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한복판에서 벌어진 ‘묻지마 살인사건’

황성달 기자 / 기사승인 : 2016-05-24 16: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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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혐오’ 논란으로 확대되나?
[일요주간=황성달 기자] 최근 우리를 가장 충격에 빠지게 했던 사건은 역시 이른바 ‘강남역 묻지마 살인사건’이다. 특히 여성을 노린 범행으로 알려지면서 여성들의 불안감이 점점 커지고 있다. 동시에 여성 혐오 문제로 확대되면서 사회적 갈등으로 불러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는 중이다.

▲ 서울 강남구 서울지하철 2호선 강남역 10번 출구에 '강남 묻지마 살인사건' 피해자 여성을 추모하는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Newsis
“여성에게 무시를 당해 살인을 저질렀다”
‘묻지마 살인사건’이 또 발생했다. 이번엔 서울시 서초구의 한 노래방 화장실에서 벌어졌다. 사건 발생 시간은 17일로 넘어가는 새벽 1시 25분. 피해자 여성 A(23)씨는 남자친구 등 지인들과 함께 술을 마시다, 2층 노래방으로 올라가는 계단 중간에 있는 화장실에서 변을 당했다. A씨는 피의자 김모(34)씨가 휘두른 칼에 가슴 왼쪽 등을 2~4차례 찔려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사건 발생 후 현장 주변의 폐쇄회로(CC)TV를 확보·분석해 김씨를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했으며, 같은 날 오전 10시께 범행 현장에 다시 나타난 김씨를 체포했다. 검거 당시 김씨는 범행에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30cm 크기의 부엌용 식칼을 소지하고 있었으며, 오른쪽 손바닥에는 베인 상처가 발견됐다.
김씨는 경찰 조사에서 “사회생활에서 여성들에게 무시를 당해 범행을 했다”며 “범행 전 식칼을 미리 준비했고, 화장실에 미리 숨어 있다가 A씨를 상대로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김씨의 진술을 통해 여성을 노린 범행이었던 것으로 알려지며 여성들의 불안감은 극도로 높아지고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 SNS 등에서는 “범행 장소에 A씨가 아닌 내가 있었으면, 내가 죽었을 것”이라는 말들도 나오고 있는 중이다.
범인, 정신분열증 앓고 있었다
여성 혐오에서 비롯된 범죄라는 말들이 나오기 시작하자 경찰은 “피의자가 심각한 수준의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는 만큼 이번 범행의 동기가 여성 혐오 살인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입장을 밝혔다.
▲ 지난 17일 강남역 부근에서 묻지마 살인을 벌인 김 모(34)씨 가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19일 오후 서울 서초경찰서를 나와 서울중앙지방법원으로 향하고 있다. ⓒ Newsis
서울 서초경찰서에 따르면 지난 18일 김씨의 가족을 대상으로 조사를 진행한 결과 김씨가 2008년부터 올해 1월까지 정신분열증으로 치료를 받았다는 진단서와 진료 기록이 확인됐다.
경찰 관계자는 “건강보험공단에서 회신받은 진료내역과 비교해 본 결과 (김씨는) 2008년 여름부터 정신분열증 진단을 받은 이래 2008년 수원 모 병원에서 1개월, 2011년 부천 모 병원에서 6개월, 2013년 조치원 모 병원에서 6개월, 지난해 8월부터 올 1월까지 서울 모 병원 6개월 등 4번 입원치료를 받은 기록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또한 지난 1월 초 퇴원했을 당시 주치의로부터 약을 복용하지 않으면 재발할 수 있다고 진단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은 김씨가 지난 3월 말 가출 이후 약물 복용을 끊은 것으로 보고 있다.
한편, 김씨는 서울 지역의 한 신학대학을 다니다 중퇴했으며 한 때 목사를 꿈꾸던 인물로 알려졌다.
강남역 10번 출구, 추모행렬 이어져…
이른바 ‘강남역 묻지마 살인사건’의 희생자를 추모하는 물결이 확산되고 있다. 추모 분위기는 사건이 발생한 현장 인근과 인터넷 게시판 등 온·오프라인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진행 중이다.
지난 19일 오후 7시 30분에는 강남역 10번 출구에서 촛불 추모제가 진행됐다. 트위터에서 한 시민의 제안으로 시작된 추모제에는 퇴근길 직장인들과 수업을 마친 학생 등 다양한 연령대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사건이 발생한 다음날인 지난 18일부터 시작된 추모 행렬은 갈수록 확산되고 있는 모양새다. 강남역 10번 출구 벽면은 하루 만에 고인을 명복을 기원하는 내용의 메모지로 가득 찼다. 손이 닿는 곳에 더 이상 메모지를 붙일 공간이 없자 서초구청은 이날 오후 인근에 별도의 추모공간까지 마련했다.
특히 이번 사건이 여성을 목적으로 한 범죄로 드러나면서 현장에는 남성보다 여성들의 모습이 더 눈에 띄고 있다. 내가 범행대상이 됐을지도 모른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피해자에 대한 안타까움을 추모로 대신하고 있는 것이다.
추모 분위기는 대학가에서도 불었다. 이날 성북구 종암동 고려대학교 정경대 후문 게시판에는 대자보와 메모지가 나붙는 등 여러 대학에서 이 같은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또 부산 진구 주디스태화 백화점 인근의 하트 모양 조형물에도 고인을 애도하는 메모지가 붙기 시작했다.
