으며 사람들이 모이고 돈이 모이며 권력화가 되었다.

정의기억연대 목적사업이 부대사업이 됐다. 목적과 명분이 아무리 좋은 것이라 할지라도 과정이 정당하지 못하면 목적을 희석시킨다. 요즘 우리 사회를 뒤흔들어 놓고 있는 정의기억연대의 인권운동 방법이 피해자의 실질적 복지와 기부금 사용 명세가 흐물흐물해 벌어진 이야기다. 이용수 할머니의 기자회견 폭로로 촉발된 윤미향과 정의기억연대의 사태에 관한 의혹은 검찰 수사 과정을 통해 밝혀질 것이니 여기에 말을 더 보태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다만 나의 관심은 이러한 사건 때문에 야기될 시민운동가의 도덕 타락 현상이다. 시민운동은 올바른 사회를 지향하는 소금 역할을 말한다.

굴절된 한국 근현대사에서 일제의 위안부 동원으로 상처 입은 할머니들의 짓밟힌 인권과 피해보상, 상처치유를 위해 '민간 의병'이 '관군'을 대신해 의롭게, 외롭게 이 일을 끌어 안아온 시민사회 운동에 관한 것이 폄훼되는 것은 옳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국민은 잘 이해하고 있다. 그런데 정의연의 일련의 운동방식은 그동안 국가를 대신해서 대일 과거사 문제를 제기, 해결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해서 공적인 일에 헌신해온 이 사회 모든 사람을 모욕함과 동시에 이런 활동에 감동하여 함께할 의지를 갖는 청년들을 허탈하게 만들었다.

2001년 9월 당시 경실련 사무총장이던 이석연 전 법제처장은 참여연대를 이끌던 박원순 현 서울시장 간 논쟁에서 이석연 전 처장은 시민운동의 병리 현상을 네 가지로 정리했다. 첫 번째 시민단체의 권력 기관화, 둘째는 시민단체의 관료화다. 세 번째 헌법보다 위에 서는 심판자가 되려 한다며 초법화(超法化), 네 번째 관심을 끌어 한 건 터뜨리는데 몰두하는 센세이셔널리즘(선정주의)이라 비판했다. 이 처장의 당시 지적은 지금 들어도 고개가 끄덕여질 정도로 현실성이 있다. 여기에 덧붙일 한 가지가 있다. 반성을 모르는 몰염치의 병리 현상이다.

윤미향 국회의원이 이용수 할머니의 절규를 듣고서도 꿈쩍 않고 버티는 게 말이 되느냐, 최소한의 도덕성도 없는, 세계에 유례없는 독특한 시민운동을 우리는 목격하고 있다. 불쌍한 사람들을 내세워 국민들의 돈을 기부하도록 유도하면서 자기 이익을 챙기려는 사람들이다. 위안부 할머니를 도와야 한다고 거액을 모금하고는 막상 할머니들에게는 쥐꼬리만큼 주고 나머지 돈은 어디에 썼는지 의혹투성이 정의기억연대 단체를 바라보는 국민은 기가 찬다.

윤미향 당선인을 둘러싼 의혹의 본질은 시민단체의 권력화다. 정의와 바름으로 정부 감시와 견제가 존재 이유였던 시민단체가 피해자를 볼모로 자신들의 사업을 한 정황이 곳곳에서 드러났다. 할머니들의 희망이 절망이 되었고 열정이 냉소로 바뀌었다. 인권운동가가 인권피해자의 마음을 배려하지 못하고 운동을 위한 운동에만 치중했다면, 또 그것으로 인해 또 다른 로또를 누린다면 피해자 마음의 상처에 또 한 번 소금을 뿌리는 것이다.

평생을 위안부라는 멍에를 지고 마음속 상처에서 피를 흘리며 사는 할머니 모습과 그것을 이용 입신양명한 세태가 우리를 우울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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