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OOM IN] 광장정치로 변신하는 의회정치

최철원 논설위원 / 기사승인 : 2019-10-10 16:2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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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철원 논설위원
[일요주간 = 최철원 논설위원] 대한민국의 정치사에서 보수·진보는 정정당당한 대립·경쟁의 시대를 한 번도 제대로 갖지 못했다. 정강정책이 시대적으로 뒤떨어지는 진보·보수라는 내용으로 정당끼리의 집권을 위한 권력 투쟁만이 되풀이되어 왔을 뿐이다. 그 투쟁은 정책 경쟁과는 거리가 먼 갈수록 격렬해지기만 했고, 지금은 앞에서 말한 대로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벼랑길로 가고 있는 느낌에 있다.

지금 정치는 국민을 상대로 시행되는 직접민주주의 정치시대로, 어느 쪽이 더 많이 모여 세를 과시했느냐는 후진국형 광장정치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타협과 조정의 과정은 증발하고 오직 자신들만의 정치적 이익으로 단판의 선택만을 강요하고, 강요당하는 밀어붙이기식 정치 형태가 상식으로 통용되는 오늘이 되고 말았다. 세상은 달라졌어도 정치는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우리의 정치 문화는 오히려 군사정부 이전보다도 훨씬 더 후퇴한 꼴에 서 있다.

정치가 광장정치로 변신하며 최소한의 정치적 덕목과 상식, 절제마저 팽개친 채 저잣거리보다 못한 이전투구의 장으로 변질하고 있다.

진보진영이 대규모 지지층을 동원, 서초동에서 벌린 촛불집회는 의회 정치를 뛰어넘으며 광장정치에 불을 댕겼다. 보수진영도 이에 질세라 대규모 군중을 동원 광화문에서 집회하였다. 진보는 더 많은 군중을 서초동으로 불러내, 2차 촛불집회를 개최하였다. 대한민국 초미의 관심은 어느 쪽이 더 많이 모여 세를 과시했느냐는 숫자 놀음에 빠져 있다. 지금처럼 광장집회가 거듭할수록 민주주의는 퇴보할 것이며, 국민은 두 쪽으로 쪼개질 것이다.

국민의 이름을 빙자한 파시즘이 광장정치에 편승해 의회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게 정치권의 현주소다. 진보·보수의 서초동, 광화문 집회는 정치권 스스로 조정기능은 팽개친 채 광장의 정치에 빨려 들어가고 있다. 의회정치 무력, 거리정치 득세의 기류는 촛불정부를 자임한 문재인 정부가 의회민주주의가 아닌 직접민주주의를 최우선 가치로 통치하면서 예견됐던 부작용(역풍)이다.

지금처럼 국론이 양분된 사회는 마치 해방 후 찬탁과 반탁으로 두 진영이 나뉘어 극도의 사회적 혼란이 야기한 때와 비슷한 양상을 띠고 있다. 이렇게 된 데는 대통령의 책임이 있다. 취임사에 대한민국 국민의 대통령이라며 선언한 '국민통합'이라는 국민과 한 약속을 져버렸기 때문이다. 대화, 타협은 무시하며 독선의 정치를 일삼은 집권 세력의 책임이 크다. 촛불혁명으로 정치적 이익을 본 여권은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에 따른 부정적 여론과 정치적 수세를 잠재우려 다시 대규모 지지층을 동원, 잘못된 정책을 촛불로 국민의 눈과 귀를 덮으려 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독재자들의 통치 형태를 보면 정치적 사안이 반대에 부딪칠 적마다 대규모 군중 동원으로 광장정치를 하였다. 모택동이 권력을 지키려 홍위병을 동원해, 중국 역사를 10년 후퇴시킨 문화혁명도 광장 정치이다. 북한 김일성 주석도 정권 초기 집권 시 정치적 고비마다 평양시에 대규모 군중을 동원하여 인민재판 방식으로 정적을 숙청, 집권 기반을 닦았다. 이처럼 독재정권은 정치적 고비 때 대중을 동원해 힘을 과시하고, 반대파에 압박을 가하는 ‘관제 데모’를 했다.

권력을 거머쥔 여당이 야당처럼 약자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 자고로 집권당은 데모하지 않는 법이다. 찬·반으로 여론이 양분될 때 국민을 선동해서도 안 된다. 그러나 야당은 다르다. 여당의 독주로 정상적인 길이 막힐 때 국민을 상대로 선동 정치를 할 수 있다. 지금 여당이 과거 야당시절 아주 잘 써먹었듯이, 어떤 경우든 권력을 거머쥔 여당은 선동이 아니라 설득과 타협해야 한다. 집권 세력이 대규모 군중을 동원 선동정치를 한다는 것은 정치력과 통치력은 포기했다는 것이다.

토론과 대화를 통한 합의와 타협의 장소인 국회는 공동화되고 오직 정치구호만 난무하는 광장이 세력을 과시하는 전시공간이 되어버린 현실. 광장이 힘의 전시 공간이 되는 순간, 민주주의의 상징이었던 광장에는 오히려 파시즘이 싹튼다. 서로의 이념이 달라 군중을 동원하면 광기가 일어난다. 한 사회가 광기에 휩싸이면 아무리 자기 진영에 잘못된 것도 비일비재로 용인된다.

이 사태를 바라보는 많은 국민들은 나라 걱정에 한숨이 절로 나온다. 오죽하면 문희상 국회의장이 "분열의 정치, 편 가르기 정치, 선동정치가 위험 수위에 다다랐다"라며 "이대로 가면 대의민주주의는 죽는다."라고 호소했겠는가.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대통령의 결단과 힘을 가진 여당에서 이 문제를 풀어야 한다. 국민들은 원한다. 다른 것끼리의 화음 만들기를, 이번에는 부디 다름을 존중하고 같음을 추구하는 존이구동(尊異求同)의 묘책을 찾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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