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자: 심고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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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심고우리 작가 |
● 선생님, 바쁘신 중에 저희 <작가 초대석>에 함께 해 주셔서 기쁩니다. 그동안 파리 생활을 하시면서 느끼신 한국과 프랑스 예술 문화의 차이점, 그리고 파리 예술계만의 독특한 분위기나 특성에 대해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 문학과 영화를 전공한 저는 다 장르 예술을 하며 창작 레지던시를 발판으로 한국에서 창작활동 확대하고 있습니다. 2002년부터 파리에 기반을 두고 있는 저로서는 가끔 한국 예술계가 더 독특하고 생소하게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프랑스의 분위기는 수도인 파리와 그 외 나머지 도시들과 차이가 크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은데요. 일단 파리에는 예술가들이 정말 많습니다. 이에 부응해 문화 수요자도 상당합니다. 프랑스에서는 모든 학교가 9월에 개학하는데 여름의 긴 휴가를 보낸 후 모든 문화행사는 개학과 함께 일 년 주기로 시작됩니다. 주요 공연들은 서둘러 예약하지 않으면 볼 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국립, 시립 박물관, 사립미술관, 콘서트, 연극, 오페라, 전시, 지인들의 예술 관련 활동 등 수많은 행사로 하루하루가 채워진 문화축제와 같은 도시입니다. 그만큼 지인들과 대화에서도 예술, 문화에 대한 정보 교환과 감상 소통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합니다. 저뿐만 아니라 주변 지인들의 대부분이 예술을 누리고 표현하는 것을 삶의 중심으로 두는 것 같습니다. 파리지엥들의 특징은 호기심이 많고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즐거움을 중시한다는 것입니다.
● 선생님께서는 한국에서 국문학을 전공하고 파리에서 영화와 예술을 공부하셨는데, 이 두 문화권에서의 학문적 경험이 현재 창작 활동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말씀해 주세요.
▶ 파리에서 제작 실습을 배울 수 있는 영화학교에는 등록비가 비싸서 들어갈 수 없어 대학에서 영화학을 전공했습니다. 그래서 영화학이 인문학이라는 것을 빨리 깨달았습니다. 당시 영화학을 시작하면서 영화를 보는 것과 동시에 영화평, 이론 서적들을 읽어야 했기에 배워도 끝없이 나오는 새로운 어휘에 도전하는 정신을 연마하게 되었습니다. 이론 수업은 들뢰즈, 푸코, 니체 등 철학가와 허먼 멜빌, 랭보, 프루스트 등 문학 작가의 텍스트를 간과할 수 없었고 사진, 미술, 건축 등 여타 예술분야도 섭렵해야 했습니다. 영화가 인문학을 기저에 둔 종합예술임을 알게 되었고 끝없는 심연의 학문은 저에게 앎에 대한 목마름을 자극했습니다. 창작활동 시간이 지날수록 고전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어 공부를 놓을 수 없습니다.
● 종합월간지 <곰단지야> 연재 글들을 보면 파리라는 도시를 매우 섬세하고 깊이 있게 관찰하시는 것 같습니다. 선생님에게 ‘파리’는 어떤 의미를 갖는 공간인지요?
▶ 그렇게 보아주셨다니 감사합니다. 멀리서 전하는 소식은 멀리 있는 마음에서 써 내려간 시처럼 생생하게 전달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저에게 파리는 젊음입니다. 제가 20대 초반에 오게 된 이곳은 첫 발걸음을 디디면서부터 잘 맞았던 것 같습니다. 걸으며 몸으로 느끼는 파리의 공기를 좋아합니다. 그리고 2백만 명 인구의 작은 도시이기에 모빌리티도 좋습니다. 언제든지 걸어서 파리 반지름의 반은 쉽게 걸을 수 있고 카페에서 책 읽기, 옆 테이블 이야기 듣기, 카페 테라스에서 지나가는 사람들 바라보기, 전 세계에서 제작된 영화들을 찾아보기.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크고 작은 행사들에 관심두기 늘 빠른 걸음으로 걷기, 이 모든 것이 젊은 정신을 유지하게 하는 것 같습니다. 파리시의 좁은 길들은 양쪽으로 보도가 있어 한쪽에 사람이 많으면 건너편으로 이동하며 경쾌한 리듬을 유지하게 됩니다. 비라도 내리면 더 빨리 걷게 되지요. 예전에는 길을 가다가 모르는 사람과도 가벼운 인사말이 자연스러웠던 시절도 있었는데 지금은 아무래도 모바일 시각장애인들이 많아져서 세계 곳곳에도 유사한 모습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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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간의 팔림프세스트> 판넬에 아크릴 |
● 마치 선생님의 구체적인 얘기가 직접 파리에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이어 소나무예술가협회 30주년에 이어 정기 전시에 참여하신 걸로 알고 있어요. 프랑스와 한국을 오가며 현지와 한국 예술계의 교류에 힘쓰고 있으신 데 협회에 대한 설명 간략하게 설명 부탁드려요.
