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OOM IN] 무사유(無思惟)한 삶, 올바른 삶인가

최철원 논설위원 / 기사승인 : 2020-03-09 16: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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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철원 논설위원
[일요주간 = 최철원 논설위원] 오랜만에 만난 동기 모임 술자리에서 들은 대화 내용이다. "자네 '골빈당'이란 말을 들어 봤어"? 그 뜻을 잘 모르는 상대가 되물었다. "무슨 말인데"? “한마디로 골(腦) 빈 사람, 개념 없는 놈들이 집단으로 모인 곳을 가르치는 뜻이야. 무사유란 단어는 골이 비었다는 말을 고상하게 표현한 단어라고...”

독일 태생의 유대인 철학사상가인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는 ‘촛불시위’ 이후로 가장 주목받은 서구 정치 이론가다. 그가 쓴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서구의 전통적 정치 개념에 근본적인 반성을 제기하고 새로운 사유의 길을 열었다. 그는 유대인 학살의 전범자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과정을 지켜보며 "상부의 지시를 따랐을 뿐 자기 잘못은 없다며 철저히 무죄를 주장"하는 아이히만에게 "자신의 업무를 성실 수행한 것은 죄가 될 수 없다. 그러나 그가 유죄인 이유는 사유하지 않음에 있다며 악의 뿌리는 '무사유'(無思惟)”라 했다.

문재인 대통령 열성 지지층의 형태가 새삼 논란의 중심에 있다. 대통령에게 "경기가 거지같아요."라는 아산의 반찬가게 주인을 "불경하다"며 신상털기를 하고 민주당이 고소 취하한 임미리 교수를 다시 고발하고,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잘못을 인정한 금태섭 의원을 반드시 낙마시키겠다고 나서는 형태는 도를 넘은 극렬 지지 행위로 문 대통령, 여당 지도부 묵인이 이들의 무차별 공격을 키웠다. 코로나19 감염으로 나라는 비상시국이고 경제는 추락하고 국민은 아우성치는데 문 대통령의 극렬지지층 형태는 집단적 무오류, '무사유' 최면에 걸려 있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 사회에도 개인의 사유를 멈추게 하는 다양한 아이히만이 살고 있다. 그들은 오직 '온리 유(only you)'의 무사유한 조직들이다. 그들은 타인의 이견에 최소의 존중과 관용 없이 시대착오적 형태로 무지막지하게 공격한다. 이들이 반대 의견을 개진하는 상대에게 SNS에 도배하는 글, 개인 전화에 문자폭탄 퍼붓는 행동은 마치 성경 마태복음에 나오는 '군중'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매달아라, 매달아라!"라는 야비한 외침을 떠올리게 한다.

문 대통령은 인터넷과 소셜미디어에 관심이 각별하다. 그곳은 친문 지지층, 이른바 '문빠"들의 활동공간이다. 거기서 문 대통령은 절대적 존재다. 절대 잘못을 저지르지도, 오류를 범할 수도 없다. '이니님'(문 대통령 애칭)이 하는 일은 무조건 지지하고 떠받드는 팬덤(fandom)의 세상이다. 최고의 존엄으로 모시면서 '개싸움'은 우리가 나서겠다고 그런다. 마치 나치의 친위대처럼 행동하고 대통령은 이들에게 신성불가침의 성역이 돼 버렸다.

내 편을 추종·열광하고 상대를 저격하는 건 팬덤 정치의 속성이다. 팬덤 정치는 문 대통령만의 문제가 아니다. 일부 열성 지지자의 일탈 역시 '문빠'의 고유색이 아니다. 미래통합당 지지 모임. 이재명 경기지사 지지조직, 보수 세력의 태극기 부대까지 극단적 주장은 항상 존재한다. 그러나 열성 지지 표현은 방어 무기지만 내 편을 찌르는 흉기가 될 수도 있는 양날의 칼이다.

최근 '대한민국, 무엇이 위기인가'를 쓴 정치학자 양승태 梨大 명예교수는 "지지층의 광적 편들기를 즐기는 리더는 국가를 위기에 빠뜨린다며, 자기만의 사유와 논변이 없으면 다른 사람들과 자유롭게 토론하면서 배우는 걸 꺼린다. 곁으로는 선량해 보여도 자신의 편협한 정신세계와 어울리는 이들과의 대화에 만족할 뿐이다. 그런 인물이 통치하면 국가를 패거리 정치에 휩쓸리게 할 수 있다" 했다. 그는 또 "지지 세력 없이 권력을 잡을 수는 없다. 그러나 권력을 장악 후에는 폭넓게 인재를 등용할 수 있어야 패거리 우두머리가 아닌 대통령의 자격이 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국민 전체가 아니라 일부 지지층의 광적인 편들기를 즐기고 있다." 했으며 "마치 독재 권력의 전초(前初)처럼 보인다." 했다.

독재 권력은 저 혼자 좌충우돌하며 권력을 휘두르는 게 아니다. 권력자 주변에는 권력을 받드는 강력한 사조직이 있고, 그들은 권력자를 뒤따르고 국물을 얻어먹으려는 다수의 사람이다. 히틀러도 나치 친위대에 수많은 아이히만 같은 존재가 있었고 모택동도 문화혁명의 광풍을 받들었던 홍위병들이 있었다. 한나 아렌트는 그들의 행동을 '악의 평범함'이라는 탁월한 고찰로 무사유 때문이라 했다. 무사유란 생각 없는 삶, 내가 하는 일이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생각하지 않고 그저 기계처럼 단순 반복하고 있는 삶을 말한다.

무사유한 행동을 하는 그들은 상식과 예의, 법, 원칙을 어겨도 잘못된 줄, 부끄러운 줄을 모른다. 다만 '코드'가 최고의 가치다. 물론 그 가치가 가짜거나 왜곡된 것일 경우도 많다. 거짓 가치가 사람들을 통제하고 지배하는 데에 이용된 역사를 우리는 알고 있다.

그래도 그것을 비판하고 맞서 싸울 수 있는 것은 그런 보편적 가치라는 '기준'을 공유해야 한다는 원칙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지금 눈앞에서 전개되고 있는 그 원칙조차 내팽개치고 적개심만 만드는 세상. '기준'이 필요하다는 의식조차 잃어가고 있는, 무사유한 사람들이 SNS에 도배질하고 문자 폭탄이 난무하는 무서운 세상이다.

무사유가 사유를 내모는 세상. 정치가 대안을 제시하기는커녕 오히려 혐오에 기생하며 문자 폭탄을 퍼붓는 것을 부추기는 것은 문명사회에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지금 사회를 멈추는 코로나19 질환보다 더 많은 사람을 해치는 것은 극단적 혐오와 상대방 배제다. 서로가 서로를 싫어하고 미워하는 세상에서는 결국 아무도 살아남지 못한다. 이 시대 최고의 가치는 무사유(無思惟)하지 않는 삶을 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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