온라인상에서도 추모 메시지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트위터와 페이스북, 포털 게시판 등에는 이 시간 현재 셀 수 없이 많은 추모 글이 달려 있다. 추모글은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같은 여자로서 미안하다”라는 평범한 글부터 “여성 혐오는 사회적 문제입니다”, “살인범을 용서하지 말자”는 등의 공격적인 내용까지 다양한 의견이 달렸다.
이같은 추모 물결에 대해 전문가들은 자신도 범죄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공포감에서 비롯된 움직임이라고 진단했다.
김흥중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세월호, 가습기 참사,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처럼 시민들은 자신의 안전 또한 위협받을 수 있다는 불안감에서 자발적 추모운동을 하고 있다”며 “뚜렷한 이유 없이 무차별적인 폭력으로 약자가 살해당했기 때문에 시민들의 분노가 더 커진 것”이라고 말했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도 “피해자 무책론, 즉 피해자는 아무런 책임이 없는데 사고나 범죄에 희생 됐을 경우 사람들은 감정이입을 하게 된다”며 “나도 범죄 대상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적극적으로 추모운동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프랑스 등 여러 나라에서 그랬듯이 테러나 폭력에 의한 희생자에 대해서 시민들이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적극적으로 반대를 함으로써 집단적인 분노와 경각심을 표현하고 동참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성 혐오 단정·성별간 대결 조장 자제해야”
범죄의 원인을 ‘여성 혐오’로 섣불리 단정 짓고 성별간 대결을 조장하는 추모 운동은 지양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실제로 강남역 10번 출구에는 추모 메시지뿐만 아니라 ‘여자라 살해당했다’, ‘한 인간 쓰레기가 살인을 저질렀다고 온 남성들을 모욕하지 말라’ 등의 메시지도 많다.
▲ 서울 강남구 서울지하철 2호선 강남역 10번 출구에 '강남 묻지마 살인사건' 피해자 여성을 추모하는 포스트잇이 붙어있다. ⓒ newsis
여성단체들은 대체로 “우리사회의 성차별과 여성혐오가 극단적인 형태로 나타난 것”이라며 촛불문화제와 추모제를 계획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피의자는 4번이나 치료를 받은 정신분열환자다. 환각이나 망각 상태에서 자기보다 약해 보이는 대상을 공격한 것이지 여성 혐오 범죄라고 보면 안 된다”고 단언하며 “정신질환자 관리 부실 문제를 남녀 대결의 문제로 보는 등 문제의 본질에서 벗어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여성 혐오 범죄는 여성이 혐오의 대상이고 범죄의 대상이라는 의미”라며 “이를 사람들에게 계속 강조해서 인식을 시키면 오히려 반감을 유발해서 누군가 실제로 고의를 가지고 진정한 의미의 여성 혐오 범죄를 저지를 수 있다. 언론과 여성단체에서 여성 혐오 범죄라고 자꾸 부각시키는 것은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개인적인 추모로 끝나야지 남녀의 대결 구도로 가는 것은 이번 사건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쟁점 만들기”라며 “여성 혐오 범죄라는 프레임을 씌울수록 여성은 범죄 피해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에 이런 움직임은 지양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곽대경 교수도 “아직 충분히 조사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 정신질환을 가진 피의자의 단편적인 말에만 의존해 여성 혐오 범죄라고 단정 짓기는 이르다”며 “실제로 강력범죄의 경우 피의자 90%가 남성이고 피해자 과반수 이상은 여성으로 조사됐다. 이번 사건만으로 여성 혐오라고 판단하고 확대해석하는 것은 과잉반응이다. 남녀 양극화를 조장하는 추모 운동이라면 의미가 없다”고 비판했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학과 교수도 “여성 혐오라고 보는 건 소수의 의견이다. 피해망상증이 있는 한 남성의 범죄로 대한민국이 들끓는 것은 건강한 현상이 아니다”면서 “앞으로 여성 피해자가 나올 때마다 여성 혐오냐 아니냐로 에너지를 소모하는 건 우스운 상황”이라고 여성 혐오를 부각시키는 여론을 경계했다.
오 교수는 “여성 혐오냐 아니냐 보다 중요한 건 여성이든 남성이든 힘을 모아서 범죄에 대처하는 것”이라며 “피의자는 다시 잡혔을 때 첫 피해자를 살해했던 칼을 가지고 있었다. 제2의 피해자를 선정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재범 가능성이 없어질 때까지 치료와 감호를 해야 하고 이런 범죄에 대해서 사회적으로 제지를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남성 위주의 사회에서 여성이 상대적으로 약자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여성들의 이 같은 움직임은 당연하다고 보는 의견도 있다.
신광영 교수는 “이번 사건은 무고한 여성이 희생됐고 여성 혐오가 바탕이 된 범죄”라며 “추모 운동으로 인해 여성 혐오에 대한 사회적 차원의 새로운 인식과 대응을 강하게 요구하고 중요성을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이런 움직임을 과잉 반응이라고 바라본다는 자체가 젠더(gender) 인식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을 뜻한다”며 “한국사회 전체가 남성 중심적이다. 언어폭력, 신체폭력, 살인까지 양상은 다르지만 여성 혐오에 토대를 두고 발생하고 있다. 더 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문제라고 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경찰은 피의자 김모(34)씨를 심리 면담한 결과, 피해망상으로 인한 범행으로 분석했다고 발표했다.
서울 서초경찰서는 지난 19일 오전에 진행한 프로파일러 심리면담 결과에 대해 “김씨는 구체적인 사례가 없이 피해망상으로 인해 평소 여성으로부터 피해를 받는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경찰은 김씨가 중학교 때부터 정신분열 증세를 보여 왔고, 치료 중 약을 복용하지 않아 증세가 악화됨에 따라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추정된다는 소견을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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