▶ 저는 2014년부터 소나무예술가협회 회원작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 협회는 1991년 파리 남서쪽 근교에 있는 이씨레물리노에서 옛 군수품 공장을 개조해 공동작업실로 쓰면서 그곳에 모인 한국작가들을 중심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창단 멤버로 정재규 선생님, 권순철 선생님, 이배 선생님 등이 있으십니다. 그 후 도시개발계획으로 인해 물리적인 공동작업실은 해체될 수밖에 없었고 같은 도시 다른 곳으로 작업실을 옮기게 되며 ‘레자흐슈’ Les Arches라는 공동작업 공간으로 이주한 작가분들도 상당히 있습니다. 그 뒤로 소나무예술가협회는 공동작업 공간을 넘어서 정기적인 전시활동과 아울러 우애를 도모하는 협회로서 프랑스를 대표하는 한인 단체 중 하나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또한 소나무예술가협회 소속이었다가 귀국한 작가들은 한국소나무예술가협회로 함께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재불 예술가 대 선생님들의 활동이 후배 작가들에게 향방을 제시해 준 덕분에 저희에 이어 앞으로 걸어갈 길에 큰 힘이 됩니다. 프랑스에 기반을 두고 한국 무대로 점점 확대되는 추세 또한 매우 고무적인 현상입니다. 문화 분야에서 한불 교류에도 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 파리 생활 중에서 특히 기억에 오래 남는 순간이나 장면이 있으시다면 소개해 주시겠어요?
▶ 30년 가까이 살아온 곳에 대한 기억을 한 장면으로 선정한다는 게 저에게 쉬운 일은 아닌데요. 최근 기억으로 하나를 뽑자면 불가리아출신의 대지미술가 크리스토Christo(1935-2020)의 파리 개선문 포장 프로젝트였습니다. 1968년 비스콘티 거리, 1985년 퐁네프 다리를 포장한 다음 파리시 공공장소 포장으로만 세 번째 작품이자 유고전이 되었습니다. 특히나 이 작품의 시초는 크리스토 작가가 1962년 개선문이 보이는 근처에서 집을 얻었던 시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코로나 전염병으로 연기되었던 설치 전시는 작가 타계 다음 해인 2021년 가을에 선보이게 됐습니다. 개선문 포장 설치에 앞서 크리스토의 초기 작품전이 퐁피두 센터에서 열렸고 코로나 시기의 봉쇄 조치가 점차적으로 해제되면서 처음으로 관람이 허용되었던 전시장이었기에 기억이 각별합니다. 마스크를 쓰고 집단이 모여서 같은 공간에서 무언가를 집중해서 본다는 행위는 새로운 경험이었습니다. 아버지가 원단 제조업에 종사했던 크리스토는 파리에 온 후 젊은 시절부터 무엇이든 포장하는 작업을 해왔는데 페인트 통 같은 작은 오브제, 회화작품 등을 포장하다가 특정 도시의 상징물, 장소를 포장하고 설치하는 등 매우 큰 규모의 계획들을 실현해 갔습니다. 파리의 대표적인 역사 기념물인 개선문을 포장해 파리의 모습을 인식하는 관객의 시선을 크게 바꾸어 준 획기적인 전시였습니다. 전시 기간 16일 동안 파리 시민들은 날씨에 따라 또 시시각각 색과 빛이 변화하는 설치물에 감탄하며 끊임없이 셔터를 누르게 됐습니다. 파리 시민 뿐만 아니라 이를 보기 위한 유럽인 여행자들도 많았습니다. 설치에 사용된 천은 재생 원단이었고 포장한 총면적은 25,000제곱미터에 달했으니 어마어마한 프로젝트였지요. 작가가 생전에 세밀하게 준비했던 계획 구상안에 따라 설치를 완성했습니다.
