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땅 이야기] 바다, 계곡, 동굴로 떠나는 일석삼조 ‘울진’나들이

이재윤 / 기사승인 : 2018-03-28 11: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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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재윤 기자)
(사진=이재윤 기자)

[일요주간=이재윤 기자] 떠날까, 말까! 고민 중이라면 이번 주말 과감하게 보따리를 싸라. 그리고 훌쩍 떠나라! 아직은 오는 여름에 대한 기대를 잠시 접고, 가는 봄의 자락을 붙들어보자.


그렇게 가는 봄의 자락을 붙들고 시원한 바다를 낀 동해안 해안도로를 달려 찾아간 곳은 울진이다. 해안도로를 따라가며 만나는 시원한 바다와 구불구불한 산길을 따라가며 만나는 계곡, 그리고 그 안에 담겨 있는 많은 볼거리들, 울진은 봄의 끝자락을 붙들고 찾아온 이들에게 한 아름 추억을 선물한다.


◆ 바다를 향한 선비들의 풍류, 월송정과 망양정


대구-포항간 고속도로를 타고 포항을 지나 동해안 7번 국도에 오르면 이미 여름이 가까이 와 있다. 멀리 해풍이 차창을 밀며 들어오고 얼마 가지 않아 푸른 동해의 파도가 시원함을 더한다. 따가운 햇살에 부서지며 눈부시게 반???이는 바다는 금방이라도 뛰어들고픈 충동을 일게 만들고, 7번 국도를 따라 이어지는 해수욕장에는 때이른 더위를 피해 바다를 찾은 사람들이 해변을 거닐며 망중한을 즐기고 있다.


함께 그 바다에 몸을 던지고 싶은 마음을 뒤로 하고 영덕을 지나 울진을 향해 발길을 서둔다. 그렇게 40여 분을 차로 달리다 보면 오른편으로 월송정을 알리는 표지판이 눈에 들어온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은 빽빽한 송림 사이를 걸어 월송정으로 향했다.


월송정 (사진=이재윤 기자)
월송정 (사진=이재윤 기자)

송림 너머로 바다에서 불어오는 해풍이 솔숲을 넘어오며 청량한 기운을 내뿜는다. 그렇게 솔숲으로 난 오솔길을 잠시 거닐다 보면 눈앞에 높이 솟은 월송정의 멋스러운 자태가 나타난다. 계단을 올라 그 아래에 서면 동해의 푸른 바다가 정자 아래에서 출렁인다.


관동팔경 중에서 가장 아래쪽에 위치한 월송정은 신라시대의 화랑들로부터 시작해 조선시대 선비들에 이르기까지 시인묵객들이 울창한 송림을 벗삼아 달빛을 희롱하며 풍류를 즐겼던 곳이다. 정자 위에 오르면 이제 한눈에 동해가 안겨온다. 가슴 깊이 심호흡으로 바다를 들이마시며 고개를 젖히면 눈에 들어오는 것이 그 옛날 선비들이 남긴 멋스러운 글들을 담은 현판들이다.


“짙푸른 바다에서 솟은 밝은 달이 소나무에 반쯤 걸리고


(소를 타고)뿔을 두드리며 돌아오니 흥취가 절로 솟는구나.


월송정에 오르니 시는 절로 그쳐지고 거듭 취기로 쓰러지니


단구(신선 이름)와 벗하여 꿈속에서 만나는구나.“


이 글은 고려 때 예문관 대제학을 지낸 기우자 이행 선생의 시이다. 그는 평해 황씨의 외손으로 유배되어 백암산 밑에 살며 스스로를 백암거사라 불러쓴데, 언제나 보름달이 뜨면 소를 타고 월송정에 와서 놀았다고 한다. 월송정의 아름다운 정취에 매일 밤이면 소를 타고 이곳을 찾아 풍류를 즐긴 선비의 여유가 이 시 한 편에 넉넉히 느껴진다.


망양정 (사진=이재윤 기자)
망양정 (사진=이재윤 기자)

월송정에서 30분 정도의 거리에 있는 망양정 역시 관동팔경의 하나로 예로부터 선비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은 곳이다. 조선시대 대표적인 문인 송강 정철 선생은 유명한 그의 작품 ‘관동별고’에서 망양정을 이렇게 읊었다.


