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다수의 히트곡 제조기 ‘천재작곡가 겸 가수 김정호’…예술적 혼의 빛을 발하다

김쌍주 대기자 / 기사승인 : 2019-09-30 13: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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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호 천재작곡가 겸 가수

 

[일요주간 = 김쌍주 대기자] 타고 난 천재적 예술 감각으로 전공했던 토목공학분야로의 진출을 과감히 포기하고 대학졸업과 동시에 1986년 남성듀오 ‘영과 영’을 결성하여, ‘얼룩진 사랑’이라는 노래로 가요계에 샛별처럼 등장하여 스타탄생을 알렸던 천재작곡가 겸 가수 김정호! 가수로도 빛을 발하고 있다.

명품작곡가로 유명한 그는 수많은 가수들이 곡을 의뢰할 정도로 인기가 높은 뮤지션으로 노래하는 작곡가로도 유명하다. 다수의 히트곡을 내놓은 천재작곡가 겸 가수 ‘김정호!’ 그는 그동안 ‘꽃을 든 남자’ ‘화장을 지우는 여자’ ‘짐이 된 사랑’ ‘꽃나비 사랑’ ‘천년지기’ ‘고향 버스’ ‘하늘땅만큼’ ‘축제’ 등 220여 곡을 발표해 수많은 히트 곡으로 세상을 화려하게 수놓으며 송해 선생과 함께 전국을 누비며 KBS 1TV ‘전국노래자랑’의 최다 심사위원으로 맹활약 중이다.

그는 송해 선생의 구순잔치기념 헌정곡 ‘내 인생 딩동댕’을 작곡하였는가하면, 그 외에도 천안함 및 제2 연평해전 전사자 등 순직한 국군장병들의 유가족을 돕는 모임인 ‘천사모’의 핵심멤버로 순국장병 유자녀 돕기 콘서트를 통해 얻어진 공연수익금 전액을 기부하는 등 좋은 일에도 적극 앞장서고 있다.

 

▲ 김정호 작곡가 겸 가수와 전국노래자랑 최장수 MC 송해 선생과 함께 한 장면


특히, 그가 작곡한 ‘천년지기’는 국내 트로트 중 유일하게 유튜브 조회수 5천만 건이 넘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베이비부머 세대를 위해 만든 김시원 작사 김정호 작곡 ‘최고 친구’는 고고리듬의 세미트롯으로 7080세대의 향수적 복고풍임에도 젊은 팬들의 열렬한 지지 속에 인기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날로 치솟고 있다.

‘가요무대’에서는 트로트를, ‘7080’이나 ‘열린 음악회’ 에서는 팝과 발라드를 부르며 장르를 넘나드는 작곡가 겸 가수로, KBS ‘전국노래자랑’에서는 심사위원으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는 최근 ‘최고 친구’란 곡을 작곡하여 가수 소명 씨와 콜라보로 노래를 부른다. 개인적으로 ‘천년지기’를 뛰어넘을 수 있는 곡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가 작곡해 부른 ‘최고 친구’란, 노래가사는 시린 가슴에 바람이 분다/ 외로움에 눈물이 난다/ 힘차게 달려온 후회 없는 내 인생/ 돈도 명예도 별것 없더라/ 힘이 들 때 부르면 어디든지 달려온/ 니가 정말 최고 친구야/ 세찬 비바람이 불어도/ 거센 눈보라가 닥쳐도 함께 있어 나는 행복해/ 고맙다 친구야 사랑 한다 친구야/ 오늘은 술이 너무 달다/이 얼마나 멋진 노래인가.

그는 1986년 듀엣 ‘영과 영’으로 ‘얼룩진 사랑’을 발표, ‘가요 톱 텐’에 1년 이상 진입해 사랑을 받았으며, 1993년 가수 이명주가 부른 ‘짐이 된 사랑’을 작곡하면서 트로트 작곡가로도 이름을 널리 알리기 시작했다. 〈일요주간〉은 천재작곡가 겸 가수 ‘김정호’씨의 예술적 혼의 뿌리를 찾아보기 위해 그와 인터뷰를 했다.

