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OOM IN] 論語 계씨(季氏) 편에서 생각이 머무른 까닭

최철원 논설위원 / 기사승인 : 2019-06-13 12:3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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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철원 논설위원
[일요주간 = 최철원 논설위원] 비 오는 휴일 모처럼 글방에서 커피와 함께 습관적으로 펼친 논어는 세월이 많이 지난 오늘날도 우리에게는 매우 친숙한 인식 틀이며 손때 묻은 그릇이다. 비교적 오래전 읽었던 논어를 다시 읽고 있다. 당시는 글의 깊은 뜻을 곱씹고 음미할 능력이 내게 턱없이 부족했다. 그런데 30년 만에 다시 필요 때문에 책을 뒤적이고 있는 지금은 와 닿는 글의 느낌이 예전과는 좀 다르다.

'계씨(季氏)'편, 생이지지자 (生而知之者), 학이지지자(學而知之者), 곤이학지자(困而知之者), 곤이불학지자(困而不學之者) 구절에 눈길이 머무르며 생각이 깊어졌다. "태어나면서부터 '아는 사람'이 상급이고, '배워서 아는 사람'이 그다음이며, '곤란을 겪고 나서야 배우는 사람'이 또 그다음 중급이다. 곤란을 겪고 나서도 배우지 않는 것은, "미천한 백성(民)들'이 바로 그러한데 이는 하급이다." 세상사에는 네 종류의 인간형이 있다는 내용의 글이다.

첫 번째, 태어나면서부터 아는 즉 타고난 사람, 이 앎의 대상은 도(道)다. 누가 가르쳐주지 않았는데도 언행이 모두 도에 부합한다면 이보다 더 바람직한 수는 없다. 도는 길이고, 길은 방법이다. 특히 예능 분야에서는 어린 나이에도 득도한 것처럼 보이는 이들을 천재라 부른다. 나는 음악이나 미술의 경우 정말 천재라는 것이 있는 게 아닐까 가끔 생각하지만, 일가를 이룬 그들의 이면에는 각고의 노력이 있었기에 대체로 이 천재론에는 회의적이다. 주변에 타고난 재능도 노력하지 않으면 펼칠 수조차 없어 천재라 지목된 이의 재능은 오히려 짐이 되는 경우를 숱하게 본다.

두 번째 배워서 아는 사람, 이 부류는 교육을 통해 사람이 변화되어 간다. 성실한 노력으로 끊임없이 공부하면서 새로운 지식을 쌓아가므로, 어렸을 때부터 꾸준히 학문을 닦는 사람이 바로 이 유형에 속한다. 얼핏 보면, 모든 일에 어지간한 의지만 있으면 될 것도 같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는 게 문제다. 내 주변 사람 중 한 분야에서는 일가를 이룬 지금도 여전히 새로운 것에 목말라 하는 것을 종종 본다. 천재가 아닌 그가 문제에 부딪힐 때마다, '나는 왜 이것도 못 하고 있는가,' 라는 반문을 하며 답을 찾는다. 그런 사람을 두고 누군가 말했다. 열정도 재능이기 때문이다. 고갈되지 않는 열정은 의지의 산물이 아니다.

세 번째, 곤란을 겪고 나서야 배우는 사람. 재능과 열정이라는 것조차 없는 이가 배움의 길로 나서기 위해서는 다른 자극이 필요하다. 그 자극을 공자는 곤(困)이라 했다. 이 글자는 부족함, 난처함, 위기에 처함 등을 뜻한다. 평소 치수(治水)에는 관심 없이 지내다 홍수와 가뭄으로 큰 어려움을 겪고 난 후 댐을 쌓는 것이 이 경우다.

네 번째, 곤란을 당하여도 배우지 않는, 암담하기 그지없는 사람이다. 이 유형은 어떠한 경우에도 가르칠 수 없다. 아무리 곤란을 처해도 그 현실을 돌파하거나 개선하려 하지 않고 삶을 그냥 내팽개쳐 버린다.

1生而知之者, 2學而知之者, 3困而學知之者에 붙여진 이름을 비교해 보면 마치 맨 앞의 글자가 각 존재 양식의 본질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인다. 1번이 사는 중이고 2번이 공부 중일 때, 3번은 늘 곤란 속에 있다. 결국 생지(生之)건 학지(學之)건 곤지(困之)건 앎은 스스로 변화시키고 구원할 수 있을 때만 가치 있다. 공자는 자신을 "비록 태어나면서부터 도를 알지는 못했지만, 또 꾸준히 배움에 힘썼다고 자신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곤란을 겪고 나서는 시행착오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고 했다. 그러나 4번형 인간을 민(民)백성 이라 표현했다. "그들은 스스로 삶의 주인이 되지 못한 자들로, 자신의 운명이 철저히 외부의 힘으로 좌지우지되도록 방관하는 우둔한 자들"이라 공자는 칭했다.

글에서 말하는 유형(類型)을 양분하면 2번과 3번은 자의든 타의든 배우려는 사람들이니 가르침이 가능하다. 그러나 1번과 4번은 가르칠 수 없다. 태어나면서부터 아는 이는 가르칠 '필요'가 없고 곤란을 겪고도 배우지 않는 사람은 가르칠 '도리'가 없다. 그래서 말씀 중 양화(陽貨) 편에는 이런 말도 나온다. "오직 가장 지혜로운 사람과 가장 어리석은 사람만은 변화시킬 수 없다." 최악의 경우는 '가장 어리석은 사람'이 자신을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라 믿고 변화를 거부할 때일 것이다.

논어 계씨(季氏) 편에 깊은 울림이 있는 까닭은 작금의 현실에 합당한 가르침이 있기 때문이다. 지난주 정부 여당 협의회에서 소득 주도 경제정책을 계속 시행해 나가기로 결의했다. 그 정책으로 나라 경제와 서민 생활이 그만큼 결딴났으면 이젠 배워서 변해야 하지 않을까. 정부 여당의 경제 정책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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