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자: 김숙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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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숙영 시인 |
김숙영 시인. 2019년 《열린시학》 신인작품상으로 등단. 제8회 전국 계간문예지 우수작품상, 제15회 바다문학상 대상(「채낚기」), 제1회 천태문학상 대상(「별지화」), 대한민국 커뮤니케이션 예술가상, 제16회 열린시학상, 제5회 《시산맥》 기후환경문학상 수상. 시집 『별들이 노크해도 난 창문을 열 수 없고』 출간. 현재 포엠포엠 운영위원과 사무국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어린 시절 저수지 곁에서 풍경을 읽는 법을 배운 한 소녀가, 이제는 바다와 인간, 그리고 신화적 상상력을 품은 시인이 되어 이 자리 함께해 주셨습니다. 이번 「작가 초대석」에서는 시인 김숙영 선생님을 모시고 문학과 삶의 이야기를 나눠보겠습니다.
Q1. 독자 여러분께 인사와 함께 자신을 소개해 주세요.
⯈ 안녕하세요. 시인 김숙영입니다. 저는 눈에 보이는 풍경에서 작은 변화와 감각을 먼저 발견하는 편입니다. 어린 시절 저수지는 늘 하늘을 품고 있었고, 구름은 다른 모양으로 그 위를 흘러갔습니다. 저는 흘러가는 사계절을 보며 세상은 늘 매 순간 다른 얼굴로 변해간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무심히 지나치는 풍경 앞에 오래 머물고, 쉽게 흘러가는 감정 속에서도 한 줄의 시를 건져 올리며 살아왔습니다. 제게 시는 기울어가는 마음을 조용히 붙드는 삶의 방식입니다. 그래서 바다와 기억, 상실을 통해 삶의 깊이를 들여다보는 시를 쓰고 있습니다.
Q2. 어린 시절 저수지는 어떤 의미였나요?
⯈ 제 문학의 오래된 감각은 저수지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어린 시절 저는 저수지 곁에 앉아 물결을 바라보곤 했습니다. 바람이 지나가는 방향, 계절마다 달라지는 물빛, 새들의 울음은 제게 세상을 읽는 첫 문장이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저는 그곳에서 이미 시를 배우고 있었습니다. 고요한 물을 바라보며 기다림을 익혔고, 그 속에 숨어 있는 감정과 감각을 읽는 법을 배웠습니다. 지금도 제 시 속에는 그 물결이 흐르고 있습니다.
Q3. 시를 쓰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 살다 보면 말보다 침묵이 더 길어지는 시간이 있습니다. 제게 시는 그 침묵을 견디기 위해 시작되었습니다. 누군가에게 말할 수 없는 마음을 종이에 적기 시작했고, 어느 순간 그것이 시가 되었습니다. 시는 제 상처를 통해 세상을 이해하는 과정이었습니다. 상처는 다정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했고, 아픔은 타인의 침묵을 들을 수 있는 귀를 열어주었습니다. 이름이 없던 감정들이 비로소 언어를 얻으면서 한 편의 시가 되었고, 저는 시를 쓰는 동안 타인의 마음을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Q4. 『별들이 노크해도 난 창문을 열 수 없고』에는 어떤 정서를 담았나요?
⯈ 이 시집은 굳게 닫힌 마음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시집에 실린 「쌍생아」의 한 구절을 제목으로 가져왔습니다. 살아가다 보면 누구나 마음의 창문을 쉽게 열지 못하는 시간이 찾아옵니다. 저는 그 시간을 누구에게나 한 번쯤 찾아오는 마음의 계절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별은 여전히 창밖에서 빛나고 있습니다. 저는 절망보다 희망을 조금 더 오래 믿고 싶었습니다. 창문을 열지 못하는 순간에도 언젠가는 한 줄기 빛이 스며들 것이라는 믿음을 시집 곳곳에 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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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현우 시인 북토크’ 정현우 시인과 사회자로서 대담 중 |
Q5. 바다가 중요한 모티프가 된 이유가 있을까요?
