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9만 여명 사망·사고···솜방망이 처벌에 산재공화국 전락”

이희원 / 기사승인 : 2013-04-29 06:2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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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취재] ‘산재사망 처벌 및 원청책임강화법 개정방안 토론회’
▲ 26일 오후 서울 여의도 전국경제인연합회 앞에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조합원들이 '산재사망 처벌 및 원청 책임강화 투쟁 결의대회'를 열고 산재사망 처벌강화 특별법 제정을 촉구했다.ⓒ뉴시스

산재사고 시 솜방망이 처벌 강화 및 안전조치 의무화
“도급인의 적절한 의무 부과” 억지 책임은 원칙 위배


“하루에 평균 5명 산재사고로 사망하는 비현실적 상황, 이것이 바로 현실”

[일요주간=이희원 기자] 지난 2011년 경기도 고양시 일산서구 이마트 탄현점 기계정비실에서 터보냉동기 가동을 점검 중에 있던 인부 4명이 냉매 가스에 질식해 사망했다. 올 2월 초 삼성전자 화성공단서는 불산이 누출돼 1명이 사망하고 4명이 크게 다쳤다. 이들은 모두 하청업체 근로자인 것으로 나타났고 고용노동부의 특별 감독 결과 산업안전보건법(이하 산안법)을 위반한 사례로 드러났다. ‘불산’의 경우 인체에 치명적인 해를 입히는 물질임에도 불구하고 산안법 상 명기된 13종의 유해물질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지난달 폭발 사고가 일어난 대림산단 여수공장 역시 산안법 상 1,002건의 위반사례가 적발됐다. 이들의 위반 사항은 ‘안전조치 위반’이 대부분이었다.

한해 산업재해로 사망하거나 다치는 사고가 평균 9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난 우리나라는 OECD 국가 가운데 1위의 불명예를 안고 있다. 하루에 평균 5명이 산재사고로 사망하고 있다.

지난 2월 25일부터 3월 28일까지 고용노동부는 전국 건설현장의 680곳을 검수한 결과 현장에서 약 94%에 달하는 수치의 산안법 위반 사례가 적발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재사고로 근로자가 사망하거나 다치는 경우에도 사업주, 현장소장 및 근로자 등에 내려지는 처벌은 너무 미미한 현실이다.

민주노총이 2012년 국정감사를 분석한 결과, 2011년 고용노동부 사업장 점검과 처리 결과 전국 21,841개 사업장 가운데 산안법 위반 업체는 19,493개로 90%에 달했다. 시정 조치명령을 받은 사업장은 16,086개, 과태료 부과 처분을 받은 사업장은 6,777개였지만 업체에 대한 평균 과태료 금액은 1,093,000원에 불과했다. 사업장의 안전 과실로 노동자가 재해를 입었는데 거기에 대한 대가를 백만 원에 한정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최근 3년간 산안법 위반 중대재해로 검찰에 송치된 2,045건 가운데 672건이 혐의없음으로 처리됐고 기소유예(255건), 공소권 없음(59건), 각하·선고·유예 등 기타(41건) 등으로 사업주 처벌 없이 마무리됐다. 처벌은 받은 사업주 가운데 징역형은 불과 62건으로 전체에서 3%에 불과했으며 나머지는 모두 벌금 처리되는 데 그쳤다.

산업재해를 방지하고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방패막이 되어야할 산안법이 오히려 노동자들을 방치한다는 문제점이 지적되어왔다. 특히 하청업체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해 원청과 하청 사업주 전원이 구성·운영해야 하는 안전보건협의체의 필요성 역시 강조 돼 문제해결을 위해 법적인 처벌 강화의 필요성이 높아지는 현실이다.

이것이 바로 산업안전보건법을 원청의 책임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개정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또한 사고 빈도가 높은 위험 업종에 하청근로자들이 일하게 되면 자연스레 원청근로자의 재해율은 낮아지게 된다. 이는 산재보험료의 감면으로 이어져 원청은 책임도 피하고 비용도 줄이는 일석이조를 거둘 수 있는 웃지 못 할 상황이 발생된다.

이에 지난 2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하 민주노총)과 심상정(진보정의당)은수미·장하나·한정애 의원(이하 민주통합당) 주최로 열린 ‘산재사망 처벌 및 원청책임강화법 개정방안 토론회’에서 강문대 변호사(법률사무소 로그)는 주요 산재사망사고의 처벌 결과를 예로 들며 기업살인특별법으로 불리는 (가칭)산업재해범죄 단속 및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산업재해범죄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강 변호사는 현행법 상 중대한 산재사망 사고 발생 시 원청업체 든 하청업체 든 간에 이를 ‘업무상과실치사죄’로 처벌하지 아니하고 ‘양벌규정’에 의거해 더 무거운 형벌에 처하지만 벌금형으로 처벌하는 데 문제점이 있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처벌 액수가 지나치게 작다고 비난하며 “산재사고가 무리하게 비용을 줄여 이득을 늘리는 과정에서 발생한다는 것을 감안할 때 현재 처벌수준으로는 기업들이 산재예방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으로 기대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03년 7명이 목숨을 잃은 신태인역 호남선 철도사고, 2005년 9명이 사망하고 5명이 부상을 입은 2005년 이천 GS물류센터 붕괴사고, 2008년 40명이 사망하고 9명이 다친 이천 냉동창고 화재사고 등 주요 산재사고에서 원청 대표나 원청 현장소장은 최대 3,000만원, 통상 1,000만원에도 못 미치는 벌금형이 내려졌다.

