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OOM IN] 시민운동 이대로 좋은가

최철원 논설위원 / 기사승인 : 2020-06-23 16:3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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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철원 논설위원

[일요주간 = 최철원 논설위원] 언제나 그래 왔지만, 요즈음도 나라를 사랑하고 사회를 걱정하는 이들은 여전히 많아 그 발전을 위한 시민운동 또한 예전에 못지않게 활발하다. 그런데 정의와 도덕성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시민단체가 운영방식의 문제와 회계 불투명으로 사회가 발칵 뒤집어져 시끌시끌하다.

나는 지금 국민적 관심을 받는 정의기억연대와 윤미향 사태를 둘러싼 대중의 관음증에 동참하려는 생각은 추호도 없다. 시민운동 단체의 정치적 지향에 대한 옳고 그름의 논쟁에 끼려는 의도도 전혀 없다. 그런데도 시민사회 운동 방식을 논제로 글을 쓴다는 것은 작금의 사태를 안타까운 심정으로 주목하기 때문이다. 그 이유로 시민사회 운동이 지나치게 정치화, 권력화가 되어 운동 본질의 목적보다 정치적으로 오염되었기 때문이다.

시민단체의 사회 운동, 그것은 본질적으로 강인한 도덕성이 토대에 있다. 국가 폭력과 부패가 만연했던 권위주의 토양에서 도덕적 순결함과 자기희생은 민주주의의 발전에 씨앗이 되었다. 그들은 사회의 부조리나 권력의 잘못된 것을 바로잡아가기 위하여 권력의 저항하는 행동력을 기반으로 우리가 말할 수 없을 때 먼저 말했고 행동할 수 없을 때 먼저 행동했다. 불공정한 사회적 관행을 타파하고 고질적인 병폐들을 바로잡기 위해 불철주야 전력을 다했기에 시대의 횃불 같은 존재였고 그 품격은 시민운동의 가장 소중하고 핵심적인 자산이 됐다.

올바른 사회를 위해 시민단체가 벌이는 운동은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다. 성숙한 시민사회를 형성하고 민주주의를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해 매개일 뿐이다. 그러므로 시민운동은 당연히 권력으로 독립적이어야 하고 외부의 간섭을 받지 않고 자율적이어야 하며 스스로 원해서 하는 자발적이어야 한다. 결코 시민운동은 출세의 지름길이 아니며 성역화될 수도 없고 돼서도 안 된다. 그러나 시민운동의 성공은 권력화, 정치화로 이어졌고 그 수준은 이미 우려 단계를 넘었다. 정치권력의 핵인 청와대, 수도 서울 시청에 시민운동가들이 몰려 있다. 또 이들 다수가 4.15 총선에서 여당, 위성정당에 모여 국회에 입성하였다.

시민단체의 권력화, 정치문화가 된 것은 어제오늘의 새로운 문제는 아니다. 이미 14년 전 2006년 류석춘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참여연대 보고서'에서 "시민운동이 권력에 편승하고 나아가 스스로의 이해관계에 집착한다면 그것은 더 이상 시민운동이 아니다."라고 질타했다. 시민운동은 올바른 사회를 지향하는 소금 역할을 말한다. 권력의 잘못을 감시하고 약자를 돕는 인도주의적인 운동을 하는 게 시민운동 단체가 지향해야 하는 일이다.

우리 정치 문화와 시민사회 운동이 권력화, 정치화된 중요한 원인의 하나는, 민주화 이후 한국 정치와 사회운동이 학생 운동 출신 엘리트들에 의해 지배된 것에 있다. 이 말은 한국 민주화에서 학생운동의 중심적 역할을 부정하려는 데 있지 않다. 그러나 이들이 그 뒤 정치인이 되고 참여연대 주요 세력으로 시민운동을 주도한 목적이 결국 권력의 지향과 자신들만의 권력 사유화로 드러났다.

나는 민주화 운동을 이끈 학생운동의 역사적 역할은 이미 오래전에 끝났어야 했다고 생각한다. 실제의 현실 삶과 유리된 조건에서 의식화되면서 갖게 된 과잉 이념화된 사고방식과 도덕적 우월의식은 그것이 지속되는 시간에 비례해 부정적 효과를 더 크게 가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사회 운동의 감춰진 곳을 끄집어낸 '위안부 할머니'의 절규는 그동안 시민운동권 성역의 담이 얼마나 높았는가를 여실히 보여줬다.

국민은 시민운동가를 대표로 뽑은 적이 없다. 이들은 스스로 시민운동가를 자처하고 나섰다. 그래서 이들이 정치권에 발을 내딛는 순간 자신이 벌이고 있는 사회운동에 대한 순수성은 의심받게 된다. 자신들이 권력을 지향하는 순간 자신이 벌이고 있는 사회운동의 정당성은 상실되기 일쑤다. 염불보다 잿밥에 마음이 가 있는데 염불이 제대로 될 리가 있겠는가?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한 피해자 중심주의를 거역한 주객전도는 시민운동이 잘못되어가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줬다. 그들은 전시 폭력 방지라는 추상적 깃발을 들고 질주했다. 국제사회에게서 잘 먹힌다는 이유로 할머니들이 그토록 싫어하는 '성 노예'라는 표현으로 눈앞에 살아 숨 쉬고 있는 인간의 아픔과 수치심은 무시했다. 이런 방법은 시민운동이 아니다. 인간의 개별성과 고유성을 부정하는 전체주의의 폭력일 뿐이다.

이번 사태 당사자들과 전체 시민운동권은 침묵으로 일관하며 도덕적 정당성이 아닌 시간 끌기 어물전으로 넘어가려는 태도는 안타까움을 넘어 참담하기 그지없다. 정치적 책임이 있는 민주당 대표도 함구령으로 일관하며 주변 홍위병들만이 댓글로 인격살인을 하고 있다. 이쯤 되면 결과에 대해 입을 다물라는 여당의 태도다. 여당이 개인의 비리를 수호하는 사조직처럼 행동하는 비상식 앞에 입이 다물어지고 몸이 떨려온다. 정치사상 초유 시민운동권의 적반하장이 전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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