● 올 9월 서울에서 장 뤽 고다르 감독 3주기 특별전을 기획하신 것으로 알고 있어요. 고다르 감독의 어떤 면이 선생님께 특별한 의미가 되었는지, 그리고 기획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신 부분은 무엇인지 궁금해요.
▶ 고다르 감독 타계 3주기 특별전은 제가 기획한 것은 아니지만 제가 더숲아트시네마에 2년 전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소개되었던 다큐영화 <고다르 감독에게 묻다>를 제안한 것은 맞습니다. 마침 3주기를 맞아 기획이 이루어졌고 숲아트시네마 영화관에 상영권이 있는 고다르 감독 영화 중에서 한국 관객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국외자들” (Bande à Part)를 추천했고 같은 날 이어서 상영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제 다큐는 고다르 감독 생전에 영화의 제작과정에 대해 질문하는 인터뷰 영화인데 한국인으로서 직접 만나 인터뷰를 진행한 사람은 저밖에 없어서 유일한 사례로 남게 되었습니다. 인터뷰를 통해 영화를 만드는 여러 과정에 관한 얘기와 한국 관객에게 고다르 감독 특유의 영화제작 방식이 주는 난해한 느낌을 풀어보며 작품으로의 접근성을 고취해 본다는 취지로 시작되었습니다. 2001-2002년 당시 저는 서울에서 고다르감독 회고전을 준비하며 인터뷰 영화를 함께 소개하려고 했지만 성사되지 못해 아쉬움이 있었어요. 그러나 20여 년이 지나 새로운 관객을 만나게 되어 정말 다행입니다. 지난 10월 서울 숲아트시네마 상영 후, 서울아트시네마의 초청으로 11월 4일부터 11일까지 간 세 차례에 걸친 상영과 특히 11월 4일 상영회에 이어 관객과의 만남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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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고다르 감독에게 묻다> (2023) 김성욱 프로그래머디렉터와 시네토크 장면 |
● 선생님께서는 미술과 영상 작품 그리고 다큐멘터리 작업 등 활발히 하고 계십니다. 장르별로 창작 과정에서 느끼는 차이점이나 상호작용을 하는 부분들이 있다면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 여러 장르활동을 동시에 진행하는 것은 힘들거나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사진과 영상작업을 오랫동안 해왔습니다. 저에게 이미지는 중요한 매체이자 사유의 모티브였습니다. 가장 먼저 시작했던 작업은 사진인데 프레임, 구도, 조명, 피사체에 대한 흥미로운 작업이었지만 어느 순간에 저의 한계점에 봉착했다고 느꼈습니다. 프랑스에서 영화공부를 하면서 사진에서 비디오 작업으로 서서히 매체를 옮겼지만 팀을 짜서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기보다는 시 쓰듯 혼자 비디오를 촬영하고 편집하는 작업을 오래 했습니다. 이미지를 포착하고 해석한다는 점에서 사진과 유사했으나 비디오는 반대로 시간예술이기에 편집 과정에서 의미를 생성하고 어디에서도 보지 못한 저만의 고유한 세계를 표현하기에 적합하다고 생각됩니다. 가장 어려웠던 점은 영화도 미술설치작품도 아닌 모호한 경계로 관객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만드는 것 자체였습니다. 저의 비디오 작품들은 회화 작품처럼 스치듯 지나가면서 보는 작품은 아니고, 고정된 자리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관람해야 하는 시간예술로 영화와 닮아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이러한 작품들에 대한 이해가 더 제고되어 다시 소개할 기회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 회화작업은 코로나 때 시작했습니다. 제가 앞서 언급했듯이 파리에서 소나무예술가 협회 회원으로 활동하며 동료 회화작가들의 작품을 많이 보아왔습니다. 개인적으로 붓의 터치를 느낄 수 있는 회화를 좋아합니다. 코로나바이러스로 이동의 자유가 제한된 생활을 경험하면서 그전에는 용기를 내지 못했던 일, 그렇지만 끊임없이 끌렸던 일을 시작할 결심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프랑스에서 2차 봉쇄가 시작된 날 화방에 가서 물감과 그림도구를 사 왔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 이후로 수채화, 아크릴, 잉크, 드로잉 등 자유롭게 작업을 해오고 있습니다. 제게는 형태보다는 색감의 표현성, 질감뿐만 아니라 깊이를 구현하기 위한 모색이 중요합니다. 그것은 비디오 작업에서 보여줄 수 없는 내적인 경험을 발휘하는 시적인 작업이기도 합니다. 어떤 매체에 집중하는 시기는 다르지만 다양한 장르를 통해 창작 주체는 저라는 동일한 인물입니다. 각자의 창작력은 무한하지 않을까요? 물론 상대적인 의미이겠지요.