⯈ 바다는 아버지의 등을 닮은 가장 따뜻한 풍경이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생명을 품어주고, 또 한순간 모든 것을 거두어 가기도 하는 바다는 우리의 운명과 참 많이 닮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바다를 풍경으로만 바라보지 않고, 우리 마음을 비추는 거울처럼 바라봅니다. 밀물과 썰물이 쉼 없이 오가듯 기쁨과 상실, 만남과 이별도 되풀이됩니다. 그래서 제 시 속의 바다는 언제나 생명을 품고 기다리며, 다시 걸어갈 힘을 건네는 공간으로 남아 있습니다.
Q6. 결핍과 상실을 자주 다루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 상실과 결핍을 품고 살아온 이는 작은 기쁨도 쉽게 지나치지 않고, 누군가의 침묵도 함부로 외면하지 않습니다. 저 역시 사는 동안 여러 굽이를 지나오며 그 사실을 배웠습니다. 그래서 제 시에는 슬픔이 자주 등장하지만, 그 끝에는 언제나 다시 살아가려는 희망이 함께 놓여 있습니다.
Q7. 결핍을 삶의 힘으로 바라보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 결핍과 함께 걸어온 시간이 적지 않았습니다. 돌이켜보면 저를 여기까지 이끌어 준 것은 완전함보다 부족함이었습니다. 부족했기에 더 배우려 했고, 외로웠기에 타인을 이해하려 했으며, 아팠기에 한 줄의 시를 더 오래 붙들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도 "나는 결핍을 좋아한다."라고 말합니다. 결핍은 채워지지 않은 빈자리가 아니라, 희망이 싹트는 자리라고 생각합니다.
Q8.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 부탁드려요.
채낚기
조류의 방향이 따라온 길
지금부터는 어둠의 슬하다
달빛 아래 야광 줄이 주저하지 않고 빛을 끌어모은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제물로 바쳐진 미끼들
오로지 입술만 공격해야 한다
갈고리의 신호음이 울음으로 번진다
아버지는 여러 날 불황을 끝낼 거란 다짐을
밑밥으로 던진다
한 개의 낚싯대에 여러 개의 바늘을 걸어두었으니
기다림은 쓸모 없다
바닥에 닿자마자 끌어올린다
장갑 속 지문이 다 닳은 손가락
운명선마저 지워져 버린 쩍쩍 갈라진 굳은살
감각이 다 사라진 줄 알았는데
물고기가 잡히는 순간 경련이 인다
드디어 이빨이 드러난 갈치의 체표가 반짝인다
해저 밑에서 나풀거리듯 칼춤을 추며 올라온 실루엣
비린 향기를 품은 은백색
아버지가 오랜만에 웃는다
바다의 서사가 발단과 위기를 지나
절정을 향해 치닫는 순간이 다가온다
그러나 만선이 결론은 아니다
자식들 다 성장했으니 바다가 준 만큼만 거둔다
이 손가락이 다 잘려나갈 때까지
물고기를 낚을 것인 게 니들은 걱정 말고 공부만 혀라
그 목소리가 지금도 자식들 심장 속을 헤엄쳐 다닌다
아버지가 낚아 올린 것이 물고기만은 아니라는 듯
⯈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은 「채낚기」입니다. 제15회 바다문학상 대상을 받은 작품이기도 하지만, 제 문학의 방향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채낚기」는 고기를 낚는 풍경에서 출발해, 바다를 터전 삼아 살아가는 어부들의 노동과 기다림, 희망까지 담아낸 작품입니다. 한 줄의 낚싯줄 끝에는 물고기만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한 가정의 생계와 하루가 함께 걸려 있다는 생각으로, 한 행 한 행 심혈을 기울여 써 내려간 작품입니다. 시를 완성하고 나서야 비로소 앞으로 어떤 시를 써야 하는지 조금은 알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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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포엠포엠》 제9회 ‘한유성문학상’ 사회를 보는 장면 |
Q9. 「별지화」는 어떤 작품인가요?