“하늘의 맨끝을 끝내 못 보고 망양정에 오르니,


바다 밖은 하늘인데 하늘 밖은 무엇인가?


가뜩이나 성난 고래(파도)를 누가 놀라게 하기에,


물을 불거니 뿜거니 하면서 어지럽게 구는 것인가?


은산을 꺾어 내어 온 세상에 흩뿌려 내리는 듯,


오월 드높은 하늘에 백설(파도의 물거품)은 무슨 일인가?“


바다에 뛰어들어 몸을 식히기 전 월송정과 망양정에 올라 선비들의 풍류를 맛보며 마음 속 여유를 찾은 것이 어떨까?


◆ 자연이 빚은 신비의 동굴세계, 성류굴


망양정에서 다시 7번 국도로 나와 2km 정도 군도를 따라 가면 국내에서 가장 유서 깊은 석회암 동굴, 성류굴을 만날 수 있다. 바다와 산, 계곡 중 어디로 갈까 고민하는 이들에게 단연 추천하고 싶은 것이 바로 성류굴이다.


성류굴 (사진=이재윤 기자)
성류굴 (사진=이재윤 기자)

신비한 종유석과 석주 등에서 느끼는 수만, 수억 년 쌓인 자연의 위대함은 차치하고서라도, 동굴에서만 느낄 수 있는 그 등골 오싹해지는 경험, 동굴 저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차가운 물방울이 주는 시원함, 동굴 저 깊은 곳에서 나오는 서늘한 기운, 이 모든 것이 성류굴이 최고의 피서지로서 갖춘 매력들이다.


성류굴 입구에 서면 먼저 간단한 심호흡이 필요하다. 어른들은 허리를 깊숙이 숙이고서야 들어갈 수 있는 좁은 입구는 앞으로 눈앞에 펼쳐질 동굴의 모습들에 한껏 기대를 부풀리게 하는 신비한 세계로의 통로이다.


입구를 통과해 조심스레 고개를 들며 그때부터 입안에서 절로 탄성이 시작된다. 물에 젖어 미끈거리는 종유석과 석주들의 웅장한 자태에 벌어진 입은 다물 줄 모르고, 온몸으로 전해져 오는 동굴의 서늘한 한기에 이미 더위는 딴 세상 이야기가 된다. 그리고 금방이라도 뭔가 저 안 깊은 곳에서 불쑥 날아들 것 같은 은밀한 동굴의 어둠은 오싹한 기분에 추위마저 느끼게 한다.


조심스레 한 발, 한 발 내딛으며 동굴 안으로 들어가면 어느새 탁 트인 광장이 나오고, 그런가 하면 다시 좁다란 동굴 틈으로 몸을 밀어 넣어야 된다. 머리 위로는 차가운 물방울들이 떨어져 옷을 적시지만 오히려 시원한 그 느낌이 싫지 않다. 그렇게 동굴 안에서 넓은 광장과 좁은 틈 사이로 걸어가다 보면 그곳에는 어둑한 그림자를 드리운 소(沼)가 나오는데, ‘마(魔)의 심연(深淵)’이라 부르는 이 커다란 동굴호수는 주위 벽면에 발달한 큰 규모의 종유석들을 수면 아래로 삼키고 있어 섬뜩한 느낌을 준다.


성류굴은 12개의 크고 작은 광장과 5개의 호수로 형성되어 있는데, 땅 속의 금강이라고 불릴만큼 화려함을 자랑한다. 굴 내부의 온도는 사계절 거의 변화가 없는데 동굴 속에 있는 호수들은 외부의 왕피천과 연결되어 있다. 그 안에 물고기륻이 살고 있다고 하는데, 왠지 동굴 속 호수에 살고 있는 물고기들은 어떻게 생겼을까 하는 엉뚱한 궁금증에 한동안 어두운 수면 위를 더듬어보게 된다.