 

▲ 김정호 작곡가 겸 전국노래자랑 심사위원으로 관중들과 함께 한 장면


- 작곡가와 가수라는 직업을 갖게 된 계기가 있다면

▶ 대학가요제에 나가면 대상을 받을 자신이 있었는데 학교 선생님이셨던 부모님께서는 음악보다 제가 공부에 전념하길 원하셨습니다. 부모님의 기대를 저버리지 못해 공부하면서도 몰래 음악다방과 통키타 카페에 가서 노래를 부르기도 했었습니다. 즉석에서 노래를 불러도 늘 1등을 했었습니다. 그러던 중 군대제대 후 복학을 준비하던 중 기획사에서 제안을 받아서 남성듀엣 ‘영과 영’의 멤버로 ‘얼룩진 사랑’을 불렀습니다. 2년 동안 활동하면서 좋은 호응을 얻었지만 다른 친구들이 졸업과 취업하는 것을 보니 저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되어버린 기분이었습니다. 그러던 차 제 스타일의 음악을 하고 싶어 듀엣을 그만두고 곡을 쓰기 위해 기획과 작곡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일본과 미국에서 일과 공부를 하며 트로트보다는 팝재즈 스타일의 곡을 썼었습니다. 90년 초쯤 노래를 발표하려는데 서태지와 아이들이 등장해 음악 주류가 댄스곡으로 추세가 바뀌었습니다. 부모님의 바램에도 제대로 충족도 못시키면서 늘 공부와 음악 사이에 무엇인가 계속 운이 안 맞는다는 생각에 크게 좌절을 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렇게 방황하던 중 트로트 곡을 써달라는 가수 매니저 후배의 제안을 받고서 93년도에 가수 이명주 씨에게 ‘짐이 된 사람’ 노래를 작곡해주었습니다. 기존 성인가요를 한 차원 업그레이드 했다며 첫 노래부터 음악성을 인정받기도 했었습니다. 지금도 노래교실에서 많은 사랑을 받고 있고, 특히 가수 설운도 씨 부인의 애창곡으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96년에는 ‘꽃을 든 남자’를 작곡했는데, 98년도에 인연이 닿은 신인가수 최석준 씨가 부르게 되었습니다. 당시 가수 남진 선배님의 둥지, 송대관 선배님의 네 박자, 태진아 선배님의 사랑은 아무나 하나 노래와 함께 최고의 인기를 얻었습니다. 장조곡인 ‘꽃을 든 남자’는 독특한 후렴구 섹션으로 음악적이고 대중적인 곡이라는 높은 평가를 받아서 많은 기획자와 제작자분들에게 명성을 얻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가수 강진 씨에게 작곡을 해준 ‘화장을 지우는 여자’도 ‘땡벌’과 함께 한 앨범에서 크게 인기를 얻었습니다.
           

▲ KBS전국노래자랑 심사하는 중 관중들과 함께한 장면


- 40년 관록의 작곡가와 가수생활을 통해본 뮤지션에 대한 소회는.

▶ 작곡가와 가수를 하고 있기 때문에 서로의 어려움을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창작의 고통을 느끼는 작곡도 하고 있고, 그 곡을 잘 해석해서 대중들에게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도록 전달하는 가수로도 활동하고 있기 때문에 그 어려움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뮤지션에 대한 소회를 굳이 말한다면 작곡가나 가수나 모두 다 끝없는 도전이라 생각합니다.

- 수많은 히트곡 중 재미난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면 한 가지만 소개해 달라.

▶ 제가 작곡한 노래들은 모두가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그러나 특히, ‘꽃을 든 남자’노래는 가수 배일호 씨에게 주기위해 만든 곡이었습니다. 그러다가 가수 강진 씨에게도 기회가 있었으나, 결국은 신인가수 최석준 씨가 불러서 히트한 노래입니다.

- 대학에서 토목공학을 전공한 후 음악으로 방향을 전환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 저의 집안은 의사가 많습니다. 그래서 교육자이셨던 부모님께서는 저를 의대에 진학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런데 토목공학과를 진학하게 된 이유는 당시 외삼촌께서 건설 회사를 하고 계셔서 외삼촌 권유로 진학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완고한 집안환경 때문에 몰래 음악을 하였습니다. 다행히도 절실하게 음악에만 전념하는 친구들보다 음악관계자들은 저를 더 인정해주셨습니다. 그러나 집안의 반대로 제대로 음악활동을 못했던 것입니다. 당시 공부와 음악 사이에서 갈팡질팡했던 저에게는 가장 힘들었던 시기가 아니었을까 생각해봅니다.

   

▲ 통키타 든 김정호 천재작곡가 겸 가수의 모습


- 순국장병 유자녀 돕기 콘서트 공연수익금 전액을 기부하고 있는데, 그 계기가 있다면.