유사사례에서 하청 대표와 현장소장 역시 벌금형 액수가 500만원 미만이 대부분이었으며 징역형은 모두 집행유예로 결론났다. 다수가 ‘업무살과실치사죄’로 처벌 받은 하청 근로자의 경우도 다를 바 없었다.

“형법상 업무살과실치사죄의 경우 처벌조항을 일률적으로 강화하긴 어렵다”면서 이에 “특별법 제정 등의 조치 등을 통해 중대 재해 발생 시 사업주 등을 가중처벌 하고 징벌적 손해배상, 영업정지 등과 같은 행정적 조치도 이뤄져야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공개된 산안법제정안에 따르면 특별법의 적용범위 역시 사업장 내 근로자 및 그 외 노무제공자까지 확대해 특수고용직과 도급·용역 노동자의 산재사망도 원청 경영책임자를 처벌하는 등 처벌자의 상한선을 명시해 가중처벌 조항을 적용토록 했다.

특히 현행법의 맹점으로 나타난 사업주에 업무상과실치사죄가 적용되지 않는 점 등을 고려해 산안법 위반으로 산재사망 사고를 일으킨 법인(사업주)은 최대 10억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밖에도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나 영업정지, 해당사업 허가·면허 취소 같은 행정제재를 취할 수 있는 근거도 마련했다.

英 사례 ‘기업살인법’ 비교

이렇듯 노동법 관련 특별법의 제정을 논할 때 자주 거론되온 것이 바로 영국의 ‘기업살인법’(Corporate Killing Law)이다.

‘기업과실치사법’(Corporate Manslaughter), ‘단체살인법’(Corporate Homicide A) 등 다양하게 번역되는 이 법은 법인을 포함한 조직을 처벌대상으로 하며 조직의 중과실로 사망사고가 발생했을 때 사고의 심각성, 안전보건법 위반 정도, 감독관이나 근로자의 대응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벌금형을 선고하도록 했다. 이때 벌금액수의 한도에는 제한이 없다.

이날 토론회에서 심재진 대구대 법대 교수는 이 같은 내용의 영국 사례를 설명하면서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이 ‘진정한 범죄’로 간주되지 않는 우리나라 현실에 시사점을 제공한다”고 밝혔다.

영국의 경우 조직의 중과실이 인정돼 유죄가 선고되면 막대한 벌금에 더해 회사의 이미지까지 나빠질 수 있어 ‘진정한 범죄’로 인식될 수 있다는 것이다.

처벌 강화 오히려 독

반면 이날 토론자 중 한 명으로 참석한 정진우 고용노동부 산재예방정책과장은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시 처벌 수준을 강화해야 한다는 데는 동의하면서도 특별법 제정, 영국의 ‘기업살인법’ 도입 등에는 조금 다른 의견을 내놓았다. 처벌 강화가 유일한 해법은 아니라는 것.

정 과장은 “영국의 법은 처벌강화를 주목적으로 하지 않았다”며 “처벌강화를 목적으로 한다면 특별법 형태로 제정할 필요성이 퇴색 된다”고 주장했다.

이어 “처벌규정이 강화되면 처벌요건도 더 엄격해질 가능성이 큰데 이 경우 요건에 해당하지 않아 오히려 처벌을 받지 않게 되는 경우가 발생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형법의 업무상과실치사죄보다 형량을 강화할 경우 일반 승객과 사업장 내 근로자가 똑같은 피해를 입었을 때 근로자의 경우에 더 강한 처벌을 내리게 돼 형평성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어 “사내하청의 경우 수급인이 도급인의 시설, 설비, 장비 등을 사용해 작업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수급인의 안전보건조치만으로는 충분한 실효성을 거두기 어려운 현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도급인에 대해서도 일정한 의무를 부과하는 것은 이론적, 현실적으로 타당하며 이에 대해 큰 이견이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그렇다고 수급인만의 노력과 조치로 충분한 사항에서까지 도급인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책임주의 원칙에 위반될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하청근로자에 대해 단지 도급인이라는 이유만으로 하청업체와 공동 책임을 물을 수는 없을 것”이라며 “도급인에게는 도급인에 상응하는 의무를 부과하고 이를 위반할 경우 이에 대한 책임을 묻는 구조가 타당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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