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조상보다 살아있는 부모 잘 섬기자”

서지홍 칼럼니스트 / 기사승인 : 2013-09-09 11:3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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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칼럼> '우리나라 장례문화를 돌아보며' 며칠 후면 우리나라 최대 명절인 추석이다. 한해의 결실을 맞는 가을에 농촌에서는 수확을 하느라 비지땀을 흘리고 있다. 흔히 우리는 설 명절이나 추석 때는 민족대이동이라 하여 고속도로가 막히고 열차표를 구하러 장사진을 이루는 시기다. 추석에 한해의 결실을 거두어 조상에게 감사하고 온 가족이 모여 즐거운 명절을 보내는 풍습이 변하지 않고 이어진다. 정말 아름다운 풍습이다.

그러나 우리는 생각해 볼 일이 있다. 인간에 태어나서 마지막은 죽음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렇게 죽음은 모든 것의 종착점이다. 그저 무(無)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 육신은 영혼을 잠시 보관했던 그릇일 뿐이다. 그런데 그 죽음의 길에서 우리의 장례문화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 더구나 호화장례 따위의 의식은 망자를 욕되게 하고 국토를 야금야금 잠식하는 길이다.

근래에는 장례문화도 많이 바뀌어 매장에서 화장으로 그 패턴이 바뀌고 있어 다행한 일이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나라 지도층 인사들의 호화장묘(豪華葬墓)는 순전히 죽은 자를 위한 것이 아니고 살아있는 자 스스로에 대한 변명이자 위안일 뿐이다.

우리나라 묘지면적은 전국토의 1%를 넘는다. 이미 서울면적의 2배인데다, 매년 새롭게 만들어지는 묘지가 여의도 의 1.2배에 해당하는 100만여 평이 묘지로 바뀌고 있다.

우리나라 전체 분묘는 2천 100만기, 묘지 평균 면적이 15평으로 국민 1인당 주거공간의 3,5배가 된다. 다행히 장묘문화개선운동이 기대 이상의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있어 다행이다. 즉 매장이 화장으로 바뀌어 가고 있는 것이다.

다른 분야에 비해 현저하게 뒤쳐진 우리의 장묘문화도 가파른 변화의 물살을 타기 시작한 것이다. 작년 봄 20세 이상 남녀 1천500명을 대상으로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86%가 묘지문제에 대해 심각성을 걱정했으며, 72%가 사후 화장을 희망했다.

실제 화장비율도 1954년 3.6%이던 것이 1991년 17.8%, 2000년대 들어서는 33.7%로 급상승 추세에 이르고 있다. 서울의 화장률은 지난해 56%를 돌파했다. 그러나 일본의 99%, 홍콩의 72%, 영국 68%등에는 아직 한참 뒤지고 있다.

사실상 100% 화장과 납골당 제도가 정착된 중국에서는 이제 유골조차 보관하지 않는 단계에 들어섰다. 국토가 광활한 중국도 화장 문화가 정착돼 납골당 혹은 수목장 등으로 우리보다 한참 앞서 가고 있다. 미국의 경우 화장률이 15%에 불과하지만 국토가 광활한 그 나라에서 묘지는 1평 이하, 평장(平葬)만 허용하고 있다.

몇 해 전 장묘문화개혁범국민협의회가 국회의원 전원과 정당대표, 광역자치단체장 등 정·관계 인사 1000명에게 ‘화장유언서약서’를 보낸 일이 있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호응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고 한다. 자신들의 부모 묘를 명당으로 옮긴 정치인은 많이 있어도, 자신들의 화장유언서약은 외면하고 있는 것이 우리 지도층들이다.

지도층이라 해서 다 그런 것은 아니다. 그들의 죽음 가운데 만인의 귀감이 된 감동적인 사례가 너무 많다. 문제는 눈도 꿈적하지 않거나 시대에 역행하는 절대다수의 지도층이나 명망가 집단들이다.

장묘문화가 개선되어야 한다는 것은 전 국민이 다 알고 있다. 그러나 소위 지도층에서는 아직도 조상의 장묘를 호화찬란하게 꾸며놓고 세(勢)를 과시하고 있다. 오죽 과시할 것이 없어 평소에 효도하지도 않던 부모가 돌아가시자 거창하게 분묘를 만들어 언론에 공개하는 것이 옳은 일인가.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부모의 묘를 호화찬란하게 꾸민다고 효도는 아니다.

대부분 묘지는 산에 조성되기 때문에 산림훼손, 자연생태계 파괴, 환경파괴의 원인이 되고 있다. 이제 새로운 장례문화가 만들어져 맑고 푸른 금수강산을 후손들에게 물려줄 수 있어야 하겠다.

미국과 유럽의 추모공원은 산 자와 죽은 자가 함께 공유하는 문화공간으로 인식되고 있다. 유럽각국이나 미국 등 선진국의 묘지는 그 자체가 마치 박물관을 방불케 할 만큼 아름다운 장식과 조각품들 때문에 관광명소로 각광받을 뿐 아니라, 주민들에게는 큰 자랑거리가 되고 있다. 또 지역문화가 꽃피는 보고(寶庫)로서 후손들에게 물려줄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으로 자리 잡고 있어 평일에도 자주 참배하는 추모문화가 형성되고 있다.

일본의 추모시설은 도심 한가운데 위치해 있고 주택가와도 바로 이웃해 있으며, 주민들은 승화원(화장장)을 근린공원시설로 여기며 친숙하게 생각한다. 부모님 납골당을 인근에 두고 아침저녁으로 인사들 드리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동네 한복판에 승화원이나 납골당을 혐오시설로 느끼지 않는 일본인들, 한 사람의 마지막 가는 길을 애도하는 것은 매우 경건한 절차이며 예의다. 따라서 각 나라마다 전통과 관습의 형태로 그 나름대로의 예절과 경건함을 곁들인 장례절차가 있다.

우리나라는 조상을 멀리 떨어진 산속에 모셔 거친 자연화경과 천재지변 속에 두고 고통 받게 하는 데 반해 일본은 가까운 납골시설에 모셔 가족들이 언제든지 쉽게 찾아갈 수 있게 하여 죽음을 삶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우리나라에서는 혐오시설로 인식돼 아파트 주민들이 머리띠 메고 시위하는 화장시설이 동네 한복판에 있어도 그것을 혐오시설이라 느끼지 않는 일본문화를 배워야 하겠다.

호화장묘로 자신의 세를 과시하는 사람일수록 산 조상인 부모는 푸대접하거나 귀양살이와 같은 요양원에 보내면서 죽은 뒤에는 호화분묘를 만들어 최대한 효도하는 척 하는 우리나라에서 잘 나가는 지도층 인사들이다. 죽은 조상보다 살아있는 부모를 따뜻하게 모시는 것이 진정한 효도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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