처음 동굴에 들어설 때의 긴장감이 어느 정도 이완되면 이제 동굴의 시원함에 발길이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그제서야 거대한 석회동굴의 아름다움이 제대로 눈에 들어오고, 동굴이 주는 선물을 온전히 즐길 수 있게 된다.


떨어지는 물방울에도 이제는 제법 여유가 생겨 손바닥을 펴 받아보고, 거대한 석주에 닿는 손바닥의 차가운 감촉도 거부감이 없다. 그렇다고 무작정 동굴에 머물 수는 없는 일, 아쉬움을 남긴 채 동굴 밖으로 다시 몸을 끄집어낸다.


◆ 산이 높아 깊은 계곡, 불영사 계곡


불영사 계곡은 왕피천을 따라 봉화 방향으로 지방도를 따라 30여 분을 달리면 왼편으로 산 아래 줄지어 흐르는 계곡이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들과 높은 산세가 계곡을 더욱 깊숙이 감춰 그 아름다움을 더해주고 있다.


불영사 일주문과 대응보전의 모습 (사진=이재윤 기자)
불영사 일주문과 대응보전의 모습 (사진=이재윤 기자)

해마다 여름이면 불영사 계곡을 따라 구불구불 이어진 국도에는 주차된 차들로 또 하나의 진풍경을 낳는데, 깊은 산을 타고 흘러내리는 차가운 계곡물은 불영사 계곡의 얼음처럼 차가운 여름을 선사한다.


15km에 이르는 기암괴석과 깊은 계곡, 맑고 시린 물을 안고 있는 불영사 계곡은 어느 한 곳, 망설임 없이 차를 세워도 후회하지 않을 정도로 비경을 자랑한다. 그리고 계곡 전체를 내려다 볼 수 있는 전망대가 곳곳에 있어 잠시 발 아래 계곡의 절경을 넉넉히 눈에 담아 볼 수 있다.


이제 눈으로 계곡의 절경을 담았으면 차가운 계곡물에 더위를 날려버리면 된다. 계곡 아래 우거진 숲 사이로 텐트를 쳐도 좋고, 아니면 그냥 그 그늘에 몸을 가려도 좋다. 눈이 시리도록 반짝이며 부서져 내리는 계곡물에 온몸을 담그면 눈앞에 보이는 절경이 아득해지며 현기증이 날 정도의 시원함이 몰려온다. 거기에 계곡을 타고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 한 줄기 보태지면 온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의 전율도 느껴진다.


불영사 계곡 (사진=이재윤 기자)
불영사 계곡 (사진=이재윤 기자)

그리고 불영사 계곡을 따라 10여 분을 거슬러 올라가면 왼편으로 불영사 가는 길이 나오는데, 불영사는 651년(진덕왕 5년) 의상대사가 창건한 절로 불국사의 말사이다. 절이 위치한 서편 산 위에 부처의 형상을 한 바위가 있어 그 그림자가 항상 절 가운데 못에 비친다 하여 불영사라 불렀다 한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일주문을 지나 불영사까지 가는 길은 완만한 산책길로 산과 나무, 물이 어우러져 발걸음을 상쾌하게 이끈다. 비구니 도량이라 생각해서인지 절로 가는 길이 더없이 깔끔해 보이고, 절 마당에 들어서면 정갈한 연못과 그 옆으로 잘 가꾸어진 채마밭이 기분을 말끔하게 해준다. 그리고 오른쪽으로 넓은 마당에 줄지어 서 있는 장독대는 한낮의 햇볕을 받아 절간의 푸근한 정감을 느끼게 해준다.


연못을 지나면 단아한 모습의 대웅보전이 나오는데, 대웅보전을 받치고 있는 돌거북 2구가 무척 이채롭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면 돌거북 두 마리가 대웅보전을 짊어지고 있는 형상인데, 이것은 불영사의 자리가 화산이어서 그 불기운을 누르려는 뜻이 담겨 있다고 한다.


그리고 대웅보전 내부에 있는 영산회상도와 기둥과 도리 사이의 목조각은 그 화려함과 정교한 솜씨에 절로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불영사 계곡의 차가운 물살로 몸의 열기를 식혔다면, 정갈한 불영사를 돌아보며 마음의 열기를 차분히 식혀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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