● 그동안 여러 전시와 프로젝트에 참여해 오셨는데, 파리에서 진행하신 활동 중 가장 애착이 가는 작업을 하나 골라 소개해 주세요.
▶ 매 순간 가장 중요하게 여기며 몰두했던 작업이었던 만큼 모든 작품에 애착이 있습니다. 그 중의 하나를 고르자면 제 전시 경력에서 가장 롱런을 했고 타 장르 작품들과 한불 프로젝트로 진행한 행사에도 참여하면서 만들었던 작품을 예로 들고 싶습니다. 제가 프랑스 문인과 함께 번역해 출간된 이상 시인전집 <오감도>의 불어번역서(출판사 La Barque)가 있습니다. 번역 기간은 상당히 길었는데 2010년에 이상 시인 100주년 탄생 기념 페스티발이 파리에서 열렸습니다. 그때 저는 ‘이상 시인이 생전에 파리를 방문했다면’ 이라는 즐거운 상상으로 <파리에서 이상을 부르다>라는 비디오를 발표했습니다. 한-불 다양한 장르의 전문가들이 참석했는데 한국에서 오신 시각작가, 비디오작가, 프랑스 수학자, 과학자, 예술가, 음악가, 설치미술가, 푸드 아티스트, 건축가등의 광범위한 매체들이 함께 한 매우 독특한 축제였고 의미 깊은 행사였습니다. 이어 저는 이상의 “선에 관한 각서-7” 시작품에서 자유롭게 영감받은 비디오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불어제목의 작품의 한국어 번역은 “빛의 흐름”이 될 수 있겠습니다. 이상은 “선에 관한 각서”와 관련 연작시로 7편을 발표했었습니다. 당시 이상 시인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 막 발표된 시기에 에너지와 빛의 속도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갖고 기호와 기하학의 개념을 도입한 창작시를 많이 썼습니다. <빛의 흐름 Fil de Lumière> 작품은 한불수교 130주년 라벨을 받은 ‘한국 사진작가와의 2인전’에 초대받기도 했고 LA 교류전에도 출품했으며 드뢰(Dreux)시에 다시 초청받아 상영과 사진전을 같이 진행한 적도 있습니다. 문학(시)으로 출발한 비디오 영상과 지인 음악가가 작곡으로 참여해 종합예술로 연장선을 보여주었던 기회였기에 저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남아있습니다.
● 이 시간 예술과 문화를 폭넓게 아우르며 활동하시는 선생님의 이야기를 잘 들었습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끝으로 여러 작업 중 근래에 집중하고 있는 분야가 있으신지요?
▶ 시기와 작업환경에 따라 장르가 변화하는 것 같습니다. 이번 가을에는 원주 토지문화관 거주 작가로 9월부터 10월 말까지 일정을 보냈습니다. 불어서적 번역, 시 창작, 전시관련 칼럼을 쓰고 문학창작 프로그램으로 갔던 만큼 문학에 집중해서 고전 서적, 시, 소설 등 밀렸던 독서도 많이 했습니다. 불어로 쓴 시를 프랑스 문학지에 발표했으나 한국인인 만큼 모국어로 시를 쓰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프랑스에서는 한국어가 접근성이 어려울 수 있어 토지문화관 창작실에서 시를 마음껏 읽었습니다. 창작하기 좋은 환경에 늘 감사해 하며 최대한 문학에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11월 프랑스로 돌아가게 되면 회화작업을 재개할 것입니다. 저의 작업실로 돌아가는 상상 또한 즐겁습니다. 문학과 회화는 상호 보충적인 역할을 하는 것 같습니다. 구체적인 언어로 표현한 문학과 추상적인 컬러와 선, 구도를 통한 회화작업의 매력은 서로가 자극하며 잡아당기고 영향력을 행사하는 힘이 있습니다. 조형예술은 재료, 시간, 기후, 온도, 무드 등 다양한 요소들이 작가의 의식 속에서 구체적인 손놀림을 통해 즉흥적으로 펼쳐집니다. 축적되어 내재한 문학적인 영감이 발휘될 수 있는 순간이지요. 제가 이 두 장르를 놓지 않고 시기에 따라 우선시하는 이유에 대한 설명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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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은화 작가 |
[일요주간 = 이은화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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