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OOM IN] 올바르게 판단해야 할 사실(事實)이 무엇인가

최철원 논설위원 / 기사승인 : 2019-09-11 18:5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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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철원 논설위원.
[일요주간=최철원 논설위원] 언어표현으로서의 한계점 끝에서 열린 청문회는 무장한 정치 언어들이 허공에다 총질하며 허망하게 끝났다. 야당의 의혹 부풀리기와 여당의 조국 구하기로 비롯된 이 전방위의 청문회, 후보자 가족까지 도덕성을 문제 삼는 방식은 애당초부터 진위관계를 규명하려는 노력보다는 여론몰이의 방식으로 전개되어 왔다. 하루가 멀다 않고 불거지는 의혹의 실체가 무엇인지 정확히 입증되기 전부터 임명 불가피론과 절대 불가론이 서로 적대하면서 부딪쳤다. 그 두 개의 적대하는 여론은 발생하는 여론이라기보다는 대부분 조성된 여론이었다. 사실의 기초가 없는 이 적대하는 여론군(群)은 신기루처럼 보인다. 적대하는 진영들은 이 신기루 속에서 또다시 여론을 끌어들이고 있다. 적보다 숫자가 많고 적보다 공격적인 여론을 끌어들이는 쪽이 이 싸움에서 이긴다는, '밀리면 끝이다.'라는 인식으로 싸움의 방식을 적대하는 두 진영은 공유하고 있었다.

나타난 사문서위조 사실과 증거 인멸 사실로 검찰은 기어코 살아있는 권력을 향해 칼을 뽑았다. 인사 검증 과정에서 드러난 위법 조사 활동이 사실을 향해 접근해 가는 과정에서 불거져 나온 사문서위조와 증거 인멸이라는 것이 여당에는 커다란 악재로 끔찍한 것이었다. 후보자 가족의 문서 위조, 증거 인멸의 범법을 확인하려는 것은 임명권자인 대통령의 위상을 훼손하는 일이며 국익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여권 내 경고에도 불구하고 검찰은 그 불가역적 불이익과 외압을 감수해 가며 기어코 후보자 부인을 전격 기소했다. 그 과정은 사문서위조의 사실을 사실로 정립함으로써 아무리 살아있는 권력이라도 잘못이 있다면 예외가 없다,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지론을 보여준 한편의 장엄한 드라마였다.

청문회를 지켜보는 국민들이 알고자 하는 사실(事實)이 무엇이었을까, 각종 포털 사이트에 ‘조국 힘내세요.’ 가 실시간 검색 1위에 오르는 기현상이 벌어졌고 또 문서 발급 당사자가 "직인을 찍은 사실이 없다"고 증언하는 이 상황에도 억지 꿰맞추기식 논리로 정당성을 주장했던 그의 사실이 아무리 올바른 것이라 하더라도 증거 인멸을 시도한 것은 그 안에 이미 범법행위를 내포하고 있다. 조작된 여론이 사실을 이끌어 가는 것이 아니라 정확한 사실이 여론을 이끌어 갈 때 그 사회는 정의가 살아있으며 자신들이 주장하는 진실보다 증거로 입증된 사실이 더 설득력이 있을 때 비로소 올바른 판단이 가능하다는 것을 검찰은 기소 처분이라는 것으로 입증해 주었다.

사실, 여론이라는 신기루의 작동방식을 짐작할 수 있지만, 그 정체와 본질이 무엇인지 우리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 소박하게 말해서, 여론에 따라서 상황을 인식하고 판단하며 여론에 선악을 가늠해야 하는 것이 민주주의라면 대한민국은 민주주의국가가 아니다. 그리고 국민은 이런 의미의 민주주의자가 아닌 것을 조금도 두렵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여당은 격렬한 언설(言說)을 한 바탕씩 뱉어낸 다음 "개혁은 국민의 요구"라며 "국민은 올바르게 판단할 것이다"라는 협박성 문구를 후렴으로 달고 있다. 사실의 기초가 없이 '국민'이 무엇을 판단할 수 있으며, 이 사실관계를 국민이 판단해야 한다면 검찰은 왜 있고 국회는 왜 있으며 언론은 왜 있는가. “개혁은 국민의 요구”라며 “국민이 심판할 것이다.”라는 협박은 민주주의의 가면을 쓴 파시즘에 불과하다. 이 파시즘은 사실을 사실로써 정립시키지 않고 사실을 대중의 정서 속에 은폐시킴으로써 자기합리화를 하려는 기만술에 불과하다. 그리고 그 기만술은 대중을 끝없이 무지몽매 속에 처박아놓음으로써만 가능하다. "국민이 심판할 것이다"라는 협박은 이른바 국민을 민주주의의 주체로서 존중하는 척하면서 바보로 만들어가고 있다.

사람이 속는 방법에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사실이 아닌 것을 믿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사실을 믿지 않는 것이다. 지지자를 동원해 여론 조장을 하는 것이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렇게 올바르지도 못한 것을 여론을 조성해가면서 그렇게까지 꼭 해야만 하는가. 대중을 향해 내미는 이런 질문들은 타락하고 혼돈만 주는 가치 없는 언어일 뿐이다. 그 질문들은 아무런 사실에도 입각해 있지 않고, 대답하는 사람의 정서를 한 방향으로 몰고 가서 정치 권력화하려는 의도를 감추고 있다. 그 어리석은 질문에 대한 답변은 어리석은 것일 수밖에 없다. 이 어리석은 것들을 한 곳에 끌어모아 싸움에서 이기려 한다면 누가 이기든 이 사회는 희망이 없다. 사실이 먼저 있고 난 뒤에 의견이 있을 뿐이다. 사실이 여론을 이끌고 가는 세상이 민주주의다. 여론이 사실을 뭉개 버리는 세상은 민주주의가 아니다.

사실을 무시한 대통령의 억지에 국민들은 억장이 무너진다. 반대 여론을 무시한 채 임명장을 주는 변()은 내 편 감싸기의 우회적 표현이 역대에 남을 만한 명문구로 기가 막힌다. "본인이 책임져야 할 명백한 위법 행위가 확인되지 않았는데도 의혹만으로 임명하지 않는다면 나쁜 선례가 된다." 이 말은 듣기 따라서는 너희들 아무리 떠들어도 내 편이 더 많다는 전략적 선전에 불과하다. 누가 뭐래도 '내 편'이라는 선례를 남겼다. 행여 국민이 걱정하는 더 나쁜 선례는 피의자 법무장관을 맞는 불행한 사태로 국민이 바보 허수아비가 될까 염려스럽다.
국민은 원한다. 이 기회에 진짜 뭐 좀 바꾸자! 기득권자가 합법적이라는 논리로 살아가는 불공평을. 지금 우리나라에 정작 필요한 것은 사법 개혁보다 양심 회복 운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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