▶ 저의 고교동창이 경기도 화성에 있는 비봉중고등학교재단 이사장입니다. 그 친구의 할아버지께서 설립한 학교를 아버지에 이어 저의 친구가 운영하고 있습니다. 매년 저의 동창들의 체육대회를 이 학교에서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5년 전 우연히 동창회 체육대회에 참석을 했다가 순국장병유자녀를 돕는다는 말을 듣고 선뜻 공연수익금 전액을 기부하겠다고 한 계기가 되어 지금까지 꾸준히 실천해오고 있습니다.

- 전국노래자랑 심사위원으로 활동하는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예화가 있다면.

▶ 전국노래자랑은 저에게는 하늘이 주신 선물이라고 생각합니다. 각 지역의 맛있는 음식은 물론 좋은 곳까지 구경할 수 있어서 금상첨화입니다. 항상 기억에 남는 일은 녹화하기 하루전날 송해 선생님과 그 지역에 물 좋은 목욕탕에서 함께 목욕하는 일입니다. 작고하신 아버님과는 생전에 목욕탕에 자주가지 못해서 송해 선생님과도 처음엔 조금은 서먹했었습니다. 그러던 중 어느 순간 송해 선생님의 등을 보다가 문득 저의 아버님 등으로 착각하게 된 순간, 아버님께 다하지 못했던 살가움이 송해 선생님께 전해졌습니다. 그 이후로는 등도 밀어드리고 몸에 물기도 닦아드리고 옷가지도 챙겨드리게 되었습니다. 저의 아버님께 못다 한 효도를 송해 선생님께 해드리는 게 지금은 너무 행복합니다. 이는 전국노래자랑 때문입니다. 너무 감사할 따름입니다.

- 가요를 사랑하는 국민들에게 꼭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 노래도 부르고 작곡도 할 수 있는 재능을 주신 부모님께 먼저 감사를 드립니다. 노래하는 작곡가로 거듭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국민들에게 희·노·애·락을 느낄 수 있는 좋은 노래와 좋은 곡으로 항상 보답하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 앞으로 꼭 이루고 싶은 일이 있다면.

▶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넘나들 수 있는 소양 있는 가수를 발굴하여 트로트음악의 발전에 미력이나마 보태고 싶습니다. 과거에는 여러 이유들로 인해 제대로 노래를 하지 못했지만, 중년이 지나 꿈을 이루기 위해 앨범을 내시는 분들이 요즘은 참 많습니다. 인생을 살면서 삶의 희·노·애·락을 느끼신 분들, 노래를 부르고 싶은 절실함이 있는 분들을 위해서 곡을 쓰고 함께 공연하며, 그 마음을 뚫어주면서 도와드리고 싶습니다. 전국 각지에서 작사가분들이 저에게 많은 의뢰를 해주시는데, 그 글에 느낌을 받고 준비 중에 있는 곡이 있습니다. 최근 부산 해운대에 거주하시는 지인께서 보내주신 아름다운 가사로 세계인들이 다함께 공감할 수 있는 노래를 만들어서 대한민국의 천혜 제일의 관광지 해운대를 노래 속에 담아 전 세계인들에게 널리 알려서 찾아올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노래를 만들려고 준비 중입니다.

           

▲ 최고 친구_를 콜라보로 부른 김정호 천재작곡가 겸 가수와 가수 소명 씨가 가요베스트50에서 연속 4번 1위를 한 후 수상기념사진


※ 김정호 천재작곡가 겸 가수 근황
사단법인 한국가요강사협회 고문을 맡아 자문역할을 하고 있고, KBS 전국노래자랑에서 심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앨범을 내고 가수로도 바쁘게 활동하고 있다. 전국노래자랑 역사상 처음으로 심사를 하면서 초대가수로 최근엔 무대에 서고 있다. 신곡은 부르지 못한다는 KBS가요무대에서 정설을 깨고 ‘최고 친구’를 불렀다. 가수 소명과 콜라보를 한 ‘최고 친구’는 케이블 TV 베스트가요50에서 4번씩이나 1위를 수상하였고, 노래교실에서 그가 작곡한 ‘천년지기’와 함께 1~2위에 오르기도 했다. 5년 전부터는 천안함, 연평해전, 해군 링스헬기 추락사 등 나라를 위해 헌신하다가 순국한 장병들의 유자녀 돕기를 위한 기금마련을 위해 소극장에서 공연을 통해 얻어진 수익금 전액을 ‘대한민국 수호천사 순국장병 유자녀를 사랑하는 모임 ’천사모‘에 전액 기부하는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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