⯈ 「별지화」는 천태종의 사상과 절의 단청에서 모티프를 얻어 쓴 작품입니다. 절에 그려진 꽃문양은 제게 생명을 품은 상징으로 다가왔습니다. 저는 그 꽃들을 '식물성 부처'라는 시적 상상력으로 바라보았습니다. 꽃은 자신의 자리를 다투지 않고 묵묵히 피었다가 조용히 집니다. 그 모습은 수행자의 걸음과도 닮아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별지화」에는 절의 단청 꽃문양에서 받은 영감을 담았습니다. 말없이 피어나는 꽃 한 송이에도 불성(佛性)이 깃들어 있다는 믿음, 그리고 서로를 비추며 하나의 세계를 이루는 조화와 공존의 아름다움을 시의 언어로 옮기고 싶었습니다.
Q10. 한창옥 발행인과의 인연은 어떤 의미인가요?
⯈ 한창옥 발행인께서는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문예지 발행인으로, 문학을 향한 열정과 헌신을 몸소 실천해 오신 분입니다. 등단 이후 포엠포엠을 통해 인연을 맺었고, 운영위원과 사무국장으로 활동하며 문학의 현장을 가까이에서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가장 깊이 새긴 것은 문학을 대하는 태도였습니다. 한 권의 문예지가 세상에 나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손길과 정성, 그리고 책임이 필요한지를 지켜보며 저 또한 작품 한 편을 더욱 신중하게 쓰게 되었습니다. 그 곁에서 보낸 시간은 제 문학을 한층 단단하게 다져준 소중한 자양분이 되었습니다.
Q11. 병원에서의 경험은 작품에 어떤 변화를 주었나요?
⯈ 최근에는 병원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병원은 삶과 죽음이 가장 가까이 마주하는 공간입니다. 병실과 복도에서는 회복을 기다리는 마음과 이별을 준비하는 마음이 하루에도 몇 번씩 스쳐 지나갑니다. 그 시간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우리는 결국 서로를 돌보며 살아간다는 사실을 다시 배우게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풍경을 오래 바라보았다면, 요즘은 표정과 침묵을 더 오래 바라보게 됩니다. 말없이 건네는 손길과 짧은 눈 맞춤 하나에도 삶의 무게가 담겨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런 경험들이 앞으로 써 내려갈 시와 산문, 소설의 밑거름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Q12. 시가 가장 큰 위로가 되었던 순간은 언제인가요?
⯈ 누군가를 떠나보냈을 때였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던 시간 속에서 시는 저 대신 울어주었고, 제 마음을 조용히 품어주었습니다. 그래서 제게 시는 치료이자 위안이며, 끝까지 곁을 지켜주는 오래된 벗과도 같습니다. 슬픔은 쉽게 사라지지 않지만, 시 한 편은 그 슬픔 곁에 오래 머물러 줍니다. 저 역시 누군가의 마음 곁에 조용히 머물 수 있는 시를 쓰고 싶습니다. 읽는 순간 끝나는 시보다 오래 마음속에서 숨 쉬는 시를 남기고 싶습니다.
Q13. 앞으로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으신가요?
⯈ 저는 시가 거창한 답을 주는 장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게 시는 정답보다 하나의 질문을 건네는 장르에 가깝습니다. 바쁜 일상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게 하는 작은 쉼표 같은 존재였으면 좋겠습니다.
제 시를 읽은 누군가가 '오늘은 하늘을 한 번 더 올려다봐야겠다.', '바다를 다시 만나고 싶다.', '마음을 조금 천천히 들여다보고 싶다.'라고 생각하게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시인으로 살아가는 보람은 충분합니다.
앞으로도 바람이 지나간 자리에 남겨진 흔적을 살피고, 겨울 끝에 봄이 오듯 다시 피어나는 마음의 계절을 조용히 기록하는 시인이 되겠습니다.
* 결핍을 희망으로 바꾸어 놓은 시들은, 오늘도 누군가의 침묵 곁에 조용히 머물고 있을 것입니다. 김숙영 시인의 다음 시집을 기다리며, 이번 초대석을 마칩니다. 선생님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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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은화 시인 |
* 이은화 서울예술대학 졸업. 시집 『타인과 마리오네트 사이』가 있음. 일요주간 문화예술 전문 주필위원.
일요주간 / 이은화 작가 cactus6812@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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